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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은 집을 떠난다 - 카이스트 물리학도에서 출가의 길을 택하다
도연 지음 / 판미동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0.들어가며
: 나는 무교다. 하지만 매번 기독교 책보다는 불교 책들, 또 승려분들의 책들에 호감을 느끼곤 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 주경스님의 「미안하지만 다음 생에 계속됩니다」 (2009년에 출판된 책인데, 지금은 절판됐다.) 일 정도였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읽으면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책들을 읽을 때면 왠지 편안하고, 나를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요즘 스스로 자괴감도 들고 많은 일들이 겹치면서 어지럽기도 해서, 다시 한 번 불교 관련 책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구나 한 버은 집을 떠난다」를 만나게 되었다. 카이스트에 다니다 스님이 되었다는 사연이 독특하기도 하고, 제목도 독특해서 호기심을 품고 읽기 시작했다.
1. 30쪽,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다섯 단계,
자아실현 욕구-존경의 욕구-사회적 욕구-안전의 욕구-생리적 욕구”
: 요즘 내 고민은, 하루 종일 자고 먹기만 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사람이 그러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다. 공부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 중간고사 성적을 알면서도,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정말 하루 종일 먹고 자기만 한다. 그러면서도 안일한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이런 연구가 있는 줄 몰랐다. 스스로에 대해서 반성해보게 하는 대목이었다. 어쩌면 모두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입학하기 전에는 이렇게 살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열심히 사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도 나는 게으르게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자아실현 욕구는 다른 욕구들과는 다르게 ‘성장 욕구’라고도 불린다는데, 나도 상위의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지금바로, 여기서 실천해야겠다는 반성을 했다.
2. 39쪽, 자존감
“고생은 하지 않고 좋은 과보를 받고자 함은 도둑의 심보인데,
당시 나의 마음이 그랬다.”
: 얼마 전에 막 중간고사 성적이 나왔다. 사실 전에 다니던 학교보다 성적이 엉망이라 성적표를 보면서도 두 눈으로 믿을 수 없었고, 억울하기만 했다. 함께 망한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가자느니, 이럴 바엔 그냥 학교나 과를 옮기자느니, 기말도 포기하고 다음 학기를 노리자느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스님의 고백을 읽고 나니 머리에 뭔가를 하나 맞은 느낌이었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스님의 고백은 지금의 나와 똑같았다. 솔직히 나는 이번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하루 전에 잠시 밤을 새고 좋은 결과를 기대할 뿐이었다. 고생은 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바란다는 그것은 도둑의 심보다. 나 자신을 다시 타일러야겠다. 정당한 노력에 대해서만 좋은 과보를 바라자고.
3. 83쪽, 어른이 되는 과정
“스무 살이 되어서 어버이를 떠날 줄 모르면 미련해지고,
마흔 살이 되어서 스승을 떠날 줄 모르면 어리석어진다.
정신적으로 스스로 설 줄 알아야 한다.”
: 이 책의 뒷표지에 쓰여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사실 이 구절에 이끌려서 책을 읽기 시작하기도 했다. 나는 이제 스물 한 살인데, 어버이를 떠날 줄 모르면 미련해진다는 구절에 계속 눈에 밟힌다. 매번 생각하지만 어버이는 참 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가끔씩 미워지기도 하지만, 어찌됐건 결국에는 다시 돌아오고 만다. ‘떠난다’는 표현이 아직까지는 사실 잘 이해가 안된다. 나는 오랫동안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정신적으로 스스로 선 것 같지는 않다. 서운해 하실 만한 말들인데도 내가 힘들면 털어놓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내게 힘들었던 일들이 있으면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지금보다 내가 더 성숙해져서, 정신적으로 스스로 설 줄 알았으면 좋겠다. 또 나아가서 내가 어머니께 의지가 되는 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4. 105쪽, 관계 「그대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 여기서 ‘그 사람’은 두 파트로 정의된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1)정(精)적으로 가깝고 의지할 만한 벗”이다. 또 두 번째 파트에서는 “(2)이 세상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인격과 깨달음을 갖춘 스승”으로 정의하고 있다. 나는 내 대학 생활이 이 두 ‘그 사람’을 찾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 최근 다양한 경험들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데, 매번 모든 사람들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내가 더 노력해서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5. 119쪽, 공부의 본질을 생각하다
“당신이 머무는 곳마다 당당한 주인공이 되세요.”
“사계절 1년 내내 봄이라고 해서 사춘기라고 합니다.”
“나의 십 대는 설렘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십 대를 준비하기 위한 발판일 뿐이었다.”
6. 210쪽, 인연의 소중함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봅니다
보통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칩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 냅니다.” 피천득
: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 중앙동아리 면접을 갔을 때가 생각이 난다. 그 때 동아리 경쟁률이 너무 높아서 제법 긴장했었다. 동아리 면접에서 공통질문이 주어졌었다. “지원자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시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내 옆 지원자가 존중이라고 말했고, 내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그 때 ‘인연’이라고 대답했다. 반수생활을 하면서 과거의 관계가 끊기기도 하고, 새로운 관계가 생기기도 했다고. 옛날이었으면 관계를 잡고 어떻게든 이어보려고 노력했을 텐데, 지금은 초연해졌다고 대답했다. 정말 ‘인연’이라면 내 노력을 알아주고, 나와 계속 인연을 이어갈 거라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생각해보면 너무 늦게 알아차린 것 같지만, ‘인연’은 존재하는 것 같다. 다만 책에서 언급한 대로, 인연을 알아봐야 하겠지. 그리고 인연을 살려내는 게 중요할 것이다. 너무 집착하지는 안되, 초연하고 겸허한 자세로.
7. 마지막으로
: 내가 불교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으레 다른 불교 책들이 그렇듯, 「누구나 한 번은 집을 떠난다」도 읽는 내내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다른 책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두 가지를 꼽고 싶다. 우선, 중간중간 실린 예쁜 사진들. 평소 예쁜 사진들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사진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두 번째로, 내 실생활과 더 밀접하게 연관돼있는 느낌이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보통 스님들의 삶은 나와 많이 다르다. 어릴 때부터 법전이나 불법에 관심이 있고, 좋은 품성을 갖고 태어나신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이신 도연 스님은 스님이 되기 전 ‘보통 학생’으로 살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신다. 노력했던 시간들, 노력하지 않고 과분한 과보를 바랬던 일들, 그리고 공부하면서 힘들었던 때 까지. 읽는 내내 스님이 뭔가 나와 동떨어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좋았다. 더 나를 대입하면서 읽을 수 있어서 공감이 갔고, 하는 말들이 더 진심어리게 다가왔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와 같은 대학생들이 읽기에 좋다는 생각이 든다. ‘힐링’이 필요할 때, 마음에 휴식이 필요할 때,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읽어봤으면 좋겠다 ; 「누구나 한 번은 집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