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스테스가 어머니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고 어머니를 죽이러 가자, 클뤼타이메스트라는 젖가슴을 내보이며 살려주기를 애원한다.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의 결정적인 장면이다. 이 작품은 1부  「아가멤논」, 3부 「자비로운 여신들」과 함께 『오레스테이아』로 불리는 내용 3부작 중 2부다. 아이스퀼로스는 『오레스테이아』로 기원전 458년 비극경연에서 일등상을 받았다. 아버지(아가멤논)의 죽인 이를 죽이는 복수이지만, 친어머니를 죽여야 하는 오레스테스의 고뇌가 느껴진다.

(오레스테스와 퓔라데스, 궁전에서 달려온다. 오레스테스의 칼에서 핏방울이 떨어진다)

 

오레스테스: 당신도 찾고 있었소. 그자는 충분한 보답을 받았으니까.
클뤼타이메스트라: 슬프도다. 가장 사랑하는 강력한 아이기스토스여, 당신일 죽다니!
오레스테스: 그자를 사랑한다고? 그렇다면 그자와 같은 무덤에 누우시오./ 그러면 당신은 결코 그자를 배신하지 못할 테니까.
클뤼타이메스트라: 멈춰라, 내 아들아. 얘야 너는 이 젖가슴이/ 두렵지도 않느냐? 잠결에도 이 어미의 젖가슴에 매달려/ 그 부드러운 잇몸으로 달콤한 젖을 빨곤 했는데.
오레스테스: 어떻게 할까, 퓔라데스? 어머니를 죽이기가 두렵구나.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중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892~899행

머뭇거리나 오레스테스에게 용서는 없다! 그녀의 정부 옆에서 죽이려고 궁전으로 데려간다.

 

#01. 클뤼타이메스트라 VS 오레스테스, '살려 달라' 젖가슴을 내보이며 아들에게 애원하는 어머니

이번에는 서사시 <일리아스> 22권. 절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다시 전투에 나선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대결이 펼쳐진다. 헥토르는 일리오스와 스카이아이 문 앞에 그대로 버티고 서 있다. 스카이아이에는 아버지 프리아모스와 어머니 헤카베가 제발 성안으로 들어오고, 아킬레우스와 맞서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프리아모스의  애처로운 호소에 이어 어머니가 나선다.

[이번에는 또 그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울었고
옷깃을 풀어헤쳐 다른 손으로 젖가슴을 드러내보였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헥토르야, 내 아들아! 이 젖가슴을 두려워하고 나를 불쌍히
여겨라. 내 일찍이 네게 근심을 잊게 하는 젖을 물린 적이 있다면.
내 아들아! 그 일을 생각하고 성벽 안에 들어와서
적군의 전사를 물리치고 선두에서 그와 맞서지 마라.
무정한 녀석! 그가 너를 죽이면 나는 내가 낳은 자식인 너를
침대에 뉘고 슬퍼하지 못할 것이며, 많은 선물을 주고 얻은
네 아내도 마찬가지다. 너는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아카이오이족의 함선들 옆에서 날랜 개들의 밥이 될 테니까.”]

-『일리아스』 22권 79~89행. 그러나 헥토르는 죽음의 길을 간다. '잔혹한 운명이 그를 그곳에 묶어놓았던 것'이란다.
 
#02. 헤카베 VS 헥토르, '살아 달라' 젖가슴 드러내며 아들에게 호소하는 어머니 

이번에는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안드로마케」(Andromache)(『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1』 천병희 옮김, 숲, 2009)다.

"그리고 그대는 트로이아를 함락한 뒤-따질 것은
따져야겠으니 하는 말인데-그대의 수중에 들어온
아내를 죽이기는커녕 그녀의 젖가슴을 보자 칼을 던져버리고
애무를 받아들였고, 그대를 배신한 암캐에게
아부를 했지, 퀴프리스에게 져서, 그대 가장 용렬한 자여!"
-「안드로마케」 627~631행 페넬우스가 메넬라오스에게.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전쟁 포로로 끌려와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옵톨레모스의 첩살이를 하며 몰롯소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메넬라오스가, 헬레네와 낳은 딸 헤르미오네가 정실부인인데, 후사가 없자 안드로마케 모자를 탓하며 죽이려 들자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가 나타나 이를 제지하며, 헬레네와 메넬라오스의 재결합을 질타하는 장면이다.)

