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류이치 사카모토 지음 / 양윤옥 옮김)의 에필로그가 출처.


정말 행운과 풍요의 시간을 보내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내게 주신 분들은 우선 부모님이고 부모님의 부모님이기도 하고 숙부와 숙모이기도 하고, 또한 수없이 만난 스승과 친구들이며 일을 통해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무슨 인연인지 나와 한 가족이 되어준 이들과 나의 파트너였다. 지난 57년 동안 그들이 내게 부여해준 에너지의 총량은 내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한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빛조차 닿지 않는 칠흑 우주의 광대함을 흘낏 엿본 듯한 신비한 감정에 휩싸인다.

나는 왜 이 시대, 일본이라는 땅에서 태어났는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니면 없는지, 단순한 우연일 뿐인지……. 어린 시절부터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지만, 물론 분명한 해답을 만났던 적은 없다. 죽을 때까지 이런 물음을 던지는 걸까. 아니면 죽기 전에는 그런 물음조차 사라져버리는 걸까.

마지막으로 이런 인간의 개인사를 읽어야 하는 독자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과 함께 "고마워요"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2009년 1월
사카모토 류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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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손보미의 단편 '이전의 여자, 이후의 여자'(악스트 2020년 7/8월호 발표, '사라지는 건 여자들 뿐이거든요' 수록)로부터 옮긴다. 

배롱나무 꽃 By Meneerke bloem - 자작, CC BY-SA 3.0, 위키미디어커먼즈



배롱나무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41XXXXX00021


그해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눈은 녹지 않고 저택 주위의 모든 것들을 꽁꽁 얼리는 데 일조했다. 저택의 벽면은 마치 얼음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금이 가서 무너지지 않을까?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은 산짐승들이 호기롭게 근처까지 내려왔다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다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겨울이 끝날 무렵이 되자, 얼음이 녹아서 포치와 창틀에 물방울이 맺혔다가 땅으로 뚝뚝 떨어졌다. 분수대에 쌓여 있던 눈이 녹아서 물로 변했다. 땅 위에 물이 질척질척거렸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영구하게 생명력을 잃은 것처럼 보이던 노란 잔디들에도 녹색빛이 돌기 시작했다. 저택 근처에 있는 숲, 전나무들도 뾰족한 가지에서 연두색 잎을 토해냈다. 어디선가 나비들이 날아와서 분수대 주변을 빙빙 돌다가 날아가버렸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저택의 뒤편에 우두커니 서 있던 배롱나무에서 진분홍색 꽃이 피어났고, 전나무숲은 온통 초록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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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피고 있다. 아래 글은 '작가의 계절'(안은미 역) 봄 편이 출처.


사진: UnsplashMasaaki Komori


[네이버 지식백과] 호리 다쓰오 [堀辰雄]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118226&cid=40942&categoryId=34422


"모처럼 여행을 왔는데 책만 읽는 사람이 어딨어? 가끔은 산 경치라도 보라고……." 이렇게 말하고는 아내와 마주 보고 앉아 그쪽 창밖을 찬찬히 둘러봤다. "여행지가 아니면 책도 제대로 읽을 수 없는걸요."

사실을 말하자면 아내에게 뭐라 불평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잠깐이라도 좋으니 아내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려 나랑 같이 근처 산마루에서 새하얀 꽃을 떼 지어 피우고 있을 목련을 한두 그루 찾아내 여행의 흥취를 맛보고 싶을 뿐이었다.

"어머나, 못 보셨구나." 아내는 즐거워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그렇게 몇 개나 피어 있었는데……."

"어라, 저기 한 그루 있네요." 아내가 갑자기 산 쪽을 가리켰다. "어디?"아내가 가리킨 곳을 재빨리 살펴봤지만 고작 뭔가 새하얀 물체를 얼핏 봤을 뿐이었다. - 목련꽃 _ 호리 다쓰오

「목련꽃」은 1943년 5월 잡지 『부인공론』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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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 계절마다 피는 평범한 꽃들로 엮어낸 찬란한 인간의 역사'(캐시어 바디 지음, 이선주 옮김) 원제 Blooming Flowers: A Seasonal History of Plants and People - 가 아래 글의 출처.


