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시절에는 우리집에
나비가 살고 있었다.
비단 우리집뿐만 아니라
앞집에도 옆집에도~
집집마다 살고 있는 나비들은
심지어 모두가 형제 자매인듯
어딘가 닮아있었지만
우리는 용케도 자기집 나비들을
알아맞혔다.
저자도 그러하지만 나역시
왜 어른들은 고양이를
'나비'라 부르는지 궁금했다.
모, 어른이 다 돼버린 지금도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만
나비와 놀기를 좋아해서~
나비처럼 몸이 가볍고 사뿐해서~
여하튼 양이는 '나비'이고
아지는 '메리' 아니면 '해피'였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들끓는
쥐를 잡기 위해서 키웠던 양이들이
이제는 애완견 못지않은
우리의 반려동물로 사랑받는다.
심지어 어떤이들은 자기를
'집사'라 칭하며 키우는 양이를
주인처럼 대하기도 한다.
파란 눈 양이,
마치 챠콜컬러 융같은 양이,
솜털 같은 새하얀 털을 가진 양이~
다양한 양이들이 있지만
여전히 내게 가장 친숙한
양이는 길양이다.
흰색과 황토색이 얼룩 덜룩한
코리안 숏 헤어 양이.
어려서는 무척이나 예뻐했는데
점점 자라면서 접할 기회가 없다보니
무서워하기도 하고
알러지가 심해서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언젠가 친구들과
공원 산책길에 '야옹'하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나도 모르게 '야옹'하고
응답을 했다. 그 응답소리에
냉큼 달려와 자신의 머리부터 허리까지
내 두 다리 사이로 부비부비를 하는것이다.
어미인듯한 양이 뒤를 이어서
새끼양이 3마리까지 모두~
배가 고파 보이는 길양이인듯하여
슈퍼에서 참치캔을 사서 준적이 있었다.
근데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되었다.
요즘의 길양이들이 뚱뚱하다고
놀리는 요즘 사람들.
그게 모두 다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간이 된 매운 짠 음식들을
먹어서 신장이 나빠져
부은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요즘은 길양이들을 만나도
그렇게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는다.
조용한 한 소년이 시골학교로
전학을 갔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유년시절을 선물하기 위한
부모님의 배려였지만,
실은 부모님의 불안한 이별과
불합리한 연애 때문이였다.
자신과 엄마를 떠나버린
아버지를 외면한 소년은
그렇다고 엄마를
아주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소년은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을 나눌 수 없었다.
그녀의 첫사랑 '경화'에게도~
현재 자신의 옆에 있는 그녀에게도~
사랑을 받아 본 자만이
사랑을 할 수 있고 나눌 수 있다 하였는가?
고양이처럼 자신의 모든것을
내던지고 자신의 몸을 맡긴다.
그 소년이 자라서 어른이 된 그는
룸메이트 '델마'에게 받은 사랑이
그리워서 고양이처럼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영역을 찾아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그는 사랑이 되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