 

헬레네는 스파르테의 왕비(공주)다. 메넬라오스가 데릴사위로 왕이 된 것이므로 혈통으로 보아 헬레네를 '여왕'으로 불러도 될 것이다. 스파르테(펠로폰네소스동맹)와 아테나이인들(델로스 동맹)이 전면전을 벌이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초기(기원전 430~425년 사이)에 공연된 것으로 알려진, 「안드로마케」에서,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는 '가장 나쁜 여자', '개 같은 배신녀'로 그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파르타의 여성 전체가 욕을 먹고 있다. 최혜영은 『그리스비극 깊이 읽기』 159~160면) 비극은 아테네에서 집필되고 아테네의 무대에서 상연되었는데, 헬레네를 공격하는 것은 곧 스파르타를 견제하는 방법임을 주장한다. 헬레네의 트로이아행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예나 지금이나 의견이 분분하다. 그녀가 트로이 왕자 파리스를 기꺼이 따라갔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다(납치설), 또 하나는 헬레네의 환영(허상)만 파리스를 따라 트로이로 갔고, 실제의 헬레네는 이집트에 머물다가 남편을 만나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설 등이 있다.

 

#03. 헬레네 VS 메넬라오스, 살라고, '다시' 살려고 가슴 드러내며 성적 매력 발산하는 헬레네
아름답고 성적 매력이 넘친다. 하지만 부도덕하다. 헬레네의 이런 모습은 그리스인들의 교과서였던 『일리아스』 속 이미지다. 세 번째는 텍스트에 도기 그림까지 추가한다. 기원전 5세기경 아티카에서 제작된 도기인데 대체로 호메로스적 관점에서 헬레네를 그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메넬라오스가 칼을 들고 헬레네를 처단하기 위해 다가가다(이때 헬레네는 가슴을 드러내고 성적 매력에 호소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결국 칼을 떨어뜨린 채 그녀를 다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적색무늬 토기, 루브르 박물관 소장. 왼쪽에서는 아프로디테 여신이 헬레네와 메넬라오스 사이에는 에로스가 날아다니며 이들의 재결합을 부추기고 있다. 헬레네의 입장에서는 ‘살려고’ 하는 일이고, 이를 계기로 메넬라오스와 ‘다시 살게’ 된다. [사진 출처]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elen_Menelaus_Louvre_G424.jp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18, 우리들의 이야기 - 1980년 5월,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광주서석고등학교 제5회 동창회 엮음 / 심미안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껍아, 두껍아, 새 집 줄게 헌 집 다오' 목포 구도심, 국도1호선과 2호선의 기점임을 알리는 표지석 뒤로 일제강점기 시절 (구)일본영사관 건물이 서 있는데, 지금은 사적 제289호로 지정, 근대역사관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근대역사관 본관에 전시되어 있는 '결전' 식기. 우리 입장에서는 해방의 그날이 다가오던 무렵, 전쟁 무기를 만들기 위해 전국의 모든 쇠붙이를 징발해갔다. 놋그릇을 수탈하고 대신에  사기 밥그릇을 공급했는데, 주발에는 ‘결전(決戰)’이라는 글씨를 로고처럼 새겨놓았다. '두껍아, 두껍아' 살피다가 떠올린 동요 한 대목이다.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이 어느덧 39주기를 맞이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해보니 5.18 이전과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생각해보니 프로야구가 생겼고, 때가 되어 그랬는지 알 수 없으나 흑백TV 시대가 가고 컬러TV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국풍81>이라는 듣보잡 축제를 아마도 컬러TV로 보았을 것이다. 야구광인 형님을 따라 멀리 시골 농촌마을에서 광주까지 가서 무등경기장에서 열리는 프로야구를 관전했던 기억이 있고, 오래지 않아 그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랬구나, 역사의 저 편으로 잊히기를 바라는, 세력들이 있었구나, '결전' 식기를 보다가 왜 이런 기억을 상기했는지 알 수 없다.

 

그랬구나, 역사의 저 편으로 잊히기를 바라는, 세력들이 있었구나,

39주기를 맞이하는 5월의 첫 날, 의미 있는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인터뷰에 문득 저자 중 한 분이 등장했다. '편의대'라는 낯선 이름, 현역 군인들이 근무하는 군부대 이름이라는데 부마항쟁 때도 광주  5.18 때도 이들이 시위군중 속에서 이른바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미군의 정보원으로, 보안사 일원으로 당시 활동했다는 두 분의 증언도 폭풍 급이었지만, '편의대'라는 단어를 기억의 창고에 보관하게 된 일이야말로, 2019년 5월 광주의 특별한 일이 아닐까 싶다.

