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대학에 들어가게 되어 신칸센을 타고 상경하는 동안내내 혼자 생각한 것인데, 그때까지의 십팔 년 인생을 되돌아보니 내게 있었던 일 대부분이 실로 창피한 것들뿐이었다. 

과장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다시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한심한 일들뿐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나라는 게 너무도 싫었다. 

물론 멋진 추억도 몇 가지는 있다. 

겸연쩍을 만큼 자랑스러운 경험도 없지는 않다.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수치로 따지면,
생각만 해도 낮뜨거운 일, 나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지는 일이 훨씬 많았다. 

그때까지 지나온 내 삶이나 내 생각도 돌이켜보니 참으로 범속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대개는 상상력이 부족한 미들클래스 잡동사니였다. 

죄다 한데 뭉쳐 큼직한서랍 깊숙이 넣어버리고 싶었다. 

아니면 불을 붙여 연기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어떤 연기가 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전부없었던 일로 돌리고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도쿄에서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나라는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게 간사이 사투리를 버리고 새로운 말을 익히는것이란 그러기 위한 실제적인 (또한 상징적인 수단이었다. 

결국 내가 하는 말이 나라는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니까. 적어도 열여덟 살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멤버들은 일절 관여하지 않았지. 

그 셋은 이 노래가 비틀스라는 그룹에 좀 약한 편이라고 생각했어. 

명의는 일단 레넌- 매카트니로 되어 있지만."
"그래? 내가 그런 심오한 지식에는 영 어두워서."

"심오한 지식이 아냐.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야." 나는말했다.

"야 됐다. 그런 자잘한 건 아무 상관 없어." 기타루가 수증기속에서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

내 집 욕실에서 내 맘대로 부르는 거야. 

무슨 음반을 낸 것도 아니잖아. 

저작권을 침해하는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냐. 

일일이 시비 걸거 없어."

그러고는 후렴구를 그야말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불렀다. 

고음부까지 매우 기분좋게 "바로 어제까지 그애도/거기 있었건만...…"이라나 뭐라나. 

그리고 두 손으로 물을 가볍게 치며 참방참방 천하태평한 물소리 반주를 곁들였다. 

나도 뭐라고 장단을 맞춰주면 좋았을 테지만 도저히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남이 목욕하는 동안 한 시간씩 옆에 붙어서 유리문 너머로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이 못 된다.

"그나저나 뜨거운 물에 어떻게 그리 오래 앉아 있지? 몸이 퉁퉁 붇지 않냐?" 내가 말했다.

"왜 헤어졌는데?"
"얘기하자면 길고, 지금은 하고 싶지 않다."
"아시야 사는 애야?" 기타루가 물었다.
"아니, 아시야는 아냐. 슈쿠가와에 살았어. 거기서 거기지만."
"끝까지 갔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끝까지는 안 갔어."
"그래서 헤어졌어?"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것도 있지."

"끝 바로 전까지는 갔고?"

"응, 바로 전까지는."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갔는데?"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말했다.

"그것도 네가 말하는 ‘창피한 일‘ 중 하나인 모양이네."

"그래." 나는 말했다. 그것도 내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일중 하나였다.

"너도 참 어지간히 복잡한 놈이다." 기타루는 감탄하는 투로말했다.

<예스터데이>에 괴상한 가사를 붙인 기타루의 노래를 내가 처음 들은 것은 덴엔초후에 있는 그의 집 욕실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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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그녀가 하바라에게 베푸는 모든일상적 행위의 어디까지가 정해진 직무이고 어디서부터가 개인적인 호의에서 나온 것인지 (애당초 그것을 호의라고 할 수 있을지 어떨지), 하바라는 판단할 수 없었다. 

셰에라자드는 여러 면에서 감정과 의도를 읽어내기 어려운 여자였다. 

이를테면 그녀는 대체로 항상 심플한 소재의 수수한 속옷을 입었다. 

평범한 삼십대 주부가 일상적으로 입을 만한-그전까지 삼십대 주부와교제한 경험이 없는 하바라로서는 어디까지나 추측하는 수밖에없지만 종류의 것이다. 

어느 대형마트의 세일 때 샀을 법한. 하지만 어떤 날에는 아주 섬세한 디자인의 남자를 유혹할 만한 속옷을 입고 오기도 했다. 

어디서 샀는지 몰라도 한눈에 봐도 무척고급품 같았다. 질 좋은 비단에 정교한 레이스, 짙은 색조를 띤델리킷한 물건이었다. 

