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소설에 나타난 글쓰기 특징—「다산성(多産性)」(1966)의 문맥 형성 과정 고찰, 백지은, 2008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299562


Woman in Blue Dress, c.1903 - Victor Borisov-Musatov - WikiArt.org






"자, 먼저 들어가세요."

나는 점잖게 말했다. 그 여자는 남대문 쪽으로 가고 나는 동대문 쪽으로 가기 위해서 지금 헤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요 몇 시간 동안 만나고 있던 것은 숙이가 아니라 무어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모를 어떤 것, 나에게서도 조금은 나왔고 숙이에게서도 조금 은 나왔고 의자에서도 조금은 나왔고 탁자에서도 조금은 나왔고 레지에게서도 조금은 나왔고 잠바에게서도 조금은 나왔고 음악에서도 조금은 나왔고 커피에서도 조금은 나왔고 마네킹에서도 조금은 나왔고…… 그렇게 나온 조금씩의 어떤 것들이 뭉친 덩어리였음을 저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숙이의 좁은 어깨를 보고 있는 동안에 나는 깨달았다.

무인도 따위의 엉뚱한 생각을 할 게 아니다. 정면으로 숙이와 나에 대하여 생각을 집중시켜보기로 했다. 그 여자와 말을 주고받기 전엔 나는 그 여자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 여자를 좋아하고 있었다. 좋아했다는 말이 너무 지나치다면 그 여자를 내 곁에 느끼고 있었다고 하자. 어느 날 문득 ‘천사의 직계 후손’이란 말이 생각났다. 그러자 숙이를 거의 완전하게 표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여자를 다방으로 불러내었다. 서로 무언가 말을 주고받았다. 시시한 얘기뿐이었다. 그 여자를 대단찮게 생각하게 되었다. 대단찮다는 말은 그 여자가 이미 내 속에 들어와 있는 존재가 아니라 앞으로 끌어들여야 할, 내 속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는 그 여자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모서리나 돌기들을 내가 힘써 깎아내고 문질러 없애야 할 존재, 다시 말해서 남이라는 것이었다. ‘대단찮게 생각했다’는 것은 ‘귀찮게 생각되었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귀찮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될 어떤 과정을 겪어낼 것을 일단 포기해버리자. 다시 그 여자는 여전히 남이긴 했으나 내 속에 들어와 있는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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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는 결혼하여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남편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말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었고 아들은 세 살 때 세상을 떠났다.

박경리 결혼식과 가족 사진


장영은의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에 묶인 박경리에 관한 글이다.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1905212111005






박경리 선생은 이러했습니다. 문학은 선생에게 무엇입니까, 왜 작가가 되었습니까, 라는 질문 앞에서 "인생 자체가 문학이에요. 문학을 내 인생과 갈라놓지 않아요. 문학이 제 인생이고 제 인생이 문학이고…"라 합니다. - 글 쓰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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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겨울 창작과비평 창간호 수록작 김승옥의 '다산성'은 장편이 되려다 만 작품이라 그런지 다소 어수선한 감이 드는데 그의 촉수로 캐취한 1960년대의 끔찍한 황량함이, 역설적으로 대조적인 '다산성'이란 키워드를 통해, 그 자신 인간이자 남성으로서 지닌 폭력성과 함께 생생하게 드러난다.

사진: UnsplashArnelle Balane






"제 친구들 중엔 한 방울만 혀에 대보고도 그게 진짜 커피인지 가짜 커피인지 가려내는 놈들이 있죠. 전 모두 진짜 같기도 하고 모두 가짜 같기도 해서 아직 커피 마실 자격이 없나봐요."

커피 얘기, 살갗 얘기가 숙이에겐 얼마나 짐스런 화제였다는 것을 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 여자가 천사라고 해도 날개가 등에서 솟아나 있기 때문에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천사가 아니라 잠자리날개로 지어진 옷을 입었기 때문에 하늘을 날 수 있는 천사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나무꾼에게 옷을 도둑질당하고 나면 별수없이 땅에서 베를 짜고 아이를 낳으며 살아야 하는 그런 천사였다는 것을 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찻잔이 비자마자 나는 계속해서, 영화에 대한 얘기, 방송극에 대한 얘기, 해외 토픽란에서 본 얘기, 내가 어렸을 때 본 만화에 대한 얘기, 유머를 모아놓은 책에서 읽은 얘기, 내 직장인 신문사에서 주워들은 얘기, 심지어 외국의 유명한 작가나 철학가 들의 에피소드까지 오 톤쯤 늘어놓았다. 내 얘기들의 무게가 드디어 그 여자의 고개를 들어올리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 여자는 내처 미소를 띠거나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며 웃거나 하면서 내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재미있게 듣고 있는 중이니 어서 계속하세요’라고 그 여자가 마음속에서 말하고 있으리라고 내 속 편한 대로 정하고 나서 나는 그런 얘기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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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 읽은 '젊은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의 저자 칼럼 매캔이 장편소설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의 소재로 삼은, 지금은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 사이를 걸은 필립 프티에 대한 극영화와 다큐영화 두 편. 극영화는 전에 봤는데 다큐영화도 흥미로울 것 같다. 나온 해에 오스카 다큐상 수상했다고. [영화 多樂房] ‘맨 온 와이어’·‘하늘을 걷는 남자’ 윤성은 영화평론가 2015-10-30 https://en.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1030021011 세계 문학은 지금 ⑤ 미국 소설가 칼럼 매캔 e-메일 인터뷰 2010.06.07 https://www.joongang.co.kr/article/4222253#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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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2-12-06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끊임없는 포스팅과 리뷰 대단하십니다~!! 서곡님.^^

서곡 2022-12-06 21:44   좋아요 1 | URL
앗 별말씀을요 ㅎ 편한밤보내십시오!!ㅋ

서곡 2022-12-07 10:41   좋아요 1 | URL
과찬 감사합니다 오늘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최영미)로부터 옮긴다.

사진: UnsplashSouza Sergio


우리 나라의 월드컵 레이스가 끝났다. 최영미 시인이 올해 11월에 쓴 칼럼에 이번 브라질전에서 골을 넣은 백승호 선수 이야기가 나온다. [더 행복해지려, 불행을 잊으려 축구를 본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사 대표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1119/116552710/1





공은 내가 기다리는 곳에서 오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_2017. 06. 08

- 2부 아름다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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