 

당시 전남도청 앞 금남로에서 공수부대가 집단 발포를 할 때 총상을 입은 사람, 시위대원으로 위장한 계엄군 ‘편의대’에 의해 고문을 받고 영창에 갇힌 사람, 전남도청을 지키다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진압할 때 가까스로 탈출한 사람, 가두방송으로 유명한 전옥주 씨의 가족이 자취방 옆집에 살아 누나가 간첩혐의로 끌려가 조사를 받은 사람, 공수부대원에게 붙잡혀 전남대와 광주교도소에서 46일간 고초를 당한 사람---.

 

광주광역시 한 고등학교 5회 동창생들이 자신들이 체험한 5월 광주 이야기를 엮은 책,
『5.18, 우리들의 이야기-1980년 5월,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광주서석고등학교 제5회 동창회 지음, 심미안, 2019-05-01) 이야기다. 이 책은 광주서석고 제5회 동창회(회장 임영상)에서 1980년 5월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동기들의 5·18민주화운동 체험담을 기록한 것이다. 모두 12명으로 구성된 ‘5·18체험담출판준비위원회’는 한 사람이 각 30여 명의 동기들을 대상으로 2년여 동안 체험담을 수집, 정리했다.
준비위원 중 한 사람인 고재철 님(광주 전남공업고등학교 교사)의 <역사의 현장이 된 자취방>이 첫 번째 글인데, 누나와 여동생, 셋이서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였는데, 2층 옆방에 살던 부부 중 아저씨의 여동생이 가두방송으로 유명한 전옥주 씨였다는 것. 인터뷰에서 소개된 '편의대' 부대원의 활동을 증언하는 이야기도 그렇고, 시민군 트럭에서 검도를 가르치는(이 학교는 체육시간의 일부를 검도에 할애한다) 선생님이 타고 있어 조우했다는 얘기도 흥미롭다. 당시 광주서석고 3학년이던 졸업생 61명이 참여했다(아래 사진은 이 책의 뒷 표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족(三族)을 멸(滅)한다는 말이 있다. ‘삼족의 벌’이라는 형벌인데, 반역죄를 지은 사건의 주모자에게 내리는 형벌로 사극(드라마)이나 영화에서 자주 접하는 용어다. 그런데, 삼족은 본래 아버지·아들·손자를 말하거나(三代), 이처럼 아버지의 형제자매, 자기의 형제자매, 아들의 형제자매를 이르는 동성삼족(同姓三族)을 뜻했으나, 고려 후기부터는 대체로 이성삼족(異姓三族)까지 뜻하고 있다. 외가 처가까지도..

 

삼족(三族)을 멸(滅)한다, 그리스 비극에서 찾은 비극
이성삼족이란 종족(宗族)·본족(本族)·본종(本宗) 등으로 불리는 부계의 친족과 모당(母黨)·처당(妻黨)이라는 모계·처계 친족을 포괄한다(이 범위를 일러 일족이당(一族二黨)이라고도 한다.). 본가는 말할 것도 없고, 죄인의 어머니(외가) 집안과 아내(처가)의 집안까지 씨를 말려버린다는 무지막지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공동운명체에 속하는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은 그 화가 삼족 전체에까지 미치는 일이 많았다. 이를 삼족의 벌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연좌제(連坐制)가 적용된 사례가 삼국시대에도 보인다. 그러나 벌을 받는 범위는 집권자의 뜻에 따라 넓혀지기도 하고 좁혀지기도 하는 경우를 볼 수도 있다. [위키백과]를 참조했다.

 

이런 연좌제(連坐制)가 적용된 사례 삼국시대에도
그렇다면 이는 우리나라만의 얘기일까? 양상은 조금 다른데, 그리스 비극을 공간 배경이 되는 그리스의 폴리스 간의 갈등관계에서 살피면 무시무시한 저주가 거기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최근에 주목하는 책,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아테나이가 그들의 자랑인 비극 경연을 통해 어떻게 주변의 경쟁국들을 견제하고, 그리 인식하도록 시민들을 교육했는지 그들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조금만 곁들여도 곧이어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아테나이의 인접 국가인 테바이의 신화와 역사를 소재로 차용한 그리스 비극 3대 작가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비극 작품을 통해 테바이의 역사와 전통을 폄하하는데 기여했다. 비극 경연은 당대 최고의 공연예술로 시민교육의 주요한 도구였는데, 그 내용을 파악하면 일종의 아테나이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하는, ‘의식화’였다고 볼 수 있는 것.

