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은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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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 공상과학소설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정은영 지음, 교유서가 펴냄​





아이가 생기지 않아 하루하루가 고통인 사람들이 있다. 아, 내가 그랬다. 임신에 실패한 걸 안 날이면 우리 부부는 입을 꾹 다물고 침울해했다. 애써 밝은 척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부부는 그렇게 지쳐간다. 아이... 낳아줄 대리모도 알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임산부 로봇이 등장했다. 여기까진 미처 생각 못했는데...





그런데 장애는 모두 당신처럼 바꾸고 개조해야 합니까?

장애라는 것은 공존할 수 없는 겁니까?





머지 않은 미래, 약 2050년의 세계는 아이의 감성은 중요시하는 사회. 처음부터 급을 정해 기계 안에서 '인간들'을 탄생시키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는 결이 다르달까. 과학기술이 포화하다시피 발달한 이 시기에 인구관리국은 혐오 없는 도시 만들기의 일환으로 '장애아 출산율 0%'를 목표로 하는 출산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인공 자궁에 아이를 품은 헐스를 비롯한 임산부 로봇들은 '행복한 설렘'이라는 명령어가 삽입된 채 출산 때까지 배 속 아이를 어르고 달랜다. 유산을 하는 경우, 임산부 로봇의 프로그램은 초기화되어 유산에 대한 기억이 삭제된다. 임산부 로봇들은 동료의 기억을 공유하기에 자칫하면 자신들의 기억 역시 삭제될 것임을 경계한다. 이 정도 로봇들이라니, 나는 갑자기 무서워진다.








그런데 이토록 고도화된 과학기술의 결정체인 로봇들에게도 간혹 버그가 발생한다. 컴퓨터의 버그는 리부트나 삭제 등으로 제거 가능한 것이지만 임산부 로봇들의 버그는 이따끔 심각한 오류를 일으켜 삭제되지 못한 채 혼란을 부른다. 그리고 인구관리국의 오점이 될 수 있는 제거되어야 할 '행복이'를 가진 헐스는 소환당한다. 헐스는 자신이 왜 소환되었는지를 이미 알고 있지만 행복이를 지키고 싶어 한다. 하아, 이 모성은 대체 어떻게 프로그래밍된 거지?








사랑과 행복은 당신에게





인구관리국의 수장 파파는 자신이 설계하고 고물상이 관리하는 '장애아 출산율 0%'를 위협하는 행복이를 제거하기 위해 헐스를 태아보호센터로 이동시킨다. 여기서 헐스의 반항이 시작된다. 헐스는 자신이 겪어야 할 일을 이미 겪은 임산부 로봇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마스크를 쓴 고물상에 반항한다. 안면장애를 가진 행복이는, 인구관리국에서 제거된 마지막 장애아였으나 어떻게 살아남아 안명장애를 마스크에 감춘 채 낙태를 시행하고 임산부 기억을 제거하는 고물상 앞에 놓였다. 이 위기의 순간, 고철 덩어리인 주제에 헐스는 질문을 던진다. 장애라는 것은 (중략) 공존할 수 없는 겁니까? 고물상은 분노한다. 없어. 없다구. 공존할 수 없으니까, 이 어둠 속에 보내졌겠지.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는 건 견딜 수 없어하니까. 하지만 헐스는 마지막 반항을 하듯 임신유지프로그램을 멈춤으로써 인구관리국에 한 방 먹이는데...








​동전의 양면처럼 어떤 정책은 유토피아를 표방했으나 누군가에게는 디스토피아의 서막일 수 있다. 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정은영의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는 두 편의 단편 소설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와 <소년과 소년>을 통해 고도의 과학기술 사회에서 버그로 취급되는 장애가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제거되고 삭제당하고 이식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행위에 문제를 제기한다. 꿈의 과학은 장밋빛 환상일까, 끔찍한 미래일까. 인간성마저 제거될지 모를 과학기술의 미래는 사양이다. 우리 인류는 이 과제를 잘 풀어나갈 수 있을까? 과학기술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질문, 정은영의 미래소설 공상과학소설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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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
안네 프랑크 지음, 데이비드 폴론스키 그림, 박미경 옮김, 아리 폴먼 각색 / 흐름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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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 그래픽 노블









 

안네의 일기 그래픽 노블

안네 프랑크 지음, 아리 풀만 글, 데이비드 폴론스키 그림, 박미경 옮김, 흐름출판 펴냄

 

 

 


 

숨어 지내는 게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지?

