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무기력이다 - 인지심리학자가 10년 이상의 체험 끝에 완성한 인생 독소 처방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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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다보면 뭔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여전히 서있는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마음을 다잡고 계획을 세웠지만 며칠을 넘기지 못한다. ‘그래, 계획이란 원래 세우라고 있는 것이니까.’ 너무 쉽게 포기란 단어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또 다시 작은 실패를 경험한다. 그렇다고 인생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는 많을 것이고 그때 잘하면 되는 거니까? 헌데 난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방향이 잘못된 것 같다. 다른 계획을 세워야하나.

 

맛난 음식냄새를 맡으면 침이 고인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본능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본능을 인위적으로 조절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여기 날지 못하는 부엉이가 있다. 다리를 다친 것이다. 이를 발견한 인간은 부엉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의 치료를 했고 매일 맛난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정성스러운 치료덕분에 부엉인 정상적인 몸이 되었지만 문제가 생겼다. 날기를 거부한 것이다. 부엉이는 재앙이라는 트라우마를 겪었다. 트라우마는 자기통제의 한계를 심어주었고 결국 날고자하는 의지마저 꺽은 것이다.

 

우린 아주 어렸을 적부터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무기력을 강요받아왔다. 가장 큰 기여자는 부모다. 부모 역시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았던 무기력 징후를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에게 물려주었다. ‘어쩔 수 없었어. 내 책임이 아니야. 그래 모든 상황이 일을 이렇게 만든 거야.’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무엇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가득하다.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지나가는 문제라 생각하기에 세상에 대한 집념을 떨칠 수가 없다. 달리지 못하는 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서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세울 힘이 없다. 처음엔 느리지만 빠르게 침몰한다. 무엇 때문에 이리 힘들고 어려운 것일까?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회, 통제에 익숙한 사람들, 틀 안에서 느끼는 안도감, 그들이 느끼는 삶에 열정이 존재할리 없고 즐거움이 낄 자리가 없다. 무기력한 사회, 통제된 개인, 감정을 짓누르는 매체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쉽게 얻고 쉽게 버린다. 우린 대부분 학습된 무기력에 노출되어있다. 학습된 무기력은 자기 통제권을 박탈한다. 문제는 스스로가 무기력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이를 해결하기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린 무기력을 단순히 행동장애로만 생각해 왔지만 무기력은 이미 정서, 인지, 동기부재등을 통해 충분히 암시되어왔다.

 

그런데 인간을 통제하는 동력을 알게 된다면 무기력에서 빠져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인지방식은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세상에 대한 인식의 틀이다. 같은 사물도 서로 다르게 생각하거나 이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동기는 어떤 일을 하려는 의욕이며, 정서는 시시각각 외부에 반응하는 결과로 해석한다. 우린 무기력에 대한 원인으로 행동을 주목하지만 행동은 인지, 정서, 동기의 결과로 나타난다. 결국 무기력을 탈출하기 위해선 자신의 마음상태를 확인하고 인지, 동기, 정서, 행동을 통합적으로 조절해야한다.

 

참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란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헌데 자존심은 무기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를 높이는 마음’이란 의미를 내포한다. 중요한 부분은 자존심이 경쟁을 전제로 한 감정의 차이라는 점이다. 자존심은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한다. 그런데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경쟁우위에서 떨어지면 심각한 열등감을 느낀다. 열등감은 인지부재와 정서에 상처를 입히며 빠르게 스스로를 침몰시킨다. 결국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이들은 무기력에 빠지며 우울증에 걸릴 확률마저 높아진다. 이에 반해 자존감은 비교우위의 우월감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감정이다. 즉, 외부의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우리가 높여야 할 것은 자존감이다.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한 조건임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난 무기력에서 자유롭다고? 우린 무기력한 사회에 살고 있다. 정제된 사회 관념과 통제된 시스템은 선택된 자유마저 제어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삶의 미션이나 동기가 무엇인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모두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학습된 무기력은 여지없이 통제권을 박탈한다. 무기력은 개인과 사회에 치명적인 질병이다. 무기력에 대한 원인을 좆다보면 ‘나’에 대한 생각으로 집결된다. 결국 인생이란 자신이 생각하는 바에 의해 움직이듯이 가장 중요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만이 무기력을 만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실증적인 고찰과 깊이 있는 연구, 빼어난 문장이 돋보이는 ‘문제는 무기력'이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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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1
EBS 역사채널ⓔ.국사편찬위원회 기획 / 북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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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르게 달아오르는 실업률 때문일까? 지도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세계를 강타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그 어느 곳보다 복지시설이 잘 갖추어진 유럽국민들의 점령에 대한 호소는 아시아 지도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배고픈 건 참을 수 있지만 불합리한 불평등은 참기 어렵다. 누구보다 생존권을 부여잡은 이들이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악순환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권력의 무궁한 힘을 자랑하지만 권력은 생태적으로 한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 이를 증명하는 건 역사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자기기만을 감추기 위한 기득권의 권리가 아니다. 사회 지도층으로서 베풀어야할 지극히 당연한 도덕적 의무다.