 

그리스 비극경연, 아테나이 애국심을 고취 ‘의식화’ 마당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를 마무리하며, 최혜영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한 대목을 인용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야에 코린토스인들이 아테나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스파르타를 설득하는 연설이다. "아테네인은 조국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도 완전히 남의 것인 양 희생하고, 또 조국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까지도 바친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자신의 생각까지도 바친다'는 지적은 매우 상징적이다. 당시 아테네인들로 하여금 공통의 생각을 갖게 한 기제들이 있다면,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로 비극 공연이 아니었을까, 책의 저자는 이렇게 진단한다.

 

아테네인들, “조국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까지도 바친다”

테바이를 배경으로 하는 비극작품으로 가장 성공을 거둔 이는 '비극의 완성자' 소포클레스다.  페리클레스 시대를 대표하는 이 시인은 서른이 안 된 나이로 기원전 468년에 비극경연대회에서 아이스퀼로스를 누르고 우승한 뒤로 대 디오뉘소스 제의 경연에서 모두 18번이나 우승한다. 그가 쓴 비극 123편 중 전해오는 것은 7편, 그 중 최고의 비극으로 평가되는 「오이디푸스 왕」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이를 격찬하여 비극의 전형(典型)이라고 하였다.
「오이디푸스 왕」은 기원전 436에서 433년 사이에 공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는 기원전 406년경 소포클레스가 죽기 직전쯤 쓴 것으로 실제 공연은 죽은 다음인 401년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소포클레스는 두 작품보다 오이디푸스 왕가를 다룬 작품을 먼저 썼는데, 「안테고네」(기원전 442년)다. 시건 진행 순으로 정리하면 「안테고네」는 오이디푸스 왕이 죽은 이후에 벌어진 일이지만, 테바이 왕가를 배경으로 하는 소포클레스의 세 작품 중 가장 먼저 쓴 것.

 

테바이의 불행은 아테네의 행복? 정점 찍은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가 쓴 테바이 왕가를 다룬 비극들 말고도 당대의 많은 비극작가들이 오이디푸스 왕 관련 이야기를 다루었다. 오이디푸스를 주인공으로 삼은 아이스퀼로스의 『오이디포디아』는 「라이오스」, 「오이디푸스」, 「테바이를 공격하는 일곱 사람」의 3부작에 <스핑크스>를 포함한 4부작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3부에 속하는 「테바이를 공격하는 일곱 사람」(기원전 430~428년 사이)만 온전하게 전한다. 「테바이를 공격하는 일곱 사람」은 오이디푸스 왕이 죽고 난 다음, 두 아들이 왕권을 둘러싸고 싸우다가 둘 다 죽는 사건을 다루는 작품이다.
에우리피데스도 오이디푸스 왕가의 비극을 다룬 극을 썼다. 「크리시포스」, 「오이디푸스」, 「페니키아 여인들」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페니키아 여인들」(기원전 412~408년 사이?)만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크리시포스’는 라이오스 왕이 동성애적 사랑으로 납치한 소년의 이름이고 라이오스는 오이디푸스의 친부인 전(前) 왕이다. 「크리시포스」에서 에우리피데스는 오이디푸스 가문이 저주받게 된 근본 이유를 다루었으리라. 망명자 신세였던 라이오스는 자신을 받아준 은인 펠롭스의 아들이자 자기 제자였던 크리시포스를 성추행하고 납치하는 죄를 저지름으로써 신들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것. 이 작품은 「오이디푸스 왕」의 일종의 '프리퀼(Prequel) 스토리'라 할 수 있다. 프리퀄(Prequel)은 그 이전의 일들을 다룬 속편.

 

현존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에서도 ‘테바이 공격’ 흔적 역력
「페니키아 여인들」은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의 비극적 죽음을 다룬 작품이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아이스퀼로스의 「테바이를 공격하는 일곱 사람」과 소재가 비슷한데 난데없이 페니키아 여인들이 등장하는 것일까? 테바이를 건국한 시조인 카드모스가 알파벳을 창조한 페니키아 출신, 곧 외지인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란다. 당시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공연을 지켜보던 사람들-아테네인들은 물론이고 각 나라에서 온 대사들이나 방문자, 거류민들 등-에게 테바이 왕족은 페니키아 출신의 이민족이 세운 축복받지 못한 국가가라는 점을 분명하게 상기시켜 주었을 것이라, 라고 최혜영은 쓰고 있다.

