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석에서 프란체스카는 운전하는 킨케이드를 신기한물건 보듯 한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예이츠의 시를 알며여태 아무도 몰랐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았던 자신의 고향지명도 아는 이 남자. 자신에게 담배를 권하고 먼저 불을 붙여주는 남자. 게다가 다리에 도착해서는 푸른 들꽃을 꺾어감사의 표시로 건네기도 하는데, 그녀는 금세 주부에서 여성으로 돌아가버렸다. 

그 모든 것이 로즈먼 다리로 가고 오는 트럭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의 몸짓과 눈빛은 진실했고 감미로웠다. 바람둥이의 그것과 달랐다.

그날 둘은 프란체스카의 집에서 식사하며 대화를 나눈다.

깔깔대던 식탁에 문득 정적이 흐른다. 서먹한 어색함.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오늘 처음 본 남자한테 빠져도 되는 것일까? 남편과 아들과 딸이 없는 집에 모르는 남자를 데려와서 웃고 있어도 되는 걸까? 식사 후 그가 숙소로 돌아가고그녀는 새벽에 다리로 가서 그에게 쓴 편지를 놓아둔다. "오늘 저녁에 오세요. 언제라도 좋아요." 프란체스카는 아침에그가 사진을 찍으러 올 것을 알고 있다.

편지를 놓고 온 그녀는 마을로 가서 예쁜 원피스를 산다.

평생 입어보지 못한 등이 훤히 드러나는 아름다운 옷. 오직낯선 사내에게 보이기 위해 산 옷이다. 그날 저녁, 프란체스키는 그 웨딩드레스 같은 옷을 입고 정식으로 그를 맞이한다. 멋진 식사였다.

시에 관해, 그녀의고향에 관해, 각자의 꿈에 관해 이야기했다. 

욕실에 들어선그녀는 그가 막 샤워했던 수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무릎에 닿는 순간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그날 밤, 둘은 함께 섹스한다. 

그녀는 사흘 동안 그와 함께 지내기로 한다.

두 사람에게 허용된 시간은 짧았다. 

사흘 동안 그녀는 누구의 아내도 엄마도 아니었고, 농장 일도 트랙터도 싱크대에 쌓인 접시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시간이다. 

도덕이라는시스템 말이다. 

사흘째 아침, 프란체스카는 떠나려는 킨케이드에게 노골적으로 시비를 건다. 

"그렇게 매번 가는 곳마다 여자를 꼬드기나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그들은도덕과 사회 질서와 가정에 관해 말한다. 사랑과 외로움과두려움에 관해 말한다. 

위선과 진실함과 운명에 관해 말한다. ‘그래, 그저 심술부려본 것뿐이야. 그녀는 그의 마음이진실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시스템이라는 적을 만나면 주인공은 영리해진다. 

처음에는 상대를 적으로 삼지만 곧 진짜 적은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도 마찬가지다. 

둘은 서로의사랑을 확인한 후 곧바로 연합하여 진짜 적인 도덕의 딜레마와 싸운다. 

내일이면 그녀의 가족이 돌아온다. 

스승 콰이곤이 죽었기에 큰형이 막내를 맡은모양새이다. 

둘은 팀이 되어 여러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아나킨에게는 누르는 돌이 필요했다. 

누구도 따라올 수없는 선천적인 능력을 지닌 아나킨의 눈에 제다이들의 의사 결정은 한심해 보였다. 

단칼에 끝장낼 수 있는 사건을 답답할 정도로 관망하거나 느슨하게 대처하는 태도는 젊은아나킨의 분통을 터뜨렸다. 

게다가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주지 못하는 요다나 메이스 윈두 등 원로 제다이의 시선도불만이었다.

오비완은 아나킨에게 주의를 준다. "서두르지 마. 위에서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야." 오비완은 아나킨에게 조절과 균형을 중요시하는 제다이의 법칙을 엄격하게 강조하는 한편, 기다리면 위에서도 인정해줄 것이라고 다독이지만 아나킨에게는 그 말이 와닿지 않는다. 

결국 아나킨은 제멋대로 움직이고야 만다. 파드메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구하기 위해 다크 사이드로 돌아선다.

천재에게는 날개가 아닌 무거운 돌을 주라고 했던가. 

아나킨에게는 그 역할을 할 인물이 없었다. 요다와 메이스 윈두 같은 지체 높은 제다이 원로들은 아나킨을 맡으려 하지않았다. 

