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거리를 젖은 걸레로 칠판을 닦아내듯이 깨끗하게 지워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하바라는 생각했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지금 하바라가 무엇보다 원하는 것이었다.
셰에라자드는 서른다섯, 하바라보다 네 살 많고 일단은 전업주부이고(간호사 자격증이 있어서 이따금 필요할 때 불려나가는것 같았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둘 있다.
남편은 평범한 회사에 다닌다. 집은 여기서 차로 이십여 분 거리다.
적어도그것이 그녀가 하바라에게 알려준 자신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였다.
그것이 거짓 없는 사실인지 어떤지도 하바라가 확인해볼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의심할 이유도 딱히 찾을 수 없었다.
내이름은 굳이 알 필요 없잖아? 하고 셰에라자드는 말했다.
분명맞는 말이다. 그녀는 그에게 어디까지나 셰에라자드‘이고, 그것으로 당장은 불편할 일이 없었다.
여자도 하바라의 이름을ㅡ물론 알고는 있을 테지만 부른 적이없다.
그것을 입에 올리는 것이 불길하고 부적절한 행위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신중하게 그의 이름을 우회했다.
셰에라자드의 얼굴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천일야화」에 나오는 미모의 왕비와 전혀 비슷한 구석이 없다.
그녀는 몸 여기저기에 (마치 틈새를 퍼티로 메우듯이) 군살이 붙기 시작한 지방도시의 주부로, 목하 중년의 영역으로 착실히 걸어가는 중이었다.
이 은근히 두툼해지고 눈 옆에는 주름이 져 있었다.
머리 모양과옷차림과 화장은 아주 엉망은 아니지만 그리 감탄할 만한 것도못 된다.
얼굴 생김 자체는 결코 나쁘지 않은데 포인트라 할 만한 부분이 없어서 희미한 인상밖에 주지 못했다.
길에서 스치더라도,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에게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도 십 년 전에는 발랄하고예쁜 아가씨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만일 그랬다 해도 그런 나날은 어느 시점엔가이미 막을 내렸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그 막이 다시 오를 기미가보이지 않았다.
셰에라자드는 일주일에 두 번꼴로 ‘하우스‘에 왔다.
요일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주말에 오는 법은 없었다.
주말은 아마도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근처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사서 차에 싣고왔다.
오래된 모델로, 뒷범퍼가 눈에띄게 움푹 우그러졌고 휠은 먼지가 끼어서 새카맣다.
그녀는 차를 ‘하우스‘ 주차장에 세우고 해치백을 열어 슈퍼마켓 봉투를 꺼낸 뒤 양손으로 안고서 초인종을 눌렀다.
하바라는 현관문의 방범렌즈로 누구인지 확인한 뒤 자물쇠를 돌리고 체인을 풀어 문을 열었다.
앞에서는 그 이름을 꺼내지 않지만, 그녀가 찾아온 날이면 매일쓰는 작은 일지에 ‘셰에라자드‘라고 볼펜으로 메모해두었다.
그리고 그날 그녀가 해준 이야기 내용도 간단히 나중에 누가 보더라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기록해두었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완전한 창작인지 아니면 부분적으로는 사실이고 부분적으로는 지어낸 이야기인지 하바라는 알지 못한다.
거기에는 현실과 추측, 관찰과 몽상이 구분하기 어렵게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바라는 그 진위에 일일이 신경쓰지 않고 그저 무심히 그녀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로 했다.
사실이든 허구든, 혹은 그것들이 복잡하게 어우러진 얼룩 같은 것이든 그 차이가 지금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쨌거나 셰에라자드는 상대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화술에 능했다.
어떤 종류의 이야기라도 그녀의 입을 통하면 특별해졌다.
말투도 그렇고 은근히 뜸을 들이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녀는 듣는 사람의 흥미를 자아내고심술궂게 애태우고, 고민하고 추측하게 만든 뒤에야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적확하게 내주었다.
그 얄미울 정도의 기교는 일시적이나마 듣는 사람이 주위 현실을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다.
유능한 주부인 듯 그 과정 내내 무척 능숙했고 불필요한동작이 없었다.
일을 끝낼 때까지는 거의 말도 하지 않고 시종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작업을 마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에 실려가듯 두 사람은 자연스레 침실로 이동했다.
셰에라자드는 아무 말 없이 빠르게 옷을 벗고 하바라와 함께 침대에 올랐다.
두 사람은 거의 말하는 법 없이 서로를 안고, 마치주어진 과제를 협력하여 해치우듯이 일련의 절차를 밟으며 섹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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