 

프레임 전쟁: 테바이 건국 카드모스가 페니키아 출신이라 「페니키아 여인들」

현존하는 작품들로만 치면, 그나마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을 중심으로 위아래 3대에 이르는 비극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의 「박코스의 여신도들」 거슬러 올라가 테바이의 주요 수호신들 중 하나인 디오니소스 신을 무대에 올린다. 테바이는 디오니소스 신의 탄생지로, 실제로 디오니소스 신전이 테바이인들 삶에서 비중이 컸음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는 것, 디오니소스 신은 테바이 공주를 어머니로 태어났지만, 테바이를 싫어하고, 곧잘 테바이를 적대시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대표 비극이 에우리피데스의 「박코스의 여신도들」 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이디푸스 왕의 두 아들이 죽은 이후, 그 다음 세대의 이야기들도 비극으로 만들어졌다. 전사한 에테오클레스의 아들 라오다마스가 성장하자 크레온은 그에게 왕위를 물러준다. 하지만 라오다마스 치세에 폴리네이케스의 아들 테르산드로스가 이끄는 아르고스 일곱 장수들의 아들들, 즉 에피고노이(후손들이라는 뜻)가 아버지들의 복수를 위해 다시 테바이를 공격한다. 이번에는 아르고스의 페리고노이가 승리하고 테바이 왕 라오다마스가 전사함으로써, 마침내 폴리네이케스의 아들이 테바이의 왕이 된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는 비극이 소포클레스의 「에피고노이」 혹은 「에리필레」라는 것(현존 비극은 아니다).

 

오이디푸스 왕의 손자들 간의 골육상쟁까지도 다뤄, 삼족의..

오이디푸스나 그의 아들들, 카드모스나 펜테우스 같은 테바이 왕은 아니었지만, 테바이 왕가와 결혼을 통해 연계된 이들을 소재로 한 비극도 있다. 보이오티아 지역의 왕 아타마스를 소재로 삼은 비극이 대표적이다. 아타카스는 보이오티아의 오르코메노스 왕으로서, 카드모스의 딸 이노와 결혼했던 인물이다. 디오니소스 신의 이모이기도 한 이노는 아타마스의 두 번째 부인이었는데, 이들의 결혼으로 인한 비극사는 아테네인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소포클레스는 아타마스와 그 아들 프릭소스 등 아타마스 집안의 가정사를 소재로 한 세 편을 비극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이스퀼로스의 아타마스 비극은 정말 단편적으로 전하고, 에우리피데스의 「이노」 역시 현전하지 않는데, 비참한 결말을 가진 비극이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테바이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유포하는 작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글머리에서 정리한 ‘삼족의 벌’을 떠올리게 하는 아테나이와 테바이 사이의 골 깊은 갈등을 현존 비극을 통해 확인하거나 유추할 수 있다. 아테네 비극에서 테바이 왕가의 이야기가 왜 이처럼 집요하게 등장하는 것일까? 최혜영은 그리스 비극이 공연된 기원전 5세기는 물론이고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테바이의 아테네의 역사적 관계를 살피며 나름의 답을 찾고 있다. 헤로토토스의 『역사』(페르시아 전쟁 중 테바이는 ‘반그리스적’인 행동을 일삼았다)를 다시 읽어야겠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도 그리스 비극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펼쳐야 한다. 바쁘다. 현존 작품들을 다시 읽는 것은 그 이전에 해야 할 일이니……. 비극경연을 통한 아테나인들의 그들의 주변국들에게 대한 견제는 집요하고 철저하다. 미중 혹은 중미 무역전쟁 등등 너무나도 현재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
최혜영 지음 / 푸른역사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천병희의 플라톤전집(7권) 완간은 그 자체로 사건인데, 2권에서 처음 선보이는 세 편의 신규 번역이 눈에 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메넥세노스」다. 「메넥세노스」는 대화라기보다는 한 편의 연설문으로 보아야 하는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투퀴디데스) 2권의 유명한 연설, 전몰자를 위한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을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내세워 패러디하고 있다.

