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전쟁 패닉룸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임종기 옮김 / 책세상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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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 (외계인) SF 고전. 다소 밋밋한 스토리라인을 생생한 묘사로 극복하다.
(재미-중, 난도-중하)

3번째로 만나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1부에서는 화성인의 등장과 침공, 대피하는 사람들과 대응하는 군인들을, 2부에서는 동떨어진 화자의 모험과 화성인 관찰을 보여준다. 1부와 2부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기념비적인 고전 SF 임을 감안해야겠지만, 스토리 상의 기발함이나 반전은 없는 다소 밋밋한 플롯의 이야기다. (장르적 특이성을 감안해야 할까?)
또 초반부에서 화성인과 주변 환경과 관련된 묘사를 할 때의 깔끔하지 않은 문체는 가독성을 방해한다. (번역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오타가 꽤 많다.)
독자에 따라 다소 김빠지는 결말로 느낄 수 있겠지만, 이야기 자체가 평범한 시민 시점에서만 전개되기 때문에, 이야기의 완성도에 그다지 큰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 정부 또는 전지적 관점에서 이런 결말을 냈다면 그야말로 허접 엔딩이겠지만.

(1부에서 특히) 실감 나는 묘사로 상황의 심각성과 긴박하고 절망적인 분위기가 절절하게 느껴진다. 약간의 호기심과 궁금증 이후, 절박함과 패닉에 빠져 대피하는 사람들의 심경이 다양한 묘사를 통해 독자에게 전해진다. 영국이 화성인에게 파괴되고 점령되는 한편, 영국군이 화성인을 저지하려고 하는 모습에서는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다.
짧은 호흡의 챕터 역시 장점이다. 또 화자의 생각과 여러 인물(목사, 포병 등)의 말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은유적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의 감정을 초월한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우리의 지배를 받는 불쌍한 짐승들만이 잘 이해할 수 있을법한 감정 같았다. 토끼가 자신의 은신처인 굴로 돌아왔을 때 십여 명의 인부가 집터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자신의 은신처를 파헤치는 상황에 직면한 느낌이었다. 며칠 동안 나를 억눌렀던 한 가지 생각이 당장 내 마음 속에서 명확해졌음을 처음으로 느꼈다. 찬탈당한 기분, 나는 더 이상 주인이 아니라 화성인의 발 아래 있는 동물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제 인간도 우리가 지배해왔던 동물처럼 숨어서 이리저리 살피고 도망가고 숨어버리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동물의 인간에 대한 공포와 인간 제국은 사라진 것이다. (248~249)

시대적 상황을 무시하면 특이점이 없는 SF 소설이겠지만, 이 작품의 의의와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다. 단순하고 깔끔한 구성으로, 외계인의 침공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다.
에일리언 아포칼립스의 시초가 되는 소설이라고 하던데, 만약 화성인들이 지구를 계속 점령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면, 화성인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가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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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박에스더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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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 충분히 공감하며 읽었다. 10여 년 전의 한국과 비교하는 의외의 재미가 있음.
(공감-상, 난도-하)

한국의 교육제도에 지쳐있던 고등학생 때, 한국을 벗어나고 싶어 하던 막연한 마음을 가지고 샀던 책을 이제야 펼쳐들었다. (사놓고 귀찮아서 안 읽다가, 가볍게 읽어볼 책을 찾다가 집어 들었다.)

저자가 느끼고 생각해오던 한국의 문제점, 불합리함 등을 저자의 생각과 함께 보여준다.
2012년에 출간된 책으로 10년도 더 지난 2023년에, 다수의 파트에서 공감하며 읽었다. 물론 시간이 흐른 만큼, 더 개방적&수평적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2023년의 내가 수긍하고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다는 건, 과거의 경험과 작금의 사회생활에서 핵심적인 긍정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총 다섯 파트에서 한국의 권위주의 사회, 무한경쟁 서열주의 사회, 집단주의,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성sex에 대한 저자의 경험과 실사례를 중심으로, 문제점과 원인을 분석하고 나름의 해결책과 대안을 제시한다.

