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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으로 승부하라
박종원 지음 / 웅진윙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난 이벤트를 참 좋아한다. 연애에 있어서도 일에 있어서도. 나의 모든 삶에서 이벤트는 활력소이다.
물론, 기념일따위의 특별한 이벤트도 중요하겠지만 하루하루를 이벤트 데이처럼 살자는 게 언제부터 나의 슬로건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나처럼 이벤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었다. 그는 나와 반대의 성을 가졌고, 나보다 연령도 훨씬 많다. 하지만 그가 지닌 열정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 아니, 변화를 즐기는 그의 마음만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리라 확신한다.
그의 이름은 박종원...코리안리의 CEO라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아니 언제부터라고도 할것도 없이 태곳적부터 리더에겐 필요한 덕목이 있다.
바로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이다. 변화라는 말은 '창조', '체질개선', '역발상', '실패의 재활용', ' 변신', '혁신'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기도 한다.
물론, 변화를 제아무리 지향한다 하더라도 '사랑'이나 '우정', '믿음', '신뢰' 처럼 인생을 걸고 추구해야 할 영원불변의 가치는 있는 법이다. 바로 이런 영원불변의 가치는 지키되 변화에 적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코리안리의 박종원 CEO가 말하는 '야성'이다. 그는 '안주하지 않는 삶'과 '변하지 않는 가치'를 야성이라는 덕목으로 한데 묶어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며 기본으로 삼아 왔다.
그랬기에 낙하산 CEO로 시작하였지만 5년 연임을 할 수 있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흔히 야성하면 자칫 '짐승남' 혹은 '섹시'한 면만 - 전체 중 일면만 부각되어 곡해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나역시 적잖아 그런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균형잡힌 야성을 접하게 된다면 야성이야말로 생존을 위한 그리고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리더십의 덕목 No.1임을 알게 될것이다.
지나친 우울증, 자신감 결여도 문제지만...지나친 우월감, 자신감도 조증과 난관에 부딪히면 한없이 움츠러들어 한 발짝도 못 나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바로 균형감이다. 나는 이것을 중용과는 약간 다른 균형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어찌되었간 부정적인 마음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우리의 인생에 있어 더 많은 성과와 성공을 부른다.
리더로서, 수장으로서, 일을 하다보면 원칙을 지키자니 너무 냉정하거나 혹은 너무 꽉 막힌 쏘세지 같은 사람이라고 소리를 듣고, 좋은 게 좋은거다라며 예외를 자주 적용하다 보면 너무 물렁한 사람이 되고 만다.(내가 바로 이런 물렁한 수장이다.) 이럴때일수록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그는 원칙 구분법과 '수건과 걸레'에 비교했다.
누구나 얼굴 닦는 수건과 방바닥 닦는 걸레를 구분할 줄 안다. 아무리 닦을 것이 없다하더라도 걸레로 얼굴을 닦는 이는 없다. 하지만 수건으로 한 번 방바닥을 닦고 나면 그 수건은 더 이상 수건이 될 수 없다. 걸레가 되고 마는 것이다. 만약 원칙 지키기가 어렵다면 '수건과 걸레'를 혼동하지 않는 법만 알면 될 거 같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난 좀 물렁한 편이다. 나 나름대로의 핑계를 대어 보지만 그 물렁함이 참 고쳐지지 않는다. 그렇게 많이 직원들에게 당하면서도(?)...당한다는 표현이 참 우습겠지만...
항상 난 나그네의 옷을 벗게 만드는 것은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라 생각했는데, 나의 이 핑계는 날 물렁한 원장으로 보여지게 했던 거 같다.
그 햇볕정책을 과장한 물렁함이 직원들의 패기만을 보았고, 최선만을 보았다. 물론, '패기'와 '최선'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진정한 프로라면 '실력'과 '완벽'을 더 필요로 한다.
이것 또한 성과를 중시하는 결과 지향주의라 탓하겠지만....이젠 나도 '패기'보다는 '실력'을 '최선'보다는 '완벽'을 쫓고 싶다.
새벽 직전이 가장 어둡고 춥기 마련이다. 여고시절 시인 출신이였던 교장선생님은 우리 학교 축제 슬로건으로 자주 사용하신 말씀이 있다. '어둡고 어두워야 한다. 별이 더 밝게 빛나려면~'
어쩜 지금 내가 처한 사항이 - 우리 학원이 이런 새벽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무릎을 꿇을 것인가? 아니면 분발하여 둟고 나가 눈부신 아침 햇살을 볼 것인가?
그동안 믿고 의지했던 두 팀장을 내 손으로 아웃시켜야 한다. 그리고 채 6개월도 되지않은 신입들 4명만을 데리고 올 하반기를 항해해야 한다.
전년도 대비 이제 겨우 조금씩 성장을 하고 있는데.....난 내리는 비에 온몸을 적셔보려 한다. 나의 한계가 여기까지라면 그 한계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변화는 어렵다. 그러나 어렵다고서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가 결정에 직면했을 때 답은 크게 셋 중 하나이다. 하거나, 말거나, 미루거나.
하거나, 말거나가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면 미루거나는 내 삶을 나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이 세가지를 적절히 믹스하여 사용한다. 하지만 세번째 보다는 하거나, 혹은 말거나가 더 의미있는 행동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직장이란 곳이 어차피 돈을 벌기위한 - 생계를 위한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모인 이익집단이고 목적집단이다. 물론, 이런 직장속에서 동료애나 애사심을 키우기도 하고 자기계발을 통한 꿈의 실현을 얻기도 한다.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모여 일을 하는 곳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이렇게 우리 기적처럼 모인 직장속에서 매일 매일을 이벤트처럼 축제의 장을 마련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