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세이돈 관련된 사실적 질문과 해석적 질문 사이, 굳이 제목 하나를 내세운다면 그렇다. 결정적인 순간 두 신 사이에는 여신 헤라가 개입하지만, 『일리아스』 경향 각지에서 제우스와 포세이돈, 두 형제는 대립각을 세운다. 당면한 전세에 대한 판단 차이, 정보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 궁극은 권위적인 제우스의 일방적인 주도권 행사에서 태어나는 갈등이다. 그런데, 이들 형제들에게는 해묵은 갈등이 상수로 작용하고 있다. 포세이돈은 늘 한 발 물러서는 쪽이지만, 제우스에 대한 불만은 늘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임시 봉합되고 억눌려질 뿐이다. 힘의 우위에서 자신이 열세이기에 포세이돈 스스로 인정하는, 현실적인 처신도 곳곳에 보인다. 이들이 갈등하는 진짜 원인은 호메로스에만 의존해서는 찾기 힘들 듯하다. 호메로스가 펼쳐놓은 갈등을 푸는 데에 그가 아닌 당대의 다른 시인의, 신화를 다룬 작품을 엿보아야 한다. 호메로스는 작품 밖에서도 생각해볼 여지를 많이 남겼는데, 이 점에서도 위대한 고전의 저자인 셈이다.

 

포세이돈의 분노, 권위적인 제우스의 주도권 행사에서 나와

일명 '티탄신족과의 전쟁'(Titanomachia)은 10년 동안 진행되었다. 제우스를 우두머리로 하는 젊은 신들이 신권을 획득하기까지, 제우스와 포세이돈과 하데스 세 형제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그 결과 셋은 제비를 던져 우주를 삼분(三分)하여, 다스리기로 하였고, 다스리고 있다. 티탄신족을 제압해 타르타로스에 가두고 전쟁을 끝내는데, 무엇보다 제우스의 번개의 힘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못지않게 거친 일을 도맡아했던 포세이돈의 역할도 상당했다. 때문에 포세이돈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삼분(三分)의 일(一)의 분할한 세계에 대한 지휘권에 만족하고 있다. 절차상 분배는 공정했다. 다만,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고 포세이돈은 생각한다. 그가 제우스에게 가진 불만의 핵심이다.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다. 

"레아는 크로노스에 눌려 영광스런 자식들을 낳았으니, /헤스티아, 데메테르, 황금 샌들의 헤라, /지하 집에서 사는 무자비한 마음의 /강력한 하데스, 굉음을 울리며 대지를 흔드는 이, /그분의 천둥 아래 넓은 대기가 떠는 인간들과 신들의 아버지 /지략이 뛰어나신 제우스가 그들이다." _<신들의 계보> 453~458행, 66면

 

우주를 삼분(三分)하여, 다스리기로 하였고, 다스리고 있다.
'계보'는 우리에게 익숙한 족보와 같아, 태어난 순서대로 나열된다. 이에 따르면 세 아들은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 순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이런 헤시오도스와 달리 호메로스(일리아스)에서는 제우스가 이들 형제 중 맏아들이다. 그렇게 되어 있다. 왜 그런가, 왜 그래야 하는가? 이야기의 곁가지를 치자면 끝이 없지만,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포세이돈의 궁극적인 불만이 무엇인지 살피는데, 『일리아스』는 시원한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그 단초랄까? 두 형제 중 누가 형이냐, 하는 문제가 제우스에 의해 거론된다. 헤라는 제우스와 동침하여 속이고(14권), 그가 잠든 사이 포세이돈이 그리스연합군을 도와 전세가 역전된다. 15권 초입, 문득 잠에서 깬 제우스는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고, 전투현장에서 트로이아군을 몰아붙이는 포세이돈을 보고 대로하여 그가 철수하게 만든다. 전령 이리스를 보내 으름장을 놓는데,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다.

 

"(제우스:) 나는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나이도 위라고
자부하는 바니까. 그런데도 그는 겁도 없이 다른 신들도
두려워하는 나와 스스로 동등하다고 생각하는구나.” (165~167)

제우스가 포세이돈에게 전하라는 말이다. '나이도 위라고 자부'한다? 사실이 그렇다면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막말로 “나이도 어린 것이…” 하면 될 것을, 결이 좀 다르다. 실제로는 제우스의 나이가 더 어리다(독자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고 봐야 자연스럽다. 호메로스는 신들의 아버지(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제우스에게 부여하느라 맏아들로 설정했을 뿐, 신화에서는 포세이돈이 더 연장자로 알려져 있었다. 이들이 신권을 획득하는 과정, 곧 신화에 결정적인 근거가 있다.

 

'나이도 위라고 자부'? '나이도 어린 것이.'하면 될 것을…
(그리스 신화에서) 우라노스(Ouranos 하늘)와 가이아(Gaia 대지) 사이에는 모두 12명의 자녀가 태어난다. 막내(아들)인 크로노스가 어머니 가이아의 권고에 따라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한 다음 우주의 지배자가 된다. 크로노스는 (자신 또한) 자식들 중 한 명에 의해 축출될 운명임을 알고 자식이 태어나는 족족 삼켜버린다. 그러나 레아는 지혜를 발휘하여 갓 태어난 제우스만은 빼돌려 크레테 섬 동굴에 감추고, 대신 강보에 싼 돌을 크로노스에게 먹인다. 장성한 제우스는 (첫째 아내가 된) 메티스(Metis)를 설득하여, 크로노스에게 구토제를 먹이고 그가 삼킨 자식들을 토하게 한다. 제우스는 이들과 합세해 '티탄신족과의 전쟁'을 일으킨다. 만약 제우스가 세 아들 중 장남이라면, 크로노스는 (호메로스에 따르면) 돌덩이를 삼킨 후에도 새로 태어난 아들들(포세이돈과 하데스)을 집어삼켰다는 얘기다. 그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호메로스는 신화의 이 대목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냥 제우스가 장남일 뿐이다. 그러나 이미 한 아들을 구했으면서, 이어 태어난 하데스와 포세이돈이 ‘변고를 당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을까?

 

한 아들을 구한 레아, 하데스와 포세이돈의 변고를 지켜만 봤을까?
또한 막내아들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에게 한 것처럼 자신이 당할 것 같아, 자식들이 태어나는 족족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면, '신들의 대권 삼세'인 제우스 또한 막내라야 자연스럽고, 막내 아들이라야 한다. 또 하나 제우스도 자신의 자리를 넘보는 누군가(또 하나의 아들)를 극도로 경계한다. 신들의 왕으로서 확고한 자리를 구축한 제우스는 테티스를 사랑한다. 하지만 둘 사이에 낳은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하리라(자리를 빼앗으리라는)는 비밀(프로메테우스가 알려준)에 시달린다. 때문에 여신을 별로 대단치 않은 인간 남자(펠레우스)와 결혼시키는데, 그들 사이에서 난 아이가 아킬레우스다. 이런 선택 덕분에 제우스는 영원한 신들의 왕으로서 자리를 보전한다. 같은 맥락이고 신화는 공식처럼 반복된다. 트로이아, 인간들의 10년 전쟁에도 제우스의 선택은 개입되어 있다. 인간남자 펠레우스와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이 초대를 받지 못하고,‘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고 새겨진 사과를 연회장을 흘려보내는 것이니까(파리스의 선택).

 

크로노스처럼, 태어날 자신의 아들을 경계하는 '막내아들' 제우스
15권. 앞서 인용에 이어, 여신 이리스는 포세이돈을 설득하면서 "그대도 아시다시피 복수의 여신들은 항상 연장자를 돕지요.”(15:204행)라고 한다. (필자가 너무 예민한지는 모르겠으나) 나이를 내세워 이리스가 슬쩍 거드는 모양새다. 제우스가 더 연장자임을 거론하면서 압박하는 것. 이에 포세이돈은 자신이 양보하겠다고 하지만, 그 대답에 제우스에 대한 진짜 서운함이 무엇인지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와 동등한 몫을 운명으로부터 나누어 받은 나를 
그가 노기를 띠고 꾸짖으려 할 때마다
나는 마음에 심한 모욕감을 느낀다오." (15:218~210)

모욕감이다. 우주를 삼분(三分)하여 다스리기로 했다. 그런데 자신을 주식 1/3을 가진 주주로 대등하게 대우하지 않고, 화를 내어 꾸짖고, 무엇보다 ‘가르치려’한다. 포세이돈은 늘 '심한 모욕감'에 시달린다. 아마도 제우스는 그러면서도 그런 줄을 모르고, 해서 포세이돈을 더 화나게 할 것이다. 정리해보면 포세이돈은 제우스 때문에 '명예'가 손상되었고, 손상되곤 하며, 손상될 예정이다.

 

제 인간들을 보자.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게 분노하는 것은  눈앞의 전리품(브리세이스)을 빼앗긴 때문만은 아니다. 전쟁 기간 내내, 아가멤논의 역할과 처사에 그의 불만은 쌓였고 마침 그때(1권) 폭발한 것일 뿐. 제우스가 형이라고 하자. 그런데 포세이돈은 사실은 내가 제우스의 형이라는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서열 때문에 분노하는 것은 아니다. '제우스=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라야 한다. 제우스에게 필요한 이미지들 때문에, 포세이돈은 위화감(소외)을 느끼는 것. 호메로스의 뜻이다. 『일리아스』 부록, 주요신명 '제우스'에서 옮긴이(천병희)는 ‘아버지 제우스’를 정리한다.