왜? 아나킨의 근본에서 악에 기웃거릴 수밖에 없는슬픔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을 받지 못한환경에 있었다. 특히 아버지의 부재가 크다.

요다와 윈두는 아나킨을 콰이곤이 주워 온 잘못된 보석으로 보았다. 

아나킨은 늘 사랑에 목말라했다. 제다이는 사랑을 금지한다. 사랑뿐 아니라 재물욕, 명예욕, 기쁨, 슬픔,
미움 등 인간의 오욕칠정을 경계한다. 마음의 평온을 홀트리기 때문이다. 

아나킨은 거기에 휩쓸릴 가능성이 컸다. 왜사랑을 목말라했으니까.

일전에 요다는 어린 아나킨에게 "공포는 분노를 낳고, 분노는 증오를 낳고, 증오는 고통을 낳는다"고 말한 바 있다.

물같이 고요한 마음, 아니 그런 마음까지도 비우고 완전한무가 되는 상태를 강조했다. 포스의 균형은 다름 아닌 거기서 나왔다. 예언의 균형자라면 누구보다 그 점에 강해야했다.

하지만 아나킨은 끝없이 사랑을 갈구했고, 종국에는 사랑 때문에 운명을 거스르고 만다. 납치된 어머니 슈미가 죽었을 때, 그는 속에 있는 분노를 끄집어냈으며 사랑하는 파드메를 살리기 위해 어둠의 힘과 손을 잡아버린다. 마스터요다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천성이 학생보다 높은 것일까? 오비완이 아닌 요다나 원두가 아나킨을 제자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그들이맡았어도 아나킨은 습성대로 모든 것이 못마땅하고 답답했을 것이다. 

왜? 너무 출중했으니까. 악당의 본질은 여기서생겨난다. 

"집도 팔고 재산을 정리해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요. 거기서 새롭게 시작해요. 종일 낚시나 해요. 거기서 죽을 때까지 살아요." 

코니는 남편에게 다 잊고 새로 시작하자고 말한다. 

차는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계속 그 자리에서있다.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둘은 다시 그들의 삶으로 돌아가기로 했는지, 아니면 경찰서로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다. 

과연 그들은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코니는정말로 벌을 받지 않았을까? 

분명한 사실은 그들은 시스템이라는 적에게 패배했다는 것이다. 

둘은 절대로 과거처럼살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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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하나의 수컷과 하나의 암것이 만나 생식해야 했다. 

흔히 일부일처제는 암컷이 자신과 태어난 자식을 돌보지 않고 이리저리 씨를 뿌리려 돌아다니는 수컷을 붙잡아두고 고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선택한 제도라고 말하지만, 이는 잘못된 말이다. 

생존을위해서였다면 암컷은 이런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능력좋은 수컷이 열 명의 암컷을 거느려 열 명의 암컷과 자식에게 고기를 제공한다면 어쩔 것인가? 

반면에 능력 없는 수컷이 한 명의 암컷과 결혼해서 한 점의 고기도 제공하지 못한다면? 일부일처제는 암컷의 선택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이 왜 이어졌을까? 바로 수컷 대수컷의 계약이라는 주장이 힘을 받는다. 

수렵과 합동으로사냥하던 시절, 인간 사회는 평등했다. 

그들은 사냥한 고기가 썩기 전에 얼른 먹어치워야 했고 고기가 떨어지면 다시 힘을 합쳐서 사냥했다. 

수컷 하나가 음식 자원을 독점할 수 없다. 그래서 당시는 일부일처형이었다. 

여성은 생식과 자식 보호를 위해 월등한 수컷을 선호할 이유가 없었다.

수컷들이 단체로 사냥해서 집단 구성원을 먹여주었기 때문이다.

농경이 등장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잉여 산물이 생기자 수컷들은 계급을 나누었다. 

경쟁에서 이긴 수컷 하나가많은 땅을 소유하고 많은 암컷을 거느리게 되었다. 

구약 성서에 보면 이스라엘 부족장이나 왕들은 아내가 많았다. 

일부다처제는 오히려 농경이 시작되고 계층이 분화되면서 활발해진 시스템이다.

그것이 중세로 접어들면서 일부일처제로 변화했다. 

