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마르타 아르헤리치 - 삶과 사랑, 그리고 피아노'가  출처.




마주르카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7m0872a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1960년 우승은 모든 면에서 빼어난 한 아티스트를 부각시켰을 뿐 아니라 한층 더 엄격하고 객관적인 해석 스타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폴리니의 테크닉은 비교 상대가 없을 만큼 완전무결했고 청중이 비르투오소에게 기대할 만한 수준을 몇 단계 높여놓았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1965년 우승은 이 수준을 결코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낭만의 바람을 다시 몰고 왔으며 음악 연주에서 자연스러움과 직관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새삼 일깨웠다고 평가된다. 폴리니는 경쟁 개념을 매우 싫어했지만 결국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함으로써 결실이 들쑥날쑥했던 몇 년의 시기를 끝내고 음악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그녀는 이미 8년 전에 국제적으로 알아주는 두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유럽에서 순회 연주도 했으며 발표한 음반은 만장일치로 호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정작 그녀는 심한 슬럼프에 빠져서 자신감과 의욕을 다 잃었다. 우울증 수준의, 그야말로 실존적인 위기였다.

1965년 3월 13일에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쇼팽 콩쿠르의 역사에 일곱 번째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남아메리카 출신 피아니스트가 이렇게 큰 상과 격찬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당연히 특별한 자부심을 느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폴란드 라디오 방송사가 주는 마주르카 최고연주상도 함께 받았다. - 11. 바르샤바: 1965년 쇼팽 콩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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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의 뉴욕 편 중 영화 '킹콩'에 관한 부분을 가져온다.


[네이버 지식백과] 킹콩 [KING KONG]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 2005. 9. 15., 스티븐 제이 슈나이더)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1927&cid=42619&categoryId=42619


영화 '킹콩' (1933) King Kong 1933 Promotional Image -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


[네이버 지식백과] 마천루 [Skyscraper] (1%를 위한 상식백과, 2014. 11. 15., 베탄 패트릭, 존 톰슨, 이루리)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4368873&cid=59926&categoryId=59926

블록버스터 영화 〈킹콩〉(1933년)에서 맨해튼 섬은 킹콩의 고향인 해골섬Skull Island과 흡사한 일종의 산악지대로 변신한다. 해골섬에서 생포되어 뉴욕으로 끌려온 킹콩은 난동을 부리다가 앤 대로Ann Darrow를 움켜쥐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기어 올라간다. 킹콩이 보기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해골섬 산꼭대기의 보금자리를 빼닮은 곳이다. 킹콩은 사슬을 끊고, 뉴욕 거리의 촘촘하고 시끄러운 협곡으로 나와 6번가의 고가철도를 부순다. 〈킹콩〉의 감독 메리언 C. 쿠퍼Merian C. Cooper는 어릴 적에 그 고가철도를 지나다니는 열차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빌어먹을 것을 부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킹콩〉은 그런 환상을 채워준다. 킹콩은 도시를 자유로이 누비는 자연적인 생명력이다. 복수가 필요한 킹콩의 원시적 힘은 대공황의 진원지인 세계적 금융 중심지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킹콩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위시한 뉴욕의 여러 건물에 올라가는 장면은 지금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기차를 때려 부수고, 인간들이 세운 가장 높은 고층건물을 기어 올라가는 모습을 통해 킹콩은 비인간적 창조물들을 압도하고, 인공적 환경에서 마구 날뛰는 모습을 보이며 산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준다.

킹콩과 뉴욕의 아찔한 만남은, 1930년대의 마천루 스카이라인이 점점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점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였다.

