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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세계사 질문사전 1 - 문명의 발생부터 근세 사회까지 ㅣ 101가지 질문사전
김영옥 외 지음, 서은경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22년 9월
평점 :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역사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만든 책으로,
전남역사교사 모임 회원으로 만나 함께 공부하고 있는 교사들이 만든 책이다.
그들은 중고등학교에서 역사 수업을 하며, 시간이 부족해 미처 다 설명하지 못한 역사 지식이나 새롭게 대두된 학설등을 재미있으면서도 쉽게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그래서< 역사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세계사 질문 사전1 문명의 발생부터 근세 사회까지>라는 길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모두 담긴 책이 완성될 수 있었다.
이 책은 질문형태로 이루어져있지만 역사 = 서면제 수업 이라는 공식을 깨고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질문할 만한 주제를 위주로 흥미롭게 엮어 놓은 책이다.
첫 질문은 당연히 역사학은 어떤 학문인가요?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부터 시작하고 있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읽고 나면 역사라는 과목이 얼마나 흥미롭게 재미있으며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학문인지 알게 될 것이다.
많은 질문들 중에서 아이와함께 흥미롭게 읽었던 질문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아프리카 국가가 유럽을 지배할 뻔했다면서요?
아프리카의 국가는 바로, 기원전 3세기 무렵, 이탈리아 반도에서 로마가 성장하고 있을때 지중해 건너 아프리카 북부에는 카르타고가 있었습니다. 지중해 동쪽에 살고 있던 페니키아인들이 북아프리카에 건설한 식민지였지요. 카르타고는 해상무역을 통해 성장을 거듭하며 막대한 부를 가진 도시로 탈바꿈 했어요.
본거지였던 페니키아가 마케도니아의 왕 알력산드로스에게 공격을 받아 쇠퇴하자 본토 사람들까지 대거 몰려들어 카르타고는 더 커졌습니다. 이렇게 확대된 카르타고는 지중해를 건너 유럽 땅까지 진출했어요.
현재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반도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 사르데냐섬, 코르시카섬 등이 모두 카르타고의 영역이었습니다. 이렇게 번성한 아프리카의 카르타고가 포에니 전쟁에 의해 로마에 의해 멸망하면서 로마는 성장하는 발판을 만들었고 카르타고의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게 된것이죠.
소크라테스는 왜 사형을 당했나요?
아테네에서 상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소피스트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철학자가 바로 소크라테스였습니다.
그는 아고라에서 사람들에게 도덕과 정치에 대해 말했고,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관심을 보이며 귀를 기울였습니다. 특히 지식욕이 강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소크라테스의 진리의 절대성에 매료되어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허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타인의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이 생각하는 절대 진리를 찾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타당한 진리는 반드시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절대 진리 탐구 방식은 아테네 사회의 당연한 것들에 대해 의심하고 비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소피스트들과 기득권자들은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그릇된 방향으로 유도한다고 비판하게 되었고 그는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살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절대 진리를 지키기 위해 " 죽음을 피하기는 쉽지만, 정의를 선택하기는 어렵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콜롬버스의 관은 공중에 떠 있다고요?
위대한 탐험가,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콜롬버스는 죽을때까지 자신이 발견한 땅이 인도라고 믿고 있던 사람인데요. 그의 관은 왜, 공중에 떠 있을까요?
그는 에스파냐 이사벨라 여왕의 후원을 받아 항해를 시작했지만 1차 때 성공적으로 바하마제도의 과나하니라는 작은 섬이었지만 콜롬버스는 그곳이 일본이나 중국 어딘가라고 믿었습니다. 이로 인해 콜롬버스는 2차, 3차, 4차 원정까지 떠날수 있었지만 콜롬버스의 원정을 금과 향신료를 찾지 못했지요.
4차 항해때는 조난까지 당해 가까스로 에스파냐에 귀국했고, 그 후로 다시는 항해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콜롬버스는 말년에 정부를 상대로 자신이 누려야하는 직위와 하사금을 달라고 청원했지만 성과는 없었고 결국 그는 좌절감속에 에스파냐의 바야돌리도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자신이 발견한 마하마 제도에 묻어주기를 희망했고 죽어서도 에스파냐땅은 절대 밟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바램에 따라 그의 시신은 대서양 건너 중남미 지역 쿠바에 묻혔습니다. 나중에 쿠바가 독립하면서 그의 유해는 에스파냐로 옮겨져 세비야 대성당에 안치되었습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콜롬버스의 관은 네명의 왕이 관을 공중에 떠메고 있답니다. 그래서 공중에 떠있다는 표현을 쓴것인데요.
콜롬버스의 관을 네명의 왕중 앞에 2명은 콜롬버스의 항해를 지원한 왕으로 당당한 표정과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뒤의 두명은 콜롬버스의 항해지원을 거절한 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