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김은주 지음)의 'III 주디스 버틀러-삶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 욕망을 인정하기' 중 서론을 읽었다. 


Judith Butler | Undoing Gender ('젠더 허물기')

버틀러는 『젠더 허물기』에서 그의 철학적 문제 제기를 다음의 질문으로 제시한다."무엇이 나 자신의 삶을 견딜 만하게 하는가?"

버틀러의 관심은 ‘어떠한 조건이 나를 나로서 살게 하고, 삶을 견딜 힘을 주는가’에 있다. 이 질문은 이렇게 바꾸어 물을 수 있다. 어떠한 인간 조건이 나를 보편적 인간의 영역에서 몰아내고, 나로 하여금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가?

누구의 삶이 참된 삶으로 인정받는가? 살 만한 삶, 견딜 만한 삶이란 무엇인가? 좋은 삶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오랫동안 ‘좋은 삶’에 여성의 삶이 포함되지 않았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지금은, 포함되는가? 그렇다면 여성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 나를 배제한다면, 나는 나의 이 삶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삶에 대한 버틀러의 의문은 자신의 젠더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다.

"어쨌거나 나와는 결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여성성은 분명 어딘가 다른 데 속해 있어서, 나는 여성성을 구현했거나 구현하려는 존재가 되기보다는 여성성을 바라보는 관객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즐거웠다. 그렇다고 내가 내 몸과 분리되는 것은 아니었다." 『젠더 허물기』, 조현준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 3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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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프 이너프'(데보라 넬슨 지음, 김선형 옮김)의 '4. 수전 손택 / 마취-미학과 작인'이다. 선배 세대인 아렌트-매카시와 비교한 역사적 관계성이 흥미롭다.


Jackie Kennedy III, 1966 - Andy Warhol - WikiArt.org * 손택의 책 '해석에 반대한다'가 나온 해가 1966년이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에 사망했다.

손택은 비교적 평화롭고 번영하던 1950년대 냉전 시기에 성장한 반면, 매카시는 갈수록 파시즘이 득세했던 1930년대의 경제공황 속에 성장했다. 그러나 매카시와 아렌트가 그랬듯, 손택 역시 감각에 대한 믿음의 상실에 깊이 괴로워했고 가장 시급한 문제로서 (그러나 선배들과 달리 행복하게) 미학교육에 새롭게 헌신할 것을 주문했다. 손택의 매니페스토인 《해석에 반대한다》(1966)는 두려움보다 낙관주의의 색채가 강하고, 1960년대에 새롭게 부상하던 국가 정체의 영향을 받았다.

메리 매카시는 어느 칵테일파티에서 수전 손택을 만나 장난스럽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듣자 하니 당신이 요즘 새로운 나로 통한다면서요."

손택도 매카시와 아렌트처럼 감정적 자기 제어를 선호했지만, 감정의 전시에 엠바고를 거는 데 노력하기보다는 오히려 주체agency 내면의 상태에 훨씬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게다가 손택은 미학을 단순히 이해와 지식의 도구로서뿐 아니라 감정 관리의 도구로 이해하기도 했다. 더욱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은 과도한 감정이나 결핍된 감정에 대한 해독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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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디스 버틀러,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주디스 버틀러 지음, 양효실 옮김)의 '2장 죽일 수 없는 - 레비나스 대 레비나스' 중 '어디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까?'가 출처이다. * 레비나스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5r4163n7 

"가자지구 공격 중단하라"


"타자의 얼굴에 깃든 불확실성과 무력함은 내게는 죽이고 싶은 유혹이면서 동시에 평화에 대한 호소, 곧 ‘죽이지 말라’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먼저 내게 해를 입히지 않았음에도, 혹은 누군가가 내게 해를 입힐 것 같지 않은데도 나는 그 타자를 죽이고 싶어 할까? 단도직입적으로 정치적 이야기로 들어가면 결국 우리는 거기서, 정치 한가운데서 윤리적 요구를 만나게 되는 것일까? 레비나스는 여러 사례를 들어서 윤리적인 것은 이미 진행 중인 싸움의 한가운데서 출현한다고 말한다.

레비나스가 얼굴과의 만남을 ‘살인 유혹과 동시에 살인 금지’인 것으로 서술할 때, 그는 금지를 생산하는 불안과 욕망도 거론한다.

레비나스가 보기에 비폭력은 평화로운 장소보다는 오히려 폭력을 겪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폭력을 입힐 것이라는 두려움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으로부터 도래한다.

