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문학자 정항균 교수는 다와다 요코에 관한 단행본을 2021년 12월에 출판했다.


[다와다 요코의 소설 '목욕탕'에서는 인간의 신체 중 특히 피부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피부는 인간 신체의 외부와 내부를 표시하는 경계로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는 장소이다. 또한 “피부는 궁극적으로 그 밑에 놓여 있는 진정한 본질을 숨기고 있는 방어막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다와다 요코의 작품에서는 피부의 심층에 놓여 있는 이러한 진정한 본질이 허상으로 폭로되고 유동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의 이미지로 대체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지구의 70퍼센트가 바다이기 때문에 지구의 표면이 매일 바뀌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상에서 유동적인 물의 움직임이 정지된 채 세계가 정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녀는 지구의 실제 모습이 일종의 화장술로 지도의 모습을 띠게 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그녀는 인간 신체의 80퍼센트를 구성하고 있는 물에 의해 인간의 얼굴이 매일 달라지지만, 화장이 그러한 차이를 없애며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게 만든다고 말한다.

 

주인공은 이처럼 지리적인 요소와 신체적인 요소를 서로 비교함으로써 신체의 장소적 특성을 강조한다. 특히 피부로서의 얼굴이 한 개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소로 등장하는데, 우리는 물처럼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인간의 정체성을 화장을 통해 지워버리고 매끄러운 하나의 정체성으로 포장해낸다는 것이다. 여기서 화장의 인위적인 특성은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사회문화적인 기술을 지시하며, 정체성의 형성이 특정한 사회, 문화, 역사적 맥락과 떨어져서 생각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방식의 얼굴 만들기는 민족적, 인종적 정체성 형성에도 사용된다. 주인공의 남자친구인 크산더(알렉산더의 약자로, X-ander라는 말에는 ‘타자 der Andere’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나’의 사진을 찍고 나서 ‘내’ 모습이 충분히 일본인처럼 나오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한다. 그는 여자 친구의 모습을 자신이 갖고 있는 아시아 여성의 상에 끼워 맞추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얼굴과 살은 ‘타자의 응시’에 의해 반복적으로 쓰이고 형성된 재록양피지로 묘사된다. 그러한 응시는 어쩔 수 없이 여행보고서처럼 읽힐 수 있을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코드 및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현실재현의 가장 정확한 수단으로 간주되는 사진이 사실은 현실, 여기서는 인종적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허구성의 매체로 폭로되는 것이다.

 

주인공이 크산더의 이러한 태도를 못마땅해 하며 그에게 피부에 색이 있다고 믿는지 묻자, 그는 그러면 살에서 색이 생겨나느냐고 반문한다. ‘내’가 피부가 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의 유희로 인해 색이 생겨난다고 하자, 그는 그렇더라도 결국 그 빛의 유희가 자신의 피와 그녀의 피부에서 다르게 나타나지 않느냐고 다시 반박한다.

 

이에 대해 그녀는 “빛은 모든 피부에서 다르게 유희해. 모든 인간, 매 달, 매일 다르게 말이야”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보통 피부색에 따라 인종을 구분하지만, 사실은 피부색은 피부 위에서의 빛의 유희작용에 불과하며, 그러한 작용은 매순간 달라지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한 사람의 피부색 역시 명확히 특정한 색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피부는 형태나 모습뿐만 아니라 색깔에 있어서도 매 순간 달라지는 유동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출처:투명한 관, 유령의 집- 다와다 요코의 "목욕탕"에 나타난 장소와 정체성의 관계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2408360#none 정항균 (2018) 

In the Baths, 1911 - Kazimir Malevich - WikiAr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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