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잉어'(비키 바움 지음 / 박광자 옮김) 수록작 '굶주림'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제목 대신 다양한 딴 제목이 선택 가능한 다채로운 세계를 품은 작품이다. 잊기 어려운 인물을 창조했다. 러시아 망명귀족 출신 피아노 교사인 그녀는 스컹크와 살고 있다. 당대의 현실 스케치도 흥미롭다.


스컹크 - 사진: UnsplashMaddy Weiss


크라이틀라인 부인은 다시 기대에 가득 차서 여자의 입을 쳐다보며 물었다. "실례지만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전 피아니스트예요. 이제는 음악회에서 많이 연주하지 않는데, 가르치는 데 특별히 재능이 있어요. 전 페테르부르크 왕립 음악원의 교수였어요. 하지만 최근 그곳의 정치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서요. 아마 이해하실 거예요. 속상하니까 그 얘긴 그만하죠." 여자는 정말 화가 난 것 같았다. 입가가 약간 떨리고 손도 그랬다.

그녀가 말했다. "제가 동물을 길러요. 아주 작아요. 귀여운 작은 동물이에요. 전 절대 헤어질 수 없어요. 저의 유일한 기쁨이거든요."

맙소사, 하고 크라이틀라인 부인은 생각했지만 여자가 침묵하는 동안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케이지 안에 들어 있는데, 거의 눈에 띄지 않아요." 여자가 말을 하는데, 기운 면장갑의 손가락이 좀 더 심하게 떨렸다.

"새인가요?"라고 크라이틀라인 부인이 물었다. "전혀 아닙니다. 새는 시끄럽죠. 아주 작고 조용한 동물이에요. 제 행복의 전부예요. 추억도 많고……."

"뭐라고요?" 크라이틀라인 부인이 물었다. "스컹크요. 담비 비슷한 거예요. 스컹크입니다." "냄새나지 않나요?" "아뇨, 순해요." 여자가 애원하듯 말했다.

"저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상당히 알려진 피아니스트였어요. 열여덟 살에 차이콥스키 앞에서 연주를 했어요."

"아" 하고 의사가 말하고 검사하듯 잠시 쳐다보았다. 여자는 이제 훨씬 좋아졌고, 가슴속에 묘한 생기까지 생겼다. 자신의 생애와 활동에 관해 의사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 굶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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