 

독립운동은 상놈들이나 하는 짓이다.’ 경술국치로 기억되는 1910년 일제는 양반들에게 귀족의 작위를 부여한다. 놀라운 건 과거 그들의 자손이 여전히 한국정치를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이지만 경성 최고의 갑부 이회영은 조심스럽게 가문의 모든 재산을 처분한다. 외롭고 힘든 망명길을 선택한 것이다. 압록강을 건너던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만주로 간 이회영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한 무장투쟁을 전개한다. 눈여겨볼 부분은 그의 무정부주의 세계관이다. 그에게 조국은 오직 조선 하나였고 그는 또 다른 권력을 극히 경계했다. 독립을 위해 가산을 탕진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회적 책임 운운하며 뒤에선 온갖 불법과 불평등을 저지르는 지도자들이 그의 발자취라도 따라올 수 있을까?

 

우린 어떻게 역사를 인식하는가? 망국적인 병에 시달리는 일본이 호전적이 아니라고 말할 한국인이 있을까? 가장 근접한 국가지만 일본만큼 한국에 정서적으로 피해를 준 민족이 있을까? 최근 일본 극우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세계대전 후 묶였던 자위권을 풀기위해 헌법 개정을 서두르는가하면 틈만 나면 독도문제를 들고 나와 극우세력을 자극한다. 그들에게 있어 한반도는 대륙을 침탈하기위한 교두보에 지나지 않는가? 그렇다면 섬나라 일본은 한국인들에게 어떤 국가이자 민족일까? 백제와의 문물교류, 신라와의 투쟁, 왜라 불리며 오랑캐로 천대받던 민족이 우리가 알던 일본이다. 하지만 그들은 조선을 수차례 유린했고 정복했다. 불과 100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또 다시 피어오르는 일본군국주의, 역사를 인식하는 것은 현재를 바로 보는 것과 동시에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안이다.

 

긴 문장이 아름답지만 짧은 문장은 강렬하다. 미디어가 눈과 귀를 잠식하는 시대에 페이퍼가 설 땅을 만들기 위해선 조그만 자극이 필요하다. 바로 역사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이다. 읽히고 생각하는 역사가 재미있는 역사다. 우린 역사를 너무 무겁게 배워왔다. 창의적이고 활동적인 역사보단 매번 전쟁을 통해 방어에 익숙한 역사가 우리가 아는 역사다. 저자는 팩트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팩트란 무엇일까?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서 우리가 아는 역사는 모두 팩트일까?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역사적 팩트를 극복하는 일은 자기 상실을 극복하는 첫 단계다.

 

역사e는 우리가 알던 역사의 틈바구니를 파헤친 역사서다. 무엇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해석이 무지를 깨우쳐준다. 병자호란에 끌려갔던 사대부여인들은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중국에서 들여온 환관제도가 고려시대에 꽃(?)을 핀 이유는? 왜 일본인들은 그토록 한국문화에 열정적이었을까? 역사e는 지루하지 않다. 역사에 대한 소명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증명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기억해야하는가? 과거의 앎이 현재의 삶에 던지는 화두, 역사e, 짧지만 강렬한 역사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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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람을 얻는가 - 초한지 유방의 인재경영 리더십
신상이반 지음, 하진이 옮김 / 더난출판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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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많은데 쓸만한 인재가 없다. 이보다 더 안타까운 상황이 있을까? 그런데 쓸만한 인재를 생각하기 전에 자신이 어떤 리더인가를 고려해본적은 있을까?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정당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권력자들은 타인의 생각보단 자신의 생각을 우선시여기며 행동을 통해 극적인 반전을 꾀한다. 안타까운 건 이러한 리더들의 행동이 환영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리더들은 변함없이 독재형의 정치구조를 좋아한다. 무릇 대부분의 권력이 그렇듯이 권력은 2인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절대 권력에 대한 무한한 욕망, 결국 권력의 이중적인 면모를 가장 잘 이용하는 자만이 특출한 리더로 선택되는 것은 아닐까?

