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인 여자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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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범죄 소설을 다수 집필했으며 작품 대부분이 영상화된 아르헨티나의 대표 작가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의 작품을 만나보았다. 그해 가장 뛰어난 범죄 소설에 수여되는 대실해밋상을 2021년 만장일치로 수상한《신을 죽인 여자들》은 세 자매의 종교적 신념을 소재로 여성에게 가해진 사회적 압제를 폭로한 우수한 작품이란 평을 듣는 장편소설이다.


p.18. 그날 나는 무신론자라는 말이 저주이자 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한 느낌은 종교적인 억압과는 거리가 멀었다. 동생 아나의 잔인한 죽음으로 인해 언니 리아가 신을 부정하고 종교적인 삶을, 가족을 떠나 동생을 살해한, 토막 내 불태운 범인을 찾아내는 미스터리 소설 같았다. 하지만 챕터를 한 장씩 넘기면서 점점 더 종교적으로 억압된 여성의 삶이 부른 비극으로 다가왔다.


p.111. 이처럼 부모님은 세상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 믿었다.

이 책은 각 챕터의 화자(話者)가 다르다. 그리고 그 화자가 챕터의 제목이다. 그렇게 사건과 관련 있는 이들이 들려주는 30년 전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나면서 당시 열일곱 살이던 소녀 아나의 죽음과 관련된 미스터리들이 하나둘 풀린다. 그런데 동생 아나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아르헨티나를 떠나 스페인에 정착한 언니 리아를 시작으로 리아를 귀염둥이라 부르던 아버지 알프레도가 죽기 전에 쓴 편지를 가지고 이모 리아를 만나러 온 큰언니 카르멘의 아들 마테오로 이어지던 챕터의 마지막 제목이 설마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설마. 그런데 마지막 챕터의 화자는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숨겨진 그날의 진실은 무엇일까? 아나를 잔인하게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p.356. 나는 그 어떤 범죄를 저지르지도, 죄악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30년 동안 귀염둥이 막내딸 아나의 죽음이 숨겨놓은 진실을 찾고자 노력했던 아버지 알프레도가 둘째 딸 리아에게 쓴 편지에는 30년 전 그날의 진실이 담겨있을까? 하지만 리아의 죽음은 원인이 중요하지 않다. 사후 발생한 엄청난 사건의 진실이 더욱 충격적이다. 30년 전 토막 난 채로 불태워진 소녀 리아는 어떤 비밀을 품고 있을까? 놀라운 흡인력을 가진 멋진 작품이다. 이름이 다소 어려운 작가지만 기억 속에 클라우디아 피녜이로라는 이름을 저장하고 싶다. 또 다른 작품으로 꼭 다시 만나보고 싶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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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 - 서울 거리를 걷고 싶어 특서 청소년문학 35
김영리 지음 / 특별한서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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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서재의 청소년 브랜드 특서청소년문학의 서른다섯 번째 책을 만나본다. 표지 그림을 보고 오래전 어릴 적 보았던 영화 속 외계인을 떠올렸다. 푸른문학상 수상 작가 김영리가 만들어낸 청소년 SF 《로고》의 첫 문장은 무언가 과학보다는 인문학에 가깝다. '세계관이 중요하다.(p.8)' 열다섯 살 소년의 세계관은 어떤 모습일까? 세계관(世界觀worldview) 우리가 가진 세계관, 사회를 바라보는 가치관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깊이 있는 청소년 소설이다.


p.124. 유전자 조합 기술로 태어나지 않은 나는 구형 로봇에 가까웠다.


먼 미래 인간은 유전자 조합을 통해 월등한 존재로 변화한다. 하지만 그 변화를 거부한 인간도 있고 바로 그 인간이 주인공 '인류'다. 이름부터 무언가 묵직한 포스가 느껴지던 인류가 구형 로봇 '미래'를 만나면서 이야기의 전개 속도는 무척이나 빨라진다. 인류의 미래. 그런데 구형 로봇은 육상이 아닌 지하에서 일하게 되어있다. 한마디로 두 녀석의 조합은 변화의 속도에 뒤처진 루저들의 결합이다. 어떤 시너지도 예측할 수 없었지만 이 둘의 서울 나들이는 세상에 로봇 인권이라는 커다란 이슈를 만들어 놓았다.


