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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생활
모리스 메테를링크 지음, 김현영 옮김 / 이너북 / 2023년 7월
평점 :
사람만이 사회적 동물은 아니지만, 가장 진화된
포유류나 그 중 유인원에서도 인간만큼 서로 협력 하며 조직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는 개체는 없다.
그러나 곤충인 개미나 꿀벌의 경우, 인간 공동체
를 훨씬 능가 할 정도로 조직적인사회를 운영
하고 있다는 점에 여러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인간들 간의 능력은 종이 한장 차이라는 말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편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공동체 내에서 생기는 양극화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되는 반면, 꿀벌의 경우 모든 개체는 표준화된 지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정말로 신비롭다
인간은 태어나 백일 정도를 지나야 자아인식이 가능하고, 더하여 2,30년은 키워져야 자생력을
가질 수 있는 반면에 꿀벌은 태어나는 즉시 어떤 학습도 없이 주어진 일을 수행한다.
* 인간은 초기화된 스마트폰과 같으므로 개인의
목적에 따라 재 구성하게 된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서는 생존하기 힘들기 때문에 사회를 구성하였으며,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일부 희생한다는 전제로 규율을 지키며 살아왔다.
사회는 수단이며, 공동체 목적은 개인이라는
것이 인간 사회의 본질이다.
권력과 명예 또는 행복 추구라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목표나 그 크기는 상이하다.
이는 이기적인 인간의 속성이 그러하므로 조직내 에서의 갈등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꿀벌의 세계에서는 여왕벌은 암수를 임의
로 선택하여 낳기도하고, 임의(?)로 선택된 일벌이
여왕으로 양육하거나 또는 분봉시에 남거나 떠나는 대상을 선택하는 모든 것들은 개체인 벌의 입장
에서 일생을 좌우하는 것임에도 어떠한 갈등도 투쟁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신비롭다.
또한 침입자가 있을 경우 공동체를 위해 꺼리낌
없이 자살공격하는 것을 이타적이라 볼 수 있을까?
여왕벌을 중심으로 가계가 꾸려지나, 상대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여왕벌은 존경은 받지만 스스로 명령하고 지배하는 지도자는 아니다.
새로운 주거지를 찾고, 수십만년 내려온 표준대로 집을 지으며, 일벌들의 업무를 분장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지시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밝혀 지지 않았다.
벌집내에서 보이는 이타적인 행동이 밖에서는 동료의 죽음조차 무관심한 이기적인 행동의 기준이 무엇인지 미스터리 하다.
인간이 자아에 대한 인지력이 생기면 분리불안을 느끼게 된다. 자아는 세계가 아닌 내 중심의 사고를 하게 되므로 타인의 감정이나 의도를 자기 중심적 으로 느끼게 된다.
꿀벌의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지시하는 관리가가 없이도 한치 어긋나지 않는 신비로움을 다음의 두가지로 추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꿀벌은 사전에 해야 할 일이 프로그램되어 태어났다는 것이다.
마치 사전에 셋팅이 완료되어 조립된 로봇트와
같은 모습을 꿀벌들의 공동체에서 보인다.
둘째는 모든 개체의 두뇌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몸은 분리되어 있지만 정신은 하나인, 그래서 지시 하거나 지시를 받지 않아도 한몸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 추론해 본다. 즉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말을하고 때로 걷거나 뛰어갈 때 사전에
눈, 입, 손, 다리와 협의하지 않으며 뇌가 알아서 판단하고 지시를 한다. 수만마리의 꿀벌 집단이 하나의 몸체처럼 연결된 것이라면 집단의 생존을 위해 팔다리와 같은 개체들의 죽음을 이타적이라
하지 않는다.
그러한 가정이 아니라면 미물인 곤충집단이 인간의 사회보다 더욱 우월하게 조직을 운영한다는 것도 이해 할 수 없으며, 딱히 엄청난 권력을 누리는
특권 계층이 없음에도 전체주의적이고 전제주의
적인 통치가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이다
꿀벌의 정신이 꿀벌의 숙명인지 또는 사물, 생명, 본능, 지능, 이성, 영성을 갖게되는 생명체의 진화 과정인지 알 수 없지만 곤충의 세계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