종교적인 신념도 한몫했겠지만, 생물학적으로도 땅과 힘을 가진 소수의 수컷이 노동을 제공하는 다수의 약한 수컷을 배려함으로써 번식의 기회를 준 것이다. 

강한 수컷이 독점을포기하는 대신 노동력과 사회적 계약(충심이나 신념의 뒷받침등)을 끌어내고 권력을 강화했다. 

이때부터 일부일처제는다시 사회 시스템으로 자리한다.

이 책에서 진화생물학자와 인문학자의 주장을 일일이 열거할 생각은 없다. 

현대의 성 인지 감수성 잣대로는 이해하지 못할 주장이 많다. 

한가지 확실한 점은 인간은 여타의 동물과 다르게 생물학적 본능을 포기하고 일부일처 시스템을선택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도덕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었고중복 짝짓기라는 본능을 억제했다. 

인간은 도덕과 규율을어기지 않음으로써 조직을 강화했다. 

도덕이란 원래 내가아닌 타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인생을 가족에게 바쳤으니 내 마지막은 그에게아이오와주의 시골에 사는 주부 프란체스카는 사흘 동안혼자 집에 머물게 되었다. 

프란체스카는모처럼 자유를 만끽한다. 

홀로 테라스에 앉아 한가로이 바람을 즐기는 그녀 앞에 트럭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온다. 

프란체스카는 주저 없이 트럭에 올라탄다. 

이탈리아에서태어났고 미국 남자와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줄곧 시골에서 수녀처럼 살아온 그녀가 왜농장 테라스 그네에서 일어나서 신발을 찾아 신고 낯선 남자의 차에 선뜻 올라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운명은 그렇게 시작되는 법이니까.

프란체스카는 여행 중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일정을 바꾸고 열차에서 내려 그 마을에서 며칠 묶었다는 킨케이드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세상에 이런 남자가 있다니. 

남편은 식탁에서 말없이 접시를 긁고 서랍을 제대로 닫지 못하며 하루 반 갑만 피우라는 의사의 의견도 가볍게 무시하는 그저 씨 뿌릴 때를 파악하고 트랙터 어느 부위의 나사를고쳐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평범한 농부였다. 

그녀는 남편과는 다른 킨케이드에게 빠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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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소설 『1984 (1949)에서 세계를 다스리는 존재는 빅브라더이다. 

주인공 윈스턴은 기록국에 근무한다.

빅브라더의 국가에서는 집집마다 커다란 텔레스크린을 두고 있다. 

윈스턴은 텔레스크린이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책상을 두고 몰래 글을 쓴다. 

그가 사회에 반항할 수 있는일은 그것뿐이다. 이는 빅브라더가 좋아하지 않는 행동이다. 

빅브라더가 싫어하는 일을 한다면 아무도 모르게 증발한다. 

윈스턴 주변에는 동료가 많다. 

아니다. 그들은 동료가아니라 신고자들이다. 

윈스턴 또한 누군가의 동료이며 신고자이다. 

윈스턴이 사는 사회는 오직 빅브라더를 위해 돌아간다.

윈스턴은 시스템에게 당하고 만다. 

빅브라더가 금지한구성원을 함부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윈스턴은 줄리아와사랑하다가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후 결국은 뇌가 초기화된다. 

소설의 끝 문장은 이렇다. ‘그는 이제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되었다. 

강력하게 구축된 시스템에 한 개인이 저항하는 것은 몹시 무모해 보인다.

2027년 영국은 자국 내로 들어오는 난민들을 모조리 게토에 수용한다. 

인구는 이제 늘지 않고 줄어들 일만 남았다. .

더는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절멸의 시점을 가늠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종말의 시점을 알기에 동요하기도, 또 동요하지 않기도 한다. 

국가는 답이 없다. 오직 사회질서를 잡기 위해 강력한 무력을 사용할 뿐이다. 

국가는 국민에게 자살 약을 배급하고 평화로운 죽음을 권유한다. 

국가의 목적은 종말이올 때까지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기에 국민의 진흥보다는 불법을 방지하는 일에 집중한다.

하루하루 목적 없이 사는 공무원 테오는 아내이자 반군리더인 줄리언의 부탁으로 한 흑인 소녀를 항구까지 데리고 가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놀랍게도 소녀의 배 속에는아이가 있었다. 더는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에서 그 흑인 소녀가 아이를 가진 것이다. 

