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가 쓴 '말테의 수기'에서 탕아 이야기를 찾아 읽었다. 문예출판사 '말테의 수기'(박환덕 역) 2부가 아래 글의 출처이다. 

Study for an engraving of the Prodigal Son, 1520 - Albrecht Durer - WikiArt.org


나는 성서에 쓰여 있는 탕아의 이야기가 사랑받는 것을 거부한 젊은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쉽게 믿어주지 않을 것 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자라면서도 사랑받지 않는 순간이 없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에는 사람들의 다정하고도 따뜻한 사랑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소년이 되자 그는 그 습관을 버리려고 생각했다. 그는 아직 그것을 확실하게 표현하지는 못했으나, 하루 종일 들판을 뛰어다닐 때에 개를 데리고 다니기 싫어한 것은 개도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개의 시선에도 주시와 관심, 기대와 걱정이 나타나 있었다. 소년의 일거수 일투족이 개를 기쁘게 하거나 슬프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집 안에 남아서 그들이 상상하고 있는 생활의 껍데기로만 살 것인가? 그들 모두의 얼굴까지도 닮게 될 것인가? 의지의 섬세한 성실성과 그 성실성을 그의 내부에까지 부패시키는 서투른 기만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을 나누며 살아갈 것인가? 겁쟁이 같은 마음만을 가진 가족들을 해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을 단념할 것인가?

아니, 그는 떠날 것이다. 이를테면 그들이 어설픈 추측에 따라 선택한 선물, 또한 모두를 부드럽고 온화하게 만들 선물을 준비하고 생일 테이블을 열심히 장식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소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떠날 것이다. 아무도 당시의 그를 사랑받는다는 무서운 처지로 끌어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느 누구도 결코 사랑하지 않겠노라, 그가 얼마나 굳게 결심했는지는 여러 해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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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1-29 0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말테의 수기 읽다 멈췄는데 ㅋ 2부는 다시 읽어봐야 겠습니다~!!

서곡 2023-11-29 12:21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전에 읽다가 덮었는데요 ㅎㅎ 완독 응원합니다!!!
 

'이야기의 힘'(이어령) 마지막 '여덟째 허들 비전'이 출처이다. (첫째 허들 찾기 - 둘째 허들 타우마제인 - 셋째 허들 변화 - 넷째 허들 분별 - 다섯째 허들 의문 - 여섯째 허들 벤처 - 일곱째 허들 탈출 - 여덟째 허들 비전)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975 - Marc Chagall - WikiArt.org

Painter`s dream, 1967 - Marc Chagall - WikiArt.org


 



그뿐만 아니라 릴케Rainer Maria Rilke의 『말테의 수기』에도 "나는 탕아의 이야기가 사랑받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의 전설이라 확신한다"는 문장이 나오지요. 바로 그 전 대목을 볼까요. "사랑받는 것은 불태우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것은 마르지 않는 기름으로 빛을 발하는 것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사라져가는 것이요, 사랑하는 것은 영원한 것이다." 다시 말해, 탕아는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 현재의 사랑받는 기쁨을 파하는 자者’라는 것입니다. 앙드레 지드의 ‘돌아온 탕아’가 고백했듯, 이전의 모든 것을 비워낸 그 자리에 사랑이 담겼다는 것과도 상통하는 부분이지요. - 여덟째 허들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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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1-2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삶은 결국 ‘기 - 승 - 전 - 사랑‘

서곡 2023-11-28 17:24   좋아요 0 | URL
네 연말 훈훈하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사스키아와 렘브란트 부부

‘렘브란트는 바람 속에 있다’(러스 램지 지음, 정성묵 옮김)로부터 발췌한다.

Self-Portrait with Saskia in the Parable of the Prodigal Son, c.1635 - Rembrandt - WikiArt.org * https://blog.aladin.co.kr/790598133/14100721 참고


[돌아온 탕자-원망 없는 작은 평화로] (헨리 나우웬) http://www.catholicworker.kr/news/articleView.html?idxno=2475



〈선술집의 탕자The Prodigal Son in the Tavern〉에서 렘브란트는 취해서 흐리멍덩한 눈으로 우리를 왼쪽 어깨너머로 바라보고 있는 탕자다. 한 손에는 맥주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여인을 안고 있으면서 말이다. 이 그림에서 여인은 렘브란트의 아내 사스키아다. 렘브란트는 자신을 이 장면 안에 그려 넣음으로써 자신이 누구보다도 어리석어서 자비가 절실히 필요함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실망감과 연민이 섞인 감정으로 이 그림을 본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 탕자가 무엇을 허비하고 무엇을 버렸는지를 안다. 그를 둘러싼 세상이 어떻게 무너질지도 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의 아버지가 그 아들을 사랑하며, 그 순간에도 아들이 언제쯤 돌아올까 지평선 너머를 살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탕자가 아버지의 사랑 가득한 품으로 돌아가겠지만 철저히 무너진 뒤에야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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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북 '박중훈이 읽는 앙드레 지드의 탕아 돌아오다'를 다 들었다. '이야기의 힘'(이어령)에 나오는 탕아(탕자) 부분을 계속 읽는다. 지드가 쓴 '지상의 양식'도 언급된다.