 

리더의 힘과 욕망을 끄집어낸다면 빼놓을 수 없는 중국역사가 초한지다. 역발산기개의 항우와 민초 유방의 패권다툼이 어찌 그리 유명할 수 있을까? 만약 유방이 절세가문의 자제였다면 초한지의 선택은 항우쪽으로 기울였을 것이다. 중국이 한민족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보잘 것 없었던 유방이 거함 항우를 물리친 것과 연관이 깊다. 유방은 말 그대로 기적을 이룬 인물이었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유방이 패권을 차지한 이유로 그의 배짱을 꼽는다. 그는 무일푼으로 부인을 얻고 직급이 높은 관리들을 자신의 부하로 삼았다. 웬만한 배짱이 아니면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그런데 대중이 간과하는 유방의 업적이 용인술이다. 유방은 자신의 힘만을 믿는 항우와 다른 선택을 했다. 스스로가 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부족한 점을 채워줄 리더들이 필요했다. 소하, 조참, 장량등 내로라하는 책사들의 전략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특히 항우의 장교로 있다 자신에 의탁한 한신은 유방이 선택한 최고의 인재였다. 흔히 유방의 용인술을 삼국시대의 영웅 조조와 비견하는데 삼국지의 저술자가 한족이라는 것을 감안다면 조조가 얼마나 저평가 되어있는 인물인지 알 수 있다.

 

조조는 자타가 공인하는 용인술의 대가다. 후대인이 그를 재평가하는 이유도 그가 보여준 용인술이 리더의 전형이랄 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촉의 병법가인 제갈량을 신처럼 받들지만 그는 사실상 독재자형에 가까운 리더다. 그가 실패한 이유도 병법이 부족했기 보다는 리더로서 부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책임이 더욱 크다. 반면에 조조는 아무리 적이라 할지라도 존경을 받을 만한 인물이면 먼저 고개를 숙였다.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조조는 뛰어난 용인술에 의해 삼국을 통일하였다. 그보다 수백 년 앞선 유방 역시 정치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익히 깨달은 인물이었다.

 

