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에세이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중 김엄지의 글로부터

Study for Inner Improvement, 1977 - Helena Almeida - WikiArt.org


성취없는 일상, 김엄지 https://v.daum.net/v/20151214085419106


걷다가 지쳐 앉을 만한 돌을 찾아 앉았다.
앉은 곳 바로 앞에 물이 흐르니 손가락을 담가 뭐라도 써보고 싶었다.
물에 쓴 은혜. 돌에 쓴 원수.
아직 물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원수는 수백 수천 번 마음에 새겼다.
새긴 자리에 또 새기니 마구 파여 정작 원수의 이름은 희미하다.
참삶을 사는 사람은 원수도 은혜도 없는 마음이려나.
참삶을 사는 사람은 무엇도 쓰지 않고 살겠지.

나는 이제 테이블 위에 벌려놓은 것들을 가방에 넣고, 가방을 메고.
그다음에는 ‘그다음 일’을 생각해야겠다.

- 그다음 일 * 김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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