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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다 ㅣ 작가정신 시그림책
박완서 지음, 이성표 그림 / 작가정신 / 2022년 1월
평점 :
#시를읽는다 #박완서 (글) 이성표 (그림) #작가정신 _<도서 협찬>
박완서 작가님의 문장이 이성표 작가의 일러스트를 만나 시그림책이 되었다. 시(時)의 언어는 낯섦과 익숙함을 매개하고 있는 신비의 세계 같다. 그래서 시로 들어서는 길이 두려우면서도 뚜벅뚜벅 발을 들이게 된다. 시를 한껏 품지 못함에도 시를 읽음으로써 저절로, 순간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명확하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러한 시(時)를 만나게 되는 기적적인 순간은 그야말로 시(時)같다.
그런데 박완서 작가님의 문장들이다. 모를 법한 어려운 단어 하나 없는데도, 마음을 찌르는 문장들. 관조하는 듯, 삶에 대한 스스럼없는 인정을 품는 아량이 박완서 작가님의 숨처럼 느껴진다. 심심하다 못해 왜 사는지 모를 때에도 시를 읽는다, 라고 말하는 체념같은 문장에도 ‘나는 시를 읽는다’는 것을 더 명확하게 표출하는 오묘한 힘을 느낀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같은 문장에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단어의 조합일 수 있을까... 시의 가시에 찔려서라도 정신을 번쩍 차리고 싶다는 삶에 대한 결기의 의지는 우리에게 시를 읽는 이유를 붓꽃처럼 남긴다.
그러면서도 다음에 등장하는 삶의 귀결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고백은 ‘시를 읽는’ 이유를 극대화한다. 마땅히 당도할 죽음의, 그 두려움을 애써 다독이려 꽃과 낙엽을 보아왔던 지난날의 햇수를 생각하며 살아온 날들의 한량을 매듭지어 보는 인간의 생은 아득하고, 절절하고, 애틋하게 짓누른다.
심심해서, 정신이 번쩍 들고 싶어, 죽음이 무서워서 시를 읽는 작가는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생을 살기 위해 계속 시를 읽는다. 내년에도 꽃을 마땅히 보게 될 것이므로 시를 읽는다. 잔잔하고 맹렬하게 삶에 파도를 치는 박완서 선생님의 글에 하염없이 반한다. 그리고 가슴으로 움켜쥔다. 이 좋은 글에 서린 삶을 잘 보여주는 책의 일러스트들도 하나같이 좋다. 외롭고, 두렵고, 씩씩하고, 당당하고, 쓸쓸한 인간을 잘 그려내어 시에 젖게 한다. 그러고보면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에게 시도 있고, 그림도 있어서. 이런 시그림책을 보고 읽으며 시를 읽는 이유를 더듬으며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마저 찾을 수 있어서.
<본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