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이 에리크 로메르의 〈녹색 광선〉과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들을 좋아하고, 비슷한 정치 성향을 가졌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사람 모두 삼십대 초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삶을 꿈꾸며 프랑스에 건너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사이를 어색하게 가로막고 있던 벽을 허물었다.

우리는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바다로 나가 수영을 했다. 반짝이는 수면이 바람에 일렁였고, 해변의 모래는 뜨거웠다. 언니는 모래 위에 두꺼운 비치 타월을 깔아놓고 누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었다.

모래밭 위에는 색색의 파라솔이 활짝 펼쳐져 있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을 계기로 우리의 관계가 회복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고, 예감뿐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기분이었다. - 시간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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