“실제 그렇지 않음에도 사실 제우스는 "모든 신들의 아버지는 아니며, 인간을 만든 것도 그가 아니라 데우칼리온 또는 프로메테우스라고 한다. 이 별명은 그가 통치자 및 보호자란 의미에서 아버지(Pater)이며, 그런 의미에서 또 가정의 보호자(Herkeios)이자 재산의 보호자(Ktesios)이기도 하다."
결국 제우스의 (본래) 계획(트로이아가 그리스군에 멸망하는)과 포세이돈은 바람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갑자기 테티스가 '국민청원'을 하는 바람에 일이 틀어졌다. 1)그리스군은 트로이아군에 밀려 멸망 직전에까지 이르고, 2)아가멤논은 전투파업 중인 아킬레우스에게 구원을 손길을 내밀 수밖에 없다. 3)트로이아의 멸망은 그때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다만, 제우스는 변경된 계획도 다른 신들과 공유하지 않고, 헤라나 포세이돈과의 불필요한 대결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애를 태운다.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는 곧 아킬레우스의 승리’라는 상식만으로 신들은 제우스의 의중을 이해할 수 없다. 아킬레우스는 '명예회복'이라는 자신만의 또 하나의 전쟁을 펼치고 있다. 이를 아는 사람은 제우스와 테티스와 아킬레우스 자신과 독자 여러분들뿐이다. 이런 정보의 불균형 때문에 포세이돈은 을(乙)의 입장에서, 갑(甲)인 제우스에게 그때마다 '속내'를 드러내고야 만다. 아킬레우스(가 속한 그리스 군이)가 승리하기를 바라는 것은 의리파 포세이돈, '좌고우면하지 않는' 그의 마음은 늘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정보 불균형, 을(乙) 포세이돈 갑(甲) 제우스에게 '속내' 털려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이 권위 때문에 자기 잘못을 시원스럽게 인정하지 않고, 교만한 행동을 이어간다. 때문에 그리스군의 희생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제우스가 포세이돈을 대우하는 방식도 닮아 있다. 곧 '아가멤논 : 아킬레우스 = 제우스 : 포세이돈'이라는 방정식이 어떤 면에서는 유효한 셈이다. 호메로스의 뜻이다. 이제 호메로스의 창의력은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아킬레우스는 어머니와 상담하고, 제우스에게 청원이 접수된 후, 결정적인 순간이 오기만을 먼발치에서 관망한다. 이런 아킬레우스에게 포세이돈은 어떻게 보였을까? 사사건건 상황 상황마다 자신과 뜻을 함께 하는 신들(특히, 헤라와 아테네)의 뜻대로 그리스군의 승리를 위해, 불철주야 활동하는 포세이돈을……. 사사건건 제우스에게 대항하는 포세이돈의 행동과 격정에서 '아킬레우스'는 대리만족을 하였을까? 호메로스는 1권에서 여신 테티스가 제우스에게 베푼 호의가 있다고 하고, 아킬레우스도 알고 있다. 헤라, 포세이돈, 아테네가 제우스를 포박하려 했는데, 테티스가 구해줬다는 것(『일리아스』에만 나오는 전승이다)도, 포세이돈과 제우스 사이의 갈등 원인(개연성을 높이는 역할)이 되고 있다.

 

'아가멤논:아킬레우스=제우스:포세이돈' 가능한 방정식
제우스를 우두머리로 하는 젊은 신들이 티탄신족들과 10년 전쟁을 할 때, 그들을 돕는 퀴클롭스들(호메로스에서는 외눈박이 거한들일 뿐이지만)이 세 형제에게 하나씩 특별한 무기를 만들어준다. 제우스에게는 번개, 포세이돈에게는 삼지창, 하데스에게는 '쓰면 남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해주는 모자'다. 이들은 자신의 무기에 맞는 역할로 전쟁에서 승리하고, 셋은 제비를 던져 우주를 삼분(三分)한다. 제우스는 하늘을, 포세이돈은 바다를, 하데스는 저승을 다스린다. 그리고 그들 세력권의 사이에 있는 '대지는 공유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올륌포스 신족의 시대가 시작된다.
*제우스는 천둥, 번개, 바람, 구름 같은 모든 기상 현상을 주관하는 하늘의 신으로서, 구름이 모여드는 높은 산들에 머문다.  *포세이돈의 거처는 아이가이(Aigai) 근처의 바다 속에 있으나 신들의 회의가 있을 때는 올륌포스에도 올라간다. 그는 바다의 지배자로서 폭풍이나 순풍을 보내주며, 지진의 신으로서 '대지를 흔드는 이'라고 불리는가 하면 대지를 떠받치는 이'라고도 불린다.  *하데스는 그야말로 은둔의 신으로, 아내 페르세포네와 함께 저승의 사자(死者)들을 지배한다. 하데스는 가혹하고 무서운 신이나 인간들과 다른 신들에게 적대감을 품지는 않는다. 하데스(Haides)는 '보이지 않는 자'란 뜻이지만, 『일리아스』 23권 244행(내가 하데스로 내려갈 때까지 말이오._아킬레우스의 말)에서는 유일하게 그가 다스리는 영역 즉 '저승'(자체)을 가리킨다. 그러나 20권. 

 

"이렇게 축복 받은 신들은 서로 싸우도록 양군을 격려했고,
그러다가 마침내 자기들끼리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20: 54~55)

‘케세라 세라(무엇이 되어야 할 것은 결국 그렇게 되게 마련이다)’ 상황이다. 제우스의 뜻대로, 모든 신들이 출동하여 신들끼리 전투할 때에는 하계의 왕 하데스까지 ‘깨워’ 거론한다. "인간들과 신들의 아버지는 위에서 무섭게 천둥을 쳤고", "밑에서는 포세이돈이 끝없이 넓은 대지와/ 가파른 산꼭대기를 뒤흔들"고 있다. 그리하여 이데 산의 기슭들과 등성이들이 모두 흔들렸고, 트로이아인들의 도시와 아카이오이족의 함선들도 흔들렸다. 그러자,

 

"하계(下界)의 왕 하데스가 밑에서
겁에 질려 고함을 지르며 옥좌에서 뛰어올랐으니,
대지를 흔드는 포세이돈이 그의 위에서 땅을 찢어
신들조차 싫어하는 무시무시하고 곰팡내 나는 그의 거처가
인간들과 불사신들 앞에 드러나지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20:61~65)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은 결국 그렇게 되’기 마련이지만
죽음이 난무하는 전장(戰場). 때문에 죽은 그들이 가는 곳과 관련하여 '하데스'는 숱하게 언급되나 하데스의 등장이 직접 예고되는 경우는 여태 없었다. 이 순간에도 하데스는 자기 영역을 고수한다. 하계(下界)가 파손되어 드러나는 것을 염려할 뿐. 그런데, 제우스의 계획 때문에 '은둔의 신' 하데스마저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그는 자기 영역이 침범되거나 훼손되는 것은 결코 방치하지 않을뿐더러 방어에 나선다. 앞서 삼형제가 우주를 삼분하여 제 영역을 설정하고는 '대지는 공유하게 함으로써'라는 대목을 떠올린다. 대지는 그 특성상 '공유하는' 것으로 할 수밖에 없고, 세 형제들 관할권의 경계가 된다. 하계(下界)가 곧 대지 아래라고 할 수만은 없지만, 물리적으로 그 아래인 것은 맞다. 그런데, 포세이돈 이름 앞에 붙는 공식구(정형구)는 '대지를 떠받치는 이' 혹은 ‘대지를 흔드는 이'다. 고유 영역인 바닷물이 '대지를 감싸고 있'어 붙은 이름이지만, 해일이 대지를 침범하게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 상황까지도 그가 제어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특성상 '공유'하는 대지, 삼형제 신들 관할권의 경계
이처럼, 이들 삼형제 신이 공정하게 관할권을 나누었지만, '대지'와 같은 경계에서는 다툼의 소지가 있다. 하데스도 포세이돈처럼 일희일비하지 않았을 뿐(때론 포세이돈에게도, 그래야 하는 것이 그의 정체성이기도 하니까), 관할권과 그 경계와 관련된 해묵은 민원은 가지고 있다. 더구나 포세이돈은 영역 다툼에 특히 예민한 신이다. 제우스의 딸인 아테네와 앗티케 지방에 대한 영유권을 놓고 다투지만 승리하지 못한다. 헤라와의 아르고스 영유권 다툼에서도 패배. (아르고스의) 강물을 모두 말리고 해일이 일어나게 하여 복수한다. 이런 포세이돈이기에 제우스의 권위와 계획(방침)과 늘 맞설 수밖에 없고, 거기에서 모욕감을 느끼는 것인데, 이게 거의 습관이 되었다고 할까, 반복되는 '트라우마'다.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 무렵 활동한 시인으로 추정한다. 헤시오도스(Hesiodos: 기원전 740년경~670년경)는, 기원전 720년경에 활동한 음유시인으로, '당시 개최된 시인경연대회에서 호메로스를 이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프로필).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그리스인에게 신을 만들어준 것이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라고 했다. 이처럼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면서 서양문화의 위대한 창시자가 되었다. 이쯤에서 확인할 것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신화 이야기는 한참 후에야 집대성된 책일 뿐이다. 이들 시인들이 다룬 작품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야기가 훗날의 신화집에 수집되었을 뿐이다. 때문에 포세이돈이 형이냐, 제우스가 장남이냐, 하데스가 장남이냐의 문제는, 작품의 시인이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에 따라 다른 것으로 달라질 뿐이다.

호메로스는 하데스나 포세이돈이 제우스보다 형이라는, 이런 위계의 흐트러뜨림으로 갈등을 유발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이들 삼형제의 ‘우주(宇宙) 삼분지계(三分之計)'는 『일리아스』에서는 제우스 중심으로 흘러가, 공정성 문제는 야기했다. 그 약속을 믿고 그때그때 반응하는 포세이돈, 그러나 그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영역만은 침범하지 말 것을 주장하고, 하데스의 뜻도 그렇다. 호메로스도 삼형제가 한 약속을, 그리고 공유 공간에 대한 제우스의 지배권 남용을 경계하는 포세이돈의 이의제기를 인정하고 있다.