어떻게 사람을 얻는가조직이든 기업이든 마음에 맞는 사람을 얻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한쪽에서는 자신이 최적이라 생각하지만 한쪽에서는 다른 생각을 하는 그야말로 동상이몽이 한창이다. 극히 혼란한 시대를 뚫고 새로운 왕족을 설립한 유방의 용인술은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그 자신이 밝혔듯 리더는 자신이 뛰어나는 것보다 뛰어난 인재들을 잘 다루는데 그 가치가 있다. 역발산 기개의 항우가 힘이나 실력이 부족해 유방에 무릎을 꿇었을까? 그는 권력만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독재자에 가까웠다. 그가 유방과 같은 용인술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측근의 말만이라도 들었더라면 천하의 인재들은 항우를 향해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대중은 어떤 리더를 원하는가? 대중이 어리석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결국 정치는 대중의 입맛을 맞추어야 유지가 가능하다. 유방은 황제가 된 후 인정사정없이 측근들을 사정했다. 왕권을 위해 후일을 도모한 것이다. 능력 있는 인재를 얻기 위해선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먼저 내놓아야한다. 그런데 과연 작금의 정치현실은 어떠한가? 무엇을 위한 정치인지, 누구를 위한 정치인지, 마치 갈 곳을 잃은 체 떠도는 부표와 같은 정치가 한창이다. 대권을 잡는다고 모든 상황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권력은 새로운 시작과 같다. 인재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지만 결국 시스템이 엉망이 다면 인재 역시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 이를 증명한 이가 유방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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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의 선택 - 결단, 당신을 리더로 만드는 힘!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 특별강의 지음, 김정환 옮김 / 소프트뱅크커머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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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어라. 재일교포 3세로 갖은 수모와 고초를 겪은 손정의의 마음엔 오직 성공이라는 한마디가 아로새겨져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가 풍족한 재벌2세였다면 지금과 같은 신화적 인물로 받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무일푼으로 일본최고의 기업을 일구었다. 1000만 엔으로 시작한 소프트뱅크는 그 가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가 수억 달러를 들여 투자한 야후와 알리바바는 어떠한가?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기적들이 그의 손아래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는 투자의 귀재였고 경영의 신이었다. 오죽했으면 언론들조차 빌게이츠를 능가할만한 인물로 손정의를 선택했겠는가? 손정의 회장은 또 다른 선택을 준비하고 있다. 말한 바를 실천하려는 웅대한 계획이다.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는 기업의 차세대 리더들을 이끌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다. 손정의 회장은 두 차례에 걸친 아카데미아를 통해 리더들을 위한 의사결정 비법을 공개한다. 비즈니스 시계는 암흑과 같다. 상대의 패를 알지 못하고서 자신의 패를 읽힌다면 이는 십중팔구 패를 가져온다. 매초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하며 한 번의 선택이 기업의 존망으로 연결된다면 의사결정에 대한 리더의 자질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손정의 회장은 위기의 순간마다 특유의 선택으로 타인의 주목을 이끌었으며 이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자본금이 1000만 엔에 불과한 기업이 전시회 부스를 마련하기위해 800만 엔을 올인 한다면 모두들 미쳤다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소프트뱅크의 신화는 손회장이 바라본 꿈과 열정에 의해 이루어져왔다. 놀랍게도 소프트뱅크는 손회장의 기지덕분에 숱한 위기를 극복하고 어떤 일본기업도 이루지 못했던 유통망을 단기간에 구축한다. 그의 기업경영철학은 아카데미아 곳곳에 나타나는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구조는 완전한 독과점판매다. 2인자를 잠식시키는 절대적인 1인자의 출현은 기업의 성공뿐만이 아니라 미래를 이끌 동력을 확보하는데도 가장 중요하다. 그는 무모하리만치 투자를 자행하지만 그 이면엔 조직을 이끌고 있는 리더들의 특별한 자질과 열정을 잊지 않는다. 그가 바라본 세상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무궁무진한 보고 일뿐이다.

 

손정의 회장은 질문을 통해 자신의 경영철학을 회자한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투자 철학이다. 그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바로 보는 혜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조직의 이념과 신념에 부합된다면 현재 어렵더라도 회생 가능한 기업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20, 자신이 이룰 기업의 경영비전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섬뜩할 정도로 놀랍기도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완벽하리만치 상대를 압도한다. ‘손의 제곱병법이 바로 그것이다. 손자와 란체스터의 경영전략을 곱했다는 의미를 지닌 손이 제곱병법은 그가 비즈니스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 손의 제곱병법은 소프트뱅크 리더들을 위한 경영이념과 비전, 전략, 마음가짐, 전술을 기록하고 있다.

 

디지털 혁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도는 기업의 절대적인 경영이념이다. 손정의 회장은 이를 싸움에서 이기기위한 절대적인 조건이라 말한다. 천시의 의미를 담은 천은 주어진 타이밍을 잘 활용하라는 뜻으로 손정의 회장만의 긍정적인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마치 정보혁명이 자신을 위해 주어진 최고의 타이밍이라 강조한다. 비즈니스세계는 냉혹하다. 한국형 재벌기업들이 어떠한 외압에도 불구하고 동네상권을 장악하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들은 마치 불속에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다. 아무리 급하다고 자신을 태울 필요는 없지 않는가? 무엇을 선택해야하는지에 대한 문제와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하는지에 대한 과제는 비단 경영인들만의 숙제는 아닐 것이다. 위기의 순간마다 한걸음 앞선 혜안으로 미래를 개척한 손회장 특유의 의사결정 비법, 그만의 선택이 주목받는 이유다.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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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적의 비밀 - 이스라엘은 어떻게 벤처 왕국이 됐을까?
이영선 지음 / 경향BP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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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머리위에서 포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국가, 기름 한방울 나지 않지만 1인당 GDP가 무려 32,000달러나 되는 선진국, 세계인구의 0.2%밖에되지않지만 노벨상을 밥 먹듯이 타는 국가, 세계사상, 이념, 과학, 문명을 맨 앞에서 이끌어온 민족, 어떤 수식어가 이들의 역사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은 대학보다 군대 가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돈이 될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도전해본다. 무엇보다 국가가 처한 절박함을 알기에 외부에 있든 내부에 있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무척 강하다. 그들의 삶은 마치 벼랑위에 서있는 것 같다. 선수 치지 않으면 내일이 없기에 항상 주변을 탐색하고 먼저 행동한다.

