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우리 나라에서 공연한 연극 '노라는 지금'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여 우리 나라의 미투 이슈를 다루었다고. https://www.sfac.or.kr/theater/WZ020400/webzine_view.do?wtIdx=11782 '인형의 집' 뒷 이야기를 쓴 옐리네크의 희곡을 전에 그녀의 대표작 장편 '피아노 치는 여자'에 이어 읽었는데, 소설에서 느낀 바와 비슷하게 예리하고 염세적인 기억이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라가 남편을 떠난 후 일어난 일 또는 사회의 지주(支柱) [Was geschah, nachdem Nora ihren Mann verlassen hatte oder Stützen der Gesellschaften]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독일문학, 2013. 11., 이영기, 노영돈)
연극 '인형의 집' 1918년 브로드웨이 공연 사진
2019년 우리 나라에서 공연한 연극 인형의 집 파트2, 미국 극작가가 썼다는데(외서 검색하니 나온다) 영화화되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9449760&memberNo=37451778&navigationType=push 자세한 내용과 결말이 있다.
박호산 배우의 낭독으로 피츠제럴드의 단편 '겨울 꿈'을 들었다. 재미있었다. 특히 박 배우가 여성 인물을 연기할 때 웃음이 절로 났다. 하필 아름답고 부유한 여성으로 구체화된 '꿈'에 매달리는 남성의 삶이 펼쳐진다.
F. Scott Fitzgerald House, Buffalo, New York By Andre Carrotflower - Own work, CC BY-SA 4.0
김승옥의 '환상수첩'은 엄청나게 끔찍하다. 여성을 거침 없이 희생양으로 삼는 남성들을 거칠게 드러낸다.
사진: Unsplash의Josh Withers
「환상수첩」에 나타난 이항대립 연구 - 해체적 사유를 통해서 - (2021)
김윤식은 적었다. "바다와 죽음의 이미지를 빼면 이 글은 무너진다." 그리고 "바다와 죽음의 두 이미지는 60년대 문학적 특질의 하나를 표시하는 상징물이다." 여기에 덧붙여 나는 ‘눈’과 ‘소금’의 이미지를 빼면 이 글은 무너진다고 말하고 싶다. 이 소설을 쓸 당시 김승옥에게 ‘자살과 속화’라는 양자택일만이 존재했기 때문이고, 자살을 택하는 또래 주인공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 길이 더 순수한 길이라는 생각을 끝내 버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해설 / 신형철)
[네이버 지식백과] 『슈크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백신애의 '슈크림'은 사랑스럽다. 일본 신혼여행에서 슈크림을 잔뜩 먹고 질린다는 내용.
사진: Unsplash의Aneta Voborilova
"내일 또 먹겠어요. 더 못 먹겠어요." 하고 겨우 거절을 하면 그 편은 내가 체면이나 하는 줄 알고 자꾸 권하니 그런 딱한 노릇이라곤 없었어요. 하는 수 없이 한 자리에서 열 개를 계속해 집어넣었더니 지금까지라도 슈크림이라면 머리가 흔들립니다. - 슈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