 

"(포세이돈: )그러나 대지와 높은 올륌포스는 여전히 우리 모두의 공유물이오.
따라서 나는 결코 제우스의 뜻에 따라 살아가지 않을 것이니,
그는 비록 강력하지만 몫으로 주어진 삼분의 일에 조용히 머물러야
할 것이오.나를 겁쟁이처럼 완력으로 겁주려는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아야 할 것이오."  (13:188~193) 193

 

'삼지창'은 삼권분립을 주장하는 포세이돈의 시위용품?
[맺으며] '삼지창'은 포세이돈을 상징하는 최고의 무기이다. 이는 또한 그의 소박하고 일관된 주장을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필자는 사실 이런 해석적 질문을 던지고, 자문자답으로 이 글을 시작했고, 마무리한다. 「정치·경제」라는 교과서에서 배웠던 삼권 분립을 생각한다. 국정농단, 대통령 탄핵과 투옥, 최근의 사법농단까지, 입법기관인 국회는 국민의 마음이 오래 전에 떠났음을 아직 모르는 눈치다. 강적들이다. 검찰과 경찰의 역할을 잘 분리·조정하고, ‘기소권 있는' 공수처(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설립하라는 국민여론이 2/3가 넘는데, 이를 가로막는 이들은 누구인지? 검찰과 경찰과 공수처가 '삼지창'의 세 날 역할을 하여야만 하는 때가 온 모양이다. 이렇게라도 더 이상의 적폐 생산을 누그러뜨릴 수 있기를. 삼권분립을 제대로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공수처 설치는 선행되어야 할 문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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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으면 늘 이 노래만 부르는 군대의 선임이 있었다. 그가 이 노래를 썩 잘 부른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지간해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그의 상태를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랄까. 아직 굳은 표정으로 노래하는 모습이 이 노래의 내용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해서 그렇고 그런 시간이면 선임은 부대원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아야 했다.
똑똑똑. 적어도 이 오래된 가요에서 이 세 음절은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다. 또옥~ 똑 똑,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세 걸음, 하이힐을 신은 여인이 내딛는 발걸음 소리다. 그런데 그 구두가 빨간 색이란다. 이제 소리만 듣고도 그 색깔을 안다. 이처럼 삼박자(단장격 3절운율)가 절묘하게 마음을 두드리는 공식 같은 노래가 세상에 또 있을까? 남일해가 부른 <빨간 구두 아가씨>(1964년)의 가사는 이렇다. 재즈가수 말로(Malo)의 <빨간 구두 아가씨>도 들을 만하다. 

 

솔솔솔 오솔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
똑똑똑 구두소리 어딜 가시나
한 번쯤 뒤돌아 볼만도 한데
발걸음만 하나둘 세며 가는지
빨간 구두 아가씨 혼자서 가네~

 

 

밤밤밤 밤길에 빨간 구두 아가씨
똑똑똑 구두소리 어딜 가시나
지금쯤 사랑을 알만도 한데
종소리만 하나둘 세며 가는지
빨간 구두 아가씨 모른 척 가네.

 

 

=남일해 앨범, <오아시스 패라다이스 제1집>(1966.01.01)
 

<A Red Shoes Miss> 5행씩으로 구성된 가사의 행마다 가락은 삼분되어 노래된다. (한 번쯤/ 뒤돌아/ 볼만도 한데//발걸음만/ 하나둘/ 세며 가는지) '똑똑똑'이나 '솔솔솔' 그리고 '밤밤밤'은 그런 삼박자의 묘한 힘을 활성화하는 주문에 가깝다. 내용상 빨간 구두 아가씨와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심리적인) 설정에서 통통 튀는 맛이 있다.

1절에서 나는 앞서 걸어가는 아가씨를 바라보고 있다. 해서 빨간 구두인 것은 알지만 이름도 성도 모르는 아가씨다. 그러나 마음을 빼앗긴 상태다. 해서 한번쯤 뒤돌아보지 않고 가는 그녀가 야속하다. 구두소리는 내 마음을 ‘즈려밟고’  가는 듯하다. 아직은 그렇게 느낀다,
2절에서는 밤, 골목길을 지나는 구두소리의 그녀를 만난다. 골목길로는 창이 하나쯤 있는 나 있는 그런 방에 나는 살고 있을까? 이젠 구두 발 소리만 들어도 그 아가씨인 줄 알고, 그것이 빨간 구두인 것도 안다.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칫 선을 넘으면 스토킹이 될 만한……. '지금쯤 사랑을 알만도 한데' 답답하다. 울리는 종소리도 성가시다. 내 마음 알면서도 모른 체 하고 간다는 것. 그것은 바람인가? 

어쨌든 이 노래는 내 마음을 사로잡은 한 여인을 향한 마음, 그 마음의 문을 여는 두드림 '똑똑똑'이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10월, 한 방송(KBS '여유만만')에서 남일해는 "당시에 빨간 구두 아가씨로 히트로 온 동네 여성들이 빨간 구두를 신고 다녔다"며 "그 당시는 검은 구두 아니면 백구두인데"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빨간 구두 아가씨'는 「첫사랑 마도로스」라는 그의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곡으로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앨범을 사랑한 팬들이 많았다. 필자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똑똑똑, 구두 발자국 소리는 사라지지만 흔적을 남긴다. 똑똑똑. 뭔가 말하기 위해 문(門)을 두드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책과 책들 사이에서 발견한 세 가지 소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면서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유사한 구성(내용)의 아티클들을 모은다면, 잠정적으로 <똑 똑똑 구두소리>라고 이름을 붙이며, 썼다.

 

*대화의 독립 그리고 단장격3절운율의 탄생

『시학』에서는 비극의 대화에 사용되는 3절 운율(trimetrom)을 이야기하는데 단장격 3절운율(영/iambic trimeter)이다. 중복된 단장격 운각(?─)을 다시 세 번 반복하는 운율이다(?─?─??─?─??─?─). 처음 비극에서는 단장격 4절 운율이 사용되었다.  ─?─?? ─?─?? ─?─?? ─?─?(이 도식에서 볼 수 있듯이 중복된 장단격 운각(─?)이 네 번 반복된 운율), 이 운율은 격렬한 흥분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운율이다.(4장 주39)" 초기의 비극에는 사튀로스 극의 요소와 무용적 요소다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가 도입되자 자연히 적합한 운율을 찾게 되었다. 대화에는 단장격 운율이 가장 적합한 운율이니 말이다. "단장격운율(=단장격3절운율)은 그리스비극의 대사에 사용되던 운율이다. 대화의 탄생에 따른 변화의 시작이다. (4장 주39) /깨지네요, 운율표기는 나중에 보완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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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와 소크라테스의 사과, 스피노자(?)의 사과나무, 세 모습의 사과' 이야기다. 커플사과, 합격사과, <실낙원>의 사과, 애플사의 로고까지, 『이야기의 힘』 후반부에는 성공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네 개의 사과에 얽힌 스토리텔링"이 예시된다. 서양 고전의 ‘파리스의 사과’,  플라톤 대화편 한 권을 압축한 듯한  ‘소크라테스의 사과’, 마틴 루터(스피노자?)의 사과나무까지 애플이야기 3종모음이다. 장관 청문회장에서 흘러나온 '(나는 (그해 봄에) 당신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오한 한마디가 화제다. 이 한 문장도 다루게 될 것이다.

 

먼저 『이야기의 힘-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조건』(이창용 외, 황금물고기)에 실린 '사과에 얽힌 스토리텔링 네 가지'다. 첫 번째가 커플사과(사랑이 이루어지는 커플사과가 있습니다~)다. 발렌타인 데이에 이러한 사과판매가 대박이 난다. 설정이다. 두 번째가 유명한 일본 아오모리 현의 합격사과 이야기, 실화다. 거센 태풍에도 견딘 소수의 사과를, 떨어지지 않는 합격사과라고 수험생 지인들에게 비싼 값에 팔았단다. 세 번째가 '게빈 터크'의 <실낙원>(2006)의 사과다. 작품이다. 먹고 꼭지와 속 줄기만 남은, 말라비틀어진 사과 사진을 영국의 팝 아티스트는 500만 원에 판매한다. 네 번째가 애플사의 사과(로고)다. 컴퓨터의 원형을 개발한 천재 수학자 '엘런 튜링'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여성 호르몬을 투입하는 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치사량의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베어 물고 자살하고 만다. 이에 애플은 '튜링'의 사과를 연상시키는 로고를 만들었다는 것. 상품이다.  

 

"네 개의 사과에 얽힌 스토리텔링", 애플사 로고와 관련해선 의견 분분

그런데, 네 번째 사과와 관련해서는, 애플을 '세팅한' 스티브 잡스(1955~2011)의 고향에 과수원이 있기 때문이라거나,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에게서 영감을 얻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기왕에 스티브 잡스의 전기에서 근거를 찾으려면, 한 발 더 들어갈 필요가 있다. 한때 스티브 잡스가 수학했다는 미국의 사립대학, 리드칼리지 대학 얘기다. 이 대학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균형을 중시하며 신입생들은 무조건 그리스 로마의 고전들과 순수 인문학을 필수과목으로 이수해야” 한다. 그럴듯하게 내세우는 교육 방침이 아니다. 실제로 그러한다. 미국의 교양교육, 위대한 고전 읽기 프로그램의 전통은 시카고대학으로 거슬러 올라야 한다(허친스의 시카고플랜Chicago Plan에서 시작되는), 그런데 리드칼리지의 교양교육 또한 특화되어 있는 모양이다. 이 대학에서는 해마다 신입생들에게 입학허가서 우송시 책 두 권을 선물하는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세트란다. 스티브 잡스는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6개월 만에 중퇴하고, 이후 18개월을 학적 없이 이 대학에 머물며 듣고 싶은 강의를 청강한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스티브 잡스의 리드칼리지의 입학선물은 『일리아스』_오뒷세이아』 세트

스티브 잡스가 애플사의 로고를 확정하는 데에는, 서양 정신의 시원인 고대 그리스의 신화, 곧 '파리스의 사과' 얘기가 그 배경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밑그림 중 밑그림은 이 사과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파리스(알렉산드로스)는 사과 '덕분에'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트로이아로 데려가지만 ‘때문에’ 조국을 전쟁과 파멸 속으로 끌어들인다. 또한 헤라와 아테네는 (『일리아스』가 끝나는 순간까지) 파리스의 트로이아를 미워한다. 그러나 호메로스는 24권 초반까지 이 신화에 대해 일언반구를 하지 않는다. 헥토르를 죽여 절친(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한 것까지는 신들도 허용한다. 그러나 장례식과 추모 장례경기까지 주관한 아킬레우스가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해, 헥토르의 시신을 훼손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무려 아흐레 동안이나 신들은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아르고스를 보내 시신을 빼내오자! 다른 신들이 모두 찬성하지만 세 신들은 이를 완강히 거부한다. '헤라'와 '포세이돈'과 '빛나는 눈의 처녀‘(아테나 여신)이다. 셋은 전쟁 중에 일관되게 그리스연합군을 지원한다. 그런데, 서사시가 마무리되는 시점까지도, 두 여신의 노여움은 서슬퍼런데, 왜 그러한지 이때에 이르러서야 두 여신이 파리스에게 가진 해묵은 원한을 언급한다.

