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헨리 - 크리스마스 선물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펭귄클래식 오헨리단편집 '마지막 잎새' 수록작 '사랑의 봉사'는 순서 상 '크리스마스 선물' 바로 앞에 있는데, 가진 건 재능과 잠재력 밖에 없는 젊은 예술가 부부의 이야기로서 크리스마스가 배경이 아닐 뿐 다른 버젼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할 만한 내용이다.

하이델베르크 - 사진: Unsplashyeonhee


결국 이 커플은 생존을 위해 예술이 아닌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되고, 서로에게 비밀로 하다가 사고가 나는 바람에 진실이 드러난다. 누가 알겠는가,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다가 훗날 재능을 꽃피우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 또한 엄연히 존재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이들에게 가장 좋은 건 이 비좁은 아파트에서의 일상생활, 다시 말해서 하루 수업이 끝난 후에 열정적으로 떠들어대는 수다와 마음 편한 저녁 식사, 신선하고 가벼운 아침 식사, 이제는 상대방의 야망이나 혹은 다른 사소한 것들과 뒤섞여 버린 야망의 교류, 두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도움과 격려, 그리고─부디 나의 예술성 없는 표현을 눈감아 주기를─밤 11시에 먹는, 올리브와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였다.

"여기 잠깐 앉아봐, 델리어." 조가 말했다. 그는 부인을 의자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녀 옆에 앉아서 팔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델리어, 지난 두 주일 동안 무슨 일을 했던 거지?" 조가 물었다.

"의심하지 않았어. 오늘 저녁까지는 말이야. 아마 앞으로도 영영 몰랐을 거야. 오늘 오후에 내가 보일러실에서 이 솜뭉치와 연고를 올려 보내지 않았더라면 말이야. 위층에서 일하는 어떤 여자가 다리미에 손을 데었다는 소리를 들었거든. 나는 이 주 전부터 바로 그 세탁소 보일러실에서 불 떼는 일을 해왔어." "그럼 당신은 그림을 판 게 아니……."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조가 입을 열었다. "누구든 자기의 예술을 사랑하게 되면 어떤 봉사라도 서슴지 않게……." 그러자 델리어가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아니, 그게 아니지." 그녀가 말했다. "‘누구든 서로를 사랑하게 되면’이라고 해야지." - 사랑의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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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 배우의 낭독으로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들었다. 며칠 전 늦은 밤에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더랬다. 오늘은 해 떨어지기 전에 말짱한 정신으로 다 완청했다. 손 배우님의 감정표현이 절절하다. 펭귄클래식판 오헨리 단편집을 펼쳐 다시 한 번 읽는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D L McCarragher님의 이미지






이제 델러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갈색 폭포처럼 눈부시게 찰랑찰랑 흘러내리고 있었다. 거의 그녀의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은 그것만으로도 옷으로 삼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이윽고 델러는 다시 민첩하고 초조하게 머리카락을 말아 올렸다. 그리고 일 분쯤 망설이며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닳아빠진 붉은 카펫 위로 눈물이 한두 방울 똑똑 떨어졌다.

"정말 당신 머리카락이 없어졌단 말이오?"그는 거의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물었다."찾아봐야 아무 소용도 없어요."델러가 말했다."팔았다니까요. 말했잖아요. 팔아서 없어졌어요.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예요. 여보, 그러니 다정하게 대해 줘요. 당신을 위해서 팔았어요. 어쩌면 내 머리카락은 헤아릴 수 있을지 모르죠."

델러는 갑자기 진지하고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렇지만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은 아무도 헤아릴 수 없어요. 짐, 이제 고기를 올릴까요?" - 크리스마스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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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 헨리 - 사랑의 봉사 / 누구든 사랑하게 되면
    from 에그몬트 서곡 2022-12-17 12:28 
    펭귄클래식 오헨리단편집 '마지막 잎새' 수록작 '사랑의 봉사'는 순서 상 '크리스마스 선물' 바로 앞에 있는데, 가진 건 재능과 가능성 밖에 없는 젊은 예술가 부부의 이야기로서 크리스마스가 배경이 아닐 뿐 다른 버젼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할 만한 내용이다. 결국 이 커플은 생존을 위해 예술이 아닌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되고, 서로에게 비밀로 하다가 우연히 사고가 난다. 누가 알겠는가, 이 시기를 잘 견디면서 재능을 꽃피우게 될 수 있다. 그렇지 않
 
 
 

최정희의 '흉가'를 낭독으로 들었다. 최정희의 딸인 김채원 소설집 속 어머니가 자꾸 연상되었다.