사실은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이 집에선 마음이 편해질 것 같지 않아.

 

 

 

 

안네의 엄마는 우울할 때 "세상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을 떠올리며 네가 그렇지 않다는 데 감사"하라고 말하지만 사춘기 소녀에게 그런 주문은 말도 안되는 것이었죠. 안네 프랑크 는 엄마의 조언을 귓등으로 흘려듣기도 하고 그런 말을 진지하게 하는 엄마를 속으로 무시하고 조롱하고 우습게 여겨요. 게다가 말 잘 듣고 착한 큰 딸만 싸고 도는 엄마에게 반감이 강했죠. 한없이 인내하는 엄마의 모습은 안네에겐 비판하고 반항할 거리밖에 되지 않았어요괴로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린다고 뭐가 달라지겠니? 더 괴롭지 않겠어? 안네는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좋은 점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어요용기와 신념이 있는 사람은 불행에 짓눌려 비참하게 죽지 않아.

 

 

숨어 지낸 지 2년이 되어가던 어느 날, 안네의 식구와 함께 숨어 지낸 사람들에게 식량 배급표를 제공해준 사람들이 체포되어요. 암사장에서 물건을 구해주던 사람도 독일군에게 끌려갔죠. 그래서 은신하는 일동에게 식량 사정은 최악이 되었고 은신처 근처에 비행기가 떨어지고... 그러다가 8명이 함께 지내는 은신처 창고에 도둑이 든 걸 알게 됐어요. 페터와 도둑의 눈이 딱 마주쳤죠. 페터도 신고하지 못하고 도둑 역시 고발하지 못했지만 지나가던 행인이 신고했을까요, 경찰이 들이닥쳐요. 경찰은 건물 여기저기를 수색하고 비밀의 문인 회전 책장을 살피는 동안 조용히 있어야만 했던 여덟 개의 심장은 마구마구 뛰었죠. 여기서 들킨다면 모두 수용소로 보내질 테고... 그 이후는 상상도 하기 싫었죠.

 

 

 

 





 

어찌 됐든 1942년이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어.

버림받았다고 느낀 적도 많았어.

 

 

 

 

194466일 드디어 상륙작전이 시작됐어요. 수많은 항공기, 병력과 폭탄, 함선... 안네는 상륙작전으로 아군이 가까이 왔다는 것, 독일군이 너무 오랫동안 자신들을 탄압하고 위협해왔기에 아군의 출격 소식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에요. 어쩌면 3~4개월 후에는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죠.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어른들 눈에는 못된 망아지 엉덩이에 뿔난 것처럼 보이던 안네 프랑크. 어쩌면 안네의 강인하고 때론 제멋대로처럼 보이는 성격은 자의식이 무척 강했기 때문인지도 몰라요궁극적으로 자신의 성격은 자신이 형성하는 거야. 안네 프랑크 가 유대인을 핍박하던 나치 치하에서 숨을 죽인 채 숨어 살아야 했던 나날을 기록한 일기 "안네의 일기". 우리 어렸을 적 해보았던 내 물건에 이름 짓기를 안네는 소중한 일기장에 적용했어요. 일기장 '키티'는 전쟁의 기록이라기보단 사춘기 소녀가 어떤 몸과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담은 성장 기록이라고 할 수도 있겠어요. 부모에 대한 원망과 감사, 언니에 대한 질투와 동경,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 어른들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죠마음 깊은 곳에선 젊은이가 노인보다 고독하다"현대의 젊은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책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이를 키티에게 털어놓은 안네. 안네가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속된 말로 '한자리 했을' 텐데요이런 상황에서 내가 꿈과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야.
 

