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커피를 마시고 잠이 안 와 단편 하나 읽고 자기로 하고 요즘 읽는 백수린 작가의 첫 작품집 '폴링 인 폴' 중 '밤의 수족관'을 읽었다. 독자 내맘대로 주인공의 상상에 기반한 악몽이라고 해석해본다. 흠모하던 유명인과 막상 결혼하니 이런 악몽이 펼쳐지네. 예상보다 더 힘든, 수습되지 않는 결혼. 그러니 결혼은 됐고 팬으로 남는 게 나아, 무의식 속 여우의 신포도 이론. 이른바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맞닥뜨리는 열린 결말의 스릴러 팬픽.

Bride and Groom (The Couple), c.1915 - Amedeo Modigliani - WikiArt.org




어느새 나는 어항 속을 맴도는 물고기처럼, 전시실을 몇 바퀴째 맴돌고 있어. 내가 당신과 밥 한끼를 먹기 위해 이렇게 시간이나 때우는 한심한 여자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거야. 누군가는 유명인 남편이 무섭긴 무섭구나, 빈정거리기도 하겠지. 하지만, 당신이 유명인이든 아니든 상관은 없었어. 나는 다만 당신이라는 사람 자체를 열렬히 사랑했던 것뿐이니까. 어쩌면 당신을 내 마음대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내 사랑을 지속시켜주었는지도 모르지. 어쨌든, 은색 비늘을 반짝이며 쏟아지듯 헤엄쳐다니는 정어리떼 앞에 세번째로 멈춰 설 때까지도 당신에게서는 연락이 없었어.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당신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지.

알고는 있지만, 있잖아, 아주 가끔은 가슴이 아파. 때로는 당신이 그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 밤의 수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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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3-1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24년 2월 새로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