그런 극단적인 격차가 대체 어떤 목적이나 사정에서 나오는 것인지 하바라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또하나 그를 어지럽히는 것은 셰에라자드와의 성행위와 그녀가 하는 이야기가 밀접하게 이어져 쌍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한쪽만 뽑아내기란 불가능했다. 딱히 마음이 끌리지도 않는 상대와의 그다지 열정적이라고 할 수 없는 육체관계에자신이 이런 식으로 깊숙이 연결되어 있는혹은 단단히 봉합되어 있는것은 하바라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었고,

그때 나는 와세다 대학 문학부 2학년이었다. 

그는 삼수생이고입시학원 와세다 대비반에 다녔다. 

그러나 삼수까지 하면서도공부를 열심히 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틈이 나면 입시와 거의 관계없는 책만 읽었다. 

지미 헨드릭스 전기나 장기 외통수풀이 책이나 우주는 어디에서 탄생했는가, 같은 책, 학원은오타구의 부모님 집에서 다닌다고 그는 말했다.

"부모님 집?" 나는 말했다. "당연히 간사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에이, 아냐. 덴엔초후에서 태어나 내내 거기서 컸어."

나는 그 말에 크게 당황했다.
"그럼 왜 간사이 사투리를 쓰는데?" 내가 물었다.

"후천적으로 배웠어. 일념발기念發起해서."
"후천적으로 배워?"

"한마디로, 죽자사자 공부했지. 동사며 명사며 악센트까지 모조리 외웠어. 영어나 프랑스어 배우는 거랑 원리적으로는 똑같아. 간사이로 실습도 몇 번 다녀왔어."

나는 감탄하고 말았다. 영어나 프랑스어를 배우듯이 ‘후천적으로 간사이 사투리를 습득하는 인간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역시 도쿄는 넓은 동네구나 싶었다. 어째 꼭 『산시로』" 같은 소리지만.

"홈스테이?" 나는 감탄해서 말했다.

"사투리 배우는 정성으로 입시공부를 했으면 삼수까지는 안했을 텐데." 기타루가 말했다.

정말이지 맞는 소리라고 나도 생각했다. 제가 말해놓고 제가딴죽을 거는 점도 그야말로 간사이 사람다웠다.
"그래서, 너는 어디서 왔어?"

"고베 근처."
"고베 근처 어디쯤?"
"아시야." 나는 말했다.
"완전 좋은 동네잖아? 처음부터 똑 부러지게 아시야라고 말하면 될 것을 복잡하게 에두를 거 없이."

나는 설명했다. 

누가 출생지를 물었을 때 아시아라고 대답하면 아무래도 유복한 집 자식이라는 이미지를 주게 된다. 

그러나똑같은 아시야라도 실상은 각양각색이다. 

우리집은 딱히 유복하지 않다. 

아버지는 제약회사에 다니고 어머니는 도서관 사서로일한다. 

집도 작고, 차는 크림색 도요타 코롤라다. 그래서 누가출생지를 물으면 쓸데없는 선입견을 주지 않도록 항상 ‘고베 근처‘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뭐야, 내 경우랑 완전히 똑같네." 기타루는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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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알아챈 변화는 선생님이 점심을 드시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그전에는 매일 점심시간이면 간단히라도 꼭 챙겨 드셨거든요. 

아무리 일이 바빠도 식사는 꼬박꼬박 챙기시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점심을 아예 안 드시는 거예요. 

뭐좀드셔야지요‘라고 권해도 ‘걱정할 거 없어, 식욕이 좀 없어서 그래‘ 하시면서, 그게 10월 초의 일입니다. 

그 변화에 저는 불안해습니다. 

선생님은 매일매일 정해진 습관을 바꾸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분이었으니까요. 

일상의 규칙성을 무엇보다 중시하셨죠. 

문제는 점심을 거르는 것만이 아니었어요. 

어느새 스포츠센터에도 발길을 끊으셨더군요. 일주일에 사흘은 스포츠센터에 나가 수영이나 스쿼시,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하셨는데, 그런것들에 완전히 흥미를 잃으신 눈치였어요. 

그리고 옷차림에도예전처럼 신경을 쓰지 않으셨고요. 늘 깔끔하고 세련된 차림이셨는데,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점점 매무새가 흐트러졌어요. 

며칠씩 똑같은 옷을 입고 나오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생각에 잠긴 기색으로 점점 말수가 줄더니 이윽고 거의 입을 열지 않고 멍하니 계시는 때가 많아졌어요.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려도 전혀 안 들리는 것 같았어요. 퇴근 후에 여자를 만나는 일도없어져버렸고요."

낼 것은 봉투에 넣어 정리했습니다. 

욕실에 가 목욕물을 빼고 욕조를 닦았고요. 

