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사람들의주요 활동 거점이었던 셰르부르, 르아브르 등이 대표적이다.
필리프가 로베르를 비호하는 자는 자신의 적이라고위협했는데도 에드워드는 로베르를리치먼드 백작으로 삼고 그에게 연금과 세 채의 성을 하사했다.
그러나 1330년 로베르는 그의 친척 아주머니가 상속한 아르투아를 위조문서를 이용해 손에 넣으려다 사기 행각을 발각당했다.
에드워드의 호화로운 궁정, 정기적으로 열리던 연회와 마상 창시합은 그에게 뛰어난 참모들을 안겨주었다.
태생으로나 계급상으로나 직업 군인이었던 그의 친구들은 그가 어떤 식으로생각하고 판단하는지 알았고, 스코틀랜드 원정에서 검증받았다. 비록 오래된 봉건 구조는 와해되고 있었지만 사회는 여전히 군사적 위계 사회였으며, 대영주들은 직무상 장군이었다.
당대에 그토록 칭송받던 그의 비의적인 기사도 숭배는 겉모습 아래에 감춰진 인물 됨됨이를 가려왔지만 그럼에도 그의 개성은 드러난다-우아함이흘러넘치고, 친교에서는 따뜻하지만반목하는 상대에게는 가차 없이 모질고 냉혹한 사람이었다. 한편으로는 방종하고 끊임없이 여자를 탐하다가 결국에는 건강을 망치고 말았다.
그가내면에 품고 있던 나폴레옹적 자신감과 영웅왕이 되려는 기묘한 자의식적결심이 어떤 것이었을지는 짐작만 할수 있을 뿐이다.
에드워드 3세는 잉글랜드 역사상가장 강력한 국왕 중 한 명으로, 대략에드워드 1세와 헨리 8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모티머를 몰아낸 뒤 재빨리 봉건영주들로부터 자신의 권위를 확립했고,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권력의 정점에 섰다.
무엇이 에드워드가 끝내 전쟁을 일으키게 만들었을까? 현대의 일부 논평가들은 에드워드한테서 지나칠 정도로 복잡하게 머리를 쓴 정책, 즉 현상유지 작전을 읽어낸다. 그들은 에드워드가 프랑스를 공격함으로써 프랑스의 관심을 기옌에서 다른 데로 돌리려고 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