딱 한 번만이라도 '서울 거리'를 걷고 싶어 하는 구형 로봇 '미래'는 학대를 당한다. 그런데 이 로봇은 고통 감지 센서가 장착된 로봇이다. 자기를 학대한 여자를 끝까지 엄마라 부르는 미래의 모습을 보면서 로봇에게도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파렴치한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정말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모여 커다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미래의 꿈은 무엇일까? 로봇의 꿈. 정말 흥미롭고 재미난 이야기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휘몰아친다. 정말 뛰어난 흡인력으로 모두를 끌어들이는 태풍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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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시간으로부터 - 발아래에 새겨진 수백만 년에 대하여
헬렌 고든 지음, 김정은 옮김 / 까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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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1. "우리는 죽음이 사유의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가는 통로일 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들 한다. 세상 누구도 시간의 흐름을 역행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이 같은 시간속에 살고있는 것이다.하지만 체감하는 시간의 흐름은 모두가 같지만은 않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질수도 있고 늦게 느껴질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100년'이라는 시간적 개념은 오랜 시간으로 느껴질 것이다. 100년이라는 시간도 길게 느껴지는데 1만년 전은 지금과 같다고 말하는 책이 있어서 만나보았다.

p. 11. "1만 년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깊은 시간속으로부터 NOTES FROM DEEP TIME의 첫문장은 이 책속으로 빨리 들어오라고 매력적인 손짓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저자 헬렌 고든은 수시로 매력적인 이슈들을 보여주며 책을 덮을 때까지 흥미와 재미를 잃지않게 하고있다. 지질학과 가장 가까운 교과목은 아마도 지구과학인듯하다. 다른이들에게 지구과학 시간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내겐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지구의 속을, 지구의 시간 흐름을 연구하는 지질학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p. 64. 만약 46억 년이라는 깊은 시간이 24시간이라면, 인간은 자정이 되기 2분 전에야 등장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깊은 시간'에서는 100만년이라는 시간의 흐름도 별 의미있는 시간으로,변화 가능한 시간으로 대우해주지않는다. 깊은 시간 DEEP TIME 의 의미를 알고 조금씩 지구에 다가갈 수 있게 안내해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 자신이 직접 발로 찾아가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더욱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편집자 출신의 저자가 가진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만들어낸 흥미와 재미 그리고 의미까지 찾을 수 있는 지질학 입문서 같다.

"허턴의 부정합"

p.285. 인류세는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받는 유일한 시대예요.

지질학에대해서 이야기하고있는 과학책인데 마치 여행의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처럼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1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지만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목차를 보고 만나보고 싶은 이야기부터 만나도 무난할것이다. 어느 곳에서 시작하더라도 지질학을 향한 편안한 여행이 될 것이다. 지질학에대한 흥미와 재미를 제대로 접할 수 있는 매력적인 책이다. 누군가에게 추천할 과학 관련 에세이를 찾고 있다면 꼭 한번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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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세요, 미래를 바꿔주는 택시입니다
기타가와 야스시 지음, 김윤희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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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7. '아, 그렇구나. 긍정적이라는 말뜻은 즐거운 일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보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즐기기로 마음먹는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어.'


사람들은 행운(幸運)이 오기를 바라고 기대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행운을 쫓는다. 그런데 행운을 색다른 관점에서 풀어낸 재미난 소설이 있어서 만나보았다. 《타세요,미래를 바꿔주는 택시입니다》는 보험 영업이 직업인 평범한 세일즈맨 슈이치가 주인공이다. 평범한 일상에 걱정거리가 있다면 중학생 딸아이의 등교 거부가 전부라 할 만큼 평온한 날들을 지내던 주인공에게 너무나 큰 위기가 닥친다.


보험계약이 대량으로 해지된 것이다. 나비효과라고 하던가. 보험 계약 해지라는 날갯짓은 슈이치의 일상을 흔들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불안함이 슈이치의 오늘을 갉아먹으려 할 때 승객을 행운의 장소로 태워다 준다는 이상한 택시를 타게 된다. 말하지 않아도 슈이치의 목적지를 알고 태워준다. 그런데 택시 운전사가 내려준 곳에서도 행운을 만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행운을 만나지 못하고 불평하는 슈이치에게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택시 운전사.


p.201. "정말 고마웠소. 당신은 보통의 택시 운전사가 아니라 내 인생을 바꿔준 운전자(運転者)요."