 

최근 북한의 움직임을 이스라엘 정책과 연관시킨 기사를 종종 접한다. 이왕 부딪혔으니 결과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적 정서엔 여전히 이스라엘식 군사정책이 어색하기만하다. 무엇보다 한국의 상황이 이스라엘만큼 절박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점진적으로 중동을 장악해나가는 이스라엘정책은 분명 위기에 처한 한국의 국제정세에 좋은 벤치마킹이 될 것이다. 두 국가는 수천 년동안 단일민족을 유지해왔고 주변국으로부터의 갖은 핍박을 받아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독립을 했고 경제성장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두드러졌다. 그렇다고 한국을 이스라엘과 동일선상에 놓는다는 것은 곤란하다. 두 국가의 경제적 입장이 눈에 띄게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은 새로운 정권의 출범과 함께 동반성장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서두르고 있다. 과연 정권말기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스라엘은 벤처기업의 산실이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기업들이 즐비하다. 특히 다이아몬드 제조와 더불어 기술수출은 이스라엘을 경제를 성장시키는 최고의 히트상품이다. 그들은 국가의 지원 아래 다양한 벤처기업을 설립한다. 일반적인 기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기술을 인정받는 즉시 다국적 기업에 매각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한국과 같은 대규모의 기업을 키우지 않는다. 오히려 소규모의 기술개발을 통해 창업을 준비한다. 흔히 이스라엘을 기적의 국가라 하는데 적국의 중심에 세운 사막의 왕국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경제 기적의 비밀은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운 이스라엘 민족의 민족성과 이들이 이루어 놓은 경제적 성과에 관한 과정을 기록해놓았다. 저자는 이스라엘 민족이 지닌 특유의 강인함을 주목한다. 오히려 교육적 열기나 과정은 한국이 훨씬 앞서지만 대학을 다니기 시작할 무렵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열정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른다고 한다.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온갖 기득권을 놓지않으려는 한국적 정서와는 달리 그들 대부분은 스스로 삶을 선택한다. 무엇보다 이들에겐 세계 각국에서 전달되어온 가공되지 않은 정보들이 즐비하다. 어렸을 적부터 익혀온 종교적 습관과 다문화에 대한 이해, 특히 전 세계로부터 공수되어온 다양한 정보는 인생의 정확한 목적을 전달한다. 맹목적인 성공만을 쫓아다니는 우리의 풍토와는 사뭇 다르다.

 

이스라엘을 이해한다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따라가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그들이 세계정치, 경제를 리드하고 마르지 않는 성장을 추구하는 정책은 분명 배워야한다. 왜 한국에선 이스라엘에서 그 흔한 노벨상 수상자가 쉽게 배출되지 못하는 것일까? 한국 자본주의는 그 어떤 국가보다 미국을 닮았다지만 교육 철학 면에선 동일성을 찾기 어렵다. 마치 콩나물시루에서 누구 키가 더 큰지 키 재기를 하고 있다. 물만 주면 자라는 콩나물은 언제든 뽑힐 운명이다. 한국경제는 위기의 순간이 아닌 적이 없었다. 그렇고 보면 유독 경제정책은 국민의 불안감을 조성하는데 익숙하다. 우린 언제부턴가 의존적인 삶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겉으론 자유를 외치지만 마치 누군가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제 스스로를 일으킬 힘마저 잃어버린 것일까? 수천 년 전 세계를 배회하며 자신의 땅을 찾아 나선 이스라엘민족의 강인함속에서 우리민족이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혹 너무 배가 부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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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4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