 

전쟁으로 자유를 잃고 청춘을 감금당한 안네 프랑크. 이런 비극의 역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또 다시 되풀이되고 있어요. 전쟁은 일으킨 쪽도 당하는 쪽도 그 상처가 우리가 어느 정도를 상상하든 감히 그만큼이라고 한정지을 수 없을 만큼일 텐데요. 평화로운 세상, 아름다운 위아더월드였으면 좋겠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잔인무도한 시절이 끝나고 평화롭고 평온한 세상이 다시 돌아올 것 같다 며 희망가를 부른 안네 프랑크의 기록 "안네의 일기", 아리 폴만이 각색하고 데이비드 폴론스키가 그림을 그린 "안네의 일기 그래픽 노블"로 만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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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이은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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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은 소설 산책

집이라는 요새에서의 고립과 불안을 산책으로 해소하기







산책


김이은 지음, 교유서가 펴냄





히키코모리 자식을 둔 부모를 안다. 부모의 나이 어언 80이 넘으셨다. 그러니 자식이 50세 가까이 된 셈이다. 그 자식은 20대 어느 날부턴가 방에 처박혀 게임만 하고 식사를 하러 나오지도 않아 밥을 차려 들여주는 지경이니, 부모 속은 썩어 너덜너덜해졌다. 그 자식은 무엇이 불안해 스스로 고립되었을까. 그를 어떻게 산책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 부모는 걱정에 땅이 꺼진다. 자신들이 갈 날이 머지않았다며 가슴을 쥐어뜯는다. 난 그저 멍하니 듣고만 있다. 바라만 본다. 해드릴 말씀이 없다.

그렇게 견디다보면 언젠가 편안한 미래가 쥐어지겠지.

그런데 산책으로 모든 게 해결될까. 산책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지도 모른다. <산책>에서 핏줄로 맺어진 선천적 관계인 자매의 산책은 서로에 대한 묘한 경계감을 드러낸다. 집 자체에 대한 해석이 다르고 집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욕망이 다르다. 하지만 그 해석과 욕망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르게 마련이지 않을까. 내가 가진 게 없으면 내 마음 편하자고, 집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면 족하다고 결론 내린다. 내가 뭔가를 가지고 싶다면 내 희망을 높이 사느라고, 집은 재테크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매는 한 배에서 났지만 건널 수 없는 경계를 지닌 채 산책을 나가고, 산책을 하는 도중에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깔끔하지 않게 산책을 끝내려다가 발목잡힌다. 자신들이 해결하기 난감한 문제를 맞닥뜨린 자매, 그들은 과연 삶의 해법을 찾아낼까?

​​


낡고 오래된 동네의 소통 방식이란 무례하고

쌍방 소통형이 아니라 일방 직선형인 경우가 많으며

보통 카더라, 통신으로 삽시간에 퍼졌다.

그렇다면 자연적이거나 선천적이지 않은 관계, 즉 인위적이거나 후천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어떤 모습의 산책을 하게 될까? <경우지에서>의 주인공 이화는 자신에 대해 떠도는 출처 불분명한, 어쩌면 조리돌림일 수 있는 말들에 시달린다. 이화는 한곳에서 지나치게 오래 살았다는 것, 그래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자신도 모르게 부풀려진 채 소문으로 퍼진다는 것, 그래서 누가 누구를 알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일이 끔찍하게 여겨진다. 그러다 문득 이런 삶에 반항이라도 하듯 아무에게나 관계를 생성하고자 하는 이화, 그녀의 시도는 일상을 부유하는 삶의 비극에 희망을 안겨줄까? 아니, 어쩌면 그것은 또다른 비극의 탄생일까?












사실 삶의 모든 변화의 순간들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요하게 다가왔다.



세상에 맞서느라고 자신이 만든 울타리에 스스로 갇힌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김이은 작가는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산책"에서 이를 '일종의 요새'라고 표현했다. 요새 안에서 생활하는 한 방해받을 일이 없다. 이로써 사람들 간의 관계는 점도가 약해진다. <산책><경유지에서>는 집에 갇혀 권태롭고 무기력하게 일상을 영위하던 주인공들이 산책을 통해 잠깐이라도 주변인과 관계를 맺는 순간을 그린다. 자신의 본모습을 잠깐만 감추어도 되는 관계. 어쩌면 자신의 본무습을 잠깐만 드러내도 되는 관계. 하지만 어느 쪽이든 관계는 일시적일 뿐 지속되지 않는다. 혹시 이들은 이런 한시적인 관계를 원한 걸까? 지속성은 버려두고 일시성을 택한 걸까거의 모든 인간의 깨달음이란 건 일상과 시간의 힘을 견뎌내지 못하게 마련이었다