테오는 본의아니게 소녀와아이를 보호해야 할 소명을 받는다.

테오가 시스템에 저항하는 방식은 흑인 소녀와 그녀의아기를 숨기는 것이다. 

정부군에 아기를 빼앗기면 시스템에 지는 게임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찾는 메시아를 숨겨 안전한 곳에 데리고 가야 하며 인간의 욕심으로부터 메시아를 지켜야 한다. 

메시아는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을 해야하며 현 사회, 현 시스템이 절멸해야 그가 이긴다

주인공은 몹시 하찮은 일로 시스템을 거부한다. 

예를 들면, 아내의 쪽지, 몰래 쓴 일기, 통행증이 필요한 소녀 등이다. 

주인공은 시스템 빌런 앞에 용감하게 칼을 들고 서서 고함치지 않는다. 

그들은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 한쪽 눈을 조금 찔끔거릴 만한 일에 운명처럼 엮이며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적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시스템의 모순을 깨닫는다.

톰 롭 스미스의 소설 「차일드 44 (2008)는 우크라이나 대기근 당시 스탈린 치하에서 일어난 유아 연쇄 살인 사건을조사하는 MGB 요원 레오 데미도프가 주인공이다. 

레오는전도유망한 당의 엘리트이다. 

그는 당의 명령과 인간적인관계 속에서 갈등한다. 

당은 아내를 스파이로 지목하고, 충성심이 강한 그는 그녀를 뒷조사한다. 

결국, 레오는 시스템대신 아내를 선택하고 실각한다. 

당을 버린, 아니 시스템을거부한 대가는 혹독했다.

공포는 필요하다. 공포가 혁명을 지켜준다. 공포가 없었다면 레닌은 무너졌을 것이다. 공포가 없었다면 스탈린도 무너졌을것이다.

공포는 키우는 것이다. 공포는 그가 하는 일의 일부였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공포에 떨게 하려면 공포의먹이가 될 사람들이 지속해서 공급돼야 한다.

2027년 영국은 자국 내로 들어오는 난민들을 모조리 게토에 수용한다. 

인구는 이제 늘지 않고 줄어들 일만 남았다. 

천국에는 목표와 원칙이, 연옥에는 서류와 절차가 지옥깨지기 마련이다. 

흔히 시스템을 잘 아는 자가 시스템의 모에는 규칙과 규제가 존재한다고 했다. 

시스템은 언젠가는순을 역이용해서 깬다. 시스템은 설계되더라도 완성되지 못한다. 

이상은 없다. 국가의 이상은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시스템만 있을 뿐이다. 국가나 집단이 사용하는 무기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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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죽음 따윈 의미가 없다

광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기 위해광기를 부린다. 

광기 어린 빌런의 궁극적 목표는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 손에 죽는 것이다. 

에이허브 선장은 모비 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고 고래 뼈로 만든 의족을 달았다. 

그는포경선 피쿼드호를 이끌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누빈다. 

그의 집념은 오직 한 가지를 향한다. 

불멸의 고래라고 불리는향유고래, 모비 덕을 잡는 것.

"죽음 따윈 개나 줘라, 그래. 내 보트에는 고래를 두려워하는 놈은 아무도 태우지 않을 것이야!" 

에이허브는 죽음이물기둥 꼭대기까지 치솟아도 두렵지 않다. 

오직 저 흰 향유고래를 잡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모비 딕에게 얻은 쓰디쓴패배와 다리를 잃어버린 절망은 그의 정신을 광기로 바꿔놓았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원한으로 똘똘 뭉친 난폭한 힘이 그놈에게 있다는 것을 난 안다. 

내가 그토록미워하는 것이 바로 그 불가사의한 원한이야."

에이허브가 전의를 불태우며 선원들을 몰아붙이자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피쿼드호 구성원이 전멸하리라 예감한다.

노련한 고래잡이인 스타벅은 두려움에 떨며 탄식한다. 

광기의 아이템 뤼크 베송 감독의 영화 <레옹>(1994)에는 무시무시한 광기를 보이는 악당이 등장한다. 

바로 마약단속국장 노먼 스탠스필드, 노먼 역시 마약 중독자다. 

어느 날 마틸다 가족이 사는 허름한 아파트에 마약단속국 경찰들이 들이닥친다. 

