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초에 읽은 비키 바움 소설집 '크리스마스 잉어' 수록작 '길'로부터 옮긴다. 병에 걸려 아픈 친칸 부인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환영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토마스 만이 높게 평가한 작품이라고 한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비키 바움은 음악가 출신 유대계 여성작가로서 미국으로 망명한다.

Traditionelles Heilig-Abend-Essen: Der Weihnachtskarpfen By AnRo0002


'크리스마스 잉어' 번역은 원로 여성 독문학자 박광자 교수가 했는데 비키 바움의 장편 '그랜드 호텔'도 같은 역자이다. 박광자 교수가 번역한 올해의 신간 헤르만 헤세 전기와 함께 쏜살문고 '기만'(토마스 만)을 찾아둔다.





그녀가 눈을 떴는데,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곁에 나타났다. 어머니는 침대가에 앉아 있었다. 젊어서 세상을 떠났는데 백발이었다. 친칸 부인은 미소했다. "알아요, 어머니." 그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 너도 곧 알게 돼." 어머니가 조용히 말하고 하얀 머리를 끄덕였다. 부인은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이렇게만 말했다. "이제 쉬워졌어요." 그녀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부드럽고 따스한 손을 잡아 자신의 목에다 놓았다.

그러자 숨을 쉴 수 있었다. "어떻게 살아왔니?" 어머니가 물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지?" 부인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지?"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우는 것 같은데,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저 멀리 자신의 삶이 보였다.

그녀는 한참 동안 가만히 누워 자신의 삶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못 이룬 꿈뿐이에요, 어머니." -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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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5-01-25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속의 식탁은 장식이 있어서인지 특별한 날의 느낌이 많이 듭니다.
서곡님, 오늘부터 연휴 시작이예요. 이번엔 임시공휴일이 생겨서 연휴가 길어졌습니다.
연휴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곡 2025-01-25 22:30   좋아요 1 | URL
네 크리스마스 잉어래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편안한 토요일 밤 되시길요!
 

작년 1월에 읽은 책 '주디스 버틀러,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 유대성과 시온주의 비판' 중 '5장 유대주의는 시온주의인가?-아렌트와 민족국가 비판'으로부터 옮긴다.


[“전쟁은 파괴의 연속”…팔레스타인 시민의 연대 호소 / 가자지구 영구적 휴전 및 식민 지배 종식 촉구]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78451.html

사진: UnsplashAsh Hayes


2024년 12월에 번역된 주디스 버틀러 대담집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을 발견했다.







지정학적으로 흩어져 있다는 게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새로운 정치적 정의의 개념화에 봉사할 수 있는 흩어진 삶scattered existence에서 일군의 원칙을 도출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민족을 파괴로부터 보호하지 않고서는 유대 민족을 파괴로부터 보호할 수 없다는 게 정치적 핵심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활과 살림 파괴는 그 파괴를 자행했던 이들에 대한 파괴 위협을 증대할 뿐이라는 게 진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폭력적·비폭력적인 판본을 두루 갖고 있는 저항 운동에 지속적인 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점을 이해하기 위해 헤겔을 열심히 공부한 우등생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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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3b7c4gT9zc 연극 '사랑에 대하여'


체호프의 '사랑에 대하여'(바로이북)로부터 옮긴다. 안나는 루가노비치의 부인이다.

오페라용 쌍안경 (1910년 경, 프랑스)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사랑에 대하여'(이항재 역)이 올해 출간되었다.





안나 알렉세예브나와 나는 가끔 같이 극장에 가곤 했는데, 갈 땐 늘 걸어서 갔고, 극장에서는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앉았어요. 그녀가 말없이 건네주는 작은 쌍안경을 받아들 때마다 그녀가 내 사람인 듯 친근하게 느껴졌고, 우리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공연한 오해를 살까 봐 극장에서 나오면 곧바로 작별 인사를 하고 낯선 사람들처럼 헤어졌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의 삶에는 늦든 빠르든 끝이 오기 마련이죠. 우리에게도 이별할 시간이 왔습니다. 루가노비치가 서부 러시아의 어느 현 재판소장에 임명됐기 때문이었죠. 그들은 가구와 말, 별장까지 모두 팔았어요. 별장에 마지막으로 다녀오는 길에 모두가 초록빛 지붕과 정원을 돌아보며 슬퍼했고, 그때야 비로소 나는 그녀와 진짜로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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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1-24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체호프의 <사랑에 관하여>를 읽었는데 민음사에서 새 책을 냈군요. 목차를 살펴보니 딱 네 개의 작품만 겹치는군요.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단편을 잘 쓰는 작가죠. 아, 민음사에서 나온 <체호프 단편선>도 몇 년 전 읽었는데 재밌어요.^^

서곡 2025-01-25 14:5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펭귄과 민음 단편선(박현섭 역) 읽었습니다 불멸의 완소작가니까 앞으로도 계속 새 작품집들이 꾸준히 나오겠지요 연휴 잘 보내시고 해피 뉴이어입니다!

햇살과함께 2025-01-25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민음사 체호프 단편집 또 나왔군요 이건 사야죠!

서곡 2025-01-25 14:59   좋아요 1 | URL
영원히 사랑 받을 체호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연휴 잘 보내십시오~

햇살과함께 2025-01-25 15:31   좋아요 1 | URL
서곡님도 연휴 잘 보내세요! 해피 뉴 이어!
 

오후 세시반이 넘어 나른하다. 2024년 6월에 발간된 '커피 내리며 듣는 음악'(워크룸프레스)이란 책을 발견했다. 커피 내리는 사람이 썼다. (책표지 사진의 커피도구가 저자가 실제 사용하는 것들이라 한다.) 제목은 '커피 내리며 듣는 음악'이지만 마시며 들어도 될 터이다.


“인터넷에 없는 음악도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죠”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53241.html (저자 인터뷰)

Untitled (Coffee), 1991 - Jannis Kounellis - WikiArt.org


'커피 내리는 음악'의 목차에 열거된 음악가들 중 자우림,이랑,단편선의 음반을 올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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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주는 마음으로 쓰레기 버리기(최정화) https://www.marieclairekorea.com/lifestyle/2021/05/zero-waste-2

By Tomi Knuutila from Rovaniemi, Finland - Himmeli, CC BY 2.0


By Tishkaraud - Own work, CC BY-SA 4.0








얼마 전 현수막으로 만든 가방과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키 링을 선물로 받았다.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점퍼나 핸드백, 폐그물로 만든 크루저 보드처럼 전혀 다른 제품으로 재탄생하는 것이 재활용이다. 최근에는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휴대 전화 액세서리도 꽤 많이 나온다.

재활용이 되지 않는 빨대도 훌륭한 재료가 될 수 있다. 힘멜리himmeli라는 북유럽의 전통 공예품이 있다. 이듬해의 풍작을 기원하며 추수가 끝난 밀짚이나 보릿대로 만든 다면체 모양의 모빌 장식품이다. 빨대 안에 실을 넣어 다양한 모양의 힘멜리를 만들 수 있다. 도전해 보려고 빨대를 버리지 않고 모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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