사회적으로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삶에 대한 방식, 이 와중에 생겨나는 고립에 대한 불안과 관계에 대한 욕망, 온전하다고 믿는 삶에 이르기 위한 자기 위안을 이야기하는 김이은의 소설 <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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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임승수의 마르크스 자본론 강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시리즈
임승수 지음 / 시대의창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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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임승수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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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에게 국민이 개돼지요 자본가에게 노동자가 개돼지인 이유를 알고 싶다면 "자본론"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와... 이렇게 와닿는구나! 난방비 폭탄 사태는 왜 일어난 거지?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임승수 지음, 시대의창 펴냄

법정근로 시간을 주52시간으로 단축한 근로제도가 이제야 조금 자리를 잡는가 싶었는데 이번 정부에서 그 정책을 다시 뒤집고자 한다. 52시간 전이었던 68시간도 아니고 69시간으로 회귀하고자 함이다. 이리되면 뭐가 좋을까? 기업, 자본가들은 어깨춤이 절로 날 일이겠다. 노동자의 시간, 즉 노동력을 사는 데 지불되는 비용보다 노동자의 잉여노동을 착취해 훨씬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를 부리는 것이 합법인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 소유자가 이윤을 취하는 것은 합법이다만

​​

우리가 돈으로 구입하는 모든 상품은

누군가가 노동한 결과물입니다.

내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노동 덕분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나의 노동 덕을 보겠죠.

결국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는

노동 공동체의 구성원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는 이 소중하고 항상 고마워하고

감사해야 할 '타인의 노동'을 단순한 화폐 수치로 전락시킵니다.

따뜻한 '인간' 관계를 차가운 '' 관계로 치환하죠.

187-188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노동력의 대가요, 자본가의 이윤은 노동자가 빼앗긴, 착취당한 노동(잉여가치)에서 나온다. 이것이 마르크스 "자본론"의 핵심 내용이란다. 그러니까 더 쉽게 말하자면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착취당하고 있다... 랄까! 어떻게 그러냐고?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있다. 사용가치는 상품이 쓸모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교환가치는 상품이 노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상품의 교환비율은 해당 상품을 만드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생산과정에서 가치가 생산물에 이전되는 방식을 기준으로 구분하자면 노동자가 임금으로 받는 부분은 가변자본이다. 이때 노동자의 노동력 중 임금에 해당하는 부분이 필요노동이요, 자본가의 이윤으로 전환되는 부분이 잉여노동이다. 이를 바탕으로 상품의 교환가치는 'C불변자본+V가변자본+S잉여가치'. 용어가 어려워 보이지만 딱히 어려울 것도 없다. 임승수 저자의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에서 친절히 짚어주니까 일단 주는 떡 받아먹으면 끝. 하지만 읽다 보면 '사상' 있는 우리는 수동적 입장에서 벗어날 게 분명하다.

​​



자본주의 시장경제란 결국 기업들이 경쟁해야만 하는 전쟁의 장이나 다름없다. 약육강식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은 노동자를 쥐어짜야만 한다. , 자본가는 자연스럽게 자본의 무한한 탐욕을 닮게 되어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연장해서 잉여가치의 절대량을 늘려야 한다. 이로써 절대적 잉여가치의 창출이 일어난다. , 자본가는 이윤의 원천인 잉여가치를 더 많이 뽑아내기 위해서, 또 시장에서 다른 자본가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노동자에게 장시간의 근로를 강요한다

자본가들은 잉여가치를 최대로 높이기 위해 설비를 연구하고 투자하여 새로운 기계 및 시스템을 확보한다. 이로써 노동자의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특별잉여가치가 발생하고 자본가는 이를 무기 삼아 자사 상품 가격을 낮추어 시장 우위를 점한다상대적 잉여가치가 창출된 것. 이러한 경쟁 과정에서 일부 기업은 도태되고 살아남은 기업들은 동등한 기술력을 갖추어 노동시간의 단축을 달성한다. 그럼 노동자도 좋은 거?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여기서 얻어지는 이익은 대부분 자본가가 가져가기에 노동자의 삶의 질이 '절대적'으로 개선되어도 계층 간 빈부 격차는 '상대적'으로 심해진다. 기술 발달로 생산력을 증가시킨 결과가 착취를 강화하는 꼴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동력 착취를 가능하게 하고 일자리를 빼앗는 기계를 원망해야 할까? 후후... 그렇게 생각하면 아... 슬프지 말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200여 년 전 영국에서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 즉 새로운 기계의 발명으로 일자리를 잃은 숙련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려고 벌인 대규모 행동을 예로 들어 기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고 하니, 정말 자본론 읽어야겠다!

