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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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디서 것인가' 건축가이자 건축대학 교수인 저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실생활을 서술한 책이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양부터 동양까지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깃거리가 독자를 즐겁게 한다. 다양한 일러스트와 사진들 또한 흥미를 유지한다. 전반적으로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일깨워주고 몰랐던 것도 알려주는 계기가 돼서 재밌게 읽었다. 다만 가지 단점이 있다. 첫째는 실제 사실만큼 저자의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다. 논리적 비약도 많고,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과학법칙을 끌고 오는데 운동에너지, 위치에너지, 중력 등에 기반한 근거 제시는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둘째는 건축가의 관점이 아니라 일반 시민으로서의 관점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한 다양한 최신기술의 얕고 넓은 언급, 예를 들면 IoT, 블록체인, 증강현실 등은 사족이다. 건축적 요소에 집중하는 것이 간결하고 일관성이 있었을 것이다. 보다 압축해서 300 이내로 출판했더라면 좋았을 같다. 이런 현상은 뒤로 갈수록 심해져서 앞쪽에 재밌는 부분이 집중되어 있다. 내가 재밌었던 부분을 뽑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건축적 요소는 창의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어느 제약회사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원의 특징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들의 모든 습성을 조사해 결과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예를 들면 청소부와 떠든다든지, 자신의 업무와 상관없는 다른 부서의 사람들과 잡담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생각을 접할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생각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창의적인 생각을 있는 것이다. (p. 43)"

  "고층 건물은 사람들 간의 소통이 단절되어 창의성을 발휘하기 힘들다. 저층 건물에 살면 친구도 3배가 많고 창의적 결과가 많이 나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저층에 살면 타인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 소통이 많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창의성으로 연결되는 같다. 다양한 분야의 통섭이 창의성으로 이어진다는 최근 연구결과들과 상통하는 내용이라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다. 신기한 천장이 3미터 이상 되면 창의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인데 이것은 환기나 채광 등의 환경에 따른 효과인지 심리적 효과인지 없어 추가연구가 필요할 같다.

  창의성 얘기가 계속되는데 우리나라 주택은 비슷하게 생긴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사고가 자유로워야 학교도 마찬가지다. 군사 정부 시절 통제를 쉽게 하려고 획일화시켰다. 현재도 그런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 저자가 학교 건축 공모전에 보다 개방적인 구성안을 내놓자 심사위원들이 최종에서 탈락시켰다고 한다. 그들은 학생들을 자유롭게 계발시키기 보다 통제해야 대상으로 여기는 같다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한다. '다르다' '틀리다'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는 사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통찰이다. 창의성을 위해 다른 것을 수용할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이는 뒤의 HSBC 사례에서 드러난다.

 

  저자는 인간 중심의 도시를 선호한다. 우리나라, 특히 서울의 도로는 중심으로 있다. 다른 책에서도 내용인데 블록의 길이가 길어 블록이 끝나고 다른 풍경을 보려면 너무 오래 걸어야 한다. 도로 뿐만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있는 공간도 없다. 사람은 공공장소인 지하철에서도 이어폰을 끼고 자신만의 공간을 최소한이라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한다. 외부에 그런 공간이 없다보니 카페, pc, 편의점이 되는 것이다. 놀이공간을 늘리는 방안으로 공원이 있다. 그러나 현재 서울의 공원들은 일상생활과 상당히 떨어져 있고 공원 사이의 거리가 멀다. 뉴욕은 공원들 사이를 10 정도면동할 있는 반면울에서는 1시간을 걸어야 다음 공원으로 이동할 있다. 실생활에 밀접한 공원을 위해서는 크고 것보다는 작고 가까이 있는 공원을 여러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도로 설계는 상권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차선인지에 따라 사람이 건너에서 느끼는 거리감이 꽤나 다르다. 홍대 상권은 대부분 3차선으로 있는데 정도의 너비는 무단횡단이 자연스러워 동선이 연결된다. 하지만 차선이 이상 늘어나면 심리적으로 멀게 느껴져 건너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홍대 근처는 많이 가봤지만 그런 부분은 전혀 신경쓰지 못했는데 역시 건축가의 시선은 다른 같다.

