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의 이탈리아 여행기 '이탈리아, 물에 비친 그림자의 기억' 중 로마에서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이 책의 표지에 쓰인 그림)을 본 감상이다.  

베르베리니 궁전의 베아트리체 디 첸치의 초상화는 결코 잊히지 않을 그림이다. 초월적인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얼굴에는 그림을 뚫고 나와 나를 사로잡는 빛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지금도 이 종이와 펜을 보듯 그 그림이 눈에 선하다. 머리에는 흰 천이 느슨하게 걸쳐졌고, 아마포 주름 위로 머리카락이 가볍게 드리워졌다. 그녀가 갑자기 당신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녀의 눈 속―아주 부드럽고 온화하지만―에는 그 순간 애써 극복해 낸 것 같은 일시적인 공포에서 오는 허망함이나 심난함이 담겨 있다. 거기에는 천상의 희망과 아름다운 슬픔과 쓸쓸하고 세속적인 무력함 외에 아무것도 없다.

처형되기 전날 밤 그녀의 모습을 귀도가 그렸다고도 하고, 그가 단두대로 가는 그녀를 보고 그 기억을 떠올려 그린 그림이라고도 한다. 귀도의 화폭에 담긴 그녀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는 단두대를 한 번 쳐다본 뒤 인파 속의 귀도를 돌아보았다. 그것으로 깊은 인상을 받은 그가, 마치 내가 그의 옆에 서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기꺼이 믿고 싶다. 조금씩 힘을 잃어가며 마을 전체를 망친 죄 많은 첸치 가문의 궁전에 그 얼굴이 있었다. 황량한 현관에, 검게 가려진 창문들에, 가볍게 오르내리는 쓸쓸한 계단에, 유령이 나올 듯한 회랑의 어둠 속에. 사연은 그림에도 기록되어 있었고, 대자연이 만든 죽어가는 소녀의 얼굴에도 기록되어 있었다. 아! 하찮은 인습의 권한으로, 소녀는 그 한 번의 손길에 그녀와 가깝다고 주장하던 보잘 것 없는 세상에서 등을 돌리는구나! -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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