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이토록 지리멸렬해진 것을 모두 다 어머니에게 떠넘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원인을 분석한다고 때로는 문제가 있는 가정에, 혹은 사회에, 아니면 제도에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가끔 그런 분석들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자신의 방종을 정당화하려는 젊은 애들을 만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의 교활함을 참을 수 없어한다. 특히 열대여섯 되는 어린애들이 텅 빈 머리고 앵무새처럼 그런 핑계를 대고 있으면 뺨이라도 한 대 올려붙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야 한다. 영악함만 있고 자존심은 없는 인간들. - P21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 P22

엄마가 받을 상처를 염려했다기보다 내가 한 일에 대해 변명할 수 있는 말을 찾아내지 못해서였다. - P37

진모가 나 못지않은, 아니 나를 훨씬 능가하는 문제아로 청소년기를 보내는 동안에도 나는 그 애의 삶에 참견하지 않았다. 진모의 삶은 진모의 것이었고 진진이의 삶은 진진이의 것이었다.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삶의 공식인가 말이다. - P51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부득불 해가면서 살아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이었다. - P75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어.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우리들 머릿속을 오고 가는 생각, 그것을 제외하고 나면 무엇으로 살았다는 증거를 삼을 수 있을까. 우리들 삶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것이 아버지가 가르쳐준 중요한 진리였어. 아버지가 잘못한 게 있다면 너무 많이 생각했다는 것이지. 자기 용량을 초과해버린 거야. 그러면 곤란하다는 것도 우리 아버지가 내게 남긴 교훈이고.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이 한평생 살고도 못 가르쳐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어. 그것으로 이미 우리 아버지는 자식한테 해줘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봐." - P177

그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이제 내 이종사촌들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나와 그들 사이에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는 것을. 그러나 그 많은 시간들이 우리들 사이의 소통을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나는 절실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 P178

사랑이란,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으르 들여다보지 않고 무심히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다. 자신의 얼굴에 대해 생애 처음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나. 자신의 눈과 코와 입을 그윽하게 들여다보는 나. 한없이 들여다보는 나.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해준 그가 고맙다고. 사랑하지 않고 스쳐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준 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 - P210

이모는 자신의 코트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내 손을 꽉 쥐었다. 나는 이모를 많이 닮았지만 그러나 이모의 딸은 아니었다. 내가 이모의 딸로 태어났다면 나도 주리처럼 답답하고 재미없는 인간으로 성장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세상의 숨겨진 진실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것은 마치 평생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 있었다. - P227

아버지는 시체처럼 잠들어있었다. 호흡이 아니라면 살아있다 말할 만한 어떤 활기도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말이 맞았다. 무참하게 무너진 이 노인은 내 아버지가 아니었다. 몇 달에 한 번, 혹은 몇 년에 한 번 집에 돌아오던 아버지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슬픈 일몰의 시간에 어둠을 등에 지고 들어오던 아버지의 쓸쓸한 귀가는, 그 풍경 속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매혹이 있었다. 저녁 바람에 날리던 검은 머리칼, 깊숙한 곳에서 형형하게 빛나고 있는 검은 눈동자, 구겨진 바지 주름 사이에 숨어있다 아버지가 움직일 때마다 아슴아슴 풍겨져 나오던 저 먼 곳의 냄새…. - P261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안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 P296

새삼스런 강조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 P3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외조부가 없는 고향은 낯선 언어로 듣는 익숙한 노래처럼 어색하고 괴기스러웠다. 외조부가 지키지 않는 고향은 더는 본향이라 할 수 없었다. 순간 깨달았다. 인간의 귀소본능이란 태어난 장소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어하는 그리움이라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의 감각
조수용 지음 / B Media Company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 만남부터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합니다. 이럴 때 마음을 살짝 다르게 먹어보면 어떨까요? 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새로운 발견’에 관심을 가져보는 거죠. 관심 없거나 힘든 일도 일단 해본 뒤 스스로 몰어보는 겁니다. ‘그럼에도 재밌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그게 뭐였을까?’

내가 해야 할 일이 정해지면,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그 주변을 계속 맴돌며, 좋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든 좋아해보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감각의 시작입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서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하나씩 골라내면, 점점 내가 만들고 싶은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결국 선택하지 않아야 할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 그게 감각입니다.

감각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따라서 직군에 따라 필요 유무가 결정되는 능력이 아닙니다.
감각은 모두에게 꼭 필요합니다. 단, 실행하고 싶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는 일보다 안 해도 될 일을 찾아내는 감각이 더 중요합니다.

디자인 전문성이 있어야만, 심리학을 공부해야만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말 그대로 상식, 즉 커먼센스가 있어야 합니다. 기획은 정성이 있다면 전공과 무관하게 누구나 할 수 있고,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나와 타인의 경험에 대한 깊고 세심한 관심입니다.

전문가는 없다.

제가 일을 할 때 직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이런 겁니다. 이 일은 왜 하는 건가요? 안 해도 되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뭐 하는 회사인가요? 이걸 하면 수익이 생기나요? 어느 조직에서든 제게 회의 시간이란 이런 질문을 하고 거기에 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역할은 업의 본질에 대해 반복해서 묻는 질문자였습니다.

의뢰받는 요청을 기반으로 시안을 디자인하고 의뢰한 사람을 만족시키는 게 디자이너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뢰를 받았을 때 "이게 이 사업에 어던 의미가 있죠?"라고 물을 수 있어야 기획자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을 늘 했기에 저는 디자이너임에도 여러 기획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은 브랜드가 큰 브랜드를 지향하는 경우 또한 많습니다.

일본의 발뮤다라는 생활가전 브랜드를 보겠습니다. 발뮤다 주력 제품은 대기업이 시장에서 철수해 중소기업들만 만들고 있는 선풍기와 토스터였습니다. 하지만 그 뻔한 선풍기, 토스터라도 마음먹고 진심으로 만들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바람을 일으키는 스크류를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만든다든지, 토스터에 물을 조금 넣어 죽은 빵을 살려내는 발상을 한 게 대단한 게 아니라,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릴 만큼 계속 생각하고 발전시킨 그 ‘진심’이 대단한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등교거부 심리치료 - 하루 여섯 번의 인사
성태훈 지음 / 학지사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들이 클수록 신체적, 지적, 사회적 발달로 인해 어머님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게 많아집니다.

부모님의 걱정이나 가치관 때문에 아이가 야생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야생을 경험해야 하는 이유는 스스로 선택하고, 이렇게 선택한 것에 대한 성공이나 실패를 경험해야 객관적, 현실적, 관습적 판단을 체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 어머님은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회적인 규범, 남들의 시선, 어머님의 욕심 등이 아이의 자발적인 활동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반대로 어머님이 아이의 자발성을 수용하는만큼 아이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커질 것입니다. - P139

욕구를 수용해주는 방법은 하겠다는 것은 하게끔 도와주고, 안 하겠다는 것은 안 할 수 있도록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 P1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등교거부 심리치료 - 하루 여섯 번의 인사
성태훈 지음 / 학지사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싸움은 마음이 불편할 때 하는 행동이다. 화가 많이 나고, 그 화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공격 행동을 한다 - P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