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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등은 누가 닦아 드렸을까 - 시골집배원의 섬마을 이야기
함성주 지음 / 월간말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함성주, <내 어머니의 등은 누가 닦아드렸을까>, 월간 말, 2004.




이 달 <말>지가 배달된 시기는 무척 바쁜 때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잡지는 시간이 허할 때 읽는다. 이번 <말> 10월호도 당연히 그랬다. 하지만 일단 배달되면 스르륵 속내용을 훑기는 한다.

그러다가 내 시선이 멈춘 곳은 어떤 기사에서가 아니라 책 광고에서였다.'함성주', 맞다. 이 사람, 얼마 전에 <말>지에 시골집배원의 섬마을 이야기라고 하는 글을 연재하던 그 사람이다. 아, 그 사람 책이 나왔구나!

<말>에서 그의 글을 처음 봤을 때, 이렇게 글을 맛나게 쓰는 사람이 다 있구나 싶었다. 진솔함, 아련한 그 옛 적에의 추억, 현재 시골 어르신들의 생활과 회한. 그러저러한 소재를 묘사하는 그의 세밀함에 여러 차례 감탄을 했었다.

그 능력이 어디서 온 것일까? 그건 단순히 재주가 아니다. 삶의 진솔한 체험과 애정, 거기에서 왔을 것이다. 여유와 낙천이 있으면서도 현재의 자본주의 물질문명에 계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그 스스로 소개하기를 '생태적 자급자족'을 꿈꾸는 자라 하지 않았는가. "내 손으로 집을 짓고, 농사짓고, 나무 심으며, 지구에게 해 끼치지 않고 살다가 흔적 없이 조용하게 죽고 싶"다는 그. 그런 그였기에 이와 같이 아름다운 글이 써낼 수 있는 것 같다.

비유한다면 몇 년 전에 보았던 조선희 선배의 <마흔에 밭을 일구다>를 떠올림직도 하다. 그 분위기가 살아있으면서도 오리지널 토종 시골 출신임이 조선희 선배의 글보다 더 찐한 감동을 준다.

책 제목 그대로 "내 어머니의 등은 누가 닦아드렸을까"처럼 애틋하게 다가오는 글들도 많다. 우리 시대의 어느 어머니가 그런 어려움 없이 살아왔을까 만은 함성주의 글은 그 애틋한 사연을 더욱 실감나게 만들었다. 이건 비단 함성주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모든 어머니에 해당되는 이야기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단순히 자연적 어머니만은 아닐 것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 물질문명의 편리함 뒤에서 사라져 가는 진정한 가치들에 대한 그리움이리라. "나의 편리함이 가장 중요한 이기적인 나로 인해서" 다른 것들이 죽어 가는 모습들.


"똥 냄새가 난들 어떻습니까. 옷에 똥국물이 좀 튀기면 어떻습니까.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고상해졌고,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거만해졌습니까. 좀 더럽더라도, 좀 냄새가 나더라도, 좀 불편하더라도, 좀 느리더라도 삶의 선택권을 후손들에게 넘겨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다 해먹으려들지 말고 말입니다."

"아까시나무나 엄나무처럼 가시가 많은 나무들은, 다른 동물이나 사람이 손대지 못하게 하려고 날카로운 가시들을 열심히 만들어 댑니다. 그런데 혹시 이것 아시나요? 그런 나무는 사람이나 동물이 닿지 않는 높이까지 자라면 거짓말같이 가시를 만들지 않습니다. 힘들여 가시를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많이 가져 거만한 사람도, 가지지 못해 아픈 사람도, 다투지 않고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고향 땅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런 그다. 평화로운 고향 땅에서 살고 싶어하는 그 사람. 그가 책 날개에 써 놓은 감사의 말 또한 가슴을 울린다.

"내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과 존경하는 지수엄마, 미안한 지수, 새 식구가 된 맑은샘이에게 표하는 감사와 사랑을 이 비좁고 작은 자리에 하는 것이 미안합니다.
당신이 지구의 희망입니다."

자기 마누라에게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사람, 결코 상투적이거나 가식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그의 글을 통해 어느 정도 그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정말 함성주, 당신이야말로 지구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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