 

  건물 설계에서도 사내 문화에 따라 고층이냐 저층이냐, 층이 분리돼 있냐 연결돼 있냐로 나뉜다. 고층 건물의 경우 위쪽에서는 아래쪽을 내려다보지만 반대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권력의 불균형이 생긴다. 반대로 저층이거나 층의 구분이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경우는 서로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상호 감시를 하는 경향이 있다. 전자의 대표적 사례는 현재 삼성동에 건설 중인 현대자동차 본사이고, 후자의 대표적 사례는 애플이 손꼽힌다. 저자는 건물 내에서 시야가 트인 아모레퍼시픽 본사와 홍콩 HSBC 본사를 좋은 건축물로 손꼽는다. 특히 HSBC 사례가 재미있다. 유명한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건축물 설계도를 완성하여 착공하려고 하자 풍수지리가가 건물이 수맥 위에 들어서게 홍콩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포스터는 의견을 수용해 1층을 아예 터놓고 현수교처럼 만들어 공간을 비게 했다. 건물 내부에 태양의 위치에 따라 각도가 변하는 거울을 설치해 햇빛이 자연스럽게 1층으로 내려가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현재는 주말이 되면 시민들이 놀러와 쉬는 장소가 됐다고 한다.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는 유연성을 보면 역시 세계적 명성을 가진 실력자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일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과거에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과 현재까지의 변천사였다. 과거의 건축은 중력과의 싸움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건축물의 주재료가 진흙으로 만든 벽돌이었다. 하중을 받치는 한계가 있으니 크기가 건물들은 대체적으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을 띠었다. 문이나 창문을 만드는 경우 아래에 공간이 생겨 윗부분을 지지할 없는 문제가 생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공간 위에는 삼각형 모양의 돌을 올려 하중이 양쪽으로 분산되도록 했다.

  한옥에도 많은 장치가 숨겨져 있다. 기왓집을 지으려면 기와를 올리기 위한 지붕이 필요한데, 지붕을 얹으려면 기둥과 기둥 사이를 연결할 있는 거대한 크기의 보가 필요하다. 서민들은 어렵게 기와를 구하더라도 정도 크기의 나무를 구할 없어 기와집을 짓지 못했을 것이다. 조상들은 우리나라 기후 특성인 장마를 극복하기 위한 고민도 많이 했다. 비가 많이 내리고 나면 땅이 물렁해져 기둥이 속으로 들어가버리기 때문에 무거운 벽돌을 재료로 사용할 없다. 그래서 보다 가벼운 나무를 사용했는데, 나무는 비를 맞으면 썩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우선 주춧돌을 세우고 위에 기둥을 놓는다. 마루도 위에 바로 놓지 않고 공간을 만든 돌계단을 밟고 올라선다. 지붕은 평평하게 만들지 않고 뾰족하게 만들어 비가 아래쪽으로 떨어질 있도록 한다. 그러면서도 처마 끝을 올려 기둥이 햇빛에 마를 있도록 했다. 이런 구조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어서 해의 입사각이 높아지는 저위도 지방에서는 처마의 경사가 급한 모습을 보인다. 현대 건축은 웬만해서 무너지지 않는 철골과 콘크리트가 주성분이라 이런 문제는 고민하지 않고 다양한 것을 고려할 있게 되었다. 미래의 건축재료는 3D 프린터가 대세가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는 단열, 방음, 구조 등의 다양한 목적마다 개별적인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데 3D 프린터는 이것들을 한번에 해결할 있다. 대충 말로만 들어도 경제적으로 상당히 절약이 것으로 보인다. 다만 3D 프린터가 상용화된다면 공사현장에 많은 일자리가 투입되는 우리나라 경제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지 염려된다.

 

 

  앞에서 언급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언급하는 시사점들은 생각해 필요가 있다. 서울숲과 압구정로데오를 잇는 다리 건설을 통한 강남-강북의 연결이라든지 도로변 상가 입점으로 자연스럽게 사람의 동선을 만든다든지 하는 의견들 말이다. 현재로서는 상당히 현실성 없는 이야기로 보인다. 건축이라고 하면 개발과 투자부터 떠올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더군다나 공유차량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자율주행 차량이 보급된다면 도로 차량이 줄어들어 대대적인 도로 개선은 필요할 것이다. 이상 중심의 도시는 대세가 아니다. 밀집된 도시 속에서도 잠시나마 여유를 찾을 있는 인간 중심 개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주제가 저자가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겉핥기 식으로 지나가 아쉬운 면이 있다. 만약 다음에도 책을 낸다면 쉽게 설명하는 재능을 활용해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주제에 대해 심도있게 다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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