 

"그들에게는 신성한 일리오스와 프리아모스와 그의 백성들이
알렉산드로스의 죄 때문에 여전히 처음처럼 미웠으니,
그는 이들 여신들이 그의 농장을 찾아갔을 때 이들을 모욕하고
파멸을 초래할 색욕(色慾)을 그에게 준 여신을 찬양했던 것이다." 『일리아스』 24권, 27~30행

 

애플사의 로고 확정의 밑그림 중 밑그림은 파리스의 사과가..

파리스(알렉산드로스)의 선택,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고 적힌 그 유명한 사과 이야기다(자세한 소개는 생략). 어쨌든 이 신화(배경)을 전혀 알지 못한 독자들이 있다고 하면, 그는 『일리아스』를 읽는 동안, 신들이 왜 저토록 두 편으로 나뉘어 ‘사생결단’ 인간들의 전쟁에 개입하는지, 무척 궁금할 것이다. 이는 단적인 예일 뿐이고, 최초의 서양문학 작품들은 배경(신화 등) 지식을 알면 알수록 보이는 것이 많고,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더 큰 고민은 1/n인  일반 독자보다는 그들과 함께 독서토론을 진행하는 이들에게 있다. 대체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그리스 고전(?)에서 두 번째의 사과를 만나보자.  ‘소크라테스의 사과’다. 소크라테스 관련 실제 일화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출처는 『하버드대 박사가 들려주는 위즈덤 스토리북』(인생을 바꾼 지혜의 터닝포인트, 윌리엄 베너드, 유소영 옮김, 일빛 2008)이다. 하버드대학 교육학 박사인 저자는 라이트 형제, 데일 카네기, 에이브러햄 링컨, 월트 디즈니, 마이클 델 등의 성공실화를 엄선하여 '목표-자신감-성공-사색-발상-용기-감동-성찰-노력-기회'라는 10개의 지혜 도구들로 정리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사과’는 4장. <사색>편에 등장한다. 일종의 스토리텔링이다.

 

* 생이란 무엇입니까?, 어느 날 몇몇 제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물었다. 소크라테스는 그들을 사과나무 숲으로 데리고 갔다. 때마침 사과가 무르익는 계절이라, 달콤한 과육 향기가 코를 찔렀다. 소크라테스는 그들에게 숲 이편에서 저편 끝까지 걸어가며, 저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사과를 하나씩 따오게 했다. 다만, '다시 되돌아갈 수 없으며, 선택은 한 번뿐'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그들은 사과나무 숲을 걸어가면서 유심히 관찰한 끝에 가장 크고 좋다고 생각되는 열매를 하나씩 골랐다. 제자들이 모두 사과나무 숲의 끝에 도착했다.  *미리와서 그들을 기다리던 소크라테스가 웃으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모두 제일 좋은 열매를 골랐겠지?" 그러나 제자들은 서로의 것을 비교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가 다시 물었다. "왜? 자기가 고른 사과가 만족스럽지 못한가?"  *"선생님, 다시 한 번만 고르게 해주세요." 제자 하나가 이렇게 부탁했다. "숲에 막 들어섰을 때 정말 크고 좋은 걸 봤거든요. 그런데 더 크고 좋은 걸 찾으려고 따지 않았어요. 사과나무 숲 끝까지 왔을 때야 제가 처음 본 사과가 가장 크고 좋다는 것을 알았어요.” 다른 제자가 급히 말을 이었다. "전 그와 반대예요. 숲에 들어가 조금 걷다가, 제일 크고 좋다고 생각되는 사과를 골랐는데요. 나중에 보니까 더 좋은 게 있었어요. 저도 후회스러워요." "선생님,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세요." 이구동성, 다른 제자들도 약속이나 한 듯 이렇게 말했다. * 껄껄 웃던 소크라테스,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바로 인생이다. 인생은 언제나 단 한 번의 선택을 해야 하거든.”

 

“인생은 언제나 단 한 번의 선택을 해야”, 소크라테스의 사과.

꾸준히 메일링서비스를 하는 분의 메일에서 문득 보았던 듯한데(견디고 있다), 본래 텍스트가 손을 탄 것 같다, 필자가 좀 다듬었다(머잖아, 원본과 대조하여 수정해놓을 예정). 짧은 이야기에는 심오한 세계가 깃들어 있다. 겉으로는 인생에서의 ‘선택’ 문제인 듯하지만. 앎의 문제를 제기한다. 곧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인가? 제대로 아는 것인가? 이 주제와 관련된 플라톤의 대화편이 『테아이테토스』이다. 이 대화편은 끝 무렵에 "나는 지금 멜레토스가 제출한 고발장에 답변하기 위해 왕의 주랑으로 가야 하네."(210d)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에 관한' 이 대화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재판정(아테나이의 아고라에 있던 주랑)으로 가고 있다(재판 당일은 아니다). 그런데, 곧이어 소크라테스는 다음 날 이 대화편의 대담자 중 한 사람 테오도로스와 만나자고 약속하는데, 또 다른 대화편 『소피스트』의 대화가 예약된다. 그리고 그 다음다음날 이어지는 대화편이 『정치가』다. 최소한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변론하러 재판정에 서는 날에 임박하여, (부랴부랴) 세 편의 대화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이 해당 대화편을 언제 썼느냐와 상관없이 '변론'을 전후의 주요 대화편들의 순서(대화 順)를 정하면 다음과 같다.

 

'『테아이테토스』'―『소피스트』―『정치가』―[『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

 

특히, 재판이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세 편의 대화편(대화)을 진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플라톤의 치밀한 구성이고 스승 사후의 기획이다. 이 충실한 제자의 아테나이 법정에 대한 원한이 깊다. 헤라와 아테네, 두 여신 못지않다. 이처럼 그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대화편들로 보완하는데, 거의 확인사살이다. 소크라테스의 혐의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1)', '나라의 신들을 믿지 않았다(2)는 것'. 소피스트 혐의(1)를 반박하는 주 대화편은 『소피스트』(비판)이며, 『정치가』는 ‘소피스트’들과 결이 다른 다른 부류를 정의하는 ‘대안’이다. 크게 같은 맥락이다. ‘변론’ 이후의 대화편들도 그 중심에 ‘변론’이 있다. 또한 『테아이테토스』는 ‘나라의 신들을 믿지 않았다(2)’는 혐의의 반박과 연결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알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겨우 아는' 사람일 뿐이라며 '무지(無知)의 지(知)'를 주장하는데, 이 주장을 하는 동안 신탁이 언급되며 그것이 도리어 불리한 변론으로 연결된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한다는 그 사실이다. 이들 대화편이야말로,  ‘변론’의 변론인 것이다.

 

'무지의 지'와 『테아이테토스』, 소피스트 혐의를 반박하는 『소피스트』

물론 앞서 소개한 일화를 액면 그대로 인생에서의 선택 문제로 볼 수 있다. 여러 제자들의 그것은 파리스의 선택과 다르지 않다. 여신들은 파리스를 매수하기 위해 선물을 약속한다. 헤라는 강력한 권력을, 아테네는 전쟁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제시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넘겨준다. 덕분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얻는데, 헬레네는 이미 스파르테의 왕비였고, 그녀를 데려오는 바람에 전쟁하게 된 것이다. 강대진은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 그린비, 2010년)에서, 파리스의 판정의 의미는 알레고리적인 해석이 우세하다며 언급한다.

"세 여신의 선물은, 인생의 목표가 될 만한 세 가지를 상징한다는 것" "나른한 건달이 벌거벗은 여자 셋을 놓고 누가 가장 예쁜지 판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위기에 세 가지 여성적인 원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된다."(562면)라고. 선택은 늘 '일회적'이고 '결정적'이며, 따라서 '두려운'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사과”는 이처럼 중의적이며, 파리스의 사과와 연결된다.

 

‘일회적' '결정적' '두려운' 선택, '소크라테스의 사과'는 곧 '파리스의 사과'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 하면 바로 떠오르는 명언이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이런 말을 한 일이 없단다. 몇 년 전 뉴스에도 소개되고 칼럼들에서도 인용하는 이야기다. 문득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기원전 49년 1월,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로마의 카이사르(기원전 100∼44년)가 남겼다는 이 유명한 말, 그러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는 말의 저작권은 그리스 신희극 작가 메난드로스에게 있다. 인터넷의 기록을 살피니(출처 아래), 사과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잘 정리해 놓았다. 1966년 7월, <경향신문> ‘여적’(단평란)에 '최초로' 스피노자의 사과나무 전설이 실렸단다. "모름지기 값싼 상혼(商魂)에만 사는 사람들, “내일 세계가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겠다”고 한 스피노자의 밀을 일생 동안 한번쯤은 되씹어보라." 사과나무만이 아니라 전국의 숲에 나무심기가 절실하던 시절이다. 그리고 5년후인 1971년, <중앙일보> 사설에서 이 문장을 다시 소개함으로써, 오로지 한국인의 기억 속에만 스피노자의 명언으로 자리 잡게 된 것. 그런데, 과연 <경향신문>이 처음일까?  의문이 남는다. 어쨌든 외국에서 이 격언은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남긴 것으로 통한다(구글 검색창에 'martin luther'를 치면 자동검색어로 'apple tree quote'가 따라붙는다. 역으로 구글에서 ‘Spinoza’와 ‘apple’을 입력하고 검색하면 이 문장은 말할 것도 없고, 비슷한 표현도 걸리지 않는다) 『이솝우화』의 「여우와 덜 익은 포도송이」(‘여우와 신 포도’가 아니다. 천병희가 밝힌) 얘기도 그렇고, 연식이 좀 있는 어르신들을 위한 기존 지식을 바로잡을 교과서 한 권쯤 국가 차원에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가짜뉴스도 막지 못하는 지금, 무모한 희망일까?

