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알아챈 변화는 선생님이 점심을 드시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그전에는 매일 점심시간이면 간단히라도 꼭 챙겨 드셨거든요.
아무리 일이 바빠도 식사는 꼬박꼬박 챙기시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점심을 아예 안 드시는 거예요.
뭐좀드셔야지요‘라고 권해도 ‘걱정할 거 없어, 식욕이 좀 없어서 그래‘ 하시면서, 그게 10월 초의 일입니다.
선생님은 매일매일 정해진 습관을 바꾸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분이었으니까요.
어느새 스포츠센터에도 발길을 끊으셨더군요. 일주일에 사흘은 스포츠센터에 나가 수영이나 스쿼시,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하셨는데, 그런것들에 완전히 흥미를 잃으신 눈치였어요.
그리고 옷차림에도예전처럼 신경을 쓰지 않으셨고요. 늘 깔끔하고 세련된 차림이셨는데,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점점 매무새가 흐트러졌어요.
며칠씩 똑같은 옷을 입고 나오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생각에 잠긴 기색으로 점점 말수가 줄더니 이윽고 거의 입을 열지 않고 멍하니 계시는 때가 많아졌어요.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려도 전혀 안 들리는 것 같았어요. 퇴근 후에 여자를 만나는 일도없어져버렸고요."
물때가 욕조 벽에 선처럼 끼어 있는 것을 보니꽤 오랫동안 물이 그대로 고여 있었던 것 같았어요.
깔끔한 성격의 선생님으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정기적으로 부르던 하우스클리닝도 끊어버리셨는지 가구마다 부옇게 먼지가 앉아 있었어요.
다만 의외로 주방 싱크대에서는 오물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어요.
생수병 몇 개만 굴러다닐 뿐, 뭘 드신 흔적은 없었어요.
냉장고를열어보니 뭐라 말할 수 없는 지독한 냄새가 났습니다.
두부며 채소,과일, 우유, 샌드위치, 햄, 그런 것들이요. 전부 큼직한 쓰레기봉투에 넣어 맨션지하에 있는 쓰레기장으로 가져갔습니다."
청년은 빈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각도를 바꿔가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집안을 원래에 가까운 상태로 만드는 데 세 시간 넘게 걸렸던것 같아요.
그동안 창문을 내내 열어둬서 불쾌한 냄새도 대충 가셨지요.
제가 집안여기저기를 오가는 걸 그저 눈으로 좇고 있을 뿐이었죠.
여위신만큼 두 눈이 평소보다 훨씬 크고 촉촉해 보였어요.
그러나 그눈에서는 어떤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죠.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시간을 끄는 것 같군요. 이야기를 짧게 줄이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도카이 선생님은 거식증 비슷한 것에 걸리신 거예요.
음식을 거의 먹지 않고 물만으로 생명을 유지하셨어요. 아니, 정확하게는 거식증도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거식증 환자는 대부분 젊은 여자예요.
미용을 위해 살을 뺄목적으로 식사량을 줄이고, 그러다가 몸무게를 줄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아무것도 입에 댈 수 없게 되죠.
극단적으로말해 몸무게를 제로로 만드는 게 그녀들의 이상입니다.
그러니중년 남자가 거식증에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도카이 선생님의 경우에는 증상만으로 따지면 명백히 거식증이었어요.
물론 선생님이 미용을 위해 그러셨던 건 아니죠.
제 생각에 선생님이 식사를 하지 않게 된 것은 정말 말 그대로 음식이목으로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사병?" 나는 말했다. "네, 그 비슷한 겁니다." 고토 청년은 말했다. "
어쩌면 스스로제로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은자신을 무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던 거예요.
그곳에 생각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 생각을 여기 지상의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 그렇잖아?"
"혹시 당신은 태내에 있었던 때도 기억이 나?" 하바라는 놀라서 말했다.
"물론이지." 셰에라자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리고그의 가슴 위에서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당신은 기억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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