평화란 항상 어느 정도는 폭력적인 과정이고, 비폭력이란 이름으로 벌어지는 일종의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 전통이 학살과 슬픔을 설명할 수 없는 이론적 이성을 세운다고 고발한다. 스스로의 전쟁사를 대면했을 때, 유럽은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안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인간 관계성 개념은 다음과 같은 측면, 곧 인간의 궁핍을 타자들의 삶을 보호하려는 어떤 책임과 연결하는 측면을 작동시키는 형상들을 통해서만 정교해질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덧없는 존재, 먼지, 재와 같기에,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삶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은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삶이 사라지지 않도록 투쟁해야 한다.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바로 이 사실에 토대해서 살인적인 공격도 어떤 니힐리즘의 형태도 아닌 의무가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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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의 사람들'(한나 아렌트 지음, 홍원표 옮김)의 '제12장 팔순의 마르틴 하이데거'로부터 발췌했다.  


하이데거가 태어난 독일 메스키르히의 하이데거 하우스 By Andreas Praefcke, CC BY 3.0, 위키미디어커먼즈 * [네이버 지식백과]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60654&cid=40942&categoryId=33457


하이데거가 『사유의 사태로』(Zur Sache des Denkens)에서 언급하듯이 "철학의 종말"*은 철학의 명예이고, 철학에 명예를 부여하는 완성이었으며, 철학과 철학의 전통에 아주 깊이 연관되어 있었던 사람은 종말을 대비한다. 하이데거는 평생 철학 텍스트에 기초해 세미나와 강의를 마련했다. 『사유의 사태로』는 책의 첫 부분인 "강연 「시간과 존재」에 대한 세미나 기록"을 담고 있다.

*하이데거가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저서인 「철학의 종말과 사유의 사태」라는 글에서 철학의 종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철학의 종말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어떤 것의 종말을—퇴락이라든지 또는 더 이상 할 수 없음이라고 이해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너무도 쉽게 부정적인 의미에서 단순한 중지로서, 또는 진행의 부재로서 이해한다. 이와는 반대로 철학의 종말이라는 말은 형이상학의 완성(Vollendung)을 의미한다. 여기서 완성은 철학이 자신의 종말과 더불어 최고의 완전성에 도달했어야 마땅하다는 그런 의미에서의 완전성을 뜻하지 않는다." 문동규·신상희 옮김, 『사유의 사태로』, 도서출판 길, 2008, 143쪽 참조할 것-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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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틱스 강에 아킬레우스를 담그는 여신 테티스 Tethys Immerses Achilles in the Waters of the Styx, 1817 - Francesco Hayez - WikiArt.org * 스틱스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3s1134a


'숨겨진 그리스 로마 신화'(프랜시스 베이컨 지음, 임경민 옮김)의 ‘스틱스 강, 맹약 - 군주들의 신성한 맹약에 담긴 불가피성에 관하여’를 읽었다. 저자 베이컨은 귀납법과 경험론으로 알려진 영국의 철학자이다.

지하세계(Hades)에는 스틱스(styx) 강이 흐르는데, 이 강과 관련된 단어로 stygian이 있다. stygian darkness는 ‘칠흑 같은 어둠’, 즉 ‘지하세계의 암흑’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스틱스 강은 그 강에 몸을 담그는 자에게 불멸을 선사하기도 했는데, 아킬레우스는 어렸을 때 어머니 테티스가 그 강에 몸을 담가 불멸의 힘을 얻게 되었다. 다만 그녀의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잡고 있던 발뒤꿈치만은 물에 젖지 않아 ‘치명적인 급소’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 부위를 ‘아킬레스건’(Achilles tendon)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주 강한 부위라고 한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그 어떤 신도 어길 수 없는 신성한 맹약 하나가 고대의 많은 신화들에 등장한다. 이 맹약은 불가피성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이들은 맹약을 맺으면서 어떤 거룩한 신성도 들먹이지 않았다. 다만 플루토의 하계를 에워싸고 굽이굽이 흐르는 스틱스 강을 증인으로 세웠다. 형식상 이러한 조건 말고는 아무런 의무조항도 없었기 때문에 그 조건을 어길 경우 일정 기간 신들의 연회에 초대받지 못하는 매우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

이 불가피성은 결코 되건널 수 없는 운명의 강, 스틱스 강을 통해 품격 있게 표현된다.

고대인들은 이런 식의 표현을 통해 제국과 영토의 권리와 특권, 부와 행복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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