 

상식의 오류를 바로잡는 어르신들을 위한 교과서 한 권쯤 국가 차원에서..
어쨌든 세 번째의 사과는 좀 싱겁게 되어버렸다. 대신 귀에 어른거리는 오래된 가요 하나가 있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어보자. …우리의 서울. 거리마다 푸른 꿈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서울을 사랑하리라.” 가수 이용의 <서울>이란 곡. 1982년 앨범 『잊혀진 계절』에 수록되었다. 그것이 착오이든 어쨌든 이 노래를 들으면서, 스피노자의 사과를 떠올렸던 기억이 있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5.18광주민중항쟁은 쉬쉬하기 바빴고, 컬러TV가 보급되었으며, 프로야구가 생겼고 <국풍81>인가 난데없는 요란한 축제를 대대적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왜? 그리고 마침내 전남 도청이 제대로 복원된다는 뉴스를 어젯밤에 접했다.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로 와전된 기록이, 신문의 기록으로 1966년, 1971년에 소개되었고, 그것이 이러한 관념으로, 대중가요로 연결도;었다면 좀 놀랍지 않은가? 스피노자의 사과나무와 종로의 사과나무라~ 많은 시민들의 기억에서 스피노자의 사과나무 이야기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위 인터넷의 기록_ "스피노자의 사과나무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 요지"
https://steemit.com/kr/@fielddog/3v6dz#@matildah/re-fielddog-3v6dz-20180217t132539064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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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말은 못해도…….  그것이 무엇일까? 사랑한다는 것은……. <뤼시스>와 <이온>과 <테아이테토스>, 플라톤의 대화편 셋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엮어 보았다. 굳이 핵심어를 하나 제시하라면 '잡은 물고기'다. 이것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 셋이 묶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뤼시스/라케스/카르미데스-초기 대화편들』이다. 셋은 초기·중기·후기로 나뉘는 플라톤 대화편들 중 '초기'에 해당한다. 또한 인간이 갖춰야 할 탁월하고 훌륭한 자질, 곧 미덕(arete)들을 다루는데, 복잡하지 않게 설정한 주제에 집중하고 있다. <뤼시스>는 우정을, <라케스>는 용기를, <카르미데스>는 절제가 무엇인지 탐구한다.

 

'잡은 물고기'란 말이 떠오르면 그 사랑은 끝난 것
"생각보다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들은 어렵지 않다."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중기와 후기의 대화편들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지, 이들 대화편 어느 것도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논지를 파악하기란 녹록치 않다. 그것이 플라톤 대화편들을 읽는 재미이기도 하지만, 하나도 빼놓지 않겠다고 작심하고 읽노라면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회의감에 빠지곤 한다. 주석을 빠짐없이 읽어도(그러면 그럴수록)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남아 있다. 기본적으로 플라톤은 어렵고, 그의 문장은 난해(난삽 難澁)하기에 겪는 문제이다. 그렇게 열심히 '학구열'을 불태운 독서를 했음에도, 다시 집어 들면 처음 접하는 것처럼 텍스트는 늘 낯설게 다가온다. 시 삼백편이 사무사다.
쉽지는 않겠지만, 철학 전공자들의 이해와는 다른 사변적인 얘기를 하려 한다. 세 대화편 중 <뤼시스>에 관해 그것도 '모든'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하려 한다. 거의 대부분의 대화편들이 본 대담을 전후하여 그 대화를 진행하게 된 배경을 제시한다. 일종의 '설정'이다. 이는 토론주제와 연관되어 있으며, 때론 억지스러운 점이 드러나지만 소크라테스라는 인간을 읽을 수 있는 소중한 기록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설정이며 등장인물(대담자들)의 선정에 이르기까지 '구성'을 살피면, 그리스 비극(장르)처럼 하나의 극적인 상황이 부여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화편 자체가 시민 교육을 위한 또 하나의 매체임을 알 수 있다. 너무 어렵지 않게 적절한 주제의 대화편을 고르고, 이를 각색하면 한 편의 훌륭한 연극으로 무대에 올리는 일이 어렵지 않아 보인다.

 

대화편 자체가 시민교육을 위한 또 하나의 매체

특히, <뤼시스>의 주제는 우정(友情: philia 필리아)이지만, 이 단어(개념)는 사람과 사람 사이, 곧 관계에서 대단히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오래 전에 살핀 바 있다). 다만 천병희는 <뤼시스>에서 'philia'(필리아)를 우애(友愛)로, 'philos'(필로스)를 ‘친구로’옮긴다. 그리스어 '필리아'는 '우정(友情)', '우애(友愛), '친애(親愛)’ 나아가 연인 사이의 '사랑'의 의미까지도 모두 가지고 있다. 플라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니코마코스 윤리학)에 'philia'는 전가의 보도라고 할 만큼 저술 전체에서 핵심개념으로 사용된다. 해서, 번역가에 따라 해당 우리말을 선택해야 하지만, 고민이 깊어, 천병희는 '우애'를, 강상진·김재홍·이창우(『니코마코스 윤리학』)는 '친애'를 채택했다.

 

 

정리하면, <뤼시스>는 우정에 대해 토론하고 있지만, 연인 사이의 사랑의 문제도 포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 유명한 대화편 『향연』처럼 사랑 그 자체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는 않지만, 분화되기 이전의 'philia(필리아)'를 다루고 있기에, 여러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확대해석해도 무방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연상의 ‘연인’(사랑하는 사람)이 연하의 ‘연동’(사랑받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 마음을 얻고자 하는 남성들 간의 동성애(오늘날의 개념과는 사뭇 다른_쉽지 않은 언급이다)가 곧 '사랑'으로 등식화되어 있다. 이 점에 대해서 그냥 남녀 사이의 사랑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뤼시스>에서 훌륭한 연애상담자로 '자리매김'한다. 주제가 이러하다보니 소크라테스를 제외한 등장인물들(대담자)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philia(필리아)는 우정이면서 사랑, 분화 이전의 관계 언어
힙포탈레스는 10대 후반의 부잣집 아들이고 크테십포스는 그와 또래인데, 둘은 동성애에 관심이 많다. 이들이 동성애와 관련하여 (좀 이른 나이인 듯하나) '연인'의 입장이라면, '연동' 쯤에 해당하는 두 인물이 더 등장한다. 13세쯤 된 메넥세노스와 또래인 뤼시스다. 힙포탈레스는 뤼시스를 열렬히 사랑하는 연인인데, 뤼시스는 크테십포스의 사촌이기도 하다. 둘이 사촌간이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크테십포스는 그 자신 동성애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뤼시스를 향한 힙포탈레스의 태도에는 비판적이다. 대화편 도입부에서 또래인 두 사람, 힙포탈레스와 크테십포스의 미묘한 '갈등'이 흥미로우며,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상태를 엿볼 수 있어, 새롭다.
소크라테스는 연애상담 전문가답게 힙포탈레스가 "사랑하고 있을뿐더러 사랑에 푹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본다. 하지만 그는 더욱더 얼굴을 붉힐 뿐, 수줍어서 나서지를 못한다. 크테십포스가 이런 친구를 마구 나무라는데, 하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뤼시스를 향한 사랑타령을 하는(힙포탈레스를) 것을 지켜보기 민망할 지경이라면서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이 친구 아직 사랑을 모르는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그가 뤼시스라는 이름을 귀에다 쏟아붓는 바람에 귀머거리가 되다시피 했어요. 그리고 그가 술이라도 마시면 우리는 이튿날 아침에 깨어서도 여전히 뤼시스라는 이름을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니까요."(뤼시스: 204d)

구구절절, 예를 들지 않더라도 사랑에 빠진 이의 상태가 어떠한가, 이처럼 적절한 묘사가 또 있을까? 그 대상에게는 직접 나설 용기가 없고, 그러니, 그 표현할 길 없는 마음을 곁의 친구에게 끊임없이 쏟아내는 것인데…….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알리고 공감을 얻고자 하는 '과시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맞아 맞아'' 그래 그래'라고 '좋아요!' 하나 꾹 눌러주면 될 것을. 여기까지는 '그렇고 그런'이라고 치자. 문제는 다음이다. 대화보다도 더 끔찍한 상황은 따로 있단다.

"(대화는) 그가 시와 산문을 지어 우리에게 쏟아부을 때 비하면 약과예요. 그러나 최악은 그가 괴상한 목소리로 사랑하는 소년을 칭송하고, 우리는 그런 노래를 들어야 할 때지요. 그런 그가 지금 선생님께서 그 이름을 묻자 얼굴을 붉히는데요."(뤼시스: 204d)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덤으로 누구나 시인이 된다. 

구체적으로 누구냐 등등(사랑에 빠진 사람들 주위에서 이런 걸 좀 물어줘야 한다),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받는 힙포탈레스. 다른 것은 다 인정하면서도 "연동에 관해 시를 짓고 산문을 쓴다는 것은 부인"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그 마음을 드러내거나 전하기 위해 글을 쓰는 일. 돌아보면 유치찬란한 것일지 몰라도, 그것이 작가의 글쓰기에 시작이었다는, 유명작가들의 인터뷰나 자전적인 기록에서 가끔 보곤 한다. 크테십포스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고자질을 한다. 힙포탈레스는 "노파들이 읊어대는 이런 이야기와 그 밖에 그와 비슷한 수많은 이야기를 시나 산문으로 지어서는 우리더러 들으라고 강요해요."라고.
이쯤에서 소크라테스는 이것은 연동을 얻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인데, 그러한 연시나 연서가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위한' 곧 "자네의 노래들은 자네를 칭송하는 승리의 송가"가 될 것이라며, 훌륭한 조언을 한다.

