나폴레온 힐, 부를 이끄는 생각의 그릇
나폴레온 힐.돈 그린 지음, 이상미 옮김 / 아이콤마(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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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라 그리고 부자가 되어라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부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노력과 열정 그리고 운이 따라야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힐의 성공학 노트를 만난 후, 그의 철학은 게으른 마음과 무기력한 행동에 죽비가 되었다. 그리고 어떤 일을 마주하든 변함없는 힐의 이론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시대를 앞서나간 그의 생각과 의지에 큰 감명을 받았다. 힐은 모든 이들에게 특별한 영감을 선물해 주었다. 특히 성공에 대한 시각을 확장시켜주었고 부를 창출하는 마스터 플랜을 가르쳐주었다. 무엇보다도 힐은 부를 창출하는 목적에 특별한 관심을 두었다. 강렬한 목표설정, 열망,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은 부를 창출하는데 필수적 조건이지만 부가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며 풍요로운 삶을 위한 조건일 뿐임을 강조한다.

 

생각이 그릇이 돈의 그릇이다힐은 유독 부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생각이란 단어를 강조한다. 부는 생각의 전환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도 없으며 지속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이다. 운이 좋아 일순간 부자가 될 수도 있지만 자본운용에 대한 생각과 지식이 없으면 순식간에 몰락할 수 있다. ‘돈 버는 법을 배워라파트에서 힐은 전문지식의 응용을 강조한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는 경험을 쌓는 것이 결국 성공의 크기를 결정 한다는 것이다. 직업교육은 빠를수록 좋다. 또한 실패는 능력을 계발하고 선택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된다. 그는 버핏등 위대한 자산가들의 예를 들며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지적능력의 해석, 무엇보다 자신을 매 순간 재평가하는 교육이 어떻게 부를 창출하고 자산을 형성하는 가를 숙고하라고 이야기한다.

 

본 책은 힐의 여러 계발서들 중 주요 부분을 인용하여 부를 이끈 생각의 중요성과 어떻게 부자가 되는 가에 대한 자료들이 심도 있게 구성되어있다. 힐은 부자에 대한 출발점으로 간절한 열망을 이야기한다. 열망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 ‘불만족을 발판삼아 열망에 기름을 부어강렬한 열망은 현실에 대한 불편과 불만족으로부터 비롯된다. 열망은 의지적인 마음가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불만족에 대한 강한 부정은 열망이라는 긍정적 에너지를 분출시킨다. ‘기존의 생활방식에서 생겨난 불만이 변화에 뒤따르는 불편보다 클 때 비로소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다.’ p16. 열망은 모든 선택의 출발점이다. 또한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를 유지하고 지탱해주는 동기부여의 강한 에너지를 제공한다. 열망이 없으면 목표도 원칙도 그리고 원하던 부도 쉽게 얻을 수 없다.

 

현재 모습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반추한다. 운이 좋을 수도 능력이 특출할 수도 있지만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은 결코 정의와 평등 그리고 공정성이 상존하기 어렵다. 특히 각자 다른 생활방식을 따라가는 정체성은 수많은 충돌과 이해관계에 얽혀있다. 부에 대한 생각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부는 왜 자신만 비켜가는 것 같은가? 혹 자신이 부를 일으키기에, 부와 친숙하게 접근하기에 너무 동떨어진 생각에 집착하고 있진 않는가? 힐은 부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조건이라 말한다. 부는 누구에게나 동등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마치 사물이나 현상은 그대로 인데 우리 마음의 상태가 감정을 일으키듯이 부를 생각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힐의 생각의 그릇을 통해 자신의 그릇 안에 들어있는 생각을 반추해보길 원한다. 시종일관 강력한 목표와 동기부여를 주장한 힐의 최종 선택은 성공은 목표라기보다 마음가짐이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것인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또한 자신의 그릇은 무엇으로 가득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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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위대한 자유 아포리즘 시리즈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우르줄라 미헬스 벤츠 엮음, 홍성광 옮김 / 열림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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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유를 오롯이 자신 안에서 찾아야한다. 종교가 무엇이고 국가가 무엇이고 가족은 무엇일까? 어떤 상황에 이들이 필요조건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익숙하다고 맹목적일 수는 없다.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고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린 너무 쉽게 망각한다. 과거의 두려움도 망각하고 현재의 즐거움도 망각한다. 오히려 미래의 불안이 의식을 잠재운다.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의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눈앞에 있는 현상의 갈증에 집착한다. ’심경의 변화는 니체가 곧잘 하는 말이다. 모든 현상은 시간에 대한 각자의 관점이다. 하지만 그 무엇도 현재적이지 않다. 삶의 이유를 오롯이 자신 안에서 찾아야하는 이유는 내 안에서 삶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문화는 인간 고유의 철학적 무늬가 섞여있다. 시대를 관통하고 개인과 집단이 표현하고자하는 시대를 표상한다. 문화는 같을 수 없으나 이해를 바탕으로 받아들여야 공존한다. 문화적 배경엔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인들의 숨소리가 숨겨 있다. 니체 역시 이러한 시대적 전환을 배제할 수 없었다. 산업혁명이 유럽을 휩쓴 시기,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젊은 니체에게 세상의 소용돌이는 걷잡을 수 없는 악의 현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린 자신의 이념과 다른 세상을 맞이할 때 예견하기 어려운 당혹감과 실망을 마주한다. 특히 삶의 가치와 의미, 이면에 숨긴 통찰에 목말라있다면 이는 내면의 갈증을 더욱 폭발시켰을 것이다.