물때가 욕조 벽에 선처럼 끼어 있는 것을 보니꽤 오랫동안 물이 그대로 고여 있었던 것 같았어요. 

깔끔한 성격의 선생님으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정기적으로 부르던 하우스클리닝도 끊어버리셨는지 가구마다 부옇게 먼지가 앉아 있었어요. 

다만 의외로 주방 싱크대에서는 오물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어요. 

아주 깨끗한 상태였죠. 

한참 주방을 안 쓰신 거예요. 

생수병 몇 개만 굴러다닐 뿐, 뭘 드신 흔적은 없었어요. 

냉장고를열어보니 뭐라 말할 수 없는 지독한 냄새가 났습니다. 

안에 방치되어 있던 것이 죄다 상했더군요. 

두부며 채소,과일, 우유, 샌드위치, 햄, 그런 것들이요. 전부 큼직한 쓰레기봉투에 넣어 맨션지하에 있는 쓰레기장으로 가져갔습니다."

청년은 빈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각도를 바꿔가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눈을 들고 말했다.

"집안을 원래에 가까운 상태로 만드는 데 세 시간 넘게 걸렸던것 같아요. 

그동안 창문을 내내 열어둬서 불쾌한 냄새도 대충 가셨지요. 

그래도 선생님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어요. 

제가 집안여기저기를 오가는 걸 그저 눈으로 좇고 있을 뿐이었죠. 

여위신만큼 두 눈이 평소보다 훨씬 크고 촉촉해 보였어요. 

그러나 그눈에서는 어떤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죠.

청년은 그쯤에서 몇 차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시간을 끄는 것 같군요. 이야기를 짧게 줄이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도카이 선생님은 거식증 비슷한 것에 걸리신 거예요. 

음식을 거의 먹지 않고 물만으로 생명을 유지하셨어요. 아니, 정확하게는 거식증도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거식증 환자는 대부분 젊은 여자예요. 

미용을 위해 살을 뺄목적으로 식사량을 줄이고, 그러다가 몸무게를 줄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아무것도 입에 댈 수 없게 되죠. 

극단적으로말해 몸무게를 제로로 만드는 게 그녀들의 이상입니다. 

그러니중년 남자가 거식증에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도카이 선생님의 경우에는 증상만으로 따지면 명백히 거식증이었어요. 

물론 선생님이 미용을 위해 그러셨던 건 아니죠. 

제 생각에 선생님이 식사를 하지 않게 된 것은 정말 말 그대로 음식이목으로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사병?" 나는 말했다.
"네, 그 비슷한 겁니다." 고토 청년은 말했다. "

어쩌면 스스로제로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은자신을 무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던 거예요. 

우리가 태내에 태아로 있었을 때와 똑같아. 

그곳에 생각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 생각을 여기 지상의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 그렇잖아?"

"혹시 당신은 태내에 있었던 때도 기억이 나?" 하바라는 놀라서 말했다.

"물론이지." 셰에라자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리고그의 가슴 위에서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당신은 기억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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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 십 년 가까이는 거의 항상 그혼자서 탔다. 

아내가 죽은 뒤 몇 명의 여자를 사귀었지만 이상하게 그녀들을 조수석에 앉힐 기회는 한 번도 없었다. 

교외로 나가는 일도 업무상 필요한 때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없어졌다.

"역시 여기저기 조금씩 상한 곳은 있지만 아직은 괜찮습니다."

오비는 대형견의 목을 쓰다듬듯이 대시보드를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문지르며 말했다. 

"믿을 만한 차예요. 

이 시절의 스웨덴 차들이 제법 튼튼하게 나왔죠. 

전기 계통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기본 메커니즘에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정비도 제때제때 착실히해오셨고요."

가후쿠가 필요한 서류에 사인하고 청구서의 각 항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을 때 그 아가씨가 왔다. 

키는 165센티미터 정도, 뚱뚱하지는 않지만 어깨가 넓고 몸이 탄탄해 보였다. 

목덜미 오픈쪽에 큼직한 올리브만한 보라색 타원형 반점이 있었지만 본인은그게 남들 눈에 띄는 것에 딱히 저항감이 없는 모양이었다. 

숱많은 검은 머리는 걸리적거리지 않게 뒤로 묶었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었고, 오바가 말했듯이 몹시 퉁명스러운 인상이었다 뺨에는 여드름 자국이 조금 남아 있었다. 

눈은 크고 눈동자가 또렷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의심 많은 듯한 빛을 띠었다. 

눈이 큰 만큼 그 색깔도 짙어 보였다. 

가후쿠는 잠시 생각했다. 지금 서 있는 곳은 시노하시 근처다.