"연애 전문가는 연동을 손아귀에 넣기 전에는 연동을 찬양하지 않는다네, 장차 일이 어떻게 될지 염려되니까. 또한 잘생긴 소년들은 누가 칭찬하고 추어주면 자만심에 차서 점점 도도해진다네.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밀당 얘기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사냥꾼이 사냥감을 놀라게 하여 잡기 더 어렵게 한다면  "그는 형편없는 사냥꾼"이란 대답을 받아낸다. <뤼시스>의 다음 이야기는 직접 확인하시라.

 

사냥꾼은 사냥감을 놀라게 하지 않아, 사랑의 기술
이제 플라톤의 대화편 <이온>이다. <이온>은 『이온/크라튈로스』(천병희, 숲, 2014년 10월)에서 처음 (원전)번역이 되었고, 근래에 『고르기아스/메넥세노스/이온』(박종현, 서광사,2018년 12월)이 출간되었다. 가장 짧은 대화편이지만 던지는 메시지는 만만치 않다. 이른바 창작에 관련하여 ‘영감론(靈感論)’이 처음 등장한다. 시인은 신들린 상태에서(영감을 받아) 작시(作詩)하는 만큼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리 한다는 것이다. <이온>에서 소크라테스는 서사시를 음송하는 직업을 가진 이온을 만나, 전달자인 당신만이 아니라 그 훌륭한 서사시를 지은 사람(호메로스)조차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어떤 (신적인) 도움을 받아 굿판의 무당처럼 뭔가에 씐 상태에서 작품을 쓴다는 것이다. 국내 가요사만 봐도, 늘 새롭고 보다 훌륭한 곡을 쓰기 위해 대마초와 마약 등을 창작의 방편으로 복용했다가 고생한 뮤지션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정말 훌륭한 작품은 '영감론'에 의지하지 않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앞서 <뤼시스>에서 살핀 사랑에 빠진 사람이 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그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로) 광적으로 몰두하는 글쓰기의 경지가 있지 않나, 그렇게 <뤼시스>와 <이온>은 연결된다.

 

뭔가에 씐 상태에서 작품을 쓰는 시인, 사랑하는 이도

이제 플라톤의 다른 대화편, 어렵기로 악명 높은 <테아이테토스>로 가자. 『테아이테토스』(정준영, 이제이북스, 2013년 11월)가 첫 원전번역이고, 그 다음이 번역가 천병희가 작업한 '플라톤의 다섯 대화편'에 수록된 <테아이테토스>다. [『플라톤의 다섯 대화편-테아이테토스/필레보스/티마이오스/크리티아스/파르메니데스』(천병희, 숲, 2016년 5월)] 그리고 천병희는 『테아이테토스』(숲, 2017년 6월)만 독립시켜 반양장으로 펴냈다. 이 대화편은 한마디로 ‘무지의 지’를 깊이 살피는데, 궁극으로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의 주요 논지 가운데 하나를 변론하다.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대화편이지만, 읽는 이가 천재가 아닌 한, 그때그때 흥미로운 에피소드들만이라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명한 새장 속의 새 비유가 그렇다. 새(비둘기) 사냥에는 두 가지가 있단다.

 

"하나는 소유하기 전에 소유하기 위해서 하는 사냥이고, 다른 하나는 소유한 뒤에 이미 소유한 것을 붙잡아서 손안에 갖기 위해서 하는 사냥" -<테아이테토스> 199d, 천병희, 위 반양장)

 

여기서 새(비둘기)는 '지식'의 은유(비유)다. 한 차례 습득한 지식이 기억의 저장고(새장)에 머문다고 하여 그것은을 '안다'고, 곧 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반문이다. 그렇거늘 맘에 드는 책을 구입해서 내 서가에 꽂아놓았다고 그것이 나의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을 읽고 뭔가를 얻어낼 때 비로소 그것은 나의 지식이 된다. "소유한 것을 붙잡아서 손안에 갖기 위해서 하는 사냥"이 곧 독서다. '책은 곧 지식'이라는 등식에 의거, 비약해서 설명해본 것이다.

 

소유한 것을 붙잡아 손안에 갖기 위해서 하는 사냥 혹은 사랑
연애상담 전문가 소크라테스가 연인에게 연동의 마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수 설파한 바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토록 뭔가에 씐 것처럼 열정에 들뜨고, 훌륭한 작가를 만들어놓기도 하는 사랑, 그러나 그 열정이 식었을 때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지 않던가? 결혼은 과연 시작인가? 얼기설기 바느질한 느낌이 있지만,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너무 대단한 목표를 가지고 읽기보다는 우선 친해졌으면(philia) 하는 마음에서 '소프트' 한(정말 그런가?) 글 하나를 정리해보았다. '잡은 물고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사용하는 쪽이나 받아들이는 쪽이나, 둘 다 문제가 있다. 사랑에서 '잡은 물고기'라는 비유가 등장할 때, 그 사랑은 이미 회복 불가능 상태에 이르러 있는 것이다. 사랑을 얻기까지도 '툴'이 필요하지만, 그 사랑을 '관리하는'데에 필요한 사랑의 기술이 있고, 그제야 사랑은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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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3-28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timeroad 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플라톤의 작품을 읽었을 때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timeroad 2019-03-28 19:1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늘 안개가 걷히지 않은 산길을 걷는 기분이라서, 좀 쉽게 몇 가지 이야기만 하고 싶어서요.

ransky 2019-05-11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크라테스는 연애상담 전문가라니!
진작 상담을 받을껄!

timeroad 2019-05-12 00:39   좋아요 0 | URL
분화 이전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얘기한 듯, 어쨌든 요즘 얘기하는 사랑 포함이라. 책 한 권 분량으로 넘치는 얘기네요.
 
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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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리아스다. 『일리아스』에서 발견하는 숫자 이야기를 하다, 열두 척의 배 이야기를 시작했고, 문득 정유재란 당시 충무공에게 주어진 미션을 단편소설 분량으로 헉헉 '구성'했다. 『일리아스』를 읽다보면 대체로 2권 함선목록 부분에서 위대한 고전읽기의 희망찬 항해의 닻을 내린다지만 그래도 인내하며 읽는 동안 보이는 것이 있다. 그런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 중 하나다. 『일리아스』에는 열두 척 함선과 관련된 세 인물(혹은 영웅)이 등장한다. 오뒷세우스가 그렇다. 그 다음은 아이아스다. 세 번째 인물은 누구일까? 아직은 말하지 않겠다. 호메로스가, 장렬히 전사하는 순간에야,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고 연민을 자극하지만 (살아)있을 때 좀 잘해주시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호메로스는 인류 최초의 부고(부음)전문 기자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01]어떤 아이아스요?

하는 질문을 자주 접하다 보니 ‘큰’ 아이아스가 된 사람이 있다. 덩치의 크고 작음으로 구분한 것 같은데, 실제로 공적에서도 그러니까(영웅들의 서열에서도) 앞서는 큰 아이아스는 큰 아이아스이다. 그는 열두 척의 함선을 몰고 원정에   참여한 사람이다.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 그만큼 크지 않은 그보다 훨씬 작은 아이아스는, ‘오일레우스의 아들’인데, 서사시는 '오일레우스의 날랜 아들' 작은 아이아스라고 하여 구분한다. 몸집이 작으면 좀 날랜 것 아닌가? 어쨌든 '큰 아이아스'는 살라미스 섬의 지휘관인데('왕'이라는 의미 포함), 살라미스는 영화 <300>2의 배경인 바로 그 섬이다. 페르시아 전쟁 당시에도 아테나이의 부인들과 노약자들을 피란시킨 섬, 그것을 교두보로 삼아 해전은 승리한다.

'교두보'는 은유다. 펠로폰네소스전쟁 이전부터 이후에도, 양대 세력 사이 긴장감이 안개로 상주하는 섬이 살라미스다. 그런데, 함선목록은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가장 잘 싸우는 용장을 단 두 줄로 소개한다.

 

"아이아스는 살라미스에서 열두 척의 함선들을 이끌고 와서
아테나이인들의 대열이 서 있는 곳에 세웠다." -2권, 557~558행.
 
참전하면서 동원한 함선 수는 곧 전사들의 수, 병력의 규모이기도 하다. 때문에 함선 몇 척이라고 할 때의 숫자는 전사들의 숫자이기도 하기에, 더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호메로스의 '공정의 선지자'라고 할 정도로 한정된 텍스트 안에서, 숱한 인물들을 다루면서 '공정'과 '균형'을 유지하기에, 아이아스가 '일당백'을 하는 영웅이기에 이렇게 인색구나, 생각하면 될 것이다. 하긴 배만 많다고 무엇을 하겠나, 아테나이와 코린토스지협의 메가라 사이, 코딱지만 한 섬에 인구(전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한다. '전투파업'으로 『일리아스』의 전체 분량에 비해 영웅 아킬레우스의 등장 분은 그리 많지 않다. 해서 디오메데스가 용장으로 활약이 돋보이는데, 이 친구는 시인의 설정으로, 아킬레우스 부재 시(時,) '용장' 아킬레우스의 대역 역할을 한다. 일종의 카게무샤(かげむしゃ ‘影武者’ 그림자무사)다. 하지만, 큰 아이아스는 실세로서 용장 No2다.

 

[02]어떤 아이의 아버지요?
또 한 사람 섬 출신 영웅이 있다. 이타케 섬의 오뒷세우스다. 우선 2권 함선목록에서의 언급을 살피자. 그도 그 유명한 열두 척을 배를 몰고 참전했다.

 

"지혜가 제우스 못지않은 오뒷세우스가 지휘했는데,
그와 함께 이물에 주홍색을 칠한 함선 열두 척이 따라왔다." -2권 636-637행.