 

생각이 배제되는 시대다. 물질적 풍요가 이루어낸 수많은 형상들이 생각을 밀어낸다. 표준적이고 보편적이란 관념이 일상을 뒤덮는다. 생산적 효율성은 모든 사물, 심지어 인간마저 대상화로 전락시켰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빈곤을 가져온 것이다. 니체는 현대인들에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개인의 자유의지를 제멋대로 표현하는 지식인들의 행태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우린 세상에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가? 생각을 배재한다고 스트레스가 사라지는가? 오히려 가늠하기 어려운 심리적 고통이 우리의 발걸음을 더욱 무디게 하고 있지는 않는가?

 

니체는 인간 내면을 탐구하길 원했다. 그리고 한 개인이 진정으로 바라는 자유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을 통해 진정한 삶의 철학을 깨닫길 원했다. 아포리즘은 고통일 때 빛을 발한다. 질병에 시달린 인생을 살다간 니체의 삶은 겉으로 태연한 현대인들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까? 니체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명제를 철학적 주제로 다루었다. ‘웃고 노래하며 춤춰라현실과의 괴리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에 이보다 아름다운 표현이 있을까? 자아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 특히 자신에 대한 사랑은 니체 철학의 정수다. 우린 자신을 사랑한다지만 진정한 의미의 사랑엔 무척 서투르다. 니체의 위대한 자유는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그 어느 것에도 거리낌 없는 오직 유일한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그 처음은 자기 주위의 익숙한 것을 떠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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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벗어던질 용기 - 진짜 내 모습을 들킬까 봐 불안한 임포스터를 위한 심리학
오다카 지에 지음, 정미애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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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저마다 익숙한 삶의 방식을 터득하며 살아간다. 특히 그 사회의 중심적인 문화를 수용하며 별다른 기복이 없는 루틴을 반복한다. 하지만 성공이란 관념은 일상을 넘어선 일탈을 요구한다. 평범함은 안정적이나 성공은 비일상적이다. 개인적인 성장을 성공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성공이란 개념은 상대적이다. 즉 타인과의 비교우위가 조건이다. 과거엔 이러한 성공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SNS의 등장은 평범한 개인들에 무한한 성공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인플루언서라 불리는 다수의 개인들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부와 인기를 창출한다. 어린 학생들의 장래희망이 인플루언서에 집중되고 있는 현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회적 인식이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반증한다.

 

하지만 SNS의 급격한 성장 이면엔 드러내지 못하는 고민이 있다. 인기에 대한 신뢰가 무한정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예인 역시 인기가 떨어지면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춘다. 인플루언서 역시 인기의 흥망에 삶의 기준이 달라진다. 오히려 대중과의 기민한 접촉은 훨씬 강렬한 쾌락적 충동을 주는 동시에 빠른 허탈감을 맛보게 한다. 문제는 지속적인 충족감을 위해 자신의 내면과는 다른 자신을 만들어야한다는 것이다. 우린 누구나 저마다의 자아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외면적이든 내면적이든 수년간의 경험과 기억의 소자는 우리에게 선입견과 편견 혹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정체성을 형성한다. 하지만 타인과의 괴리를 통한 내면적 갈등이 부각되면 불안과 걱정이 마음을 뒤흔들고 신체 역시 고통이 뒤따른다.

