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가 회상하는 박경리의 모습을 '박완서 - 문학의 뿌리를 말하다'로부터 옮긴다. 박완서는 박경리 타계 시 장례위원장을 지냈다.





*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 https://www.wonju.go.kr/tojipark/index.do



박경리 선생님은 폐암이란 진단을 받고 참 단시일 내에 돌아가셨지요. 폐암으로 진단받은 것을 우린 따님을 통해 금세 알았지만 외부에 알려지는 걸 극구 말리셨다고 해서, 뵈러 가서도 문병 온 것처럼 하지 않고 그냥 놀러온 것처럼 했는데, 그냥 담배를 피우시더라고요. 담배 좀 끊으시라고 그랬는데도 더 유유히. 폐암이 믿기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전에 가 뵙던 거보다 더 자주 가 뵈었어요. 자주 뵐 때도 여전히 피우시고 그래서, 참, 저렇게 끊지 않고 그냥 있는 것도 괜찮다 싶을 정도로. (청중 웃음) 또 어디 가서 잡수는 것도 똑같이 잡숫고. 또 그걸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 뇌졸중이 와서 입원하시고 즉시 정신을 잃고. 그래서 저는 여러 가지로 그분의 사는 방법뿐 아니라 죽음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서도 남이 흉내 못 낼 대범함, 대단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때 임종도 지켰어요. 그러면서 속으로 기도했어요, 나도 이렇게 죽게 해달라고. (웃음) 그냥 평소의 살던 생활 태도를 조금도 안 바꾸고 입원했을 때는 벌써 정신을 잃으셔서 몰랐었지, 그러니 고통도 안 받고 그냥 돌아가신 거예요. 저게 무슨 복인가, 그 복을 나눠달라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나더라고요.

어떻게 사는 게 가장 옳은가, 이건 뭐 그분이 항상 개탄하시던 게, 항상 농업처럼 우리에게 이자를 많이 붙여서 돌려주는 건 없다고 하셨어요. 무역이고 뭐고 다 소용없다고. 그런 것이 저도 많이 입력이 되어서 그런지 모든 번영, 특히 요즘의 급속한 번영을 볼 적에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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