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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에번 핸슨
밸 에미치 외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5월
평점 :
p.134. 이렇게 황홀한 기분은 처음이다. 그리고 이렇게 처참한 기분도 처음이다.
세계적인 뮤지컬 『디어 에반 한센』을 소설<디어 에번 핸슨>으로 만나본다. 『라라랜드』제작팀이 참여한 뮤지컬『디어 에반 한센』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2017년 토니상 6개 부문을 수상하고 2018년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한 최고의 뮤지컬 작품이다.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는 소설이라는 특이한 출발점을 가진 <디어 에반 핸슨>은 방황하는 고등학생들의 일상을 담은 성장소설이다.
https://youtu.be/jEmPrKxN3vk
10대의 마지막 시간들을 보내는 아이들의 성장통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신체적으로는 어른에 가깝지만 이성적으로는 아직은 아이에 좀 더 가까운 10대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10대들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의 고민들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 아이들의 고민과 아픔을 우리 어른들이 함께해야 하는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나는 퇴장했다'로 시작한 이야기는 '나는 퇴장한다'로 마무리된다. 사회불안장애로 심리 치료를 받고 있는 마크 에번 핸슨은 의사의 처방으로 매일 자기 자신에게 "오늘은 근사한 날이 될 거야, 왜냐하면…"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쓴다. 심리치료에 대한 엄마의 기대 속에 쓰기 시작한 편지의 효과를 절대적이라고 믿지 않으면서도 순수한 에번은 나름 적응하려 노력 중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리 예쁘지는 않지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조이 머피가 있다. 대화도 한번 해보지 못했지만 에번의 활력소가 되어주는 고마운 친구다. 자기자신에게 쓰는 편지와 멀리서 바라보는 소녀가 에번에게는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어주는 듯하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그 버팀목이 에번을 혼란스러운 벼랑으로 내몰게 된다. 아니 버팀목에 대한 배신이, 거짓말이 에번을 커다란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에번이 쓴 심리치료용 편지를 자신이 아닌 코너 머피가 쓴 마지막 편지로 생각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는 것이 코너를 잃은 코너의 가족들이 슬픔을 잊는데 더 도움이 될 거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런 단순하고 순진한 생각이 조이를 비롯한 코너의 가족들의 기대와 얽히면서 에번의 의지와는 전혀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작은 거짓말이 조금씩 불어나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사건으로 진행된 것이다. 언제나 아웃사이더였던 에번이 학교의 중심에 서게 된다. 중심에 서게 되는 과정이 너무나 흥미롭게 그려진다. 그 흐름에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에번의 심리적인 고통이 조금씩 무디어질 만도 한데 에번의 고통은 무디어지기는 커녕 점점 더 에번을 조여온다. 거짓을 밝히면 중심에서 완전히 멀어질 것이고, 거짓 속에 숨어 있으면 그 중심에 서있을 수 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그런데 그런 혼란스러운 에번을 지켜보는 이가 있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퇴장했던 코너 머피가 에번을 지켜보며 에번의 거짓말에 재미난 반응을 보인다. 이 책이 주는 재미 중에 하나로 여겼던 코너의 이야기는 조금씩 진실에 가까워지면서 아픔과 슬픔을 들려준다. 작은 종이 한 장에 프린트된 편지가 커다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까지 에번과 코너가 겪은 아픔과 슬픔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에번의 이야기와 코너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되면서 두 소년의 조금은 다른 사랑과 방황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다양한 반응들을 보여준다.
인생의 흐름은 작은 변화만으로도 방향이 바뀔 수 있다. 바뀐 흐름이 가지는 의미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10대의 아이들이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인생의 변화를 맞게 된 10대들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었다. 작은 편지 한 장의 등장으로 변해버린 인생의 흐름을 에번은 어떻게 맞이할까? 잘못된 흐름 속에서 그저 흘러갈까 아니면 그 흐름에서 빠져나올까?
외로움에 지친 아이들에게 아니 힘든 오늘을 버티고 있을 외로운 어른들에게 이 소설은 에번의 이야기를 통해서 조금 더 밝은 세상으로 가는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 길은 서로 소통하는 것인 듯하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친구들 간에도 소통을 통해 공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소통의 중요함을, 공감의 중요함을, 관심의 중요함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이야기가 바로 이 책에 담겨있는 것이다. 지금 곁에 있는 아이에게 대화를 시도해 본다면 불현듯 찾아올 후회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