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옮긴 글은 '소중한 경험'(김형경) 이 출처. 

Isolde Charim (2015) Von Manfred Werner - Tsui - Eigenes Werk, CC BY-SA 3.0, 위키미디어커먼즈


이번 6월에 번역출간된 '나르시시즘의 고통 - 우리는 왜 경쟁적인 사회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원제 Die Qualen des Narzissmus)'를 담아둔다. 저자 이졸데 카림은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 철학자.







나르시시스트와 얽혀서 삶에 불편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가장 먼저 본인도 나르시시스트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인정해야 한다. 내면에 동일한 무의식이 있기 때문에 고통당하면서도 특별한 사람 곁에서 서성이는 것이다.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우월하다는 자기 이미지와 특별한 대접에 대한 갈망을 포기해야 한다. 그토록 우월하고 선하고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으며, 그런 점을 고집하지 않을수록 삶이 오히려 편안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더욱 좋을 것이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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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캐나다의 여성 작가 앨리스 먼로가 5월에 별세했다. 그녀의 작품집 '디어 라이프'에 실린 '코리'를 다시 읽었다. 인생의 행과 불행이 도사린 단편. 아,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이여.


디어 라이프 (아제르바이잔) By Adam Jones from Kelowna, BC, Canada - Alice Munro Book in Bookstall - Baku - Azerbaijan, CC BY-SA 2.0, 위키미디어커먼즈






그녀는 당돌하면서도 어린아이 같았다. 처음에는 그녀에게 흥미를 보이던 남자도 곧 그녀의 오만하고 자기만족적인 성격—정말로 그렇다면—에 넌더리를 낼 것이다. 물론 그녀에겐 돈이 있었고, 어떤 남자들에게 그것은 결코 지긋지긋한 것이 될 수 없었다.

우리는 다시 새롭게 시작할 거야. 우리가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될 거야. 우리가 잘못한 게 없다는 걸.

그가 말했다. "당신과 나 사이가 끝나는 건 견딜 수 없어." "그렇게 말해주니 기뻐." 코리가 말했다.

이따금 코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그에게 얼굴을 묻었다."우리는 정말 운이 좋아." 그녀가 말했다.

코리를 불행하게 만든 것은 그 토할 것 같은 느낌, 결코 안전하지 못한 느낌, 오래된 사랑에 지워진 무거운 짐이었다.

새들이 모두 날아가버린 것을 깨닫는 그런 아침은 항상 존재한다.

그녀는 뭔가를 깨달았다. 자는 동안 깨달았다.

어디에나 구멍이 있다. 특히 그녀의 가슴에.


달리 무언가를 해보기에는 너무 늦었다. 더 좋지 않은 일이 있을 수도 있었다. 이보다 훨씬 더 좋지 않은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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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백지민 옮김)로부터








약속한 날에는 비가 퍼부었다. 11시가 되자 비옷을 입은 남자가 잔디 깎는 기계를 끌고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개츠비가 보낸 사람이었다.

빗줄기는 세 시 반쯤부터 가늘어지더니 축축한 안개로 바뀌었고, 이따금 이슬비도 내렸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라일락나무 아래로 대형 오픈카 한 대가 올라오더니 멈춰 섰다. 연보랏빛 삼각 모자를 쓴 데이지가 밝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오빠, 정말 여기서 사는 거예요?"

빗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명랑한 목소리는 상쾌한 청량제 같았다. 나는 잠시 동안 리듬감 있게 오르내리는 그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녀의 한쪽 뺨에는 젖은 머리카락 한 가닥이 마치 푸른색 페인트로 죽 그어 내린 것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의 손은 빗물에 젖어 번들거렸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

나는 뒷문으로 나와서 걸었다. 개츠비가 30분 전에 초조해서 집 주변을 한 바퀴 돌았을 때처럼 말이다. 나는 울창한 잎이 지붕 역할을 하며 비를 막아주는 옹이가 있는 검은 나무를 향해 뛰어갔다. 또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개츠비의 정원사가 잘 깎아놓았지만 여전히 엉성한 우리 집 잔디밭에는 조그만 진흙 웅덩이와 선사시대의 습지 같은 것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나무 아래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개츠비의 거대한 저택밖에 없었다. 나는 칸트가 교회 첨탑을 바라보듯 그 집을 30분 동안 쳐다보았다.

30분쯤 지나자 다시 햇빛이 비쳤다.

"비가 그쳤어."

"그런가?" 개츠비는 내 말을 듣고서야 햇살이 방 안을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나타난 햇살을 열광적으로 반기는 기상 캐스터처럼 그 소식을 데이지에게 전했다.

"어떻게 생각해요? 비가 그쳤다는데요."

"잘됐네요, 제이." 데이지는 가슴이 아플 정도로 슬픔에 젖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예기치 않은 기쁨을 나타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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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영화를 스타일링하다'(진경옥 지음)로부터




Fair use, https://en.wikipedia.org/w/index.php?curid=15652123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잃었던 개츠비가 데이지와 닉 앞에서 옷장에 있는 수많은 비싼 테일러드 셔츠를 내던지는 장면은 개츠비가 성공했고 부자이며 특권계급인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닉은 황홀해서 눈부셔하고 데이지는 비싼 옷들을 부여잡고 감정이 복받쳐 우는 이 장면은 1920년대 미국 사회의 물질만능주의를 풍자하고 있다. "왜 기다리지 않았느냐"는 개츠비의 질문에 "부자 여성은 가난한 남성과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 데이지의 답변도 같은 맥락이다.

피츠제럴드의 소설에는 데이지와 재회하는 장면이 비가 오는 날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의상을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 1974년 영화에서는 비가 의상을 망친다는 이유로 해가 반짝 뜬 날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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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각색한, 2010년대 영화를 보고 나서 1970년대 영화를 봤었다. 2010년대에 도달한 풍요가 녹아 있는 새 영화가 화려하고 경쾌하다면 과거의 영화는 세련되고 나른했다. 1970년대 식 사치가 깔려 있었달까. 특히 영화 속 남성복들이 굉장히 멋스러웠던 게 기억난다. 


아래 글은 '패션, 영화를 스타일링하다'(진경옥 지음)가 출처.







<위대한 개츠비>는 남성복이 여성복보다 더 중요하게 보이는 흔하지 않은 영화다.

1974년 <위대한 개츠비>에서 로버트 레드퍼드를 완벽한 상류층 신사로 만들어준 건 디자이너 랄프 로렌이었다. 랄프 로렌은 고전적 기품이 있는 우아한 슈트, 폭 넓은 넥타이, 고급 캐주얼 셔츠 등 다양한 상류층 의상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 의상 스타일은 ‘개츠비 룩’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랄프 로렌은 자신의 의상 스타일인 고전적인 멋이 깃든 옷, 편하게 입는 재킷, 타이, 플란넬(flannel, 양털과 면을 섞어 만든 옷감) 셔츠 스타일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의 패션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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