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망명 시절 사진 두 장을 가져왔다.

트로츠키 1910




트로츠키 1912








오스트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법률을 연구하듯이 마르크스 이론의 이런저런 부분을 배우고 《자본론》이 낳는 이자로 먹고살았기 때문에 너무나 자주 속물적인 근성을 드러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유서깊은 수도 빈, 이 계층적인데다가 허황되고 알맹이 없는 도시에서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일종의 짜릿한 말초적 기쁨을 느끼며 서로를 ‘박사님(HerrDoktor)’으로 부르고 있었다. 노동자들도 흔히 그들을 ‘박사 동지(Genosse Herr Doktor)’로 불렀다. - 제16장 두 번째 망명과 독일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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