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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댓 드라마티스트 - 대한민국을 열광시킨 16인의 드라마 작가 ㅣ 올댓시리즈 2
스토리텔링콘텐츠연구소 지음 / 이야기공작소 / 2011년 10월
평점 :
처음 책을 받았을 때, 우선 강렬한 표지가 눈에 띄었다. 16명 작가들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삽화들, 서재 어느곳에 꽂아놓아도 단박에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예쁜 색도 마음에 쏙 들었다. 표지, 뒷면 뿐만 아니라 날개에까지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다. <올 댓 드라마티스트>의 디자인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부터 일주일에 두 번, 좋아하는 드라마가 하는 날은 손을 꼽으며 기다릴 정도로 기대되는 날이 되었다. 그리고 드라마가 시작되면, 매혹적인 이야기와 열연을 펼치는 배우자들에 초점을 맞추고 눈을 빛내며 드라마에 집중한다.
그런데 여기, 많은 인기 뒤편에 서서 힘들게 대본을 쓰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을 열광시킨 16인의 드라마 작가들이다.
서평단이 되어 읽게 된 <올 댓 드라마티스트>는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궁금한 드라마 작가들의 세계를 엮은 책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 <제중원>, <베토벤 바이러스> 처럼 나에게도 친숙한 드라마들도 있고 엄마가 잘 알고 계시는 <청춘의 덫>, <엄마가 뿔났다>, <서울의 달>, <파랑새는 있다> 등의 드라마들도 있다.
작가 데뷔 년도순으로 작가들의 이야기를 실은 <올 댓 드라마티스트>의 첫 장을 장식한 것은 어린 아이도 안다는 드라마의 신 김수현 작가다. 나오는 드라마마다 '김수현 사단의 신작'이라는 한 단어로 화제를 몰고다니는 그녀. 김수현 작가는 후배 작가들에게 많은 말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드라마가 곧 그녀의 말이고, 행동이며, 실천이었기 때문에. 아마 그녀가 고심해서 쓴 드라마는 잘 세공된 빛나는 다이아몬드같기 때문이 아닐까.
표지의 16명의 개성있는 작가들의 삽화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띄는 작가가 있다. 바로 최완규 작가다. 깔끔하고 호감형인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최완규작가는 허름한 , 심하게 말하면 꼭 노숙자같은 행색을 하고 있다. 이런 그가 <허준>, <올인>, <종합병원>,<마이더스>를 쓴 그 유명한 드라마 작가라고 한다. '짐승처럼 살아온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는 그에게 딱 들어맞는 것 같다. 방에 틀어박혀 대본만 써도 행복하고, 인생의 변화를 위해서는 어느 한 순간만큼은 미친 듯 살 수 있는 드라마 작가 최완규. 그래서 그의 드라마에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에너지를 받는지도 모른다.
또 한 명, 유별난 작가가 있다. 16인의 작가들 중 유일하게 어린이 드라마를 쓴 작가, 권인찬. 권인찬 작가는 <매직키드 마수리>, <마법전사 미르가온>등 나에게도 조금은 낯익은 제목의 어린이 드라마를 만든 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읽으니 그는 그의 드라마를 "어린이 드라마"라고 정의하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가 보는 것은 어른도 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라는 그의 말에서 화해와 소통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또 그는 드라마의 대상, 시청자가 어린이라는 이유로 무엇을 가르치거나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고 한다. 나에게는 굉장히 의외인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 싫으면서도 내가 커서는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들었던 것 같다.
권인찬 작가는 '온전한 어른'이 된다는 건 그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즐겁게 소통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공감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어른'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는 드라마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어른답게'만들어가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톡톡 튀는 작가들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잔잔하고 순한 된장국같은 작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노희경 작가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다른 작가들과는 다르게 노희경 작가는 40%이상의 '대박' 시청률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녀의 새 드라마는 언제나 도마 위에 오른다. 뛰어나고 개성넘치는 작가들이 그러하듯 그녀 역시 그녀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뻔한 소재를 뻔하지 않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독특한 그녀의 드라마 화법만큼 그녀의 삶도 평탄하지만은 않다. 투병 생활을 마친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와는 원수지간으로 지내며 화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노희경 작가는 "부모가 자식에게 '한'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후에 그녀는 드라마에 감정을 녹여내기 위해 자기의 아픔도 이해하려는 고충을 보여준다. 평생 미워하는 아빠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싶었던 그녀. 그런 그녀의 고충덕분에 <화려한 시절>, <기적>등의 드라마에서 가족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이 생생하게 가슴을 울렸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주목했던 작가는 이기원 작가다. 내가 이기원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된 건 <제중원>이라는 역사 픽션에서부터다.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을 토대로 한 이 소설 <제중원>은 역사 픽션을 유달리 좋아하는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긴박감 넘치는 손길을 단박에 사로잡는 소설 <제중원>으로 그를 처음 알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기원 작가가 소설작가라고 생각했다. <올 댓 드라마티스트>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중원>을 소설로 먼저 발표한 이유는 배우들, 스탭들과 흐름을 더 잘 공유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기원 작가는 <제중원>뿐만 아니라 <가리봉 엘레지>, <하얀거탑>등으로도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하얀거탑>은 패러디 도니 적도 한두 번이 아닐 만큼 유명한 드라마인데, 명품 연기와 탄탄한 대본, 또 빛나는 대사들로도 유명하다. 특히 "센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센 거야." , "누가 봐도 좋은 기회라는 건 말입니다, 말 그대로 누가 봤기 때문에 절대 좋은 기회가 아니라는 거죠." 등 혀를 내두를만한 대사들이 그의 드라마 곳곳에서 발견된다. 생활 깊숙히 들어앉은 이야기들을 한 마디의 대사로 표현하는 그의 통찰력 덕분에 우리는 그의 드라마에 더 호응하는 것 같다.
16명의 작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각자 개성은 뚜렷하지만 공통되는 이야기가 있었다. 모두 책을 많이 읽는 것을 중요시했고, 사람들의 조그만 일상생활도 관찰해냈고, 무엇보다 "막장드라마"의 현실을 꺼려했다는 것이다.
"막장이다"라고 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막장드라마. 일주일에 두번, 혹은 매일매일, 조그맣지만 크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드라마. 막장드라마때문에 점점 삶이 황폐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열여섯명의 드라마티스트들은 지금도 우리를 주인공으로 해서 우리를 웃고 웃기는 드라마를 써내려가고 있다.
(이 서평은 이야기공작소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