슬슬 의구심이 들 때쯤 주인공 슈이치도 나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행운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말해주면 안 되냐고. 어찌 되어든 택시는 계속 운행을 하고 중간중간 행운이 가진 의미에 대해 풀어낸다. 공감할 수도 있고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야기는 재미나고 이야기의 흐름은 매끄럽다. 슈이치가 처음 '오마카세 택시'를 타면서 시작한 이야기는 슈이치가 타기 바로 전前 택시를 이용한 승객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행운은 갑자기 한 번에 찾아오는 게 아니라 열심히 긍정적으로 살면서 쌓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적립된 포인트는 나를 위해서 또는 가족을 위해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포인트를 정말 많이 적립해놓지 않았다면 나 자신을 위해서 적립된 운을 쓸 부모가 몇 명이나 될까? 슈이치가 택시를 타고 만나러 다닌 것은 행운이 아니라 어쩌면 슈이치의 진실한 삶인지도 모르겠다. 행복하지 않았던 어두운 일상이 택시를 타고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밝아지는 듯하다.


p.72. "…(전략)…운은 후불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얻는 법은 없어요. 포인트 적립 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나요?


그런데 그 밝은 여정의 끝이 아내라는 것이 문제다. 보험 계약 해지에 따른 급여 삭감으로 프랑스 여행을 취소해야 하고 앞으로도 힘든 날들이 이어질 거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의 반응은 어떨까? 읽는 내내 이 부분 때문에 가슴 조이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같은 직장인 남편으로서 슈이치의 오늘을 또 내일을 응원하고 싶다. 행운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다. 누군가의 행운이 부럽다면 이 책을 통해서 행운을 적립하는 방법부터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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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일기 - 조선의 미래를 고민한 실천적 지성의 기록 클래식 아고라 4
이이 지음, 유성선.유정은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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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한나라의 군주와 학문을 논하고 토론하던 '경연'은 어떤 모습일까? 아주 경직된 모습일듯싶었지만 율곡 이이가 들려준 경연 분위기는 무척이나 자유로운듯하다. 물론 훈구 대신과 사림의 첨예한 대립을 볼 수 있는 장면들도 수시로 등장한다. 이 책《경연일기經筵日記》는 경연에서 율곡 이이가 왕에게 전하려 했던 충심을 바탕으로 당시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더욱 재미나고 흥미롭다.


명종20년(1565년 7월)부터 선조14년(1581년 11월)까지 약 17년간의 조선 역사를 육곡 이이는 어떻게 기술하고 있을까? 이 책의 구성은 사실을 기본으로 한 '기사'를 보여주고 그 사건에 대한 이이의 생각을 들려주고 있는 '논평'이 보인다. 500여 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지만 율곡 이이가 가진 깊은 사유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너무나 쉽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유성선(강원대 철학과 교수)과 유정은(강원대 철학실천연구소 교수)의 번역과 해설이 편안함을 더해주고 있다.


p.455. 1581년 선조 14년 정월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는 변고가 생기니, 삼정승이 사직하였다.


p.92. 전하께서 즉위하신 지 수년이 되었으나 나라를 다스린 효과를 아직 보지 못하고 있으니, 아마 전하의 격물치지와 성의정심의 노력이 지극하지 못하신가 합니다.


흰 무지개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연현상을 두고 한 나라의 정승들이 모두 사퇴하였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비롯해서 이 책에는 괴이한 자연현상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또한 이 책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다. 이 책이 가진 가장 재미난 점은 수시로 '디스'하는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이가 선조를 디스 하는 것은 예사로 등장하고 율곡 이이가 선조를 포기하는 장면도 나온다. 선조는 왜 학문에 뜻이 없었을까? 누군가는 "그대가 추천한 이이는 어찌 그렇게 말을 경솔하게 하는가?"(p.101)라며 율곡 이이를 비판하고 또 이이는 누군가를 비판한다.


학문을 토론하는 경연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지만 솔직히 율곡 이이가 들려주는 '인물평'이 더욱 재미나고 흥미로웠다. 율곡 이이는 정철과 퇴계 이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지금 나랏일을 하려는 이들의 계획은 틀렸다. 무슨 일을 하려면 마땅히 개혁이 있어야 한다."(p.75) 10만 양병설의 주인공 율곡 이이가 꿈꾸던 '개혁'은 어떤 모습일까? 경연일기라는 제목이 주는 딱딱함과 무미건조함은 시작부터 사라진다. 율곡 이이라는 개인이 서술한 역사를 흥미롭고 재미나게 볼 수 있는 전혀 부담되지 않는 매력적인 책이다.



"arte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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