The prodigal son, 1952 - George Pemba - WikiArt.org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지드의 '새로운 양식'이 최근 출간되었다. 


그래요. 이젠 정말 지쳤노라고, 자신은 실패자라고 고백하는 탕자에게서, 그 마음속 자유를 향한 욕망은 완전히 잠들지 않은 겁니다. 아버지가 차린 잔칫상을 받은 후에도 들판에서 주워 먹었던 야생 도토리의 씁쓰름한 맛이 자신이 맛보았던 최고의 진미였음을, 그는 이미 아버지에게 토로했던 겁니다. 그 쓴맛이 불러일으킨 갈증 때문에 해갈할 길을 찾고자 열병과도 같은 방랑을 멈출 수 없었다는 거예요. 마치 앙드레 지드의 또 다른 작품 「대지의 자양(혹은 지상의 양식)」에 등장하는, 갈급함으로 인해 목말라하는 열병 환자처럼 말이죠. 그 열병 환자는 손에 물병을 쥐고 있을지라도, 입안에 물을 한가득 머금고 있을지라도 죽음과 같은 그 갈증을 결코 해소할 수 없는 겁니다. 오히려 신열로 인해 더욱 갈급해지기만 합니다. 생生을 향한 열병이란 바로 그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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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원 - 가을의 환 / 탕자 또는 탕아

https://blog.aladin.co.kr/790598133/14099869 작년 가을 김채원 작가가 쓴'가을의 환'을 읽었다. 거기 언급된 앙드레 지드의 '돌아온 탕자(탕아)'에 관해 체크해 놓았던 게 떠올라 오디오북 '탕아 돌아오다'(배우 박중훈 낭독)를 듣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힘'(이어령)에 나온 내용을 옮겨본다.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36 - Rembrandt - WikiArt.org *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http://www.simin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206426


그런데 가족을 떠난다는 건 비단 학교로 향하는 길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성경에 나오는 탕자(탕아)의 예가 그렇지요. 가족을 떠나 세계를 방랑하는 자가 바로 탕자죠. 성경에선 그가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돼지먹이인 쥐엄열매로 연명하다 결국엔 부끄러움을 안고서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지요. 그래서 누군가는 그의 방랑을 실패로 간주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 탕아는 집을 떠나갈 때와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서 돌아온 것이니까요. 그의 방랑을 실패라고 간단히 말할 수는 없는 거예요. 예전의 자기, 아버지의 재산을 탐하고 함부로 흥청망청 인생을 낭비하며 만사를 우습게 여기던 그 어리석은 자의 껍질을 벗은 것이니 말예요. 이리 보면 일종의 탈출이 이뤄진 게 아닌가 말예요.

이 탕자의 이야기는 무수한 예술작품의 모티프가 되었지요. 그중에 앙드레 지드가 쓴 「돌아온 탕아」라는 작품이 있어요. 이 작품의 탕아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사이에 깃든 자유에의 갈증을 따라 아버지의 집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죠. 그러고는 수없는 고난을 겪은 후에 다시금 집으로 돌아옵니다. 헐벗고 누추해져 돌아온 그를 아버지와 어머니는 따뜻하게 반겨주지요. 잔칫상을 차리고 그 더러운 옷을 벗겨냅니다. 그런데 탕아가 누더기를 벗고 새 옷가지를 걸치려 할 때,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는 그의 아우가 그 누더기를 눈부시다는 듯 바라보죠. 집을 떠나던 탕아와 같은 나이인 아우, 시시때때로 언덕에 올라 성벽 너머의 세계를 그려보고, 이야기꾼이기도 한 돼지치기에게로 찾아가 날이 가도록 이방의 이야기를 졸라대는 이 아우에게 낯선 세계의 체취가 묻은 탕아의 누더기는 그야말로 자유의 상징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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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렘브란트 - 탕자의 귀환
    from 에그몬트 서곡 2023-11-28 11:26 
    다음백과 / 명화의 속사정 - 이브리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47XXXXart011Return of the Prodigal Son(fragment), 1662 - Rembrandt - WikiArt.org다음백과 / 렘브란트의 말년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6r0962b004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69 - Rembrand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