"덴겐지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메이지야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거기서 잠깐 쇼핑한 다음에 아리스가와 공원 쪽으로 언덕길을 올라서 프랑스 대사관 앞을 지나 메이지 거리로 그리고 이곳으로 돌아오지."

"알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일일이 경로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오바에게서 열쇠를 받고는 운전석 위치와 미러를재빠르게 조정했다. 

어디에 어떤 스위치가 있는지 이미 다 알고있는 것 같았다.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한차례 시험했다. 재킷가슴팍 호주머니에서 초록색 레이밴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그러고는 가후쿠를 향해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가 다 되었다는 뜻이다.

"카세트테이프." 그녀가 카오디오를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카세트테이프를 좋아해." 가후쿠가 말했다. "CD보다 다루기쉬워 대사 연습하기에도 좋고."

"오랜만에 보네요."
"내가 운전을 시작하던 무렵에는 8트랙이었어." 가후쿠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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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신의 독자층을 잘 파악해서 가장 적절한 대사를 선택해야합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대사 쓰는 팁은 딱 하나입니다. 

독자가읽었을 때 유치하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대사를 써야 합니다. 

사실독자들은 설명과 묘사에서는 유치함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조금 부실할 수는 있겠지만요. 

하지만 대사에서는 유치함에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유치함‘이라는 느낌은 정말 치명적입니다. "유치해서 못 봐주겠네"라는 말은 현실에서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독자가 작가의 작품에서그런 감정을 느꼈다면 그건 바로 이 글에서 하차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유료 구매 독자들의 이탈 원인 중 첫 번째가 유치함입니다.

뼈아픈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조금 냉정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유치함이라는 것은 나보다 수준 낮은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입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수준은 연령일 수도 있고 지성일 수도 있고 성품일 수도 있고 인간성일 수도 있습니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 아이들이 초집중해서 보는 만화 「뽀로로」가 있습니다. 오죽하면 ‘뽀통령‘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아이가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더 이상 「뽀로로」를 보지 않습니다. 왜 안 보는지 물어보십시오. 대답은 "유치해서" 입니다.

어린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지적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유치함의 예를 한번 볼까요? 인터넷에 떠도는 ‘갑질‘ 사례를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파트 경비를 ‘노비‘라고 부르는 입주자도 있었습니다. .

그때 우리는 그 입주자를 ‘극혐‘ 합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노비‘라는 말을 쓰는지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죠. 

이때는 인간성이나 품성을 유치하게 느낀 것입니다.

대사에서 유치함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굳이 돈과 시간을 써가며 나보다 수준 낮은 지성이나 품성의 작품을 읽어야 하나,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는 자괴감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하차 각이 딱 나오죠. 유치한대사는 이처럼 치명적입니다

이 부분을 읽어보면 테스의 옷차림을 굉장히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솔직히 웹소설에서 이렇게 자세하고 길게 옷차림을 묘사하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안 보고 패스할 겁니다. 

하지만 독자들이 패스할 것이니까 작가도 패스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쓰지 않을 뿐입니다.
여주인공이 입고 있는 옷차림은 100퍼센트 작가의 머릿속에 고스란히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중에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것뿐이죠. 이것이 바로 작가의 태도입니다.

‘그녀의 목은 깃털 주름 장식 위로 나와 있고‘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글을 쓰는데 등장인물들끼리 싸움을 해서 목 부분을 잡아 뜯었습니다. 

그때는 이 깃털을 묘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자 등장인물의 옷차림에 대한 구상이 머릿속에 하나도 없다면 그냥 옷깃만 잡는다고 묘사할 겁니다. 

셔츠인지 원피스인지 깃털 장식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죠. 

그러면 독자들도 잘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묘사가 필요할때는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묘사가 필요할 때를 대비해 작가는 항상 완벽한 모습을 그리고 있어야 합니다.

묘사에는 심리묘사도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심리에 대한 묘사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심리묘사는배우가 표정이나 동작으로 다 알아서 하기 때문이죠.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심리묘사를 위해 장황하게 쓰는 건 좋지 않습니다. 인물의 대사를 통해, 또는 인물의 표정이나 몸짓을 묘사하면서 심리를 드러내야 합니다.

심리묘사를 정확하게 한다는 것은 독자에게 등장인물의 감정을 강요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독자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는데 작가가 심리묘사를 하면서 이렇게 느끼라고 강요하는 순간, 독자는 괴리감을 느끼게됩니다. 

독자 스스로 등장인물의 심리를 짐작하고 추측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작가의 역할입니다.

예를 들어,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주인공이 수능 성적을 잘 받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때 할아버지인 진 회장이 너무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든지 하는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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