 

천병희의 번역까지, 세 가지  「메넥세노스」 원전번역을 만날 수 있어
가장 먼저 이정호의 원전번역(2008, 이제이북스)이 있었고, 2018년 12월에 박종현의 번역이 그리고 이번에 천병희의 번역까지, 세 가지  「메넥세노스」 원전번역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불과 6개월도 안 되는 시간에 두 종의 번역이 추가된 것이다. 이정호의 번역만이 존재할 때, 이 대화편을 다룬 논문을 읽었다. (인터넷 보기 가능) 장지원의 논문, <플라톤의 대화편 『메넥세노스』의 교육적  해석>(2015)이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001751
초록을 잠시 살피자.
"『메넥세노스』에서 플라톤은 페리클레스와 대조적으로 신적 질서에 따라 자족할 수 있는 덕 있는 시민들의 폴리스를 아테네의 이상향으로 제시하며 시민들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민회와 희극, 비극 작품과 같은 방식을 통해 시민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매체가 발달해 있었는데, 전몰자 추도 연설 역시 시민들의 이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

 

시민들에게 영향 미치는 매체가 발달, 추도연설도 유사한 기능을 수행
페리클레스는 전몰자 추도 연설에서 아테네는 전 그리스인의 학교임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폴리스는 실제로는 델로스 동맹의 기금과 시민들의 희생에 의존하고 있었다. 반면 소크라테스의 연설은 플라톤이 구상한 아테네의 이상적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읽은 후에 「메넥세노스」를 읽어야 플라톤의 기획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논문에서의 핵심(새로움) 주장은 추도식, 전몰자를 위한 추모 의식 자체가 시민 교육마당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그리스 비극 공연이 시민(교양) 교육의 일환이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인데, 추도식 또한 그랬으며 특히, 당대의 가장 유력한 인사가 행하는 추도사는 그 자체가 뚜렷한 교육 목적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페리클레스의 추도연설을 읽은 후에 「메넥세노스」를 읽어야
반공이 거의 국시처럼 여겨지던 시절,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주요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전국적인 차원의 반공궐기대화를 하던 때,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장년과 노년층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생 상담을 하는 할머니 한 분을 알고 지낸 지 오래 되었는데, 성인들을 대상으로 가치관을 변화시키느니 하는 강연이나 계발서 등은 거의 대부분은 허구라고 단정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는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어떤 식이건 성인이 될 즈음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치관이 형성되고(머리가 굳어지고), 이를 바꾸는 일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라는 것. 그러므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글짓기를 반공 글짓기로 시작했던, 기성세대가 이념갈등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논하기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만큼 청소년기에 접하는 교육이 평생 영향을 미치는 것, 추도연설 형식을 빌려 메시지를 전달하는 플라톤의 「메넥세노스」에서, 추도식마저 교육의 일환이었음을 앞서 소개한 논문을 짚어내고 있는 것.

 

추도식마저 시민교육의 일환이었음을  「메넥세노스」 분석으로 밝혀
때문에 비극 공연이 시민교육의 일환이었음은 당연한 것, 그런데, 최혜영의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그리스 문화의 꽃'이라 불리는 그리스 비극의 공연 의도(집필 목적)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그리스 신화에 뿌리로 하여 인간의 고뇌, 욕망, 운명, 복수, 저주 등 인간 심연의 본성을 생생하게 그려내어 시공을 초월하여 인기를 끈다. 그리스 비극이 그러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 비극을 문학 작품으로만 이해해서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다는 것. 특히, 1부에서는 비극 작품들의 공간 배경을 중심으로, 주요 비극작품들을 살피는데, 궁극적으로 아테나이 입장에서 아테나이 시인들이 쓴 작품을 아테나이 시민들을 관객으로 공연되었다는 점, 그러므로 거기에 아테나이 중심의 세계관이 작품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장 테바이 배경 비극, 2장 아르고스, 3장 스파르타, 4장 코린토스 그리고 5장 아테네 배경 비극을 다루고 있다.

 그리스 비극을 문학작품으로만 이해해서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 풀어
아테나이와 테바이는 인접한 국가이지만, 한일관계가 그러하듯이 오래된 갈등관계를 유지하며 분쟁이 끊이지 않는데, 테바이를 페르시아 전쟁 즈음에 가장 먼저 페르시아의 항복 요구를 받아들인다거나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에는 스파르테와 협력하며 아테나이를 코앞에서 괴롭히면 긴장하게 만든다. 아르고스는 친아테나이 정책을 펼치지만 필요시 '중립'을 선언한다거나 등거리 외교가 기조였다. 코린토스는 시종일관 아테나이와 적대관계일 뿐만 아니라 스파르테 펠로폰네노스 동맹의 주도국으로 오랜 전쟁에 뛰어들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페르시아 전쟁 발발 이전부터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난 이후까지 비극작품들이 공연된 시기의 정치-사회적인 맥락에서 작품을 교육적 목적을 읽는 일을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하고 있다.

