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 후엔 다시 파리에 도착하게 돼. 우린 내일 급행 열차를 타고 눈 깜빡할 사이에 달려 가는 거야. 꿈만 같군. 비보 라 프랑스(프랑스 만세)……. 여긴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여기선 살 수 없어……. 어쩔 수가 없지. 무식한 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보았거든. (샴페인을 마신다.)

10분만 있다 마차를 타도록 해요……. (방을 둘러본다.) 잘 있어라. 사랑하는 집, 늙은 할아범.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넌 부서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지. 이 벽은 얼마나 많은 걸 보아 왔을까! (딸에게 격렬히 입맞춘다.) 나의 보배, 너의 눈은 보석처럼 빛나는구나. 넌 좋으냐? 정말 좋으냐?

사실, 이젠 모든 게 다 잘됐어. 벚나무 동산이 팔리기 전까지만 해도 우린 걱정하고 괴로워했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다음엔 모두 평온하고 활기까지 띠니 말이야…….

엄마, 빨리 돌아오시는 거죠? 빨리……. 그럴 거죠? 전 시험 준비를 해서 학교에 입학하겠어요. 그런 다음 일을 해서 엄마를 돕겠어요


엄마, 우리 함께 여러 가지 책을 읽도록 해요……. 그럴 거죠? (어머니의 손에 입맞춘다.) 가을 밤이면 우리 책을 읽어요.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나면 새롭고 경이로운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질 거예요……. (꿈꾸듯) 엄마, 빨리 돌아오세요…….

작년 이맘때엔 눈이 왔었지요, 기억하십니까? 그런데 금년은 조용하고 해가 나는군요. 아직 쌀쌀하긴 합니다만……. 영하 3도쯤 될까?

벽이며 창문이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겠어……. 돌아가신 어머니는 이 방에서 거니는 걸 좋아하셨지…….

살긴 살았지만, 도무지 산 것 같지 않아……. (눕는다.) 좀 누워 있을까……? 기운이 하나도 없군.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어. 아무 것도……. 에이, 바보같으니……! (미동도 없이 누워 있다.)

마치 하늘에서 울리듯 멀리서부터 줄 끊어지는 소리가 구슬피 울리고 나서 잦아든다. 정적. 동산 멀리서 나무에 도끼질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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