'여성과 문학의 탄생'(심진경) 중 '제2장 여성작가로 산다는 것 - 최정희 문학을 통해 본 ‘여성’의 연기(演技)와 구성'으로부터 옮긴다.

[In the mountainous region of South Hamgyong province in North Korea numerous villages were affected by flash floods in July 2012 which destroyed hundreds of homes.] By Devrig Velly EU/ECHO European Commission DG ECHO - Flickr: North Korea: Daily life remains a struggle, CC BY-SA 2.0 최정희는 함경도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 최정희 - 가난과 모성(장석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60XX69100047




「흉가」는 가족 부양의 의무를 진 지식인 여성의 삶에 대한 공포와 고통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정과 심리"* 로 그려낸 수작이다. 소설은 겉보기와는 다른 삶의 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세보다 싼값에 이사 간 아름다운 집이 사실은 전 주인 내외의 비극(비명횡사와 광기)을 품고 있는 ‘흉가’라는 사실은 ‘나’의 폐병 발병과 겹쳐지면서 돌연 ‘나’를 불안에 빠뜨린다. 이 순간 모든 낯익은 것은 낯선 것이 되어 ‘나’의 지각과 인식을 교란한다. 그 결과 모든 사물과 현상은 ‘나’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데, 소설에서 ‘탈바가지’는 그런 낯익은 두려움(the uncanny)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사물로 제시된다. * 김윤식, 「인형의식의 파멸 — 여성과 문학」, 『한국문학사논고』, 법문사, 1973,246쪽 - ‘또 한 겹의 탈’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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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편역 '마음챙김의 시'를 읽어보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잊고 있었다.  '마음챙김의 시'에 수록된 '눈풀꽃'을 가져왔다. https://hellopoetry.com/poem/20568/snowdrops 2020년 노벨문학상을 탄 여성 시인 루이스 글릭의 작품. https://ewhalibblog.tistory.com/86 

사진: UnsplashPascal Debrunner


류시화 편역 '마음챙김의 시' 출판사(수오서재) 채널에 김혜수 배우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글릭의 시 '눈풀꽃'을 낭송한 영상이 있다. https://youtu.be/NwUOTdXR7is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기대하지 않았다,/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예상하지 못했다./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가장 이른 봄의/차가운 빛 속에서/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그렇다, 하지만/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 루이스 글릭, 눈풀꽃

눈풀꽃은 가장 이른 봄 땅속 구근에서 피어 올라오는 작고 흰 꽃. 설강화(雪降花) 혹은 영어로는 같은 의미의 스노우드롭(Snowdrop)이라 불린다. 눈 내린 땅에서 꽃을 피우는 특성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루이스 글릭 1943~ . 자전적인 시를 쓰는 미국 시인으로, 일시적이지만 열정적 존재로서의 꽃들을 이야기한 시집 『야생 붓꽃』으로 퓰리처 상과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상을 수상했다. 고등학교 내내 거식증에 시달리고 감정적 혼란으로 대학을 마치지 못했다. 고독과 죽음과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이 남달라 제12대 미국 계관시인에 선정되었다. 202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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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12-16 0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 한 편 받아갑니다. 지금 꼭 필요한 시네요.

서곡 2022-12-16 08:07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추위 조심 연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사진: UnsplashAnnie Spratt


[네이버 지식백과] 키르케 [Circe] - 님페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안성찬, 성현숙, 박규호, 이민수, 김형민)





스노드롭은 상당히 마술적인 특성을 지녔다고 여겨진다. 호메로스의 고대 서사시에 등장하는 신성한 약초 ‘몰뤼moly’가 스노드롭일 거라는 최근의 추측이 맞다면 말이다. 아름다운 그리스 신 헤르메스가 키르케의 위험한 주술로부터 오디세우스를 보호하기 위해 그에게 주었던 꽃이 핀 약초가 어쩌면 스노드롭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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