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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ㅣ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독서에도 여러 가지 목적이 있다. 선물이나 리뷰 부탁을 받아서 읽어야하는 책이 있고, 베스트 셀러이거나 읽고 싶었던 책이라 읽게 되는 책이 있고, 필요에 의해서 꼭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 즉, 뚜렷한 목표가 있는 책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부류는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간혹 득템(울 학생들한테 배운 말이다)을 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 책이 그러하다.
이번학기 [미술평론 세미나]라는 과목을 공부하면서 미술 비평을 접하게 되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술사를 좀 알아야 겠다는 목적아래 클릭해서 장바구니에 담았던 책이다. 근데 완전 기대이상이다.
물론, 미용문화사든 복식사든 항상 사회적 & 정치적 배경을 중심으로 해서 씌여지기에 비슷한 맥락이라서 좀 더 이해되고 쉽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지만 저자 진중권교수의 미학자로서의 시선이 독자로 하여금 술술 넘어가게 하는게 아닐까 싶다. 어려운 것도 쉽게 잘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진정한 고수라면, 진중권 교수는 진정 고수^^
비평을 우리는 미술사(미술 사조)나 미학이라고 오해를 하기도 하고 어렵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하지만(비평가 그린버그는 안티가 많은 비평가이다. 아마도 그의 어렵기도 하고 직설적이다 못해 독설적이기까지 한 그의 표현의 이유겠지만 어쨌든 그는 미술비평의 새로운 장, 미술비평계의 모세가 맞았다) 이 책을 한 번 읽어둔다면 문제 없을거 같다. 물론, 읽다보면 생소한 단어나 헷갈리는 단어가 나오지만 요번 기회에 검색을 해서 알아보면 지식도 늘어나고 이래저래 꿩먹고 알먹고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출발하여 신이 모든 것의 주인이였던 중세, 다시 고대를 그리워하며 인간을 부르짖었던 로마, 그리고 다시 바로크와 로코코...그리고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그리고 이제는 인간 스스로 신을 닮기를 거부한 - 철저하게 신인동성동형설을 거부하는 모더니즘 그리고, 후기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까지 마치 한 편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손주녀석들처럼 책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같은 고대라 하더라도 그리스와 로마의 시선 차이는 아주 컸다. 보이는대로 사진처럼 아주 사실적으로 (그러니깐, 객관적 비례) 표현한 그리스와 디자인에 가까운 구성적이고 추상적인 있는대로(제작적 비례)에 준하여 표현한 이집트.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영원불멸의 내세를 믿었던 이집트보다도 신에 가까워 지려고 흰피부와 금발의 머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리스..영화 300에서도 우리들의 안구 정화에 도움이 되었던 완벽한 식스팩이 저절로 만들어진게 아니었다. 젊은 청년들은 실제로 일주일에 한번씨 군살 검사를 받고 식사조절을 했다고 한다.
형을 중시했던 그리스라면 형보다는 질과 빛을 중시했던 중세는 현세를 바라보던 그리스인들보다는 내세를 바라보던 이집트인들에 맞춰져 있었다. 그들은 완벽한 비례가 아름다운 이유조차도 그 바탕에 초감각적인 빛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 했다. 그래서 일까? 중세 건축물을 보라. 특히 교회나 성당을 보면 유색유리창이 꼭 있다. 이 창문을 통해서 신의 가르침이 들어온다고 믿었기에, 황금빛을 내기위해서는 실제로 황금을 써야했다.
중세는 내세와 현세 두 겹으로 이루어졌으나 루터의 종교개혁이후 중세는 더 이상 두 겹이 아니었다. 이젠 한 겹이였다. 내세보다는 현세에 촛점이 맞춰지고 신에 대한 관심이 인간에게로 돌아왔다.
이렇게 르네상스는 고대의 답습, 모방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산업의 발달도 간과할 수 없는 이슈이지만~
지적 교양을 갖춘 화가들이 이제는 그들의 작품에 이론적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알베르티의 <회화론>이 그 실례이며, 기능공이자 장인에 불과했던 화가들은 어느새 교양인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시인들의 눈에는 화가들의 신분상승이 마뜩지 않았기에 그림을 말없는 시라 폄하했고, 이에 미술 거장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시를 눈먼 그림이라 맞수를 두었다.(참 재밌는 대목이다)
고대에는 어떠하고 중세에는 어떠하고 이런 양식의 변화는 시대를 반영하기때문에 그렇다. 지금 현재의 상황을 반영하는~그래서 동일한 모델 - 가령, 예수나 마리아, 비너스를 그린다 하여도 화가에 따라서 그 화가가 살았던 시대에 따라서 보는이로 하여금 전혀 다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런 공감마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르게 해석이 되어지곤 한다. 이걸 말해서 비평가들은 미술비평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재를 다룬다고 했나보다. 미술품이 그려지거나 만들어진 그 시대보다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 바로 지금의 시점으로 촛점이 맞춰진다.
바로크나 로코코 같은 큰 물결이 지나고 난 뒤 등장하게 되는 낭만주의 - 낭만이라는 말만 들어서는 아주 동화적이거나 달콤할 것만 같은데...낭만주의의 그림들을 보면 하나같이 몰로키즘을 따르고 있다. 학살이나 고문을 바라보는 즐거움에서 잔혹한 것, 섬뜩한 것에 대한 낭만주의적 취향을 찾으려 한다. 일종의 염세주의자와 같다. 그래서 낭만파들의 표현은 아주 극단, 극적인걸 사용하나 보다. 나 역시 그래서 끌리나 보다.
영원을 사는 신에 대한 동경으로 인간은 신인척, 신을 흉내내려 했다. 하지만 중세와 고대중에서도 이집트는 다소 현실성을 벗어나 추상성을 따랐다. 이는 그네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문명이 덜 발달해서가 아니다. 오늘날을 보라. 오늘날 미술품들은 다소 이해가 어렵다. 그 미술품에 따른 해석이 붙지 않으면 공감이 절대 불가능한 작품도 부지기수다. 더 이상 인간이 신을 닮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 역시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몰라서라기보다는 문명이 덜 발달해서라기 보다는 예술의 독립성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간혹 옛것을 부정하려 하고 탈피하고 재해석 한다. 재구성 하기도 하고~
18세기 과학이 최고의 이성이라 말하던 모더니즘을 대체할 포스트 모더니즘이 나타난 이후로 우리는 주~욱 독립과 탈피와 해체를 노래하고 말한다. 자유롭게...너무나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