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동화집 '고양이 사령관'에는 러시아 전래설화 '눈처녀'가 실려 있다. 노부부가 눈으로 만든 여자아이 이야기. 추위가 사라지면 녹아버릴 수밖에 없는 눈사람의 운명. 한강의 단편 '작별'을 저 눈처녀가 피와 살과 뼈가 있는 인간이 되어 한참 살다가 갑자기 다시 눈사람으로 돌연 변이하는 이야기라고 상상해본다. 


아이가 첫 단어를 생각하는 사이 그녀는 장갑을 벗고 자신의 눈시울 아래를 만져보았다. 좀 전에 아이를 안으며 눈물이 고였던 자리가 움푹 패어 있었다. 왼쪽 가슴 아래 고였던 더운 물은 늑골 아래까지 흥건하게 흘렀다. 자신의 몸이 반으로 꺾인다면 그 자리일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왼쪽 늑골 바로 아래에서, 절반으로 꺾이며 부서질 것이다. 하지만 운이 좋을 수도 있다고 그녀는 고쳐 생각했다. 그 자리가 바깥에서부터 다시 얼어붙어준다면, 어쩌면 이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39

그녀는 어두운 냇물을 내려다보았다. 벌거벗은 버드나무들이 희끗한 눈발을 머리에 인 채 캄캄한 수면을 향해 몸을 수그리고 있었다. 저 검은 물속 어딘가에 여름의 잉어들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은회색 비늘을 빛내며 수면으로 올라올 아열대의 여름으로 그녀는 들어서지 못할 것이다. 어째서인지 그녀 자신 역시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피와 살과 내장과 근육이 있는 몸을 다시 갖고 싶지 않았다. - P46

비록 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아직 그녀는 사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일까, 그녀는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눈과 귀와 입술이 녹으면 어떻게 될까. 정수리부터 녹은 머리가, 눈 녹은 물이 되어 가슴으로 흘러내리면? 심장부터 발끝까지 형상이 남김없이 사라지면? 이 층계참에 흥건한 물웅덩이만 남으면. - 작별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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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2-03-14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작별하지않는다 랑
비슷한듯 하면서 다른것같네요.

흰 이랑 작별
눈한송이가녹는동안 이
뭔가 다 연결되어 이어지는 기분입니다.

암튼 서곡님 글 로 급 읽고싶어졌어요.

서곡 2022-03-16 01:1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흰과 눈한송이, 작별하지 않는다와 작별을 쭉 따라 읽어 왔네요. 아름다운 연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