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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이상한 나라의 아이돌 - 상품으로 소모되는 아이들에 대하여
전다현 지음 / 김영사 / 2025년 9월
평점 :
얼마 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임윤찬 씨의 인터뷰를 접했다. 어린 나이에 두각을 드러내자, 자본과 힘을 가진 이들까지 얽혀들며 불필요한 압력이 생겨났고 그 시절이 매우 고통스러웠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을 지킬 힘이 없는 이들의 재능이 그것을 이용하려는 이들에 의해 착취되는, 한국의 예술 산업의 폭력적인 이면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사회가 그렇지 뭐." 라며 외면할 수도 있지만, 이는 아동을 도구화하는, 엄연한 시스템의 폭력이다. 그리고 이같은 아동 인권 침해가 관행처럼 만연한 업계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세계가 열광하는, 케이팝 산업이다.
이제 케이팝은 전 세계가 함께 즐기는 세계적 대중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 찬란한 성과 이면에는 학업과 일상을 포기하고, 감정까지 통제당하며 '상품'으로 길러지는 아이들이 있다.
"케이팝, 이대로 괜찮을까?"(p.10)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본 책은 연습생, 아이돌, 프로듀서, 기획사 대표, 팬덤, 변호사, 국회의원 등 케이팝 산업 내외부의 목소리를 다각도로 담아낸 르포르타주다. 이 40여명의 인터뷰를 통해 케이팝 업계 내 모순과 부조리를 한장한장 넘겨읽다보면, 케이팝 산업 속에 갇힌 이들의 삶과 이를 악용하는 업계 내부의 모습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잇다.
'무엇을 낱낱이 보여주는가?'라고 묻는다면 이런 것들이다.
현행법상 미성년자 아이들을 보호할 대책이 없는 한국의 현상황과 "노동법 차원에서 말이 안되는"(p. 88 한빛미디어 노동인권센터 센터장님의 표현) 이런 상황에도 어찌할 방도가 없기에 계약을 이행하는 아이들. 이 기울어진 계약을 빌미로 '증빙 자료'조차 제공하지 않는 회사와 "멤버 1인이 1분기(3개월)에 마신 물값만 600만원"(p.106)으로 책정되어 있던 기가 막히는 정산 방식에도 항의할 수 없는 아이돌.
생생하게 와닿는 업계의 모습을 그려보며 저자분께서 땀 꽤나 흘리며 취재하셨겠다... 하는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면 모르겠지만, 미국인들은 신체적 요구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미국인들은 권위에 맞서는 것에 익숙하고 그런 훈련을 견딜 만한 인내심이 없다고 생각해요. 돈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p.165-, 다큐 작가 헤더 콕스(Heather Cox)
물론 본 책은 현 상황을 진단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세계로 뻗어나간 케이팝에 대한 해외의 시선과 끝끝내 닿게 된 대안까지, 깝깝한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그 다음'을 질문하며 성큼성큼 나아간다. 책의 말미에서는 스웨덴, 일본등 해외 사례와 국내의 시도를 함께 탐색하며 더 나은 구조를 함께 그려본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1장. 아이돌을 꿈꾸다 병드는 아이들의 후반부에 나오는 '혜인'의 인터뷰였다.
스무 살 친구들도 본인이 '늙었다'는 생각을 가져요. 아이들은 10대부터 패배감에 절여지고요. ...(중략)...왜 당연히 희생을 바라고 모든 것을 참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위 문장은 비단 아이돌 혹은 연습생들만이 아닌, 한국의 모든 청소년들이 공감할 내용일 것이다. 물론 정도와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청소년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훼손하는 행위는 '학구열'이란 단어로 포장된 채 지속적으로 자행되어왔으니까. 즉, 한국의 아동들은 누구나 희생이나 노력에 대한 자기검열적 압박을 감당해왔다. 이 인터뷰를 읽으며 케이팝 산업의 아동 인권이 쉬이 보장될 수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본 책을 덮으며 기분이 좀 나아졌다. 현 상태가 깝깝하다해도 그게 나아감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이돌을 꿈꾸는 자녀가 있다면, 혹은 아이돌 산업 내부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던 이들이라면, 일독을 추천한다. 아주 잠깐이나마 '돈의 논리'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들여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본 책에는 '표준계약서 독소조항 파헤치기'라는 부록이 있다. 연습생, 아이돌이 계약시 유의해야할 사항을 요약정리해둔 파트라 당사자들에겐 나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희망을 걸어본다.
** 출판사를 통해 제공받은 책입니다. <서평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