 

저자는 내가 생각하는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주변사람이 자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느끼고, 때문에 남을 속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증상을 임포스터 증후군이라 표현한다. 즉 주변에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자기평가와 타인평가가 다르다는 괴리감이 스스로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것이다. 자신감의 부족은 수치심과 불안, 내적인 갈등의 원인이 되며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사회변화는 문화의 다양성을 창출한다. 하지만 혼란과 갈등도 야기한다. 임포스터 증후군 역시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갈등과 괴로움의 원인을 제공한다. 인간은 상호보완적이다. 부족한 것은 채우고 남는 것은 나눈다. 이는 유목민으로 살아온 인류의 최적 생존방식이었다. 하지만 먹이사슬의 최상단을 지배한 인간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없다. 결국 최강자는 스스로의 내면적 갈등에 갇혀있다.

 

우린 가면에 익숙하다. 자신을 속이는 편이 훨씬 안정하다는 착각이 효율적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면은 자신의 본 모습이 될 수 없다. 간혹 가면에 쌓인 자신을 사랑하고 자랑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공허함과 허무함이 내면을 가득 채울 것이다. 타인과의 괴리는 자신을 속인다는 자기부정으로 표현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헤어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 우린 자신감이나 자기긍정에 포함된 인내와 용기와 같은 자기 충족감이 필요하다. 자신의 의지로 성취감을 이룰 때 충만한 자기만족을 경험한다. 이런 경험은 자신의 근간이 되며 타인에게도 좋은 선례가 된다. 임포스터 증후를 극복하는 방법은 스스로를 인지하고 무너진 자존감과 자신감을 최대한 일으키는 메타인지와 가치의 재설정이다.

 

과학문명이 인간에게 이로울까라는 주제는 다양한 문제의식과 해석을 낳는다. 우린 과학문명에 찬사를 보내고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느끼지만 진행과정의 문제점들이 돌출되는 순간 상당한 고통을 감내해야한다. 다행스러운 건 어떤 시기건 간에 인간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았다는 것이다. 가끔 엄청난 시행착오가 뒤따르기도 한다. 인간의 몸은 여전히 루틴한 일상을 안정적으로 여긴다. 갑작스러운 성공과 운이 자신에 어떤 운명을 쥐어줄지 예측할 수 없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신분상승이라는 명제를 거부하지 못한다. 무엇이 자신에 가장 효율적일까? 단기적인 사고를 장기적으로 본다면 보다 나은 관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급박하다고 서두르면 몸과 마음이 힘들다. 불안은 감정의 동요일 뿐이다. 임포스터 증후군 역시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에 삶의 가치를 좌우할 것이다. 과연 우리에겐 가면을 벗어던질 용기가 있을까?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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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열다
헤르만 헤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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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계산도 수학초식도 아닌 기적이다. 내 평생이 그랬다. 모든 것이 되돌아왔다. 똑같은 곤경, 똑같은 욕망과 즐거움, 또 같은 유혹이, 나는 계속 같은 모서리에 머리를 찧었고, 같은 연들과 싸웠고, 같은 나비를 쫒았다. 항상 같은 상황과 상태가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건 영원히 새로운 놀이였고 항상 아름답고 항상 위험하고 흥분되었다. --요양객(1923) 중에서

노자의 무위가 떠오른다. 내가 나비를 보는 것인지, 나비가 나를 보는 것인지. 마치 몽롱한 인생의 단면을 직접적으로 만난 것 같다. 인생이 기적이란 말이 모든 이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으면 좋으련만 인간은 너무도 늦게 기적의 진리를 깨닫는다. 그래서 삶의 과정을 힘들다고 하는 것일까? 헤세의 철학은 운명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마치 운명에 맞서 싸우는 현실이 안타까워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충고다. 헤세의 생각이 맞다. 우린 쳇바퀴를 도는 인생을 평행선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이 인생이다. 그리고 그 순간 아름다움과 고결함 순수함을 찾는다.