개중 두 번째 파트 <장미는 백합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뼈저리게 공감하며 읽느라 지쳐버렸다.
그나마 패션, 학력 등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과거를, 요 근래에 들어 후회하고 자책했던 나에게, 한국의 무한경쟁과 서열주의, 줄 세우기, 비교, 배타주의에 관한 글은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현재, 2012년에 비해 제도적으로는 문제점을 보완했더라도, 여전히 사회문화적으로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실감했다.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이기주의로 뭉친 배타주의에 대한 글이 특히 그랬다.
(그 외에도 보여주기식 의전, 여전히 두문불출하는 장애인 등도 10여 년 전에 비해서 크게 바뀐 것 같지 않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과 해결책은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정공법에 가깝다. 대체로 맞는 말이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책의 취지가 방법 제시가 아니기 때문에, 각 파트의 맺음으로 적절하다.

과연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당시 따끈따끈하던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때의 분위기와 공감대는 어땠을까? 궁금하다.
10여 년 전에도 비슷했던 한국 사회의 여전한 장애와 엉켜있는 문제를 되돌아본 기분이다. 그래도 각종 계층 간의 극심한 갈등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조금이나마 개선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 2011년 출산율 1.23명에서 2023년 반기 기준 0.7명이 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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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땅콩문고
이원석 지음 / 유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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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 ‘서평‘에 대하여 알아가는 것에 의의를. 서평 쓰는 법에 대해서 세세하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유익-중하, 난도-중)

2020년을 기점으로 독후 활동, 즉 리뷰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읽기에 쏠려있던 무게중심을 글쓰기로 조금이나마 당겨왔다. 매번 리뷰 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지만 어찌어찌 시간을 들이면서 써오다가, 이번 기회에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보고자 이렇게 ‘서평‘ 관련 도서를 집어 들었다.

초장부터 독후감과 서평의 차이를 설명해 주는데, 나의 리뷰는 지금껏 둘의 차이를 무시하고 있었다. 굳이 비중을 따져보자면, 독후감의 비중이 더 컸다. (독후감 - 정서적, 내향적, 일방적 / 서평 - 논리적, 외향적, 관계적)
애초에 내가 남기는 리뷰의 목적이, 리뷰를 보고 해당 도서를 기억하고 당시의 감상을 언제든 다시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다른 감상자들과 감상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즉, 서평의 대상인 잠재 독자보다는, 이미 책을 읽은 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독후감이 아닌 서평을 쓸 용의가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장르에 따라 다르겠지만 선뜻 그렇다고 답하지는 못하겠다. (특히 문학에서는 더 그렇다.)
서평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저자가 서평 쓰기에 대한 목적, 요소, 방법 등 전반적인 설명은 해주지만, <서평 쓰는 법>을 하나하나 떠먹여주지는 않는다.
게다가 문학 서평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는 않는데, 문학이 메인인 내 리뷰에서는 ‘저자가 말하는 서평이 과연 쉽게 가능할까?‘하는 의문이 든다. (스포와 감상을 배제하고) 잠재 독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서평을 쓴다면, 지금까지의 내 리뷰의 목적, ‘리뷰를 읽고서 이전의 감상을 상기하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렇다. 아직 잘 모르겠다. 요약을 토대로 하여 평가하는 서평에 대해서, 좀 더 찾아보고 공부해 봐야겠다.
이 책이 나의 리뷰 라이프에 터닝 포인트가 되지는 못 했다.
해당 도서를 통해서는 서평이 무엇인지에 대해 감을 잡은 걸로 만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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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풍신수길 - 상
시바 료타로 지음, 권순만 옮김 / 에디터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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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 미천한 원숭이의 출세를 지켜보는 것이 이렇게나 명랑하고 재미있을 일인가?
시바의 글에는 캐릭터를 애정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재미-상, 난도-중)

원제 <신사태합기>.
태합, 즉 다이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인물 역사소설이다.
상권에서는, 히데요시의 어린 시절부터 오다 노부나가 휘하의 마쓰나가 히사히데가 난을 일으키기 전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제껏 히데요시가 오다 밑에서 성장하다가 혼노지의 변을 계기로 천하인이 되는 인물 정도로 간단하게 알고 있었는데, 이 소설을 통해 그의 인물 됨됨이와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참 재미있다.

