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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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 엘리 / 2020 april



<노마드랜드>의 첫 몇 챕터를 읽다가 옅은 기시감을 느꼈다. 읽어본 적이 있는 글 같아. 어디에서 읽었더라. 몇 페이지를 눈으로 더듬으며 생각했다. 그리고 불현듯 스친 한 소설, 바로 몇 년 전 읽었던 존 스타인 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신자유주의와 산업화가 미국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대공황 이후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일자리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희망을 찾아 자동차에 몸을 싣고 떠나는 여정을 보여준다. 조드 일가를 중심으로 자동차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지만 막상 도착한 곳은 희망이 아닌 절망과 존엄의 상실이었다. 


어쩌면 <노마드랜드>가 그리는 풍경은 미국의 2008년 경제위기 이후의 또 다시 반복되는 현대판 <분노의 포도>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벽과 기둥이 있는 전통적인 의미의 주거를 포기하고 RV에 몸을 싣고 임시계약직 노동을 하며 고용의 흐름에 따라 떠돌는 노마드 생활을 한다. 집을 버리고 차에서 생활하며 일을 하고 산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라며 놀란 마음으로 읊조려본다. 한국에 사는 내게 노마드 생활이란 부산역이나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는 부랑자들 외엔 다른 이미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나 미국적인 이 노마드 생활, 즉 차로 이동하고 계절성 일자리를 구하고 주차장에서 차를 대고 자고 피트니트센터에서 샤워를 하는 삶을 살아내는 광경은 여전히 생소하다. 마침 이런 생각이 들 무렵의 챕터의 제목은 “미국을 살아내기”였다. 


놀랍게도 노마드 생활을 하는 많은 이들이 과거에는 번듯한 직장과 가정이 있었던 중산층 계급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젊은 층이 아니라 최소 50대부터 은퇴연령이 훨씬 지난 80세까지의 노년층이라는 사실. 석사학위를 가졌고, 외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으며, 대기업 임원이기도 한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어쩌다 추락했나, 그리고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나,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제시카 브루너는 3년간의 취재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이 책에 담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내가 부산역에서 바쁜 걸음으로 노숙인들을 지나치는 그것과는 달랐다. 그는 노마드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가장 가까이 다가가되 그들을 멋대로 동정하지 않는 마음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글을 썼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 마치 ‘그들’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라는 듯이.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은 당신의 책임이다”라는 시대적 명령과 대결한다. 저자는 이들이 그토록 열심히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저임금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덫을 개인에게서 찾지 않는다. 집을 버리고 이동하며 살기로 한 그들의 선택을 개인을 넘어 경제, 기업환경, 사회, 문화적 영역까지 확장하여 분석한다. 이들은 2008년 이후 주택버블의 붕괴로 집값보다 비싼 대출금을 감당해야 했으며, 쌓아놓았던 연금과 주식이 고스란히 연기처럼 증발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퇴직 연령이 다가와 일을 그만두어야 했으며 이혼과 질병 등 개인적인 불운들이 겹치면서 그들을 지탱해주던 임금, 연금, 저축이라는 세 가지 기둥이 하나씩 무너졌다. 이 책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노마드라는 삶의 형태가 그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였다는 것에 동의하게 된다. 


이들의 현실과 이를 야기한 다양한 상황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 저자는 이 여정에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질문을 던진다. 아마존은 젊은층이 아니라 노년층을 고용하는가. 아마존은 은퇴한 노마드 노년층에게 그들의 노동윤리와 직업의식을 존경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론 근로기회세액공제의 혜택을 받기 위해, 그리고 이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할 가능성이 낮기에 80세가 가까운 이들을 고용하는며 사탕발린 말로 착취하는 것에 더 가깝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들은 이마저도 감사한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또한 나이가 들수록 저임금 노동에서 헤어나올 길이 없고 기회가 줄어드는 현상, 특히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임금이 낮지만 더 오래 살기에 빠듯한 돈으로 끝까지 버텨야 하는 현실에 대한 지적도 가슴 아프기 마찬가지다. 마찬가지로 왜 노마드들은 백인이 압도적으로 많은지 인종차원에 있어서도 일련의 의문을 내비친다. 


미국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에서 평생을 모은 돈이 증발할 위기에 처한 시민들을 구하는 대신 온갖 사기와 횡령에 가까운 짓을 한 은행을 구하기로 결정했다. Too big to collapse 라는 변명아래 이루어진 국가적 결정이었다. 미국은 대공황으로부터, 혹은 존 스타인 벡의 <분노의 포도>로부터 하나도 배우지 못했다. 개인의 실패는 더욱 더 개인의 탓이 되었고, 그들을 보호해줄 사회적 쿠션은 모두 숨이 죽어버렸으며, 그 누구도 이 쿠션들을 보충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과연 한국은 미국과 같은 수순을 밟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노마드랜드의 저자 제시카 브루너는 노마드들의 이야기를 담았고, 독자들은 그 목소리를 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시선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독자에게 남겨진 질문이다. 


르포 형식의 좋은 책들이 많다. 함께 읽기를 추천하는 책들이 몇 권 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 앨리 러셀 혹실드의 <자기땅의 이방인들>,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의 <러스트벨트의 낮과 밤>, 알렉산드리아 래브렐의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ellelit2020 엘리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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