그런데 말입니다. 특별잉여가치고 상대적잉여가치고를 뛰어넘는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더욱 착취당하도록, 즉 자본가들이 손 안 대고 코 풀 방법이 또 있으니 바로 성과급이다. 두둥. 성과급이라고요? 두둥! 이윤율이 같다고 하는 와중에 이윤량 착취율이 등장하니, 현실에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에 갈등이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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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쉬운 임승수의 마르크스 자본론 강의


내 맘대로 요약하자면 이거다. 자본가는 초기에 자본금으로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구입하고 생산과정을 거쳐 시장에 내다 팔 상품을 만들어낸다. 이때 이윤의 원천인 잉여가치를 뽑아내는데 상품을 팔아 벌어들인 돈은 당연히 초기 자본보다 크다. 노동자의 잉여 노동을 통해 잉여가치가 창출되기 때문.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단순재생산 하느냐 확대재생산 하느냐는 자본가에게 달렸다. 이 과정에서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산업구조가 바뀌는 것은 말릴 수 없는 문제겠다. 마르크스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실업 상태로 있는 사람을 산업예비군이라 불렀다. 이 산업예비군이 많을수록 자본가는 좋다. 필요한 인력을 적당한 임금 수준으로 손쉽게 고용할 수 있기 때문... 노동자, 하아... 마르크스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생산수단의 소유권 문제를 손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 자본주의와는 거리가 먼 얘기? 이러한 공상은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투쟁을 통해 현실화될 수 있다? 어느 쪽에 손들겠는가? 여기서 국가, 즉 정부가 법과 제도로 규제하는 개입이 필요한가? 국가의 개입이 커진다면 그것은 사회주의?

​​


 

세상을 바꿀 주체는 노동자 라 하나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비유가 지금도 횡행한다. 그런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혹시 인류의 종착역일까? 임승수 저자는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에서 분명 이전 사회보다 장점이 많은 자본주의 사회지만 우리는 한 발 더 내딛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나는질문이 있다. 나는 꼭 노동자일까? 나는 자본가가 되지는 못할까? 아니, 세상일 누구도 모른다지 않던가. 나의 출발은 노동자였으나 자본가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읽지 않아도 될까? 아니, 자본가적 입장에서도 이런 과정을 알아야 대처할 수 있으므로 읽어야 할까? 이런 과정을 알기에 모범이 될 만한 좋은 경영 모델을 시도할 수 있으므로 꼭 읽어야 할까? 마르크스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하였으니 임승수 저자의 책, 그리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노동자와 자본가를 막론하고 필독서라고 하겠다왜 내 자식이 비정규직으로 채용되는지, 왜 나는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고 자기 무덤을 파는 꼴인 비정규직을 채용하려 드는지를 알고 싶다면, 읽어보자

노동자를 위해 쓰였다는 "자본론". 다행히도 우리 노동자는 예전 시대의 노예와는 다르게 교육을 받아 일정 수준의 교양과 사상을 갖추었다. 임승수 저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접했을 때의 충격을 천동설을 진리로 알고 있던 사람이 지동설을 알게 되었을 때 받는 충격에 비교했다. 노동자가 자본가를 대변하는 사람한테 투표한다는 말에 통쾌하면서도 안타깝다. 사회주의가 좋냐 자본주의가 좋냐를 두고 따지는 게 아니다. 사회주의는 어떻게 자본주의는 어떠하니 우리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혹 더욱 발전시킬 방향은 무엇인지를 더욱이 복지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찌해야 할지를 고민해볼 노릇이다. 알아야 면장 한다고 했던가. 노동자와 자본가는 마음먹기 따라 한 끗 차이라고 보자면 누구나 꼭 읽어야 할 책 임승수 저자의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마르크스의 "자본론" 겉핥기 식 도서이나 알찬 책,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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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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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과도한 상상력의 천재 발자크 를 평전 하다

 

 

 


 