작중에서 한동안 ‘원숭이‘로 불리는 히데요시는 참으로 매력적인 위인이다.
누가 봐도 못난 원숭이 외모를 천의 얼굴로 극복하여 오히려 매력으로 바꿔버리고, 인간의 속내와 성향을 파악하여 맞춤 대응하는 능력을 토대로 뛰어난 연기력과 교묘한 연출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휘잡아버린다. 게다가 천성적으로 밝고 명랑한 성격에 영리함과 예지력,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과 재미난 입담과 포기하거나 주눅 들지 않는 끈기까지, 실로 엄청난 실력자이다.
미천한 출신으로 일본 곳곳을 방랑하며 고생하다가 오와리로 돌아온 이후, 오다 노부나가의 눈에 띄어 성심성의껏 그를 모시며 출세 길을 달리게 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드라마틱 하다. 히데요시의 성격 자체가 밝다 보니, 이야기 자체도 명랑하고 재기 넘친다. 잡일을 맡아하는 심부름꾼에서 오다 오대장 중 한 명이 되어 맹활약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이 여간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나라 훔친 이야기>의 사이토 도산의 입신양명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모시기 힘들기로 소문난 주인 ‘오다 노부나가‘의 밑에서도, 원숭이는 견디고 인내하며, ‘도구‘로서의 역할을 최고로 잘하며 출세한다. 다른 지역에서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과 오다 가문에서 누리는 풍족함과 권력을 생각하며, 노부나가의 변덕과 폭력을 참아낸다.
그렇게 인정받으며 입지를 쌓아오던 그에게도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타고난 신체적 조건으로 인해 이렇다 할 무공이 없다는 것. 하지만 이조차도 오다 군軍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자처하여 군의 후미를 맡아 적의 추격을 막아내며 위기를 이겨낸 것이다. (가네가사키 전투) 이를 기점으로 무사로도 인정을 확실히 받아내는 결단력과 용기까지 완벽하다.
능력과 인품으로 여러 불량배 집단의 대장 하치스카 고로쿠(마사카쓰), 미노의 전략가 다케나카 한베에 등 걸출한 인물들도 휘하에 두게 된다.
(이 정도 되면,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그의 호색한은 흠도 아니다.)

현시대에 태어났어도 출세 길을 마구마구 달릴 것 같은 명랑한 원숭이의 이야기를, 일본의 국민 작가 ‘시바 료타로‘ 특유의 달필로 읽으니 감칠맛이 난다. 시바 료타로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주요 등장인물에게 애정을 가지게 만드는 서사적 힘이 있다.
하권에서 히데요시가 우두머리가 되어 천하인을 차지하는 모습을 어서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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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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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 짧고 쉽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초단편소설 모음집. 작가 특유의 정겨운 맛이 편안하고 구수하다.
(재미-중상, 난도-하)

이걸로 성석제 작가의 소설을 3번째로 접한다.
초단편소설 모음집이다. 그런 만큼 깔아뒀던 복선을 회수하거나 차근차근 빌드 업을 하지는 않는다. 특정 상황 속에서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성석제 스타일의 재담으로 풀어낸다.
그의 스타일이 익숙하지 않다면, ‘이게 무슨 힘 빠지는 이야기냐?‘ 하며 허탈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특유의 정감 가고 친숙하고 일상적인 배경과 이야기가 소소한 즐거움과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준다.

총 55편의 단편들의 맛은 다양하다.
밍밍한 맛, 싱거운 맛, 허무한 맛, 말장난 맛 속에, 웃긴 맛, 따뜻한 맛, 추억의 맛 등 알짜배기 이야기들도 있다.
특별히 좋았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특별히 멋을 내다> 등장인물의 이름부터 재밌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까지 ㅋㅋㅋ
<우리들의 신부님> 이 이야기도 진심 웃김 ㅋㅋㅋㅋ 현실성 있어서 더 웃겨
<와줘서 가상하구나> 감동의 맛..
<정류장> 정이 가는 이야기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

자극적인 미디어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이런 밋밋한 이야기가 이렇게 매력 있을 수 있다니.
(욕 아니고 칭찬임. 얼마 전에 읽었던 <지구별 인간>을 마라탕에 비유한다면, 이 소설집은 보리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읽기도 쉽고, 마음도 편하고, 나름 재미도 있다.
이 책과 더불어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와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 세트처럼 출간됐던데, 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가벼워서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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