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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보다 강한 실 - 실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나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 안진이 옮김 / 윌북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총보다강한실 #윌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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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보다 강한 ‘실’이라니 무엇을 은유하는 것일까. 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총’. 시대를 막론하고 역사에서는 강하고 힘센 것, 남성에 의한, 남성들이 만들거나 지배해 온 것들을 주류의 역사로 만들고 내세워왔다. 총, 균, 쇠로 만들어진 힘의 역사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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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힘의 역사에 가려져 있던 ‘실의 역사’를 찾고 더듬는다. 인류의 시작, 교역의 시작, 산업혁명의 동력, 과학의 발전, 그 모든 곳에 있었던 ‘실’의 존재를 끄집어 조명하고 그것에 주목한다. 과거 인류가 시작하던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의 순간들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존재가 바로 ‘실’과 ‘직물’아니던가. 이것이 가려진 채 역사의 뒤안길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물리적으로 강한 존재가 아니었고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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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직물과 실에 얽힌 13가지의 이야기를 촘촘하면서도 방대하게 다룬다. 동굴 속에서 최초의 섬유 흔적을 발견하던 순간부터 리넨으로 시체를 감싼 이집트인들, 고대 중국의 비단 제작의 비밀, 비단이 건설한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도 펼쳐진다. 바이킹족의 생활양식을 바꾼 양모 털실에 대한 이야기, 중세시대 유럽 왕족들의 레이스 경쟁, 남극대륙과 에베르스트를 정복하기 위해 선택된 특별한 직물들, 우주에 내딛기 위해 제작이 필요했던 우주복, 인간 속도의 한계를 넘기 위한 전신 수영복 논란까지 흥미진진한 ‘실’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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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과 직물에 대한 놀랍고 신기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책. 역사에 항상 존재해왔던, 그러나 강한 것에 묻혀 존재를 실감하지 못했던 ‘실’과 ‘직물’의 역사. ‘실’과 ‘직물’은 인간의 존재를 가능하게 했고 나아가게 했고 꾸준히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이렇게 우리 일상 가까이에 늘 존재하고 있던 ‘실’의 힘에는 여성들의 역사가 있었다. 바느질과 실잣기는 여성들 스스로의 표현이기도 했던 것. 이런 직물과 관련된 기술이 여자들에게는 작게나마 경제적 권력과 지위가 되어주기도 했으니, 여성들의 역사이자 우리 모두의 역사이다. ‘실’의 역사를 더듬는다는 것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룩해 온 우리 삶의 또다른 이면을 추적하는 일이다. 어떤 관점과 대상으로 세계를 보느냐에 따라 새로운 역사를 만나게 되는 것. 이런 점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실의 역사’는 다채롭고 신비하고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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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과 옷을 생산하는 일은 어느 시대에나 세계 경제와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인류는 천을 만들어낸 덕택에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선사시대에 온대 지방에서는 옷감 짜는 일에 드는 시간이 도자기 굽는 일과 식량 구하는 일에 소요되는 시간을 합친 것보다 길었다. 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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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과 천을 생산하기 위한 정교한 수작업은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었다. 예컨대 18세기 중반 영국에서는 100만 명이 넘는 여성과 아이들이 방적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들이 버는 돈은 산업혁명 직전까지 빈곤층 가구 가계소득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했다. 우리는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경제적 변동이 철이나 석탄과 관련이 있다고 상상하지만, 사실은 직물도 변화의 중요한 동력을 제공했다. 15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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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날마다 입고 사용하는 직물을 만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가 않다. 지금까지 공장 노동자들 중에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쓰거나 기사로 기고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공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보통 의사, 활동가, 기자들이 던진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 또는 짧은 인용문 형식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277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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