맨해튼의 그 콘크리트 절벽은 기진맥진한 1930년대에 할리우드식 환상을 투영하기에 완벽한 배경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마천루의 유혹에 넘어간 뉴욕은 한 번 더 매력과 꿈의 장소, 미국의 부흥을 상징하는 곳이 되었다. 1933년 3월 2일, 〈킹콩〉이 뉴욕에서 개봉했다. 이틀 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미국의 32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 11장 마천루가 드리운 그림자 / 뉴욕, 1899~19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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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난감에 탐닉한다'(김혁)로부터


[네이버 지식백과]킹콩은 SF일까, 판타지일까? (KISTI의 과학향기 칼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409322&cid=60335&categoryId=60335



<킹콩 King Kong>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33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해 흑백 영화로 제작된 킹콩은 7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재미있고 완성도가 높다. 킹콩의 인기와 카리스마를 말해 무엇할까?

이후 킹콩은 세계적인 괴수 특수촬영 영화 붐을 이끌었고, 그 아류들도 끊임없이 생산해냈다. 저작권이 강화되는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어지간한 나라에서는 모조리 킹콩의 아류작들을 만들어냈다.

1934년 미국 <콩의 아들>, 괴수 고지라와 한판 싸움을 붙인 일본의 <킹콩 대 고지라>(1962년)와 <킹콩의 역습>(1967년), ‘내게 오리지널 ‘킹콩’은 의미가 없다!’며 큰소리를 치고 만들어냈던 존 길라민 John Guillermin 감독의 <킹콩>(1976년)과 <킹콩2>(1986년), 홍콩의 <성성왕(猩猩王)>(1977), 여기에 한미합작이라 우기며 이낙훈, 조춘 등 한국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던 한국형 입체 영화 <킹콩의 대역습>(1977년)까지 숫자는 부지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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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난감에 탐닉한다'(김혁)으로부터

고지라 (1954) final design -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


[네이버 지식백과] 고지라, 1954 [Godzilla, 1954] - 961만 명의 흥행 기록 (20세기 디자인 아이콘 : 캐릭터, 김혁, 월간 디자인)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0440&cid=58789&categoryId=58805

고지라 (1954) Behind Scenes -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



어느 해 봄,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전시할 일이 있어 준비하다가 도록용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장난감들을 잔뜩 가지고 충무로 스튜디오로 가서 사진을 찍었다. 몇 시간에 걸쳐 찍고 또 찍었는데 일본을 대표하는 괴수 영화 캐릭터 고지라(ゴジラ Godzilla)를 찍을 순서가 돌아왔다.

고지라에 대단히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나는 조심스럽게 그 수많은 고지라들을 세우며 ‘포즈’를 잡고 있었는데, 기다리던 스튜디오 스태프가 한마디 툭 던졌다.

"거, 정신 사나운데 조금만 놓고 찍죠. 무슨 공룡을 그렇게 많이 놓으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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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 X 콩: 뉴 엠파이어’, 더 부술 세계가 없다면 새로운 세계를 만들면 된다는 패기]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104768 현재 개봉 중인 이 영화에 관심이 생겨 고질라에 대해 찾아보는 중. 아래 글은 '국체론 - 천황제 속에 담긴 일본의 허구'가 출처이다.


일본영화 '킹콩 대 고질라'(1962) https://pedia.watcha.com/ko-KR/contents/mdRmXyO 고질라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64XXXXXXX274



어째서 괴수 고질라는 두려울 뿐만 아니라 애처로울까? 고질라는 남태평양에서 실시된 핵실험으로 깨어난, 방사능을 지닌 괴물이다. 거기에는 핵무기에 대한 공포만이 아니라 격전지에서 인류 전쟁사에서 보기 드문 비참한 모습으로 죽어간 무수한 동포들의 영혼이 투영돼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보면 어떤 의미에서 고질라는 살아남은 일본인들의 아버지와 형, 동생, 남편이나 아들들이다. 그들은 ‘뒤따를 것으로 믿는다’며 옥쇄했다. 그러나 살아남은 일본인들은 ‘뒤를 따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을 죽인 미국에게 복수조차 하려 들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들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고 있었다. - 1 ‘이해와 경애’의 신화 / 제4장 천황과 미국의 결합 -‘전후 국체’의 기원 (전후 레짐 : 형성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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