 

그가 동원한 함선 또한 열두 척이지만. 이 지휘관을 소개하는 분량은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우호적이라 큰 아이아스와 구분된다. 『일리아스』 텍스트(작품 그 자체)에만 집중하자. 오뒷세우스의 지혜가 '제우스 못지않은'가에 대해 다들 의심한다. 그가 이 서사시의 시인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임기응변, 언변에 능한 '소통의 전도사'였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오뒷세이아』의 오뒷세우스는 본래 의미의 '지혜'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그러나 자기를 앞세우지 않고 소통을 이뤄내는 사람, 갑과 을 사이에서 조율하는 능력 그 자체만으로 그는 또 하나의 '일당백'이 아니겠는가! 시인에 의해 설정된 『오뒷세이아』의 오뒷세우스가 한층 『일리아스』에서보다 진화한 인간형을 제기한다고는 하지만, 실제 인간 모습은 이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나서지 않고 그렇다고 거리 운운하면서 침묵하지도 않고, 아직까지의 성공하는 ‘비지니스 모델’로서 그는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어쨌든 그는 『일리아스』 영웅 군(群)에서는 지장(智將) 1순위다. 큰 아이아스나 오뒷세우스는 (다른 뜻은 없다) 섬 출신이라는 공통점, '겨우’ 혹은 '비록' 열두 척의 배들만을 동원했지만 한 사람은 손에 꼽히는 '용장'으로, 다른 한 사람은 '지장'으로서, 정정당당 그리스연합군 내부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03]어떤 아이요?
굳이 셋으로 세팅하려고 또 하나의 '함선 열두 척'으로 참전한 지휘관을 찾아야 했다. 확증편향인가? 고생 끝에 찾아내고야 말았다. 의외로 수비 진영은 트로이아 측 참전자 가운데, 그 대상을 발견했다. 2권 함선목록 후반부 트로이아 진영 참가자들이 소개되지만 거기에는 없는 인물, 이피다마스다. 아가멤논이 명불허전을 증명하려는 듯 전투 씬의 분량을 좀 소화하는 데가 11권이다. 거기서 시인이 묻는다.

 

"이제 말씀해주소서, 올륌포스의 궁전에 사시는 무사 여신들이여!
트로이아인들 자신과 이름난 동맹군들 중에서
맨 먼저 아가멤논과 대전한 자는 누구입니까?"  -11권: 218-220.

 

그가 트로이아의 전사 이피다마스다. 생소한 인물이므로(필자에게는) 인용에 좀 지면을 할애하자. 앞의 인용에 이어지는 부분이다.

 

"그것은 안테노르의 아들 이피다마스였다. 그는 당당하고 큰
사나이로 작은 가축 떼의 어머니인 기름진 트라케 땅에서
자랐으니, 볼이 예쁜 테아노를 낳은 그의 외할아버지 킷세우스가
어릴 적부터 그를 자기 집에서 길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마침내 영광스런 성년이 되었을 때
킷세우스는 그를 그곳에 붙들어두려고 자기 딸을 아내로 주었다.
그러나 그는 갓 결혼한 신랑의 몸으로 신방을 뛰쳐나와
아카이오이족의 소문을 좇아 부리처럼 휜 함선 열두 척을
이끌고 왔다. 하나 균형 잡힌 함선들은 페르코테에 남겨두고 
그 자신은 걸어서 일리오스까지 왔다.
바로 그가 이때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과 대전했다." -11권: 221-231.

 

1)그는 트라케(작은 가축 떼의 어머니인 기름진)에서 자랐다.

2)외할아버지 킷세우스가 어릴 때부터 그를 길렀다(킷세우스와 혈연일까, 아닐까?).

3)(볼이 예쁜) 테아노는 킷세우스의 딸이다.

4)이피다마스의 아버지는 안테노르이고 어머니는 테아노다.

4행까지는 그렇고 그런 가족 소개로 보인다. 문제는 5번째 행부터다. 5~6행이 따르면, 이피다마스와 킷세우스는 혈연이 아니며, '주워서'라는 말은 없지만, 킷세우스 나이 차이도 있고 하여 자신의 친딸 테아노(와 사위 안테노르)의 양아들로 삼아 기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성년이 되어 떠날까봐 '두려워서' 킷세우스가 자기 딸을 (주어) 결혼하게 했다는 것인데, 그 딸(이피다마스의 아내)은 이피다마스의 어머니(티아노)와 자매간이고, 이피다마스는 이모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좀 부담스럽지 않은가? 이피다마스가 이처럼 주워서 기른(입양은 보류) 아이였는데(테아노를 친엄마라고 생각하고 지내렴, 또한 친정집에 나이차가 모자뻘인 귀여운 사내아이가 함께 살게 되어 어머니 역할을 하였을 수는 있다). 어느덧 청년이 되니 이제 내 갈 길을 가야겠다.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고, 나는 어차피 남남이니 일가를 이뤄야겠다, 이렇게 자랐던 집을 떠나려 했나? 또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킷세우스도 알고 있고 때문에 맘에 드는 그를 가족으로 붙잡는 방식으로 (무리해서) 딸과 혼인시켰다는 얘기인가?

 

<잠시 주로를 벗어나 조선으로> 우리 역사에도 이런 사례가 없지는 않다.

이상의 추리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면 조선의 압구정(호) 한명희는 그리스의 킷세우스가 된다. 수양대군을 왕(세조)으로 옹립시킨 일등공신인 그에게는 '손 안에 세상의 모든 것은 쥔'이 그를 수식하는 '공식구'('일리아스'처럼)가 될 것인데, 그는 자신이 성취한 권세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두 딸을 왕에게 시집을 보내 부원군의 지위를 거듭 유지하면서 지속가능한 권력을 꿈꾸었다.

세조를 잇는 예종의 정비 '장순왕후' 한씨(1445~1461년)가 첫째 딸이다. 그녀는 17세에 사망하는데, 세조가 사망하고 예종(해양대군, 19세)이 즉위하던 1968년에는 세상에 없다. 그런데, 예종이 재위 13개월 만에 세상을 뜬다. 그런데 해양대군(예종)은 세조의 둘째아들로, 먼저 세자로 책봉되었던 형 의경세자(1438~1457, 추존 '덕종')가 비명횡사하자, 8세에 세자로 책봉되었다가 즉위한 것. 이 예종(1450~1469,세종32~예종1)이 죽었을 때, 후위로 떠오른 사람은 1)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원자, 5세)과 2)예종의 형 의경세자의 장남 월산군이었다. 그런데, 의경세자와 한확(韓確)의 딸 소혜왕후(昭惠王后) 사이에는 월산군 말고도 차남 자산군이었다. 그 사람, 차남 자산군이 예종을 이어 왕에 오르는데 그가 성종으로 당시 13세였다. 당시 그도 어리기는 하였지만 원자와 친형을 제치고 제위에 오른 것은 의외였다. 여기에는 당대 두 사람의 막강한 실력자의 ‘조정’이 있었다.

1)남편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할 때부터 수렴청정(조선 최초의 수렴청정이다)을 하는 정희대비가 힘을 썼다. "월산군은 어릴 때부터 병이 잦았고, 세조가 생전에 자산군의 칭찬이 남달랐던 점"이 이유다. 또 한 사람.

(2)자산군 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이번에도 한명회다. 자산군(성종)은 한명회의 막내딸과 결혼(1467년, 세조13년)에 결혼한 상태였던 것. 세조가 죽고 예종(큰사위)가 즉위하기 불과 1년 전 한명회는 막내딸을 자산군에게 시집을 보냈으니, 결과적으로 후사도모다. 불안정한 상황을 읽은 후 처방한 것이다. 어쨌든 성종의 정비가 공혜왕후다. 그녀는 언니(장순왕후)의 뒤를 이어 정비의 맥을 잇는다. 그러나 그녀는 성종 즉위 5년 만(1474년)에 사망하였고, 자식이 없었다. 이후 성종은 윤기무의 딸 숙의 윤씨를 새 왕비로 맞아들였고, 그녀가 아들 하나를 낳으니 연산군이다. 성종으로선 어쨌든 자신의 숙모(아버지의 동생의 아내)의 여동생과 결혼하게 된 셈. 친이모가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한명회의 '권력 집착'을 엿존다. TV 사극과 영화에서 자주 접했던 그렇고 그런 왕실의 계보다. '성종이 자신의 막내이모와 결혼을 했다고?' 희미한 기억을 확실히 했지만 그렇다고 킷세우스와 한명회의 아버지로서의 닮은 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리아스』에서 안테노르는 프리아모스의 왕과 함께 트로이아성의 스카이아이에서 전세를 관망하는(메넬라오스와 파리스의 일대일 대결 중) 원로 중 1인이다. 당시 양군의 책임자가 맹세를 위해 만날 때, 프리아모스를 호위하여 결전 현장을 다녀오는 이가 그이고, 안테노르의 부인으로 되어 있는 '볼이 예쁜' 테아노는 <일리아스> 6권, 전투 중 갑자기 성안으로 돌아온 헥토르가 청하여 어머니 헤카베가 도시의 아네네의 신전에 청원할 때 이 신전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부분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성채 위에 있는 아테네의 신전에 이르자
킷세우스의 딸로 말을 길들이는 안테노르의 아내인
볼이 예쁜 테아노가 그들을 위해 문을 열어주었으니,
트로이아인들이 그녀를 아테네의 사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통곡하며 두 손을 들어 아테네에게
기도했고, 볼이 예쁜 테아노는 옷을 받아
머릿결 고운 아테네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위대한 제우스의 딸에게 기도하고 빌었다." -일:6권 297~304행

 

여기에도 앞의 인용처럼, '킷세우스의 딸', '안테노르의 아내', '볼이 예쁜' 테아노는 그 여인이다. 다만 '아테네의 사제'라고 하면 될 것을 '트로이아인들이 그녀를 아테네의 사제로 삼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임명은 의외이며 외지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녀의 고향은 해협 건너 트라케, '작은 가축 떼의 어머니인 기름진 트라케 땅'이며 그곳은 친정아버지 킷세우스가 살고 있다. 두 권 두 부분(인용)만으로는 일관성은 있다. 확실한 것은 킷세우스의 친딸(혈육)이 (볼이 예쁜) 테아노라는 것 말고는 확정하기 힘든 대목들이 『일리아스』에는 등장한다. 안테노르와 동명이인은 작품 속 어딘가에 있는 듯한데, 안테노르의 아들들(친아들들로 추정)이 몇 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그가 그인가, 그가 그가 아닌가!