이건 소설이에요. 평전이라니요? 소설처럼 읽고 말았는 걸요.
왜냐고 묻지 말아요. 이러저러한 발자크를 츠바이크는 그렇게밖에 그릴 수 없었을 테니까요.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푸른숲 펴냄

 

 


이상한 부모는 어느 시대에나 있게 마련인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나는 한 번도 어머니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체 어느 정도여야 자녀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까? 결국 발자크는 나이 들어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후에도 어릴 적 어머니에게 당한 냉대를 떨쳐내지 못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그냥 나쁜 사람... 나의 어머니는 내 삶에서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지상에서 한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잔혹한 어린 시절부터 감수성 예민한 나이에 겪은 어머니로부터 기인한 수많은 은밀한 고통은 발자크를 다혈질에 쉽게 흥분하는 성격을 갖게 했고 그로써 그는 더더욱 고통의 순간을 겪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의 어느 순간을 어머니에게 몹시 의존했다. 그리고 다행이게도 그는 천재... 천재였다! 진짜냐!

 

 



과도한 상상력의 힘으로 지상 세계와 나란히
또 다른 우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천재성을 지닌 사람, 발자크

 


 

불우한 어린 시절은 어쩌면 발자크에게 땔감이었을지 몰랐다. 불우하지 않았다면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돌고돌아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려고 급급했을까? 그는 마치 글을 써야만 겨우 그 가치를 인정받는 노예처럼 종일 글을 써댔다. 글을 쓰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소설의 구상이 펼쳐졌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 아마 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상하고 사고하고 다듬다가 상상하고 환상을 보고 급기야 모든 게 자신의 생각대로 이루어지리라는 착각과 망상에 아주 풍덩 빠져버렸기에 가능했을 테지.

 

 

 




그가 칼로 시작한 일을 나는 펜으로 완성하련다.


극단적인 것을 감행하고 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람에게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경고를 눈앞에 둔 채 비로소 진짜 싸움의 시작을 시작한 스물아홉의 발자크. 그는 열아홉 시절의 자신이 몰랐던 것, 즉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았고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도 알았다. 그는 자신의 힘을 알아챘고 동시에 성공을 쟁취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전제조건, 즉 의지력을 단호하게 하나의 목적 단 하나의 방향으로 집중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 이전의 사업들로 깨달은 사업 실패의 오류와 원인을 딛고 정열적이고 힘찬 방식으로 문학을 시도하면 되었다. 이미 사흘이면 잉크 병이 하나씩 비고 펜이 열 개나 닳아 없어지는 노동을 해오지 않았던가! 이 수업은 끝났고 지금은 모든 의지를 다 작품에 쏟아부어 대가가 될 일만 남은 셈이었다. 여태 감추어야 했던 자신의 이름 오노레 발자크를 단 책들이 나올 것이었다. 그는 당시 역사 소설가로 가장 유명한 작가 월터 스콧을 능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싸구려 소설공장에서 벗어나 예술가의 책임감을 가지게 된 사실주의자 발자크. 그의 소설에서 뒷계단 문학의 뻔뻔스러움,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음, 심각한 감상주의는 여전했으나 타락의 한가운데서 어쨌든 새로운 걸음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자기 주변의 모든 힘을 빨아들였다. 나폴레옹이 칼로 시작한 일을 발자크 자신이 펜으로 완성하기란 너무 쉬워 보였다.

 


하지만 인생사 그리 녹록하랴. 건방지지만 천재였기에 이해받을 수 있던 몽상가 발자크는 숱한 노동을 통해 미친 듯한 자기 희생, 광적인 포기,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빚 등을 '얻어냈다!' 이로써 약간의 명성도 얻었겠지만 시기와 역겨움이 뒤따랐다. 그리고 박하기도 하여라,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가장 본질적인 것, 가장 갈망하는 것, 곧 자유와 독립은 주어지지 않았으니... 서른일곱의 나이가 되어서야 발자크는 비로소 여태 자신이 잘못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적게 즐겼고, 자신의 가장 열렬한 소망도 이루지 못하는 일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삶을 배신한 것이었다. 다르게 살자! 그의 내면의 목소리가 경고하고 독촉하였다...만! 그는 정말 달라질까? 아이고... 에로틱한 발자크가 본격적으로 깨어났다!

