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의 단편 '다산성'(1966)으로부터


[네이버 지식백과] 김승옥 [金承鈺]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3266&cid=41708&categoryId=41737




사진: UnsplashHimanshu Gangwar



"오늘 낮엔 무얼 하셨어요?"

나는 값을 받는 듯한 태도로 물었다.

"옆집 마당 위에 고추잠자리떼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있었어요. 그 집 마당에 코스모스가 많이 있잖아요? 그 위를 잠자리떼들이 마치 공중에 가만히 떠 있는 것처럼 하고 있었어요."

그 여자는 얼굴을 빨갛게 하고 그러나 고개는 숙이지 않고 성우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요?

내가 물었다.

"별루 생각 없었어요. 내년엔 우리집 마당에도 코스모스를 심어야겠다는 생각 좀……"

"코스모스 정말 좋지요? 고향엘 가느라고 가끔 기차를 타면 철둑 양쪽으로 코스모스가 피어 있곤 했지요. 한때는 코스모스 라인이라구 해서, 라인이란 건 영어로 줄이란 말이잖아요? 전국 철로 양쪽에 코스모스를 심게 했다는데, 요즘은 기차를 타도 그게 없어졌어요. 가뭄에 콩 나기로 어느 시골 정거장에나 좀 심어져 있곤 하지요."


그 여자 얘기의 분위기에 맞추느라고 기껏 한 내 얘기는 그러나 마치 쇼펜하우어가 잉크병에 돈을 숨겨놓고 쓸 만큼 의심쟁이였다는 얘기를 하는 투가 되어버려서 나는 자기의 얘기에 화가 났다.

"코스모스도 좋지만 잠자리떼가 참……"

그 여자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 고추잠자리……"

고추잠자리에 대한 내 나름의 회상이 또 나올 판이었다. 나는 그 여자의 말에 감동한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더 긴 소리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 다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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