 

아테나이 입장에서 대립·협력 관계 나라(비극 공간배경)와 친소 관계 반영
"아테네 비극작가들은 사회의 교사이자 공인된 유행어의 입안자, 공인된 전통의 생산자이기도 하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국가의 녹을 먹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작품을 조달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파네스가 비극시인들이란 사회를 가르치는 교사요, 국가에 유용한 조언자들이라고 평가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27면)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에서 이처럼 테바이를 폭군이 지배하는 사회, 신들의 불문율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 명예로운 행동이 짓밟히는 사회, 남자와 여자가 전도된 사회, 왕가 여성이 결혼하지 못하고 어머니가 되지도 못하여 왕실의 후손이 끊어지는 사회로 그려낸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테네는 민주정의 나라, 신들을 경외하는 나라, 남성이 남성다운 사회, 자손이 번창하는 사회로 그려지고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60면)

 

아리스토파네스, “비극시인들이란 사회를 가르치는 교사요, 국가에 유용한 조언자들”
비극 공연은 공동체 디오니소스 제전에 바쳐진 전체의 종교 행사였다. 뿐만 아니라, 테바이 등 '적국'의 기세를 꺾기 위한 심리전의 도구이기도 했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정치적인 행사이기도 했다. 추도식까지, 「메넥세노스」를 교육적 효과 차원에서 해석하는 논문을 소개한 것은, 비극은 오죽했겠나 하는 것이었는데,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이러한 측면에서 비극 작품의 탄생 배경을 밝히는 흔치 않은 국내 비극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제는 '신간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 독서 지도'.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이야기하다가 영화 <300>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 영화 <300>부터 이야기한다. 아니 영화 <300>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교양의 기본인 고전 읽기가 그만큼 대중들의 독서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거리가 상당하다는 반증이다. 영화 <300>2도 예외는 아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중 그리스 5인 로마 5인, 천병희 선생이 가려뽑은 10인의 그리스로마 영웅 가운데 테미스토클레스가 있는데, 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영화 <300>2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정한 거리가 너무 멀어 늘 '안타까운'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간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를 읽는 중인데, 생각을 정리하려고 인근의 카페를 찾았다. 처음 가본 곳, 30대 중반의 듬직한 몸을 가진 청년이 주인이다. 마침 월요일이라 인근 기념관들이 휴관이기에 한가하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이어서 쓸 글감을 기획하는 동안 나는 도서관에서 열공하는 학생처럼 책들을 늘어놓고 글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카페 주인 총각과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마침 어렵게 구한 오늘자 <한겨례> 천병희 선생님 플라톤전집 출간 인터뷰 기사(탁자에 놓았는데)가 계기였다. 발뒷꿈치를 가리키며 '아킬레스 건'에 대한 이야기로 『일리아스』 얘기를 했다. 프로이트가 정립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거론하는 것으로 소포클레스의 유명한 비극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를 시작했다. 늘 이런 식이다. 왜 늘 이래야만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킬레스 건'에서 시작하는 『일리아스』 얘기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저자 최혜영 교수도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 정리하자면 (한국인의) 그리스 비극 읽기에 새로운 길을 낸 저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명에 포함된 단어 '깊이'는 이 책을 통독하는 일이 녹록치 않음을 언질을 한다. 천병희 선생은 이번 플라톤전집 완간 이전에 그리스 3대 비극작가들의 현존하는 작품들을 완역한 세 권의 전집을 출간했다. 『아이스퀼로스비극전집』(2008년 10월), 『소포클레스비극전집』(2008년 10월), 『에우리피데스비극전집』1.2(2009년 5월)이 그것이다. 33편의 3대 그리스 비극작가의 현존 작품들을 완역한 해가 2009년인데, ‘원전번역 그리스비극전집세트’(전4권) 가격은 100,800원(알라딘 10%할인)이다. 이어서 천병희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현존 비극들을 완역한 『아리스토파네스희극전집』(전2권, 2010년 11월)도 펴냈다.

 

『그리스비극 깊이 읽기』, 한 걸음 더 들어간 '깊이'

이 가운데 '아리스토파네스희극'은 예외로 하더라도, 최혜영의 『그리스비극 깊이 읽기』를 탐독하기 위한 사전독서는 험난한 여정일 수밖에 없다. 포개면 베개로 쓰기에도 너무 높은 네 권의 하드커버(양장본) 비극전집을 섭렵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비극은 <페르시아인들>(아이스퀄로스 지음)로, 드물게 인간의 역사(페르시아 전쟁)를 다루고 있지만, 그리스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신화 공부는 필수다. 그런데, 그리스신화는 '그리스신화'를 다룬 저작이 명확하게 나와 있는 것이 아니고(엄밀하게는), 당시에는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나 『신들의 계보』 그리고, 비극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신화 소재들을 집대성하는 것을 통해, 그리스 신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현재도 예외는 아니다.

