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벤투라와 아홉 번째 왕국
실비아 플라스 지음, 진은영 옮김 / 미디어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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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를 기대하며 아주 가볍게 읽고 싶어서 빌린 얇은 책.
상징이 아주 많은, 상징으로 이루어진 단편소설이다. 하지만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소설이다.

메리는 부모님이 끊어준 기차를 타고 아홉 번째 왕국으로 향한다. 옆자리 여자와 음료도 마시고 초코바를 먹으며 기차 여행에 만족하는 것도 잠시, 옆자리 여자의 말에서 이상을 감지하고 기차 여행을 포기하려고 하지만 방법이 없어 보인다. ‘비상 정차줄‘을 생각해낸 메리는 옆자리 여자의 조언에 따라 기차를 멈추고 일곱 번째 왕국에서 내리고 도망간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필시 뭔가를 상징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다시 훑어본 지금 이야기 속의 모든 것이 상징을 나타내는 듯싶다.
아래는 나 나름대로의 해석이니 참고만 하기 바란다.

기차는 무의식적으로 강요되는, 옳게 여겨진 생활방식과 인생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래서 왕복이 아닌 편도이다. 다시 되돌아올 수 없다.)
호텔처럼 호화롭고 좋은 시설과 서비스는 멋진 기차 여행과 도착지를 약속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네가 비용을 낸다는 걸 명심하렴. 네가 마지막에 전부 다 계산하는 거야. 여행을 매혹적으로 만드는 게 그들의 일이고. 철도 회사는 승객들에게 순수하게 호의적인 관심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란다.˝ (37쪽)
기차의 승객들도 저항하지 않고, 눈이 먼 것만 같다.
남들 사는 대로 시스템의 부품으로 살아가며,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는 무덤덤해지는 그런 인생으로 가는 길에서 메리는 과감하게 뛰어내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뛰어서 도망간다. 거미줄에 뺨이 따끔거리고, 뱀이 발목을 휘감더라도 어둡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간다. 그리고 햇살이 내리쬐는 아름다운 공원에 다다른다.
(옆자리 여자와 보스라는 존재, 중도 하차하는 승객 등은 무엇을 나타내는지 잘 모르겠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지? 기차를 타고 가고 있나? 어떤 모습이지? 기차에서의 안락함에 안일해져있나? 메리처럼 기차에서 내릴 수 있는 용기는 있을까?

모르겠다. 만약 지금 이 기차에서 내린다고 해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많고 많은 승객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 같기도 해서 서글퍼지려고 한다. 앞으로의 내 인생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작가는 20살에 이 소설을 썼고, 11년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옮긴이의 말마따나 원치 않는 목적지로 가는 기차에서 스스로 내렸다.

짧고 단순하지만, 무척이나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수다쟁이 이야기꾼 킹의 좋은 소설을 읽은 직후에, 순식간에 치고 빠지는 강력한 잽을 맞으니 띵-하다.
작가의 상징적인 표현이 현실에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타고 있는 기차와 목적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p. s. 훌륭한 책이긴 한데.. 100쪽도 안되는 얇은 책이 12000원인 건 좀 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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