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사진가 고 김영갑이란 분이 계셨고, 그가 설립한 갤러리가 제주의 명소 아니 전국적 명소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지 그가 루게릭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건 몰랐었다. 어릴 때부터 그는 철저히 독립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집,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작업실, 결국 그는 자기만의 갤러리를 갖추었다. 나비학자 석주명이 보관하기 어려운 나비표본들을 태워 없앨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를 듣고 김영갑은 먹고 씻는 기본적인 일마저 힘든 투병 중에 본인의 작품들을 위한 갤러리를 세운다. 생전에 그는 아무도 초대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 전시회를 연 적이 있다고 한다. 


김영갑갤러리두모악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3g1748n12




한라산에 폭설이 내리는 한겨울에도 갤러리 정원에는 수선화, 복수초가 핀다. 그것들이야 눈 속에 꽃을 피우는 게 당연하지만 너도바람꽃, 미나리아재비가 눈 속에 꽃눈을 열었다. 겨울잠에서 성급하게 깨어난 개구리들도 자주 출몰한다.

무성한 이파리들을 모두 벗어버린 겨울나무처럼 내 몸도 앙상하다. 사십대 후반인데 거동 불편한 노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절망하기보다는 편안하게 현실을 받아들인다.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 피어난 너도바람꽃처럼, 고통의 끝에서 무사히 봄을 맞을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두려움 없이 나아갈 것이다. 한겨울 중에 움트는 봄의 기운을 나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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