부하들이 총총 자리를 잡자 뒤늦게 계단을 올라온 노먼스탠스필드 국장의 등장은 처음부터 기묘하다. 

그는 노란색 이어폰을 끼고 복도 한가운데서 머리를 흔들고 서 있다.

그가 듣는 음악은 베토벤의 곡이다. 

마약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마틸다의 아빠를 끈질기게 재촉하던 형사는 손으로스탠스필드를 가리킨다. 

"저 사람(스탠스필드)은 음악을 들을 때 방해하면 무척 싫어하지. 

뚜껑을 열고 한 알을 입에 넣은 다음 몸을 비틀기 시작한다.

몸 안에 있는 악성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관객은 본능적으로 안다. 

이제 광기의 파티가 벌어진다는 것을.

이때부터 마틸다와 스탠스필드의 갈등 관계가 성립한다.

마틸다는 어린 동생을 처참하게 죽인 스탠스필드를 빌런으로 삼고, 그 역시 불합리한 수사를 기억하는 마틸다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안다.

살인이 벌어지는 장소에서 환희를 느끼는 스탠스필드감정을 표현한 소품이 바로 베토벤 음악과 이어폰이었다.

악당의 광기는 몇 분간 인상을 찌푸리거나 칼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고 표출되는 것이 아니다. 

내뱉는 적절한대사와 그것을 꾸미는 아이템이 필요하다. 

광기를 표현하는데 이러한 오브젝트는 참으로 중요하다.

타란티노 감독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에서 보여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손바닥에 줄줄 흐르는 피 역시 광기를 보여주는 오브젝트이다.

디캐프리오가 분한 캘빈 캔디는 노예 농장 주인이다. 

그는 포악하고 계산적이며 흑인 노예들을 개보다 못하게 여기는악당이다. 

그는 흑인을 사서 결투를 시키고 돈을 번다. 

만딩고라고 부르는 그것은 우리나라의 청도 소싸움 같은 사업이다. 

현상금 사냥꾼인 닥터 킹 슐츠와 그가 구출한 흑인 노예장고가 캘빈 캔디의 농장에 간 이유는 장고가 사랑하는여인 브룸힐다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옆집 사는 살인청부업자 레옹의 집으로 피신한다.

이때부터 마틸다와 스탠스필드의 갈등 관계가 성립한다.

마틸다는 어린 동생을 처참하게 죽인 스탠스필드를 빌런으로 삼고, 그 역시 불합리한 수사를 기억하는 마틸다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안다.

살인이 벌어지는 장소에서 환희를 느끼는 스탠스필드의감정을 표현한 소품이 바로 베토벤 음악과 이어폰이었다.

악당의 광기는 몇 분간 인상을 찌푸리거나 칼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고 표출되는 것이 아니다. 

내뱉는 적절한대사와 그것을 꾸미는 아이템이 필요하다. 

광기를 표현하는데 이러한 오브젝트는 참으로 중요하다.

타란티노 감독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에서 보여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손바닥에 줄줄 흐르는 피 역시 광기를 보여주는 오브젝트이다.

디캐프리오가 분한 캘빈 캔디는 노예 농장 주인이다. 

그는포악하고 계산적이며 흑인 노예들을 개보다 못하게 여기는악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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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을 계속 허락하겠다면 내가 건강을 망가뜨리겠다. 

신이 모차르트의 인기를 도시에 가득 채우겠다면 내가 그의 경제력을 빼앗겠다. 

신이 모차르트의 자신감을 지키겠다면 내가 그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겠다. 

그는 모차르트의 가장 약한 두 가지를 건드리기로 했다. 

바로 돈과 아버지다.

모차르트는 늘 궁핍했다. 

그의 아내는 돈을 빌리기 위해 옷을 벗었고 모차르트 자신도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리며 경제력이 없으면 이렇게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수시로 귀족에게 돈을 빌리러 다녔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강압에 연주 여행을 떠났다는것을 잘 알고 있다. 

모차르트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벗어나고 싶은 그림자이면서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커다란 나무였다. 

그런 아버지가 죽자 모차르트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살리에리는 돈과 모차르트 부친의 죽음을 이용하기로 한다. 

그는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썼던 검은 가면 복장을 하고 모차르트 앞에 나타나 많은 금을 건네며 장송곡을 의뢰한다. 