 

 

 




발자크에게 있어서 바라보는 것은 곧 꿰뚫는 것이며,

배우지 않고도 알고, 마법을 통해 알게 된다는 사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우리가 운명이나 운명의 시련이라고 부르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무서울 정도의 태연함에서 나온 무관심을 보였다. 이런 무신경함이 어쩌면 그가 "인간희극"을 펴내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친 건 아닌가 싶다. "인간 희극"의 귀결을 보자면 마치 BTS의 뮤직비디오들이 모조리 연결되어 있다는 천재적 기획까지 생각이 미친다. 어쨌든 귀도 얇고 고집이 세고 상상력이 과도해 때론 망상이 아닐까 싶을 때까지 치닫는 발자크(아... 나도 그런다만 왜 나는 천재가 아닌가...). 좋게 말하면 몰입이 잘되는 스타일이 혹시 천재적 자질인가!

 


발자크의 소설을 특징짓는 것은 위대한 장면들이 아니라, 인물들이 천천히 변화하는 과정이며, 그들이 환경 및 풍경과 연결되는 과정에 있었다. 그의 모든 일상은 소설로 탄생했으니, 오히려 소설을 쓰기 위해 그리 행보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가져본다^^ 어쨌든 이 불운한 천재는 자르디 건축, 누라의 은광산, 희곡 생산이라는 엄청난 멍청이 짓을 함으로써 세상사에는 순진하기 짝이 없음을 만천하에 알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가 불복했을까? 천만에 말씀 만만의 콩떡. 나 발자크야! 그의 멍청한 짓들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차원이 더 커지고, 더욱 환상적이고, 충동적이고 우스꽝스럽고 악마적이 되었을 뿐이다. 그가 삶을 진행할수록, 생존이 그를 가혹하게 뒤흔들수록 발자크는 점점 사실주의자가 되어가니 하아... 발자크의 대작 "인간희극"의 탄생 과정이 이리 지난했을 줄이야! 그는 한 세계를 만들어냈지만 세상은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자연에서 동물종들이 주변 상황에 맞게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듯이 인간도 사회 안에서 다양하게 발전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해내겠다는 듯 발자크는 3천에서 4천 명의 사람을 동원해 각자의 이야기들과 인물들을 아주 잘 결합시켜서 완전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였으니 바로 "신곡"에 필적할 만한 대작이라고 스스로 일컬은 "인간희극"이다. 구상은 4천 명이었으나 2천 여 명의 이야기에서 그치고 만 "인간희극". 그것을 이룬 각각의 장이 하나의 소설이어야 했고, 각각의 소설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이루도록 만들어야 했으니 예술가의 창의력이 얼마나 요구되었겠는가. 발자크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그의 구상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는 지쳤고 그의 육신은 고장을 일으켰으며 영혼은 내적으로 거의 붕괴되었다.



 

 




뚱뚱하고 못생긴 천재 발자크는 자기 인생의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저질렀고 실패했다. 평전 문학의 대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발자크에게는 무척 불운인 그 실패들 덕분에 우리가 그의 노동으로 탄생시킨 작품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야누스적이게도 행운이라고 말한다. 발자크의 소설 속 인간들은 냉혹하고 천박하고 추악한 욕망으로 똘똘 뭉친 채 '돈'만을 추구하니 이건 그 시대의 자화상이겠다. 이것들을 얼마나 제대로 그려냈으면 그에게 19세기 풍속화가라는 별칭이 붙었을까나. 발자크의 어린 시절부터 최후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멱살을 잡아 흔들어서라도 정신차리라고 소리치고 싶던 순간들. 츠바이크는 내가 이럴 걸 예상했겠지.

 

 

 




그 당시 작가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나폴레옹 숭배자였던, 사실주의의 선구자 오노레 드 발자크.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애정 때문인지 돈 있고 계급 있는 여인들 즉 귀족들에게 끊임없이 구애했던 프랑스의 소설가. "올빼미당원" 이후의 모든 소설에서 이 작품 저 작품마다 인물들을 재등장시켜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처럼 만들어낸 불세출의 천재 작가. 머릿속 사상들을 소설로 고스란히 드러낸 발자크의 일생 이야기. 소설 못지않게 흡입력 있어 쭉쭉 읽어버린 "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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