 

'오리무중' 그리스 신화, 작품을 통해 만나야 하는 황홀함

그런데, 여기까지는 그리스 비극을 이해하는데, 작품 그 자체(텍스트)에 집중하는 데에 필요한 사전 독서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역사적)이고 어디서부터가 인간의 역사인지? '소크라테스(-플라톤) 문제'처럼 그리스 비극을 읽는 '그동안' 신화와 비극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앞서 거론한 <페르시아인들>(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비극이 하필 이 작품, 인간의 역사를 대놓고 다룬 작품이라는 것이 역설이며 시사점이 있다)은 작품 자체의 '존재 증명'이랄까, 예사롭지 않은 숙제를 이미 던지고 있었다. 최혜영은 그리스 비극을 제대로 읽으려면('깊이') 당대의 역사와 정치사를 고려하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인데, (적어도 한국의) 그리스 비극 읽기에 새로운 차원을 제시하고 있는 것.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기본이고, 투퀴디데스가 안내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정독해야 그리스 비극을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그런 길을 제시한다.

 

『역사』는 기본,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정독해야

사실, 그동안 우리의 그리스 역사에 대한 이해가, 아테나이를 중심으로 하고, 곁가지로 스파르테가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하는 정도였다는(정리하자면) 필자의 견해에 적극 공감한다. 1970년대 순수-참여 논쟁에 이어, 1980년대에는 당시의 민주화투쟁과 맞물려서 민중문학이나 노동문학이 화두었다. 한 편의 시보다 교문 앞에서 전경들과 대치할 때 던지는 짱돌 하나, 화염병 하나가 절실한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문학도가 '작품 그 자체'에만 집중하여(미국의 신비평) 읽고 논한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문학과 운동 사이에서 고민하는 대학생이 그러했고, 1980년대 대표시인으로 분류되는 현역 시인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극심한 고뇌의 세월을 보낸 그런 시기였다. 작품을 그것이 집필된 시기의 역사적·정치적 환경 관계에서 살피는 것이 화두였고 당연시되었음에도, 그리스 비극은 관심 밖의 영역에 있었고, 문득 작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작품이 생산된 배경과 관련하여 살피는 최혜영 교수의 저작을 만나, 만감이 교차한다고나 할까?

 

한 편의 시와 짱돌 하나와 작품 그 자체 80년대

그리스비극을 '작품 그 자체'에 집중하여 분석하고 그 장르의 위대함을 역설한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시학>)이고, <시학>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수사학> 천병희 번역 『수사학/시학』은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 비극을 이해하는 거의 당대의 '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번역가 천병희 선생의 몇 안 되는 저서 중 하나는 『그리스 비극의 이해』(문예출판사, 2002년 3월)다. 그가 독문학자이며 어느 영역보다 그리스비극이 '전문 분야'임을 확인할 수 있는 저작이다. 그리스 비극을 한국적인 정서에 입각하여 새롭게 해석한 책(연구) 하나를 꼽는다면 김상봉 교수의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한길사, 2003년 1월)다.

 

교수 천병희는 독문학자, 그리스 비극은 전문 분야

『일리아스』처럼 단도직입으로 시작하면 좋으련만, 이러한 (한국의 고전 읽기) 상황 때문에 최혜영의 『그리스비극 깊이 읽기』는 쉽지 않은 책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산물이다. 내용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관련된 비극 작품이나 역사와 신화 배경에 대해 본문에서 다뤄야 하므로, 비극 전집을 정독한 독자에게도 '새로운' 혹은 '생소한' 책이 되는 것, 관련하여 '깊이' 읽은 독자에게는 군더더기가 되는 이야기들도 포함해야 하는 의무가 얼마나 걸렸을까, 그러나 이러한 '작업' 또한 시대의 반영이다.

 

최혜영의 『그리스비극 깊이 읽기』, 사실은 개론서

이 글은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라는 훌륭한 책을 '깊이' 읽기 위해 전제된 사전독서의 지도라고나 할까? 어쨌든 그리스 비극 덕분에 인연을 맺은, 전남대 철학과의 김상봉 선생을 비롯, 사학과의 최혜영 교수까지 전남대학교는 드물게도 그리스 비극의 전문가 (최소한) 두 사람을 보유한 지방의 국립대학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