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리츠의 등대 By Mark Fischer - Own work, CC BY 4.0, 위키미디어커먼즈


비아리츠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0b3255a


1939~1940: 어머니, 동생과 함께 살면서 비아리츠고등학교에서 가르침. - 롤랑 바르트 연표

음악과 시에 대해서 말하자면, 어느 날 저녁에 비아리츠에 있는 한 술집에서 스페인 여자무용수―라 테레시나*―를 보았는데, 나는 완전히 황홀경에 빠져버렸네. 나는 무용 분야에서의 그녀를 음악과 미술에서의 베토벤과 발레리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네. *문제의 스페인 여자무용수는 ‘라 테레시나’라고 불리는 테레사 보로나트Teresa Boronat(1904~1983)다.

분명, 이 모든 것으로 인해 이곳 비아리츠에서 봄이 찬란한 정원과 파도가 넘실거리는 해안에서 빛나는 것이 방해받고 있네. 그리고 제발 이렇게 생각해주네. 내가 지금, 이 봄, 이 지역, 이 평화, 그처럼 가까이에 있고, 그처럼 친구 같고, 그처럼 확실한 이 모든 것을 양껏 즐기고 있다고 말일세. 자넨 이런 것들을 잘 알고 있을 거야. 자네가 깨끗하고도 황량한 바닷가에서 한 산책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이지.

나 역시 종종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등대로 가곤 하네. 심지어는 어두운 저녁에도 가끔씩 가지. 어제는 영화관에서 오는 길에 등대에 올랐네. 밤이 완전히 기이했고, 완전히 부동이었고, 거의 죽었다는 느낌이었네. 정체되어 움직이지 않는 부드러움으로 꽉 차서 말일세. 바다 위로 난 꽤 높은 테라스 가장자리로 다가갔네. 바로 정면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금빛처럼 노란 초승달을 보았기 때문이었네. 날렵하고, 활처럼 휘었고, 끝이 뾰족한, 진짜 반달이었네. - 1.롤랑 바르트가 필리프 르베이롤에게/제1부 청소년기에서 전지요양소에서의 소설까지, 1932~1946

필리프 르베이롤(1917~2013)과 롤랑 바르트 사이의 관계는 바르트의 여정에서 아주 예외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읽을 수 있는 편지들이 증명해주는 것처럼, 이들의 편지 교환은 청소년기, 즉 두 사람이 루이르그랑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1~1932년부터, 바르트가 죽을 때까지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바르트가 죽었을 때 르베이롤은 그리스 주재 프랑스 대사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1936년에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고, 1941년에 역사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 르베이롤은 전쟁 후에 외교관의 길을 간다.

아주 중요한 외교활동 말고도 르베이롤은 지식인의 길을 계속 걸어갔다. 이는 보들레르, 마네, 스피노자 등에 대해 그가 쓴 많은 텍스트가 증명해준다. 이 텍스트들 중 어떤 것들은 아직 미간행 상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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