 

1)‘스카이아이의 원로’ 안테노르에게는 세 아들이 있고, 이들은 트로이아군의 주요 장수로 활약한다.

 

"트로이아 백성들에게서 신처럼 존경 받는 아이네이아스
그리고 안테노르의 세 아들인 '폴뤼보스', 고귀한 '아게노르',
불사신과도 같은 젊은이 아카마스를 둘러싸고 있었다." -일: 11권 58~60행

 

'아이네이아스'에 이어 거론됨에 주의해야 한다. 이외에도 이들 관련 인용은 더 있다. 특히, 2권(후반 함선목록) 트로이아 진영의 지휘관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다르다니에인들은 앙키세스의 당당한 아들 아이네이아스가
지휘했다. 고귀한 아프로디테가 앙키세스에게서 그를 잉태했으니,
그녀는 여신이면서도 이데 산의 골짜기에서 인간과 동침했던 것이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 안테노르의 두 아들 아르켈로코스와 아카마스가
함께했는데, 이들은 둘 다 전투에 관해서는 무소부지였다." -일: 1권 819~823행)

 

여기서 안테노르의 아들은 위와 '아카마스'만 일치한다. 트로이아의 원로 안테노르의 아들이 맞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거기다가 3권에서는 아프로디테의 명을 받은 이리스가 헬레네를 파리스가 머무는 침소로 데려갈 때, 라오디케의 모습으로 변장하는데, 라오디케는 '안테노르의 아들 통치자' 헬리카온의 아내이며 '프리아모스의 여러 딸들 가운데 가장 미인'으로/ 당시 헬레네에게는 시누이다.(일: 3권, 121~125행) 안테노르와 프리아모스는 사돈 관계임을 알 수 있고 둘 사이를 연결한 아들이 헬리카온인데, 새로 등장하는 아들이다.
 
2)혈연 여부를 떠나 앞서의 인용(11권) 후반에 따르면 이피다마스는 가장 먼저 아가멤논에게 대항하여 나서는 트로이아의 용감한 전사다 하지만 그는 아가멤논에게 죽는다. 그런데, 이를 복수하기 위해 나선 전사들 가운데 코온이 나섰다가 곧이어 죽는다. 그런데, 이 코온이 안테노르의 맏아들이란다.

 

"그러나 이때 전사들 중에서도 이름 높은 코온이 그를 보았다.
코온은 안테노르의 맏아들로 아우가 쓰러지는 것을 보자
크나큰 슬픔이 그의 두 눈을 덮었다.“  _일:11권 248~250행.

 

코온은 안테노르이 맏아들이며, 이피다마스의 형이다. 이어지는 대목을 보면, "이때 코온은 같은 아버지에게서 난 아우 이피다마스의 발을 잡고/ 열심히 끌고 가며 자기 편 장수들에게 큰 소리로 구원을 청."(일: 11권 257~258행)하다가 죽는다. 앞서 코온은 아가멤논 팔꿈치 아내를 찔러 부상을 입히지만 아가멤논은 그의 동생 이피다마스의 사지 위에 코온의 목을 쳐서 떨어뜨린다. 형제들이 함께 죽는 경우는 더 있지만 장렬한 최후다. 어쨌든, 여기에도 안테노르의 두 아들이 등장하는데, 이피다마스는 코온의 '같은 아버지에게서 난 아우'다. 

 

이제 그리고 일단 세 번째, '열두 척의 배'의 의미를 마무리해야겠다.

약간 미스테리한 결론이다(앞의 11권 인용 참고). 그가 갓 결혼한 신랑으로 몸으로 신방을 뛰어나온 것은 임박한 전쟁에 참여하기 위한 전사의 출전인가, 이를 빙자한 (결국은) '가출'인가? 트라케에서 트로이아로 가려면 가깝지만 배를 이용해야 한다. 해서 '부리처럼 휜 함선 열두 척을 이끌고' 간다. '갑자기 뛰쳐나왔다'고 좀 그런 보기에는 준비된 출정이다. 킷세우스(길러준 외할아버지)는 그가 이렇게 떠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전쟁에 참전하면 죽을 것인데, 그것을 막고 싶어 급했던 것일까? 그러나 안테노르(트로이아 사람)와 테아노 사이에서 태어난 그가 어려서부터 자란 곳이 트라케였다고 할 때, 그리고 이모(혹은 친이모)와 결혼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이상한 결혼을 그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육지에서 수성하는 트로이아 군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배가 필요 없다. 뿐더러, 전세를 볼 때 그리스군은 그런 배들은 가장 먼저 파괴될 것이 자명하다. 해서 이피다마스는 '균형 잡힌 함선들은 페르코테에 남겨두고' 걸어서 일리오스(트로이아 군에)에 합류한 것이다. 아마도, 이때 또 하나의 안테노르의 아들은 코온은 동생 이피다마스와 동행하였고, 거의 동시에 죽음을 맞이한 것 같다.

몇몇 의문점(이 부분을 명확히 제기하려면 또 하나의 글이 필요할 것이다)을 살피는 동안, 이피다마스가 하필 인간들의 왕, 그리스연합군 최고사령관 아가멤논이라는 '골리앗'에게 맞서는 제1주자가 된 데는(아무리 아가멤논이 종이호랑이처럼 여겨지더라도) 자초한 죽음, 곧 자살공격에 가깝다. 한 번의 떠남으로는 씻지 못하는 뭔가 찜찜한 것이 있다. 해서 그는 영원히 떠나는 길을 자초한 것일까? 필자는 그가 페르코테에 남겨 놓고 온 '부리처럼 휜 함선 열두 척'을  일종의 보험으로 본다. 그것이 최선이었든 차선이었든. 그가 자주적인 삶을 위해 그 배들을 몰고 떠났다면 현존할 리 없겠지만 『오뒷세이아』에 앞서 조금 일찍(10년쯤) 항해를 떠난 서사 『이피다마스』의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 또 하나, 당시 트라케에서는 뭔 일이 있었던 듯한데, 이피다마스 주변에 어른거리는 오이디푸스의 고뇌랄까, 그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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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3-28 0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리아스>에 나오는 인물들은 너무나 여러 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눈 밝은 독자가 아니고서는 전후관계를 도저히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등장하기 때문에,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누가 누구의 할아버지인지를 따져보는 것조차도 쉽지 않을 때가 많은 듯합니다. 가령, 트로이아의 프리아모스 대왕만 하더라도 아들이 무려 50명이나 되고, 딸이 12명이나 될 정도니까,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프리아모스의 아들 이름만 다 밝혀내는 것마저도 쉽지 않을 정도지요.

말씀해주신 ‘안테노르‘도 하도 여러 곳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이 사람의 실체를 <일리아스> 만으로는 규명(?)하기 쉽지 않을 듯합니다. 다행히(?), 네이버 지식백과에 들어가 보면 이 사람에 대한 아주 자세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게 있더군요. 그는 ‘트로이 전쟁‘ 이전에도 ‘헬레네 납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트로이로 찾아왔던 사절단이었던 오뒷세우스와 메넬라오스를 극진히 대접하고, 화평을 극구 주장했던 인물로 나오더군요.

그리고, 네이버 백과사전을 살펴 보면 안테노르 역시(!) 아들이 꽤나 여럿 있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안테노르는 트라키아 왕 키세오스의 딸인 테아노와 결혼하여 아르켈로코스, 아카마스, 리카온, 글라우코스, 라오도코스, 아게노르, 이피다마스, 라오다마스, 히폴로코스, 에우리마코스, 헬리카온 등 여러 명의 아들을 두었다.>

또한, 안테노르의 아들인 이피다마스는 외할아버지 밑에서 양육된 후 친이모와 결혼한 게 (신화학적으로) 맞는 듯한데, 킷세우스가 여러 명의 딸을 두었다면 큰 딸(?)의 아들, 즉 외손자와 나이 어린 친딸을 결혼시킬 수도 있었지 않았겠나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또한, <일리아스>에 나오는 내용을 보더라도 그가 ‘못마땅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전쟁터로 달려온 건 아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 * *

그리하여 그는 가엽게도 결혼한 아내의 곁을 멀리 떠나 도성의 백성들을 도우려다가 그곳에 쓰러져 청동의 잠을 자게 되었던 것이다. 그 아내를 위해 그는 재미도 못 보고 구혼 선물만 잔뜩 주었으니, 먼저 그는 소 백 마리를 주고 나서 그가 수없이 갖고 있던 염소와 양을 합쳐 천 마리를 주기로 약속했던 것이다.(<일리아스>, 11권 240-245행)

timeroad 2019-03-28 09:09   좋아요 2 | URL
섬세한 댓글 감사합니다. 간력하게 12철 배와 관련된 것, 3개를 묶어보자는 취지인데, 자꾸만 눈에 들어와서 또한 글이 길어지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서둘러 정리한 면이 있습니다. 이래저래 언급하다보면 끝이 없어서요. 감사합니다.

oren 2019-03-28 0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헬레네 납치 사건을 ‘전쟁‘이 아닌 ‘회담‘을 통해 해결하고자 애썼던 흔적들이 <일리아스>에서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안테노르와 달리 그들 사절단들을 죽여버리자는 의견들도 없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

* * *

이렇게 두 사람은 울면서 부드러운 말로 왕에게 빌었으나, 그들이 들은 것은 무자비한 목소리였다.

˝너희가 진실로 현명한 안티마코스의 아들들이라면
바로 그자가 전에 트로이아인들의 회의석상에서
신과 같은 오뒷세우스와 함께 사절로 간 메넬라오스를
그곳에서 죽여 아카이오이족에게 돌려보내지 말라고 권했다니,
이제 너희 아비의 수치스런 행동의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라.˝
(<일리아스> 11권 136-142)

timeroad 2019-03-28 09:12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안테노르는 트로이아 진영에서 그리스군이라면 네스토르와 유사한 역할을 한달까, 그런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ransky 2019-05-11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면 이순신은 조선의 오뒷세우스? ㅎㅎ

timeroad 2019-05-12 00:40   좋아요 0 | URL
오뒷세우스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