 

욕망을 품은 시선은 불순하고 왜곡된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바라볼 때만 그 바라봄이 그저 순수한 관조일 때만 사물의 영혼과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문을 열어준다. -영혼에 대해 P45

마음이 혼란스러운 것일까? 세상이 혼란해진 것일까? 혼란은 많은 이들에 질서라는 동기부여를 일으킨다. 질서는 안정적이고 평화적이며 무엇보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의 문화적 배경 역시 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살아있는 모든 것에 이름을 부여하고 개체마다 범위를 정하고 규칙을 만들었다. 새로운 이름은 새로운 창조를 의미하진 않는다. 순전히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분류다. 인류는 호모데우스를 꿈꾼다. 가치관의 확장은 좋은 것일까? 우린 파편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수많은 생각이 고개를 들지만 구름처럼 사라져버린다. 저마다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세상은 인간은 역사다. 그리고 광기에 사로잡힌 수많은 권력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선이라 여기며 세상을 뒤흔들었다. 종교는 무엇이고 전쟁과 평화는 무엇일까? 관념이 지배하는 21세기에 우리가 찾고자하는 인생의 마중물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우린 어떻게 관조를 잃어버렸을까?

 

헤세는 매 순간을 사랑한다, 그리고 사랑하려 자신의 성찰을 아낌없이 사유한다. 인생의 본질에 관해 이토록 처절하게 내면을 지워나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지독한 삶의 부조리에 맞서지만 그의 시선은 삶을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기적이란 말 한마디에 그의 삶에 대한 모든 철학이 담겨있다. 기적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 처절하게 자신과 싸워본 자만이 기적을 깨닫게 된다.

 

가지치기를 한 떡갈나무를 바라본다. 고통이다. 아픔과 슬픔이 베어난다. 하지만 야만의 고통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파릇하게 돋아나는 새싹은 아픔 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희망이다. 그리고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오롯이 삶을 살아간다. 자연은 제 할 일을 할 뿐이다. 우리에게 연민도 관심도 고통도 주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과 시선이 마음을 흔들게 할 뿐이다. ‘그 모든 아픔에도 나는 여전히 이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져있다.’ 헤세의 외침은 찢기고 구겨진 삶을 향한 간절한 희망회로다. 세상이 미쳤을까? 내가 미쳤을까? 사랑이란 관념은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린 세상을 사랑한다. 어떻게 하느냐는 인생의 과제다. 어쩌면 그와의 만남이 변화의 마중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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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고통일 땐 타인을 사랑하는 게 좋다 - 나를 구하는 인간관계의 과학
앤서니 마자렐리.스티븐 트리지악 지음, 소슬기 옮김 / 윌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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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신체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지구의 최상위종으로 군림하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수십만 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뇌의 기능이 갑자기 폭발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인류학자나 지리학자 고고학자들이 발표한 논란의 중심엔 상호간의 교류, ‘공감이 존재한다. 원시인류는 타인의 눈빛이나 행동의 통해 상대의 감정과 의도를 교감했다. 이는 힘이 약한 소수 종들에겐 탁월한 선택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을 것이다. 혼자 사냥을 한다는 것은 굶어죽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멸종의 길을 재촉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피엔스종은 부족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겸손을 최상의 규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자만이나 교만은 부족을 유지하는데 치명적인 약점이었고 부족의 멸망을 앞당길 수도 있었다. 당시는 무척 힘든 시기였음에도 원시인류는 살아가는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깨닫고 공동체에 적용했으며 이를 통해 지구 정복을 가능케 한 것이다.

 