사진: UnsplashKristine Cinate


안데르센 동화 '얼음 처녀'를 읽기 시작했다.

설강화, 스노플레이크snowflake, 스노벨snow bell, 스노 바이올렛snow violet, 듀드랍dew drop, 딩글댕글dingle-dangle, 수줍어하는 처녀…. 스노드롭을 표현하는 다른 이름이다. 식물학적으로 그리스어 갈란투스Galanthus와 라틴어 니발리스nivalis를 결합한 스노드롭의 학명은 눈처럼 하얀 꽃을 떠올리게 한다. 스노드롭꽃은 영국에서는 1월과 2월에 피고, 루마니아에서는 3월 초에 피기 시작한다.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열두 달로 나누어 계절을 표현한 피아노곡 시리즈 중 스노드롭은 4월을 상징하는 꽃이다. 덴마크에서는 ‘겨울 바보’로 불리고, 전통적으로 부활절이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 스노드롭꽃을 넣은 비밀 편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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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바오’ 강철원 사육사의 ‘나는 행복한 푸바오 할부지입니다- 바오 가족과 함께한 기적 같은 나날들’로부터 옮긴다.


푸바오 갔구나......



애타게 서로를 찾던 아이바오와 푸바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육사 할부지 모두 힘든 시간을 잘 참아 냈다. 푸바오는 15일 만에 젖을 포기하고 홀로서기에 적응했다. 아이바오는 푸바오의 흔적이 담긴 놀이터를 몇 날 며칠 샅샅이 누비며 아기를 찾아다녔다. 아기를 포기하지 못하던 아이바오는 푸바오의 독립 후 한 달이나 지나서야 호르몬 변화에 적응하며 순응하기 시작했다. 그날이 바로 푸바오가 태어난 지 800일째 되던 날이었다.

푸바오는 엄마와의 독립을 마무리한 후 아쉬움으로 할부지에게 더욱 의지하기 시작했다. 푸바오의 진정한 독립은 할부지로부터의 독립인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기댈 곳을 만들어 주지 않고 온전히 홀로 설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할부지가 푸바오에게 마지막으로 해 줘야 할 성장의 최종 단계다.

푸바오!
그동안 엄마에게서 모든 것을 충분히 배웠어.
너는 세상 어느 아기 판다보다 사랑을 받으며
오랜 기간 훌륭한 엄마와 함께했단다.
이제 진정으로 홀로 서서 푸바오의 판생을 멋지게 살아가렴.
할부지는 알고 있단다. 넌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할부지는 너의 곁에서 응원할 거야.

- 푸바오, 이제 독립합니다! / PART3 푸바오, 너의 판생을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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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4-03 2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푸바오… 갔어요. 히잉…..

서곡 2024-04-04 10:0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날도 궂고 해서 다들 고생하셨겠더라고요...

페넬로페 2024-04-04 0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푸바오, 잘 가.
건강하게 잘 지내♡♡♡

서곡 2024-04-04 10:01   좋아요 1 | URL
도착하자마자 잘 먹은 것 같더라고요 ㅎㅎㅎ 다행입니다

blanca 2024-04-04 09: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케이지 안에 흔들려서 그랬는지 구토도 계속 하고 스트레스 받은 모습 보니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마음이 먹먹해요.

서곡 2024-04-04 10:10   좋아요 0 | URL
푸바오 태어나긴 우리 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안타까워요 많이 먼 게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레이스 2024-04-04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서처럼 잘 보살핌을 받진 못할것 같아요

서곡 2024-04-04 10:10   좋아요 1 | URL
그래서 국내 팬들은 엄청 걱정하더라고요 그래도 푸바오를 위한 방을 잘 꾸며줘서 안도하더군요

단발머리 2024-04-04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곡님 서재가 울애기 ‘푸바오‘ 아쉬움을 달래는 공식 지정 사이트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아침에 푸바오 영상 찾아봤어요. 옛날 영상이랑 어제 영상 다요. 에궁........
거기 판다 많다는데 왜 굳이 여기서 잘 사는 푸바오를 데려가는지.....

서곡 2024-04-04 12:19   좋아요 0 | URL
영광이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저 푸바오 피버 전에 잠시 앓았다가 잊고 살았는데 재점화되어 지금 푸바오 특집 보는 중입니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