모차르트는 궁색함을 단번에 해결할 돈을 건네는 검은가면을 쓴 살리에리의 모습이 죽은 아버지로, 또 자신을 데리고 갈 죽음의 사자로 보였다. 

죽은 아버지가 찾아와 나에게 장송곡을 의뢰하다니. 

아버지를 보며 반가운 한편으로는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왔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Game of the Year, GOTY한 호평과 함께 발매 후 올해의 게임 상Gan을 49개나 수상했고 출시 당해 600만장의 판매량을주인공 제이슨 브로디는 비행사 자격증을 딴 기념으로형, 친구들과 스카이다이빙을 하다가 그만 루크섬이라는열대 섬에 떨어진다. 

그곳은 인신매매를 업으로 하는 해결의 근거지였는데, 주인공은 이 무법천지의 섬에서 악당으로부터 친구들을 구하고 섬을 탈출해야 한다.

우리는 제이슨의 시선으로 (게임 플레이어는 일인칭 시점에서제이슨을 연기한다)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 바스를 만나는데 그는 정신없고 폭력적이고 정신없는, 아무튼 결코 만만찮은존재다. 

바스는 지금껏 보아온 여느 게임의 악당과 다르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이다. 

자신을 주인공에게 투영하기도하며 스스로 차이를 부정하는 말도 한다. 

한마디로 미친놈이다. 


그는 제이슨을 잡았다가도 일부러 놓아주면서 천천히가지고 논다. 

게임을 하다 보면 불현듯 화면에 등장해서 중얼거리는 바스를 만나게 되는데, 그의 눈빛과 발을 처음에는 이해하려다가 곧 포기하게 된다. 

바스의 언어를 따라가던 플레이어는 곧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런 놈과 일분일초라도 한 공간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 속에서 바스가 광기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있다. "내가 광기에 대해 말했던가?

일을 반복하는 거야. 계속 계속 반복하는 거지. 

변화를 바라면서, 한마디로 미친 거야. 

어느 누가 내게 그런 말을 (광기는반복하는 거란 말을 하기에, 난 그놈이 날 놀린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봐버렸지. 문제는 말이야. 그래. 그놈 말이 맞았단 거야. 

그리고 내가 눈을 돌리는 곳마다 그런 놈들이 보여 모두그 지랄들 하고 있더라고. 

완전 똑같은 일을 계속하더라고."

논리도 없고 강약도 없다. 

이 말을 하는 동안 바스 뒤로그의 부하가 어떤 사람을 가지고 놀듯 괴롭히다 죽이는 장면이 보인다. 

사실 플레이어는 게임이 끝나도록 바스가 한말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파크라이 3>의 스토리는 중첩된 의미가 가득하고 반전과 비화가 많다. 

이 때문에 ‘무언가가 바뀌길 기대하며 어떤 짓을 반복하는 것을 광기‘라고 말하는 바스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플레이어는드물다.

다만 미쳐 돌아가는 섬에서 바스가 무엇이 정상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지를 고민하는 부분이있다. 

아마도 바스는 정상이 아닌 자들이 (플레이어를 포함해서 사는 섬에서 정상이 되려면 그들처럼 미쳐야 한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게임 스토리에서 플레이어는 의식의 혼란을 경험하고 급기야 미쳐야만 자아를 찾을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이 정상으로 보일 테니까.

그리고 보면 우리 사회에 바스가 없으리란 법은 없다. 높은 바위산을 차지하고 산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노려보며이익만을 위해 사회를 망가뜨리는 멧돼지 같은 자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미치기를 바라고, 그래서 이익이 돌아오는 것을 즐기면서 인간성을 상실한 그들이 진짜 자들이다. 

그들보다 바스는 우리의 현실에서 진짜 미친 자들이 누구인지 생각해보게 해주는 캐릭터다.

이야기 속 기존 악당들이 바스처럼 강렬한 충격을 주지못했던 이유는 줄곧 시시껄렁한 소리만 해댔기 때문이다.

시시껄렁한 소리란, 우리가 이해 가능한 이성적인 언어를말한다. 

광기에 젖은 대사란 좀처럼 이해되지 않아야 진짜다. 

길거리에서 소주병을 들고 중얼거리는 광인들의 말을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가? 

플레이어가 바스의 대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순간, 바스는 미치광이가 될 수 없다. 바스는 플레이어가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광기를 보여주었고, 그래서 확실한 공포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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