21세기 자본주의는 성장이라는 담론이 지배한다. 성장은 상호이해와 교류가 아닌 극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가계, 기업, 정부를 장악하고 있다. 성장하지 않으면 마치 모든 것이 무너질 듯한 공포와 두려움이 지배한다. ‘중심의 사회는 나 이외의 벽을 만든다. 모든 상황이 자기중심적이다. 어쩌면 유전자 지배사회라는 이기적 유전자의 설득력이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실체와는 다른 결론이 밝혀지고 있다. 성공은 누구에게도 그들이 바라는 것을 쉽게 주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제로섬게임이다. 누군가의 몫을 빼앗는 것이 곧 자신의 몫이라는 무한 경쟁의 실체다. 이로 인해 우리 감정과 신체는 적지 않는 고통을 받는다. 긴장은 스트레스를 일으켜 코르티솔을 분비시키며 몸과 마음을 각성성태로 유지한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장기를 망가뜨리고 지속적인 긴장은 호르몬과 신경교란을 일으키며 만성질환의 원인이 된다. ‘중심, 자의식은 시스템이 만든 강한 편견이다. 우린 누구도 혼자서는 살수 없으며 세상사에 아무런 관심이 없더라도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 자신이 연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지금 삶에 고통을 느끼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를 인지해야한다.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은 우리가 가장 원하던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이다. 인간은 뼛속까지 사회적 동물이라 말한다. 그런데 우린 이를 너무도 쉽게 간과하고 자신이 최선인양 자신에 올인 하는 사회에 익숙하다. 그리고 공허함과 허무함을 느끼고 때론 외롭다고 토로한다. 불안과 우울증이 빠르게 전파된다. 접촉 없는 교류가 SNS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자기기만이 개인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인류는 더욱 자신만의 장벽 쌓기에 몰두한다. 이제 중심으로 펼쳐진 세상의 진실을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토록 극복하기 어려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다른 변화를 가져갈 수 있을까? 또한 무너지는 우리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앤서니 마자렐리와 스티븐 트리지악은 현직 의사이자 과학자로 인간이 이타적 본성에 귀를 기울일 때 어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수많은 과학적 증거를 통해 풀어간다. 문득 원래적인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일까에 의문이 간다. 인간의 본성은 가 아닌가? 하지만 나란 존재는 타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인간 본성은 나가 아닌 타인이 주체라는 생각은 세상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그 중심에 동감공감이 있다. 동감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능력이고 공감은 동감을 바탕으로 타인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중심이 타인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며 이를 위해 자신을 벗어난다는 것을 말한다. 궁극적으론 타인을 위하는 행동이 자신을 보듬어 내면적 만족과 행복함을 가져다준다는 의미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면 다소 불편한 감정이 빠른 진행이다. 뒤에서 대기하는 환자를 생각하면 당연한 이치라 여기지만 의사의 선택권을 조금만 변화 시킨다면 환자와 의사에게 어떤 예측 가능한 결과가 일어날까 질문해본다. 대부분의 의사는 환자의 직접적인 감정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이는 교육과정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의사의 공감 능력과 친밀도는 환자의 치료를 더욱 긍정적으로 바꾼다는 과학적 근거를 무시하는 경우다. 40초만 시간을 할애하고 질문을 바꾼다면 환자뿐만이 아니라 의사 역시 자기 치유를 경함할 것이다. 또한 환자들이 다른 환자들의 멘토 역할을 수행하는 방법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공감과 배려, 이타적인 행동은 분명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임을 증명한다.

 

본 책은 라는 중심에서 타인으로의 변화를 촉구한다. 나라는 존재는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기 몰입은 자기 방어에 불과하며 세상의 횡포에 극히 취약하다. 인간은 상호의존적이며 받는 것보단 줌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이해하고 증명한다. 이는 감정과 신체 특히 호르몬에 가장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며 삶의 의미를 풍요롭게 만든다. 살기 위해선, 아프지 않기 위해선 타인을 위한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말라. 그리고 이런 순간들이 쌓여 치유의 기쁨과 잔잔한 행복의 시간을 만들어 줄 것이다.

 

지금 나는 공감능력이 있는가? 무척 부끄럽다. 여전히 나라는 중심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일상적인 습관이 타인의 시선을 거두고 장벽을 쌓는 중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과 다르지 않는 감정과 신체적 고통을 경험한다. 자기몰입에 대한 보상은 극히 짧고 부분적이라 또 다른 보상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맨다. 인생의 방향성을 이야기하지만 생의 의미에 대해선 별다른 관심이 없다. 문득 원시인류의 탁월한 선택이 떠오른다. 그들의 선택은 다분히 강요적이었지만 새로운 환경을 만들었고 생존과 번식에 성공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뼛속 깊숙이 새겼을 것이다. 우리의 시선을 바꿔야하는 시점이다. 저자는 공감을 얻기 위한 7가지의 처방전을 소개한다. 우리가 꾸준히 하는 일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 자신이 된다는 말처럼 공감을 일상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삶이 고통일 땐 타인을 사랑하는 게 좋다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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