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립형 노인과 병약한 노인

 

<파과> 65세 조각.

45년 동안 방역업을 하며 홀로 사는 미혼의 독거노인이다.

오랫동안 일을 한 덕분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없이 살고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일을 하며 예전의 날렵하고 정확한 목표물 제거는 아니더라도 아직 녹슬지않은 솜씨를 자랑한다.

노인이라고는 하지만 혼자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기에 자존심도 강하고 남들에게 폐끼치는 일을 싫어한다. 네일숍에서 매니큐어를 바르는 등 자신의 외모 관리에도 게을리하지 않는 여자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70세 김병수. 

오랫동안 수의사를 하다 현역에서 은퇴하고 딸 은희와 함께 살고 있다.

수의사라는 전문직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은 치매라는 병으로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어 딸에게 의지하는 병약한 노인일 뿐이다. 하지만 딸이 남자를 만나고 결혼해 치매 걸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요양원에 보낼까봐 두렵다.

 

 

 

 

2. 살인자라고 다 악(惡)하지는 않다.

 

<파과>의 조각은 방역업이라고 부르는 '살인청부업'을 한다. 날카로운 칼을 사용해 상대방을 조용히 신속정확하게 살해하는 것이 조각의 주특기이다. 그런 그녀에게 '무용'이라는 개가 있다.

무용은 버려지고 병든 집없는 유기견이었다. 어느날 길에서 만난 무용을 집으로 데리고 와 함께 생활한다. 하지만 무용 역시 무척 나이들어 주인은 뛰며 반기지도 애교를 부리지도 않지만 조각은 그런 무용을 아낀다. 혹시 자신의 갑작스런 죽음에 무용이 누군가에게 잡혀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탈출하는 법을 가르친다. 개장수에게 잡히는 것보다는 다시 유기견이 되는 것이 낫다고. 

 

<살인의 기억법>의 김병수는 불교서적을 주로 읽는다. 부처의 말씀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 것 같다. 게다가 문화강좌에서 오랫동안 시 강좌를 들었다. 시를 읽고 쓰는 살인자?! 이것 역시 <파과>의 동물을 좋아하는 조각처럼 연상이 쉬운 것은 아니다. 김병수는 강사가 시를 잘 쓴다는 칭찬을 해도 아무렇지 않게 타고난 재능인양 칭찬을 넘긴다. 사실 김병수는 이미 지방 문예지에 자신의 시를 올린 적이 있는 문인이었다.

 

'시와 문장 때문인지 마음이 나약해지는 것만 같았다.' (살인자의 기억법. p.23)

 

시와 문학을 좋아하는데 완벽한 악인일까? 동물을 좋아하는데 악인일까?

 

 

3. 첫살인의 추억

 

<파과>의 조각은 가난한 집 딸이었다. 너무나 가난해 한 입이라도 줄일 생각으로 2층 양옥집 부자친척의 부엌일 할 도우미 겸 양딸로 보내진다. 부모님에 의해 공식적으로 버려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친척이라도 눈칫밥이란 것이 있고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조각은 당숙모가가 쥐어준 1만 환을 들고 집을 나온다. 배운 것도, 기술도, 갈곳도 없던 소녀는 미군 클럽의 주방일을 하지만 여기서도 불행은 끝나지 않는다. 자신을 덥치려는 미군을 죽인다. 자기 방어였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었다.

무서웠다. 소녀는 혼자인 자신이 파괴되는 것이 무서웠다. 아무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직접 보호한 것이다.

 

김병수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회상한다. 자신의 첫번째 살인을.

16살 첫번째로 아버지를 죽였다. 자신을 만들어준 아비를 말이다. 아버지는 전쟁의 탓인지 술만 마시면 어머니와 여동생을 두들겨 팼다. 수없이 그 모습을 봐 온 김병수는 어느날 아버지를 죽였다.

그가 아버지를 죽이는 동안 동생과 어머니는 아버지의 발버둥치는 다리를 잡고 있었다.

아버지를 죽인 후회나 반성은 없지만 어머니와 동생이 범행에 가담했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두 사람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어서 아버지를 죽였지만 같이 죽였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들었던 것이다.

 

   

4. 주변 인물

 

<파과>의 조각에게는 라이벌 같은 '투우'라는 젊은이가 있다. 매번 만나기만하면 조각의 신경을 긁는다. '늙은 할머니'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하지만 조각은 이미 많은 일을 겪었다. 그 정도 젊은이들의 치기어린 행동과 말은 달관한지 오래다. 나이듦에 생기는 지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투우는 조각에게 말을 거칠게하는 젊은이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일을 방해하는 느낌이 든다.

왜 일까?

 

<살인자의 기억법>의 김병수에게는 점점 깊어지는 치매 속에서도 딸 은희만은 기억하고 싶다.

그런데 귀한 딸 은희를 노리는 사냥꾼 '박주태'가 있다. 30년 경력의 살인자인 자신의 눈에 박주태는 분명히 '피'를 부르는 사람이었다. 그의 지프에서 피를 목격하기도 하고 자꾸 은희 주위를 맴도는 것 같다.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은 자식에 자신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딸이기도 한 은희를 죽이려고 한다. 딸을 구해야 한다. 잔인한 연쇄 살인마 박주태로부터. 

 

 

 

5. 살인자들, 그들이 말한다.

 

<파과>는 3인칭 작가 시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이다. 조각의 삶은 평범하진 않다.

65세의 살인청부업자인 직업 역시 사회적인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삶에서 그런 직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섬세함 묘사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조각이 처음으로 마주치게 되는 죽이는 청부업자가 아니라, 타인의 '가족'을 지켜주는 청부업자로 변신가는 과정의 심리묘사가 작가의 힘이라고 느껴질 만큼 탁월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주인공 김병수가 자신의 회고록이나 일기같은 이야기 를 서술하고 있다. 매일 사라져가는 기억들을 기억하기  위해 메모를 시작하고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치부까지도, 살인의 방법까지도 적어둔다. 잊지 않기 위해.

그렇기에 아주 솔직하다. 딸을 쫒아다니는 박주태를 죽이겠다는 살인 계획도 메모장에 기록한다.

나중엔 좀 전의 기억도 할 수 없어 녹음기로 다음에 할 일을 녹음을 해 일을 진행한다.

점점 쇠약해지는 자신의 기억에 믿을 것이라고는 메모하고 녹음하는 일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김병수의 시각에서 모든 사건을 바라보고, 그처럼 그렇게 믿기 때문에 마지막 페이지의 반전이 더 놀라운 것이다.

 

 

 

6. 영화로 비유하자면.....

 

<파과>의 조각의 성격과 활동력을 보면 30년 후의 '니키타'가 아닐까 싶다.

총으로 싸우는 니키타만큼은 아니지만 조각은 충분히 액션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기억을 잃어간다는 설정에 '메멘토'라는 영화가 연상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마지막의 반전을 생각한다면 역시 '유주얼 서스펙트'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인상 깊은 한마디

 

<파과> 그러니까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

 

<살인자의 기억법>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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